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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삼보다 귀한 꽃송이버섯이 높은 산에서 한 마리 토끼처럼 웅크리고 있다. 암을 이기는 기적의 버섯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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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폭염주의보를 넘어 경보가 발령됐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오래 잡고 있기에도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더워도 너무 더웠다. 기상관측 이래 신기록을 갈아치우던 가마솥더위가 8월 중순을 고비로 겨우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할 때 저마다 피서법이 따로 있을 것이다. 대개는 해수욕장을 찾거나 깊은 산중 계곡을 찾는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야간이나 새벽산행을 하고, 이열치열의 운동을 하거나 지리산둘레길 등을 걷기도 한다. 밤낮없이 섬진강에는 낚시꾼들이 들어서고, 19번국도와 861번지방도를 달리는 자전거 행렬이 부쩍 늘어난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이와 더불어 나이 지긋한 이들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오토바이’ 하면 폭주족을 연상시키지만 얼마 전부터 중년들에게 인기를 끄는 레저가 바로 모터사이클 투어다. 헬멧을 벗으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들이 섬진강과 지리산 성삼재나 정령치의 굽이길을 달리고 또 달린다.
나 또한 얼마 전에 여행채널T에서 시리즈로 방송 중인 <사진가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지리산 특집’ 편에 출연하는 바람에 며칠 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누비고 다녔다. 산바람 강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바이크의 멋과 맛은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얼마 전에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송기원 선생과 문학평론가 전영태(중앙대 문창과) 교수 일행이 피서를 다녀갔다. 전영태 교수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낚시광’이다. 섬진강 굽이굽이 소의 이름을 다 알 정도로 바다와 민물 등을 가리지 않고 30년 이상 낚시에 심취해 왔다. 전 교수는 나의 순천대 문창과 제자이자 후배인 황종권 시인과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섬진강에서 꺽지와 쏘가리 낚시를 했다.
그런가 하면 송기원 선생의 피서법은 맛집 기행이다. 그것도 별미나 비싼 요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구례 장터의 허름한 밥집이나 술집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신다. 잘 삭은 묵은지 하나면 너무나 흡족해하는 진정한 미식가인 것이다. 구례의 동아식당에서 맛본 묵은지에 대해 “이게 바로 내 생애 환갑이 넘도록 세 번째쯤 맛보는 잘 묵은 김치여. 이 맛 하나면 이 불볕더위도 별 거 아니여”라고 극찬하며 가오리찜 등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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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령치의 별밤. 정령치에서는 언제라도 별똥별이 떨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 이들은 소설가 정지아씨의 작업실에서 사흘간 묵었다. 정지아씨는 아버지 정운창씨가 돌아가신 뒤부터 고향인 구례의 백운산 자락에 빈집을 얻어 놓고 소설을 쓰며 중앙대에 출강하고 있다. 송기원 선생 일행들은 섬진강변에 집을 지은 박두규 시인과 5년 전 구례에 정착한 소설가 이성아씨와 더불어 사흘 동안 낚시를 하다가 장터를 기웃거리고, 밤이면 전영태 교수가 손수 마련한 꺽지 튀김과 쏘가리 매운탕을 곁들이며 술을 마셨다. 무공해 계곡물을 받아 만든 ‘천연 풀장’에 뛰어들며 마시는 술은 밤이 새도록 취하지 않았다. 참으로 문인다운 피서법이 아닐 수 없었다.
별밭을 바라보던 정령치는 천국이자 지상낙원
하지만 최고의 피서는 역시 해발 1,000m 이상의 고개나 산정에 오르는 것이다. 물론 낮에는 폭포가 있는 깊은 계곡이 좋지만, 해발 800m만 넘으면 모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낮에도 기온이 27℃를 넘지 않는다. 바다나 강도 좋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찜통이 아닐 수 없으니 40℃에 육박하는 폭염을 피하기엔 안성맞춤이다.
특히 한밤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올 여름에 나 또한 계곡보다는 지리산 형제봉이나 정령치에 자주 올랐다. 열대야를 피해 밤 12시에 오른 해발 1,200m의 정령치는 21℃ 전후로 서늘할 정도의 쾌적한 밤이었다. 구례로 이주한 소설가 이성아씨, 지리산다문화예술원 원장인 도예가 김동근씨, 최근 화엄사 앞에 ‘여행자 카페 산책’을 연 임현수씨(전 지리산둘레길 구례 센터장) 등 7명이 정령치에서 차와 술을 마시며 행복한 노숙의 밤을 보냈다.
정령치의 밤하늘은 은하수와 더불어 말 그대로 별밭이 장관이었다. 산 아래가 무덥고 뜨거운 만큼 산 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수시로 별똥별이 떨어졌다.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뉴스와 상관없이 툭하면 별똥별들이 ‘휙~ 휘익~’ 반딧불이처럼 스쳐 지나갔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소원을 빌자고 다짐했지만, 워낙 순식간의 일이었기에 모두들 제일 많이 빈 소원은 이런 것이었다. “우와!”, “어어!”, “저기 쩌~기!” 등 마치 반벙어리처럼 입이 딱 붙어버리는 것이었다. 밤새 담소를 나누며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를 하며 별밭을 바라보던 정령치는 천국이자 지상낙원이었다.
새벽 5시가 지나자 천왕봉과 웅석봉 사이에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리산에 살다 보니 좋은 친구들과 일출을 보며 하산하는 행복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정령치에 잘 가지 않았다.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우리나라의 고개 중에 세 번째로 높은 곳이다. 정령치는 시암재나 성삼재보다 훨씬 높은 곳이며, 강원도 함백산의 만항재나 두문동재(싸리재)보다는 조금 낮다. 이 정령치에 나의 졸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시비가 2009년에 세워졌다. 남원문화원과 지리산국립공원 북부관리소가 공동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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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발 1100고지 형제봉에서도 별똥별이 쏟아진다.
- 그런데 나는 정작 이 사실을 몰랐다. 어느 날 남원문화원 관계자가 전화를 해 “이 시를 좀 사용하고 싶은데 괜찮으냐?”고 물어와 “예, 저는 따로 저작권을 따지지 않습니다. 지리산이 준 것이니까요”라고 답변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그저 남원문화원지 등의 책자에 재수록하는 줄 알았다.
이 높은 고개에 엄청나게 큰 자연석으로 만든 시비를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마 진작 알았더라면 정색을 하고 거부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아직 내가 죽지도 않은데다 아직 너무나 젊고, 또 10여 년 전에 김지하 시인의 시비를 세우자고 어느 단체가 준비할 때 내가 나서서 “산정에 무슨 큰 돌을 올리느냐”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나의 시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졌으니 유구무언일 뿐만이 아니라 참으로 창피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한동안 정령치를 피해 다녀야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끌어내릴 수도 없고, 또 백두대간 종주팀들이 지나다 쉬면서 이 시를 읽으며 인증샷을 찍는 등 사랑해 주니 그나마 다행인데다, 세월이 약이라고 나도 조금씩 익숙해진 것이다.
멧돼지와 고라니와 마주치는 ‘사파리 체험’도 가능
여름밤의 피서지는 형제봉 활공장이다. 임도로 연결돼 있는 해발 1,100m의 형제봉 활공장은 패러글라이더들에게 인기 만점인 곳이다.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더와 행글라이더가 날아오르면 하동군 악양면의 평사리 무딤이들판을 가로질러 섬진강 백사장에 내려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풀밭이다. 마치 몽골 초원에 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몽골 초원보다 시야각이 더 넓다. 초원과 바다에서는 하늘이 180도밖에 안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하늘이 230도 이상 보이기 때문이다. 노고단~천왕봉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데다 섬진강과 백운산, 그리고 멀리 남해바다까지 보이는 곳이다.
올해 여름에도 나는 이곳에 열 번 이상 올라갔다. 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인 나의 아내 신희지(고알피엠 여사)와 그의 언니 일행들과 한밤중에 오르고, 여차하면 아무 때나 혼자 오르기도 했다. 나의 세컨드 바이크인 17년 된 아프리카트윈을 타고 임도를 오르는 재미도 좋은데다, 길옆에는 계곡물이 언제나 넘쳐나기 때문이다. 특히 한밤중에 오르다보면 조금은 미안하지만 멧돼지 일가와 고라니 등과 마주치는 ‘사파리 체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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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더웠던 여름으로 지리산 계곡은 어느 곳이나 만원이다. 사진은 남원시 육모정.
-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이따금 낮은 구름들이 지나갈 때마다 눈썹이며 머리카락에는 하얀 이슬방울들이 맺혀 마치 산신령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검푸른 밤하늘에서는 별빛들이 쏟아져 내리고 30초에 두어 개씩은 별똥별들이 사선을 그으며 내리꽂힌다.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밤하늘의 별을 찍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아닐 수 없다. 깊은 산중의 귀한 야생화를 대하듯이 밤하늘을 담아내는 일은 성스러울 정도였다. 사진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홀로 한밤중에 카메라를 이리저리 조작하며 하나씩 터득하는 일은 공부 중의 공부였다. 수없이 반복하며 터득한 나의 기법은 이렇다. 카메라와 렌즈를 수동 모드로 전환하고, 렌즈를 무한대에서 2mm 정도 당긴 뒤 f 2.8-3.5, 셔터속도 15-25초, ISO 1,600~3,200 정도가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이 보면 비웃을 일이지만 내게는 그렇다는 뜻이다. 셔터속도가 20초를 넘으면 그 사이에 별들이 움직이고, f값이나 ISO가 너무 높아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야생화를 찍으며 스스로 사진을 배우고, 별밭을 찍으며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물론 사진을 다 배우고 찍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이 과정이 좋다. 다만 값비싼 카메라나 광각렌즈가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어디 장비만 가지고 사진을 찍는가. 다만 그러한 때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을 휘휘 둘러보면 산과 야생화 사진 전문가들도 많고, 천체사진 전문가들도 많지만 나는 나대로 한 발 한 발 스스로 나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지리산에 들어오며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지만 사진을 찍으며 시를 쓰고, 시를 쓰며 사진을 찍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 어디든 달려가며, 시와 사진을 결합시키는 행복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내게 단 하나의 물욕이 있다면 집도 아니고 땅도 아니고 오직 모터사이클이었는데, 이제 카메라까지 슬쩍 끼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위해 돈을 벌려고 애 쓰지는 않고 주어지는 대로 그저 때를 기다리다보면 오게 되리라 믿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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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계곡 작은 폭포 물줄기에 알몸을 가리고 무더운 여름을 난다.
- 희귀한 물봉선 3종세트도 만나
지리산의 피서법 중에 단골 메뉴는 좋은 벗들과 깊은 계곡의 폭포 아래로 가는 것이다. 쌍계사 인근 화개천 등은 이미 만원이므로 원주민답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널리 알려진 계곡들은 지리산이든 백운산이든 장사진을 치르며 몸살을 앓기 때문이다. 깊은 계곡 또한 여러 명이 함께 가는 것보다는 홀로 가는 게 최고다. 선녀탕이 있는 폭포 아래 작은 텐트를 치고 탁족을 넘어 알몸으로 뛰어드는 것은 지리산이 주는 한여름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10여 년 전 한때 선유동계곡을 ‘누드계곡’으로 선포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지리산 친구들과 자주 드나들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옷을 벗지 않으면 못 들어오게 했다. 비록 알몸이지만 선유동의 비경과 차가운 물은 음심을 가라앉히고, 스님이든 보살이든 시인이든 화가든 모두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해방감을 맛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름답고 성스러운 추억으로만 남았다.
한여름 밤 별밭 바라보기나 계곡물 알몸 입수 외에 요즘 내가 깊이 빠진 또 하나의 피서법은 해발 높은 고지대의 야생화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한낮의 폭염도 피하고 진귀한 아고산지대의 야생화를 만나 사진으로 기록까지 하니 더 바랄 게 없는 것이다. 지리산 높은 곳과 덕유산, 그리고 야영장비를 실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함백산과 태백산까지 찾아가는 여정은 그야말로 한편의 로드무비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여름에도 참으로 많은 야생화들을 만났다. 희귀한 물봉선 ‘3종 세트’인 노랑물봉선·흰물봉선·처진물봉선을 담는가 하면 뻐꾹나리·동자꽃·산오이풀·하늘말나리·둥근이질풀·자주꿩의다리·금꿩의다리 등을 만나 내내 가슴이 벅찼다.
뻐꾹나리는 자줏빛 점무늬가 뻐꾸기 가슴털 무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꼴뚜기를 닮았다 하여 꼴뚝나리, 우주선 혹은 UFO를 닮았다 하여 외계화로도 불린다. 귀한 야생화인 만큼 이름도 참 재미있고 꽃말도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니 참 고전적이 아닐 수 없다. 이 꽃말을 생각하니 문득 첫 경험을 한 경상도 아가씨가 “마, 지는 이제 당신 것이라예”라던 육담이 떠오른다. 하지만 해발 300m 이상에선 음담패설마저 저질스럽지 않고 오히려 성스러워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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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령치에서 바라본 지리산 일출.
- 흰물봉선과 노랑물봉선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대개의 분홍이나 자줏빛의 물봉선과 달리 노랑물봉선과 흰물봉선은 만나기 힘들다. 강원도 만항재 근처에서 만나고, 정선의 오지마을인 덕산기계곡의 김욱철·최영자의 펜션 ‘산을 닮은집’에 갔다가 뜻밖에도 바로 집 뒤란에서 만났다. 그리하여 단 하루 만에 물봉선 3종 세트를 다 찍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또 지리산에 돌아와 사흘 뒤에 완전히 하얀 처진물봉선까지 만났으니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모든 물봉선을 만난 것이다. 일반인에겐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엄청난 소원 하나를 푼 셈이다.
4박5일간 1,200km 넘는 모터사이클 솔로투어를 하며 강원도 함백산과 태백산에서 데려온 야생화들은 보기만 해도 너무 아름답다 못해 짠하고 찡하다. 함백산에 오르다 실수로 떨어트리는 바람에 카메라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비포장 임도에 바이크를 세우고 동자꽃을 찍다가 하산하는 사륜차와 마주쳤다. 길이 너무 좁아 다급한 나머지 카메라를 바이크 위에 올리고 끌어서 좀더 넓은 곳으로 피해 주는데 그만 카메라가 길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하필이면 바짝 뒤따르던 사륜차가 이를 보지 못하고 바퀴로 뭉개버린 것이다. 참으로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운전자는 미안해했지만 내 잘못이 더 크니 그냥 가라고 할 수밖에. 나의 재산목록 2호인 아프리카트윈을 팔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망가진 카메라에서 마지막으로 건져 올린 꽃들이기에 더욱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신비의 약용버섯 ‘꽃송이버섯’도 목격
더군다나 내게는 강원도 사북과 고한, 태백이 참으로 아프고 슬픈 곳이다. 내 청춘의 대학시절 휴학을 하고 막장 광부로 일했었다. 날마다 지하 700m에서 9톤의 삽질을 하는 채탄 후산부였다. 그리고 24년 전에 사북과 고한으로 가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잠깐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의 시국상황에서는 온갖 멸시와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비록 지금은 야생화를 만나러 가지만 싸리재(두문동재)나 화절령 모두 내게는 여전히 눈물겨운 고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한여름을 지나며 지리산에서 꽃이 아닌 희귀버섯을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이름하여 산삼보다 귀하다는 ‘꽃송이버섯’을 만난 것이다. 그야말로 “심봤다!”였다. 하늘말나리 등을 만나러 우중에 해발 1,150m의 샛길을 오르다 뜻밖에도 이 버섯을 만났다. 순간 숲속이 환해졌다. 마치 한 마리 산토끼가 웅크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귀한 버섯인 줄도 모르고 그냥 인증샷이나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는 깜짝 놀랐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다가 이른 새벽 다시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장맛비는 오락가락, 안개는 자욱한데 겨우 찍었다. 야생화 초보가 심마니들도 만나기 어려운 꽃송이버섯을 마주하다니! 큰 산에 엎드려 고맙고도 고마운 절을 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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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야생화 금꿩의다리. 2 야생화 노랑물봉선. 3 야생화 동자꽃. 4 야생화 뻐꾹나리. 5 야생화 흰물봉선.지리산계곡 폭포 아래 피어난 일월비비추.
- 꽃송이버섯은 ‘암을 이기는 신비의 약용버섯’이라고 알려져 있다. 면역력을 높이고 암을 방지하는 성분은 베타(1→3)D 글루칸이라고 하는데, 꽃송이버섯의 성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상도 못 할 만큼 베타글루칸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 일본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브라질산 아가리쿠스 버섯보다 약 3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도쿄대 약학대학의 연구 그룹에서 발표된 뒤 쿠마가야농고의 후쿠시마 선생이 인공재배에 성공해 현재는 한국에서도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자연산은 극히 드물다. 해발이 높은 큰 산에도 한두 송이 이상은 잘 나지 않으며, 다른 버섯과는 달리 다음해에도 그 자리에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이 버섯이 내게로 왔으니 그저 ‘어머니의 산’ 지리산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전국 도보순례의 후유증으로 면역력이 저하되는 바람에 결핵성늑막염을 앓았다. 지난 2년간 말없이 760㎖의 흉수를 빼고 독한 약을 9개월간 복용하며 남몰래 붉은 오줌을 누어야 했다. 이제는 완치됐지만, 사실 내가 야생화를 찾아 산중을 헤매는 것도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날마다 새로운 야생화를 찾아다니며 생기를 얻었다. 말하자면 산이 나를 살리고 야생화가 나를 되살린 것이다.
올 여름 최고의 피서는 형제봉과 정령치의 서늘한 별밤이었으며, 나를 완전히 살린 것은 지리산·덕유산·함백산 등 아고산지대의 야생화들이었다. 옛말에 “진정한 고수는 높은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으니, 이제 나도 슬슬 사람을 만나러 하산할 때가 되었다.
[한 편의 시] 해발 삼백 미터 - 이원규
해발 삼백 미터 이상에선
강간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선과 악의 경계
새들도 함부로 울지 않고
악인마저 착한 산노루가 된다
모든 범죄는 그 아래서 일어난다
왜 그런지 묻지 마라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면서도
해발 일천 고지를 넘나드는 사람이 있다
첫댓글 개와 늑대의 시간에 이 시인님 시비를 보고 정령치에서 내려오는데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지나가는 차는 한 대도 없고
고갯길은 왜 그렇게 구불거리는지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그곳이 지리산에서 유일하게 설악산처럼 웅장한 곳이에요. 저도 그곳을 그 시간에 여행하면서 색다른 느낌에 놀랐어요. 그러고보면 지리산이 참 여러폭의 치마같습니다. 거기는 실은 차량통행이 다른 곳에 비해 많지 않아요. 한여름 빼고는...
새삼 글을 보니 자전거로 심장 터질듯 오르던 형제봉이며 정령치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는군요.
재 작년인가, 형제봉에 텐트를 치고 밤새 별구경 하다가 설핏 잠든 새벽녘에 바람에 텐트가 뿌리째
날라가버려 멀뚱하게 앉아 날 밝기를 기다리던 일도 생각나고...
꽃송이 버섯 발견한거 축하 할 일이요. 더 많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좋은 글로 지리산에 보은하시길....
형제봉의 별빛 구경은 다음을 기약하며 건강히 살아 있으렵니다.
이 글을 다 읽었다는 것은 온전히 글쓴이 탓이다^^
피서 하고 야생화 만나고,
또(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네요.^^
건강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얼레리꼴레리~
ㅋㅋ
자신을 꽃미남으로 불러달라네요.
꽃에미친남자!
음 집안에 왕후박나무인 제가 있으니
푸하핫!
나도 웃통 벗고 저런 사진 남기고 싶은데 어디서 해야되나?
글도 사진도 참................오래 오래 건강하게 머무르소서.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