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유년(1909) 스무이튿날 형렬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네가 나를 믿느냐." 대하여 가로대 "믿나이다." 가라사대 "성인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옛적에 자사는 성인이라, 위후에게 말하되 '약차불이(若此不已) 국무유의(國無遺矣)'라 하였으나, 위후가 그 말을 쓰지 아니하였으므로 위국이 참혹히 망하였나니, 나의 말도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지니 오직 너는 나의 말을 믿으라." 또 가라사대 "믿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되리니, 너는 알아서 할 지어다." (대순전경 p411)
@ 스무날 여러 종도들이 구릿골에 모이니, 상제님 앞에 한 줄로 꿀려 앉히시고 물어 가라사대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모두 대하여 가로대 "믿나이다." 가라사대 "죽어도 믿겠느냐." 모두 대하야 가로대 "죽어도 믿겠나이다." 또 가라사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성립되리라." 하시니, 대개 종도들은 천하사를 도모하는 데 위지(危地)에 들어가서 죽게 될 지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았더라. (『대순전경』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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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일을 하는 힘입니다.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 마음도 내가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확고히 자리잡아야 얼굴에 빛이 나고 언행에 추진력이 붙습니다.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앞날에 대한 전망도 확실히 보이고 처신할 의욕도 흘러 넘칩니다. 세상에는 보이는 일에 대한 믿음도 있고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한 믿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인류의 경험이 남겨진 믿음도 있고 인류의 경험이 처음인 믿음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속에서 보이고 경험한 일에 대한 믿음보다 보이지 않고 경험하지 않는 일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더 어렵습니다.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태을도 도제천하 의통성업의 천하사를 하려면, 이제까지 인류가 보아오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세계는 무형의 세계와 유형의 세계를 연결하는 믿음의 세계입니다. 믿음이 진리를 현실화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믿음을 주어야 내 믿음을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태을도인들은 천지부모님과 유무형을 불문하고 생사를 넘어서는 믿음을 같이 하는 믿음의 불사조들입니다. 천지부모님과 함께 하는 나의 믿음을 일일신 우일신해야 간난신고의 전과정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첫댓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정의, 믿음, 충의 같은,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것들이 어쩌면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유무형과 생사를 넘어서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닦아 나가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위에 이미지의 책도 함 읽어봐야겠네요~
무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
믿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점검하고 다잡아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의해 일상의 대소사를 처리해가면서 그것이 쌓여 삶이 이루어집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지금껏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에 평생을 바치는 것은
크나큰 결단이요, 자신의 삶과 목숨을 건 일입니다.
보이는 유한한 생명과 물질 이외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 중요성을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진리가 훤히 드러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자들이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의통성업이요, 후천 타을세상입니다.
'혈심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 지리라' 하신 상제님 말씀이 생각이 나네요 ^^
믿음의 생성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며...
믿음의 존재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며...
믿음의 작용은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만든 몸이 육신에 들어 있어서 구별이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태을의 마음자리를 밝히신...
상제님 수부님 대종장님의 말씀과 행동을 따라가다보면, 마음자리에 위치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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