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5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엄마를 부탁해
요 19:25~27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이 금년은 전주에 특별히 눈 선물을 주셨습니다.
모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현관에 세워놨습니다.
공식적으로 오늘은 2022번째 맞이하는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멘트,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성탄절에는 으레 예수님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합니다.
그런데 온고을교회는 요한복음을 시리즈로 설교하다보니, 오늘 본문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본문으로 설교합니다.
이렇게 함도 은혜가 충만한 설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엄마를 부탁해”로 정했습니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태어나서 서른 세 살에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데, 십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을 오늘 본문에서 거론합니다.
본문 25절에서 네 명의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①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들렸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신 여인입니다.
②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했는데, 글로바는 누가복음 24장 18절에 나옵니다.
눅 24: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두 제자가 부활사건 이후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이 동행하고 계셨습니다.
두 제자는 눈이 가려져서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넌지시 “너희가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글로바가 대답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난리가 났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도 모릅니까?
바로 그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 함께 있었습니다.
③ 이모님이 십자가 아래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모, 이름은 살로메입니다. 사도 요한과 야고보 형제의 어머니입니다.
④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렇게 네 명의 여인이 십자가를 지킵니다.
여기에 유일하게 홍일점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입니다.
열두 제자 중에서 가룟 유다가 가장 먼저 배신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힐 때 열한 제자 중에서 열 명이 뿔뿔이 달아났습니다.
사실 요한도 달아났습니다. 달아났다가 가장 먼저 되돌아왔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가보니, 네 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자기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자기의 이모입니다. 친숙한 분들입니다.
요한을 포함하여 모두 5명이 십자가 아래에 있습니다. 물론 구경꾼들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5명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25~26절)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5절 26절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2곳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의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 보소서”라고 말합니다.
“어머니 보소서”라고 했으면 자연스러울터인데, “여자여 보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우리와 달리 2가지 속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입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에게는 없는 ‘신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사람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여” 하신 이 대목은 예수님이 자기의 ‘신성’을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기억해라, 나는 사람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 입장에서는 마리아가 어머니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입장에서는 마리아가 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여자여”
다음으로는 예수님이 사도 요한을 향해서 한 말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지금 십자가 아래에는 요한의 친어머니 살로메가 있습니다.
요한에게는 이모이신 예수의 모친 마리아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자기의 모친, “여자여”라고 부른 마리아를 지목하면서 말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요한에게 어머니는 두 분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친어머니 살로메, 그리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
두 사람이 모두 요한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사도 요한은 어머니 둘을 모십니다.
특히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끝까지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모두 젊어서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90세 이상을 살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시고 요한은 장수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성탄절의 3가지 의미>
오늘이 성탄절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오늘은 세 가지로 말씀드립니다.
첫째는 성육신, 인카네이션
둘째는 창조주가 피조물로
셋째는 케노시스, 자기비하 이렇게 세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육신, 인카네이션 ;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성육신成肉身은 이룰 성, 고기 육, 몸 신 자를 씁니다. 잘 기억해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영어로는 인카네이션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신 부모님을 통하여 육신으로 태어납니다. 육에서 육으로 태어납니다.
사람은 “아버지의 허리에서 나와 어머니의 태중으로 들어가 열달 만에 태어납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에서 육으로 태어납니다.
아버지의 허리에서 나오지 않고, 성령께서 마리아의 태에서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의 태에서 잉태했습니다.
둘째는 창조주가 피조물로 ; 만드신 분이 만들어진 것, 피조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 탄생 2번째 의미는 창조주가 피조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창조주입니다.
태초에 예수님은 말씀으로 계신 분입니다. 말씀으로 우주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피조물 인간으로 오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성탄절 2번째 의미입니다.
셋째는 케노시스, 자기비하 ; 하나님의 자기 비하(飛下, 卑下)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집니다.
3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자기 비하”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비행을 하셨다” 이뜻입니다.
높은 하늘에서 낮은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비하’는 날 ‘비 飛’ 아래 ‘하 下’를 씁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낮게 날아앉으셨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자기비하”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비천해졌다는 뜻입니다.
이때는 비천하게 되셨다는 의미를 강조하면서 낮을 ‘비卑’ 아래 ‘하下’를 쓰기도 합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비하” 헬라말로는 “케노시스”입니다.
정리해볼까요? ~ 예수님 탄생의 3가지 의미,
첫째는 성육신(인카네이션)
둘째는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셋째는 자기비하(케노시스)
이 3가지가 오늘 성탄절, 주님 탄생하신 날의 깊은 뜻입니다. 할렐루야~
<성탄의 의미를 한 마디로>
오늘 성탄절 설교에서 3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설교 듣고 3가지, 여러분들의 기억 속에 얼마나 갈까요?
당장 월요일 아침이면 출근해야 되고, 사업해야 되고, 정신없이 세상에 속하여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 3가지를 한 마디로 요약해 드리고자 합니다. 참 좋지요?
오늘 말씀드린 3가지, 첫째 성육신, 둘째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셋째 자기비하
이 셋을 하나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이 셋에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여러분이 한번 찾아보세요,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영에서 육으로 오셨어요.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오셨어요. 하나님이 자기를 비하하셨어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 모두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낮아지셨다!” “낮아짐”입니다.
“성탄절의 의미는 ‘하나님이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이 낮아지셨습니다!’”
우리가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낮아지셨습니다!’”
낮아지신 하나님을 우리가 예배합니다.
낮아지신 하나님을 우리가 따라갑니다.
낮아지신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낮아지심의 결정타 십자가>
예수님이 낮아지심으로 2천년 전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이신 분이 육신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낮아지고,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졌습니다.
더 이상 낮아 질래야 낮아질 곳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한 번 더 낮아지십니다.
영에서 육으로,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졌는데, 또 한 번!
또 한 번, 낮아집니다. 어떻게 낮아집니까?
결정적으로 또 한번 낮아짐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왜 이렇게 낮아집니까?
이 땅에 사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영이신 분이 육신으로,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진 것,
이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만큼 이 땅에 사는 저와 여러분의 죄가 무겁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깊은 죄보다 예수님은 더 낮아져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예수님은 음부에까지 내려가십니다.
음부라는 곳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입니다.
음부 아래로 더 내려간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곳까지 내려가십니다. 십자가입니다. 할렐루야~
<엄마를 부탁해 ; 확장>
예수님이 음부에까지 내려가시면서, 십자가 아래 사도 요한에게 당부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어머니를 부탁한다!
엄마를 부탁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확장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부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합니다.
교회가 왜 생겼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엄마를 부탁해”
이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서 교회가 생겼습니다.
<화려한 부활>
예수님은 이렇게 한없이 한없이 낮아지셨습니다.
그렇게 낮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낮아진 그곳에서 옴짝 달짝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낮아지심, 그 다음에는 화려한 부활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부활로써 우리도 주님의 공로로 부활합니다. 할렐루야~
영이신 분이 육신으로,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졌습니다.
십자가에서 낮아짐의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그렇게 낮아짐으로 멈추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낮아짐 다음에는 솟아오름이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전능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경륜을 펴시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 있는 나, 너, 우리를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복된 주님의 자녀입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