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일부 언론에서 '황우석 박사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연구 성과 발표를 준비 중이다' 는 뉴스를 접하고 기다리고 있던 차에 어제 드디어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난치병 치료에 접목시킬 수 있는 기초 성과를 얻었다는 발표를 런던에서 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지난 해, 시애틀에서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뉴스만큼이나 또 한 번 미국 언론을 달구고 있고, 이곳 미국에서도 엄청난 이슈로 주목 받고 있는 뉴스입니다.
역시 지난 첫 번째 연구 성과 보도만큼이나 저에게 있어서 이번 업적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합니다. 현재 이곳 미국 언론, 특히 CNN의 이번 뉴스를 보도하는 태도는 일년 전의 경이적인 찬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써, 뭔가 다른 미국의 의중을 느끼게 합니다.
저는 과학이 선량한 과학자의 숭고한 선의의 목적과 학자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과학 연구의 업적에 정치라는 오염이 가해지면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을 때, 그는 단지 건설 현장의 공기를 단축시킬 목적으로 그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 뿐이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 당시에만 해도 그것이 원자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대량 살상무기를 만드는 기초 이론이 될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정치권, 국민, 그리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과학자의 연구 업적이 그 숭고한 선의의 목적에 부합하게 이용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능이어야 할 것이며, 그 결과를 이용해 또 다른 파멸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다른 어떠한 기도도 봉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미국의 황우석 박사의 연구 결과를 보도하는 태도와 미국 정부의 반응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향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과학 연구와 거기에 대응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부시대통령은 꼭 집어서 '한국 정부의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한다.' 라고 했더군요. 거기에 생명윤리보좌관이라는 직함이 붙은 백악관의 모 관리는 '우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종류의 연구에 반대하며, 지금 한국이 행하고 있는 연구는 우리가 우려하는 바로 그러한 방향의 연구다.' 라고 했더군요. 과연 미국 행정부의 의도는 무엇일까?
향후 생명과학 연구, 특히 난치병 치료를 위한 치료제의 개발과 이로 인한 세계 시장 규모는 약 200조원 (치료제 및 치료 비용 기준)으로 추산되고, 그 추가적 부가가치를 포함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이 가진 IT기술로 인한 각종 파급 효과와 이로 인한 한국 경제의 성장 등을 고려하면, 황우석 박사의 생명과학 시대를 열어가는 새로운 차원의 업적은 가히 한국으로써는 혁명적 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IT기술은 그 원천 기술이 미국에 있었습니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코드 분할 다중 접속방식 (CDMA) 은 그 원천 기술이 미국의 퀄컴사에 있어서 매년 수조 원의 휴대전화 판매액이 미국으로 다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미국으로써는 한국이 상용화 기술을 확보했다고 해서 한국에 비해 기술 능력이 뒤진다고 생각하지도, 그렇다고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원천 기술뿐만 아니라 기술 진보력에 있어서도 미국이 기대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으로써, 이대로 한국이 10년 정도 후에 각종 난치 질환에 대한 치료의 장을 열게 되면 미국으로써는 향후 20년 내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 뿐만 아니라 기술적 퇴보를 맞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며, 저는 그러한 배경이 부시 행정부의 내정 간섭에 가까운 강한 반발을 불러 오고 있다고 봅니다.
만약, 이러한 기술이 미국 내에서 자체 개발되었거나, 혹은 미국과 절대적 동맹관계인 일본이나 영국에서 개발되었다고 해도 부시의 입장이 그토록 부정적이었을까?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즉, 현재 미국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은 향후 30년을 지배할 새로운 기술적 헤게모니(지배를 위한 원리)를 우습게 보았던 한국에 장악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초조감과 답답함, 그리고 반발감이 한꺼번에 묻어 있는 복잡한 심경으로 보입니다. 부시의 기독교 윤리관에 입각한 '질병의 치료를 위해 새로운 생명을 파괴할 수는 없다.'는 논리에 대해 미국의 하원, 심지어 알츠하이머 병으로 숨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과 그 아들 등은 부시의 정책에 대해 '난치병 치료의 희망을 앗아가는 무모한 처사로 한국에 기술을 선점 당하게 한 어리석은 정책'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럼 미국의 윤리 논쟁이 타당한 것인가? 물론, 황우석 박사의 업적은 연구자에 따라서 인조인간을 탄생시킬 원천 기술일 수 있는 만큼 매우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적하고 통제하면서 제한적으로 이룩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을 복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용의 목적으로 세포를 복제하여 난치병 환자의 특정 부위에 대체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을 찾자는 것입니다. 더구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배양된 배아 줄기 세포 자체를 생명체로 본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배양된 배아 줄기세포가 난자와 정자의 결합에 의해 완전한 태아로 생명을 가진 체 나타난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럴 목적으로 연구되고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의 연구 자체를 가지고 생명 윤리 자체를 논한다면 수많은 남성들이 자위행위로 배출하는 정자 또한 생명윤리 논쟁의 대상일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부시가 표방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생명을 파괴하는 연구는 곤란하다.' 라는 것이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제한하는 논리이어야 한다면, 각종 항암제나 치료제의 개발을 위해 희생되어가는 수많은 영장류, 설치류 (원숭이, 개, 실험용 쥐) 들은 부시가 이야기하는 생명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까? 기존의 연구가 엄청난 숫자의 실험용 동물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학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을 죽여가면서 개발된 것인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눈을 감으면서 도리어 세포 하나를 논쟁의 빌미로 삼는다는 것은 결국 그 이면에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는 의심을 가능케 합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영원한 절대 강국의 지위를 이용해 모든 것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두려는 생각을 포기 해야 합니다. 미국이 영원한 강국이기를 원한다면, 미국은 먼저 가슴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비난에 앞서 황우석 박사와 한국 정부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와 생명의 윤리가 무엇인지를 보편적 인류 공통의 가치에 기준하여 판단하고, 그 기술이 진정으로 다른 목적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 공조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한국과 황우석 박사의 기술적 진보 노력에 동참하여 경의를 표해주는 것이 진정한 강국으로써의 자세일 것입니다. 단지, 지금 백악관과 미국 언론의 태도는 제 주머니에 있지 않은 보석이 아까워서 그것이 돌에 불과하고 강도를 부르게 될 저주의 물건 이라고 억지를 쓰는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써, 과연 우리의 언론과 기자들이 여론을 주도할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난 번 시애틀에서 첫 번째 연구 성과가 발표 되었을 때, 중앙일보가 보도 제한을 어기고 미리 보도하는 바람에 엄청난 문제가 되었다는 글을 이곳 자유 게시판에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더군요. 미리 추측 기사가 올라온 데 이어 발표 당일 새벽에 한국 모 신문에서 인터넷 기사로 올렸다가 삭제를 했었다고, 그래서 자칫 이번 발표도 지난번 처럼 물거품이 될 뻔 해서 아찔했었다고 황우석 박사께서 직접 인터뷰를 했더군요.
과연 한국의 언론, 특히 기자들은 무엇을 위해서 보도를 하고, 무엇을 위해서 언론인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가? 물론 다수의 숭고한 언론인의 사명을 지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언론인이 있다고 믿지만, 눈에 드러나는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는 그저 공명심에 불타 국익과는 상관 없이 특종 경쟁만을 벌이고, 이권이 있는 곳에서는 보도를 빌미로 촌지나 받아 먹고, 나아가 자신이 소속된 언론사의 사주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에 불을 켜는, 그러면서 사실관계의 왜곡조차 마다하지 않는 하이에나 근성. 그것이 오늘의 한국 언론을 지배하는 현실적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난 2003년 당시에 문제의 보도를 했던 중앙일보의 홍혜걸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이러이런점이 틀렸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답장이 오기를 "자신도 이렇게 사태가 커질 줄은 몰랐다. 해명을 하고 사과를 하고 싶은데 도저히 회사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황우석 박사님께는 시애틀로 직접 가서라도 사과를 하려고 한다." 고 답장이 왔더군요. 즉, 기자와는 상관 없이 언론사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기자의 양심적 행동 자체를 제약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것이 한국 언론의 올바른 위상 정립을 막고 수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도 행태에 대해 참으로 우습게 보았던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지난 2001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은 자신을 예방한 김중권 당시 민주당 대표에게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면 희대의 정치 보복이 난무할 것.. 대통령 되어서는 안 될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조선일보는 사설란과 사회면 전 지면을 할애해 정대 스님을 깎아 내리는데 올인 했습니다. 심지어 사설에서는 '종교인으로써의 본분을 망각한 망언으로 조계종의 총무원장 직을 수행할 인격적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까지 하면서 인신 공격적 발언까지 해 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발언이 나온 배경을 보면 이회창 총재가 인기가 떨어진 김영삼 대통령의 화형식을 하고, 그 계보인 신상우, 김광일 전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시킨 전력이 있고, 당시에 정부 여당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놓는 상황을 국민들이 답답해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상생의 정치를 촉구한 것인데, 정치권 전반의 문제점은 눈감고 이회창 총재를 공격했다는 하나로 완전히 조계종을 초토화 시켰지요.
그러나, 정 반대의 상황이 2년 후에 벌어 집니다. 2003년 김수환 추기경이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미적 정서가 많고 노무현 정부가 관건 선거를 하려고 든다는 의심이 많다. 대통령이 이 난국을 헤쳐나갈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라고 매우 이례적인 반노 정서를 표출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 특히 조선, 중앙, 동아 등의 언론은 "추기경도 대통령 못 미더워" 라는 식으로 추기경을 절대적 사회의 원로쯤으로 격상시키면서 대통령 깎아 내리기에 열중 했습니다. 비슷한 형태의 의견 표출에 대해서 한 사안은 정치인의 잘못이 아닌 '의식 없는 한 노인의 망언' 으로, 또 한 사안은 '절대적 사회 원로에 의한 무능한 대통령 비판' 으로 시각이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설사 그것이 대통령의 실정이나 정책적 오류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할지라도 언론사가 지지하는 특정의 정치인 혹은 반대하는 특정의 정치인에 대한 시각에 따라 한 사람은 절대적으로 추앙 받는 사회의 원로로 격상시키고 한 사람은 망언을 일삼는 노인으로 격하시켜 버리는 것이 한국 언론의 참혹한 현실입니다.
웃기는 사실은 또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수도를 대전으로 옮기려 하셨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수도 이전 계획이 발표된 70년대에 조선일보는 "국가의 100년 대계를 염두에 둔 원려" 라는 제목으로 이를 적극 지지 합니다. 그러나, 딱 30년 후, 동일한 사안을 두고, 동일한 목적으로, 훨씬 더 시급해 보이는 수도권의 과밀화와 자원 편중화를 해소하기 위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수도권 경제의 붕괴를 초래할 망국적 정책' 이라며 맹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떠한 객관적 자료도, 연구 수치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럴 것이다.. 그것이었지요. 차라리 '국민적 합의가 적으므로 좀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거나 혹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에서 어떠어떠한 차이가 있어서 현 시점에서의 수도 이전은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식으로 논리적 설득이 있었더라면 수긍이 갔을 터이나, 대부분의 신문의 논조는 '그냥 안됀다.' 는 것에 가까웠고, 30년 전의 절대적 찬성을 하루 아침에 뒤집은 그 기저에는 '반 노무현 정서' 가 짙게 배어 있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즉, 한국의 언론 보도 행태는 치열한 기자정신과 진실과 양심에 입각한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이를 통한 '여론 선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별 특정 인사 별 특정 계층별 지지하는 세력을 위해 기회주의적이고 교묘한 선정보도를 통해 '국민의 여론을 조작'하고 이를 통해 '특정의 이익을 지켜주는' 권력의 하수인 정도로 보입니다. 즉, 대한민국의 국익 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기자의 공명심이 훨씬 우선하고, 국민의 통합과 정치권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대안의 제시 보다는 '비판'을 명분으로 한 특정 세력에 대한 폄훼와 반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비난, 그리고 이를 통한 여론의 조작이 우선해 보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황우석 박사의 세기에 남을 혁명적 업적에 대한 보도는 '국익'을 위한 새로운 도약대로써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써의 언론이 아닌 국제 불문율인 보도제한을 어겨서라도 자신의 특종을 채우는 보도 행태가 난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보도 사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치열한 탐구에서 우러나는 깊이 있는 보도 보다는 그저 써 갈기고 보는 수준의 일회성의 자극적 제목을 단 기사들이 난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과 같이 언론이 엄중한 자기 반성과 공정하고도 국익과 국민을 생각하는 보도를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언론을 결국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몰고 가는 '마술피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황우석 이후' 입니다. 현재 한국의 과학계, 특히 생명과학계는 '국보급 과학자'인 황우석 박사님 혼자의 힘으로 거의 이끌어져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황우석 박사님의 연구를 돕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단이 꾸려지고, 수 백억 원의 국가 예산이 집중 지원됩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분위기에 억눌려 불만이나 문제 제기도 못한 채 냉가슴만 앓는 다른 유수의 생명과학자들과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도 있고, 여론의 뭇매가 두려워 문제점을 뻔히 보면서도 입을 닫고 있는 정치인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내부적인 사정을 정확히 모르니 그러한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이야기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것은, 과연 '황우석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황우석 박사님은 국가관이 비교적 투철하고, 과학자로써의 신념이 뚜렷하신 분으로 보입니다. 공명을 따르지 않고, 세기에 남을 인터뷰를 하러 가면서도 시중에서 구입한 허름한 몇 십만 원짜리 정장 단벌로 세계 과학계를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분이 있기에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황우석 이라는 엄청난 스타 급 과학자의 화려한 빛에 가려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과학이란 단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업적을 바탕으로 이를 끊임없이 진보시켜 나갈 때, 진정한 혁명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하고, 제2, 제3의 황우석 박사가 속출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와 재정적 지원 계획을 마련하고 100년 앞을 내다보며 국가 차원의 투자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단지 황우석 박사 한 사람의 업적에 만족하고 거기에만 투자를 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 사는 것은 아닌지 조금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가 오늘의 황우석 박사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한국의 밝은 미래를 거기에서 찾듯, 제2, 제3의 황우석 박사들이 많이 나와서 진정으로 한국을 강국으로 이끌고 세계로부터 존경 받는 한국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그러한 토양과 환경이 한국에서 만들어 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업적이 그러한 정부와 국민, 그리고 정치권의 일대 각성을 촉구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래 보며 글을 접습니다.
2005-5-21
김범식ocs90차
후배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지지를 표명합니다. 이걸 다른 곳에도 올려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04년 당시 취재기자의 해명 글입니다. 참고가 되시길......
"열심히 취재한 기자가 나쁜 기자입니까"
[프레시안 2004-02-13 18:12]
[중앙 홍혜걸 기자 해명] 중앙일보 12일 단독보도 경위
12일자 중앙일보에 '장기 복제 길 한국인이 열었다 - 서울대 황우석·문신용 교수 팀 세계 첫 개가' 기사를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홍혜걸 기자입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금지 약속(엠바고)을 깼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데 그 경위를 설명 드립니다.
무엇인가 오해가 있다고 봅니다. 일부 신문이 문제 삼은 엠바고(Embargo)란 무엇인가요. 조선과 동아 등 타사 기자들은 이미 내용을 다 알면서도 엠바고를 위해 침묵한 것인가요. 동아 등 2개 언론사에서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큰 줄거리 정도였지 과연 중앙일보처럼 논문입수를 통해 기사요건을 갖출 정도로 구체적 취재가 된 상태였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두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이번 연구진의 누구도 이번 기사에 대해 국내 언론사에 공식적인 엠바고 요청을 해온 바 없습니다.
둘째, 저의 기사는 이번 연구진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취재로 이뤄진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엠바고 요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놀다가 물먹은 게으른 기자는 엠바고를 지킨 기자고, 열심히 취재한 기자는 엠바고를 깬 나쁜 기자입니까.
그리고 기사 게재 여부는 기자와 해당 신문사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무엇이 국익입니까. 우리 과학자들이 수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우리 언론이 왜 못씁니까. 우리 국민들이 외신보다 하루 먼저 알 권리조차 없다고 보십니까.
학자들 입장에서 논문게재 등 조건이 중요한 점 인정합니다. 그러나 기자는 또 다른 관점에서 기사를 게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독자적으로 두 달간에 걸쳐 취재했습니다. 연구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또 연구진 누구도 엠바고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외신과 직거래한 것이지요. 국내 언론을 젖혀놓고 외신과 접촉한 것은 연구진 자유입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열심히 취재한 기자에게 연구진이 엠바고를 걸 권리는 없습니다.
사전에 찾아보세요. 엠바고란 취재원이 기자에게 보도시한을 정해놓고 자신의 정보를 공개할 때 적용되는 것입니다. 기자가 취재원과 무관하게 취재한 내용에 대해 취재원이 엠바고 운운할 권리는 없습니다. 님이 만일 기자라면 한국 과학자의 쾌거를 하루 먼저 국내에 보도하는 것이 그리도 국익에 손상되는 행위라고 생각하십니까. 실제 이번 연구는 발표 매체인 미국의 사이언스지에 저의 보도 이후 예정대로 게재되었음은 물론 서방언론에서도 엠바고 보다 하루 전에 보도됐다고 한 것은 뉴욕타임스 뿐이며 그나마 비난한 것이 아닙니다.
조선과 동아 등 주장대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되길 원했겠지만 (왜냐면 큰 낙종을 했기 때문에)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논문은 사이언스에 제대로 게재됐으며 서방언론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이번 연구결과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하루라도 빨리 보도하고 싶은 욕심을 갖습니다. 특종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루 앞서 보도할 경우 연구진에 미칠 파장도 생각했습니다. 데스크 및 국장단과 기사 게재 전에 고민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과학자의 쾌거를 우리 국민에게 빨리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서방 언론에 하루 앞서 이러한 쾌거를 접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말하는 논문게재 부담 등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황교수님에게 미안하며 사과했고 이해해주셨습니다.
논문 자체를 중시하는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의 비판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닙니다.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습니다. 그러나 마치 조선, 동아일보 등이 정의의 사도인양 행세하며, 기사를 빠뜨린 기자들이 열심히 취재해 기사를 쓴 저를 엠바고를 깬 비굴한 기자로 집단 이지메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비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먼저 해외 어떤 언론에서 이번 중앙일보의 기사에 대해 엠바고를 깼다고 비판했는지 증거를 보여주세요. 그런 일 전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우리나라에서 여러 연구기관에서 수년간 수십 명의 학자가 매달린 일입니다. 한국 기자가 얼마든지 취재해서 쓸 수 있는 사항입니다. 게다가 한국 언론엔 엠바고 요청이 없지 않았습니까. 외국 기자들이 보기에 한국 신문에서 하루 앞서 쓴 것이 그렇게 국가적 망신이라고 생각할까요. 전 그러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황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진에게 연락을 드리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박세필 소장 등 다른 전문가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언제든 다른 언론에 날 수 있었으며 황교수님 등 연구진이 해외로 가셔서 일절 연락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기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굳이 황교수님 멘트를 빌리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완벽한 소스를 확보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루 앞서 보도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냐 질타하십니다. 그러나 기자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신다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팩트상 하자가 없는 완벽한 기사, 그것도 우리 과학자의 쾌거를 우리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도한다는 것은 기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입니다.
다시 한번 연구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은 사과 드립니다. 그러나 언론 본연의 고민도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연구결과는 일부 언론의 걱정과 달리 사이언스지에 예정대로 13일 게재되었으며 외국 어떤 언론도 엠바고 파기를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자국 과학자의 업적을 외신을 베껴 써야 한다는 사실의 비참함에 대해서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홍혜걸/중앙일보 기자
박선규ocs85차
선배님의 답글 감사 드립니다. 참고적으로 전세계를 대표하는 이공계의 양대 전문 학술지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Nature지와 미국에서 발행되는 Science지가 있습니다. 특히 Science지는 투고 규정에 연구결과 사전배포 금지를 명확히 천명하고 있는데, 그 규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No news coverage of your paper can appear anywhere before 2:00 p.m. Eastern U.S. Time on the Thursday before your paper's publication." - 투고된 논문이 심사를 통과하여 책자로 발행되기 이전에 그 어떠한 뉴스나 매체에도 보도되어서는 안되며, 그 보도제한 시간은 해당 호수가 발간되는 매주 목요일 미국 동부 표준시간 오후 2시 (한국시간 금요일 새벽 6시)까지는 보도가 엄격히 제한됩니다. 만약, 그 이전에 보도가 된다면, 그것은 해당 연구를 논문으로 투고한 학자가 공명심 때문에 사전에 검증되지 않은 결과를 언론에 미리 노출된 것으로 간주하여, 모든 심사과정을 종료하고 해당 논문을 삭제하며 향후 논문 투고가 제한되는 등의 제재를 받게 됩니다.
즉, 홍혜걸 기자는 과학 전문기자로써 그러한 Science지의 투고 규정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리라 사료되고, 만약 사전에 보도가 되면 그것이 황우석 박사님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명심 때문에 특종이라고 그냥 보도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저와의 이메일 교환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물론, Science지의 보도제한 규정이 언론의 보도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과학 연구자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기 위해 거의 모든 전문 학술지의 투고규정상에 명시된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 해 홍혜걸 기자의 보도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홍혜걸 기자가 보도 경위를 밝히면서 "사전에 논문 원문을 입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라고 밝힘으로써 황우석 박사님이 사전에 언론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노출시켰다는 의심을 받도록 했고, 그로 인해 Science지의 표지 논문으로 보도되기로 했던 것이 그냥 본문에 수록되는 것으로 격하되어 수록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황 박사님의 사전 보도를 막기 위한 노력이 Science 편집 팀에 의해 충분히 인지되고 있었고, Science가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사전에 제공하는 보도자료상에 명시된 보도제한 (Embargo) 시한을 한국의 언론사가 임의로 어긴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다행히 황우석 박사님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침해가 없이 해당 언론사만 Science지 정보 접근 권을 박탈하는 수준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위의 홍혜걸 기자의 해명은 조금만 전문 학술 분야, 특히 이 공학 분야의 전문 학술지들이 규정하는 '연구결과 사전배포 금지'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변명인지 쉽게 알게 됩니다. 그것이 이공학도들이 지난 해에 홍혜걸 기자에게 엄청난 비난을 쏟아 부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의 판단으로는 그러한 홍혜걸 기자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회사의 분위기에 억눌려 중앙일보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루어 졌고, 결국 그러한 측면이 한국 언론의 후진성과 부도덕성을 전세계 과학계에 인지시키는 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전문 과학 학술지들이 규정하는 "사전 결과 배포 금지"는 과학 연구의 특성상 검증되지 않은 임의의 결과가 미리 배포될 경우, 자칫 엄청난 혼란과 오류의 정보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온전히 활자화 시킨 이후에야 하나의 학술적 결과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대한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지키도록 하는데 근본 의도가 있습니다. 따라서, Science나 Nature를 하나의 외국 잡지 정도로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언론의 인식 자체가 얼마나 미천한 것인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중앙일보가 특종보도 해서 황우석 박사님의 논문이 학술적으로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 맞느냐, 아니면 Science지가 표지 논문으로 채택하고 이를 중앙일보가 일반 보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정답이 무엇인지는 과학 연구에 대한 조금의 인식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쾌한 문제로 그런 부분 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김범식ocs90차
재미있는 견해입니다. 예전에 장사를 하면서 느낀 건데, GM engine을 팔 때, 고속엔진을 만들지 못하던 일본선박엔진 업자들이 고속엔진은 rpm이 높아서 오래 쓰지 못하고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일의 어느 회사가 세멘트나 밀가루봉지용 전자 packer를 개발하니 기계식 제품밖에 생산하지 못하던 그 분야의 유명회사가 proven technology가 아니라고 판매를 방해해서 그 개발회사가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동안 그유명사는 전자시스템을 개발해서 지금도 잘 먹고 잘삽니다.
삼성이나 LG도 그 비슷한 문제로 중소기업을 울린 적이 비일비재하지요. 물론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지 않으면 기존의 회사는 도산되고 마니까요! 정글의 법칙입니다.
미국의 행위를 두둔할 필요는 없지만, 무시하고, 어떻게 극심한 방해를 피할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며 묵묵히 연구를 수행하여 완벽한 기술을 먼저 개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비난에 정신 팔다가는 상대의 술수에 말려 큰 일을 망치기 쉽습니다
박세리가 전성기일 때 그 바쁜 아이를 포상한다고, 서울로 불러들여 김대중 전대통령이 울린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면 더 이상 금칠이 필요 없는 자리인데 언제나 남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을 보면 이자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의아심을 갖습니다.
그 당시, 몇 년 후 슬럼프가 왔을 때, 불러서 포상도 하고 위로도 하면 위로 받는 당사자도 용기를 얻고 대통령도 바라는 금칠을 더 할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두르나? 생각 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 박찬호나 지금의 박세리가 극심한 슬럼프로 위축돼 있어도, 정부관리나 대통령이 위로했다는 소식은 없군요!
대신 그다지 축하가 필요 없는 황우석 박사를 불러서 뭐 도와줄 것 없나? 야단법석입니다.
어떤 담당 공무원은 마치 황의 대변인인 듯 연구소의 기밀인 추후계획을 중계 방송하듯 발표하고 연구에 써야 할 시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묵묵히 지원하고 공은 연구소에 돌리고 또 다른 국익에 도움이 되는 연구과제는 없을까? 돌아보는 통치자나 관리들이 아쉬운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