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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믿음(눅 1:26-38)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악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눅 4:18-19)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성탄절을 기다리는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바라보고 따라가기를 결단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에 함께 생각해야 할 분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일이 되면 주인공인 자기 자신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자기를 낳으신 어머니가 가장 많이 축하를 받아야 하고 가장 고마워해야 할 분입니다.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 마리아는 처녀로서 당시의 문화 속에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잉태하고 10개월 동안 주변의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산모의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탄절을 앞두고 ‘마리아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알아야 할 것은 마리아는 그 시대, 하나님께 쓰임받은 진정한 믿음의 여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에게 이 땅에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를 잉태할 여인을 찾아가도록 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소녀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수태 고지를 합니다. 당시에 세계를 정복한 로마제국에는 가문적으로, 인물적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만 해도, 그곳엔 유대교의 엄격한 분위기속에 교육받은 좋은 가문의 여인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잉태할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유대땅 나사렛에서 동정녀 마리아를 선택해서 이 땅에 오실 메시야를 잉태케 하셨습니다. 그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마리아였는지 그 선택받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마리아의 믿음을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마리아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을 받은 여인이었습니다(26-33절).
28절,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천사가 마리아를 어떤 사람이라고 불렀습니까? "은혜를 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내가 의지적으로 믿습니다. 해서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셔야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의 뜻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호의"입니다.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120km 지점에 있는 이 조그만한 마을 나사렛에 살고있는 무명의 한 여인이었습니다.
나사렛은 당시에 이스라엘의 북쪽 변방인데다가 인식이 매우 안좋아 흑암이 가득하고 그늘진 곳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는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라고 조롱섞인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사렛에서 마리아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참으로 이것이야말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은 여인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라는 뜻은 ‘높여졌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신분이 높아졌습니다. 그의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의 신분이 높아지고 여러분의 가치가 높아지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여러 가지 면에서 연약한 자였습니다. 죄인이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우리도 은혜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비천한 마리아를 선택하셔서 메시아를 잉태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통로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 감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눅1: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하나님이 그녀를 선택하시고 그녀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녀는 비록 무명의 나사렛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만세에 복이 있다고 인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바로 이런 마리아같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높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귀중한 하나님의 자녀로 높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고린도전서 1:2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훨씬 더 귀하고, 훨씬 더 많이 공부하고, 훨씬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선택해서 바로 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은 우리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래 전에 몇 백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느냐 하면 요즘 말하자면 인신매매까지 했습니다. 저기 아프리카로 가서 생사람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언젠가 그가 노예를 한 배 실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기분좋게 부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채로 거리로 나왔습니다. 마침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종소리를 따라 가다가 이 사람이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오늘 심심한데 교회에 들어가서 장난질이나 쳐봄세" 그들은 장난삼아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목사님이 설교하는 내용이 바로 탕자의 비유였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 끝까지 기다리는 그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에 그 사람의 마음이 점점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시고 그를 위하여 귀중한 은혜를 베푸셨다고 하는 사실을 그날 그 시간에 그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그 순간의 경험을 이렇게 시로 적었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바로 우리가 잘 부르는 305장을 작사한 존 뉴턴이 바로 그 사람인 것입니다. 이 분은 사실 훗날 영국 성공회의 신부가 되어 신앙각성운동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은혜받은 자들입니다. 옆 사람에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당신은 은혜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선택을 받고 부름을 받고 구원받고 은혜받은 자신인 것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보다 먼저가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믿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인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은혜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임한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임한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가오는 성탄절에 다른 어떤 것보다 내가 바로 은혜받은 사람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새롭게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성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마리아는 말씀이 그대로 나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34-37절).
31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수태고지를 전합니다. 수태고지가 뭡니까? 산부인과 의사가 “축하합니다. 임신하셨습니다.” 임신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때까지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임신을 합니까?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묻습니다. 너무도 지극히 당연한 반응 아닙니까?
이에 대해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35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천사는 마리아에게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덮는다.”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본래 구약의 성막에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성막이 세워진 다음에 그 위에 구름이 성막을 덮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마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성막을 덮듯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을 것이라는 겁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므로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과학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과학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성도들의 삶속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어려운 기적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실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법칙 가운데 인간이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하나님의 법칙은 무궁무진합니다. 뿐 만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기적 사건들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바다를 육지같이 건넙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서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집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이적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수많은 기적 사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지 못한다고 한다면 성경의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 어찌 우리가 이해하는 일들만 일어납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되는 것은 믿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하신 그 어떤 일도 믿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이 죽어서 잿더미가 되어도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오늘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모두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래 전 연예인 교회에서 코메디언 구봉서 장로님이 신앙생활 할 때였답니다. 당시 하용조목사님이 서울 온누리교회를 목회하고 계셨는데 주일 오후 연예인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했답니다. 그날 목사님께서 동정녀 마리아 사건에 대하여 열정을 다하여 가르쳤는데 뒤에서 한 젊은 연예인이 손을 번쩍 들더니 "목사님 농담하지 마세요.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아요? 그런 얘기는 그만 하시고 예수님께서 좋은 일 많이 하셨잖아요. 다른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목사님께서는 더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에 대하여 가르쳐 주니까 이 젊은 연예인이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성경공부 분위기가 이상해지니까 그때 구봉서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그후배 연예인을 향해 "야, 임마! 마리아 신랑 요셉도 믿었는데 네가 뭔데 안 믿어?" 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자 마리아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3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동정녀도 수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가감없이 다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날마다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시한번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리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내게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 사람들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으로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사건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마리아가 동정녀였다는 사실은 본인보다 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마리아에게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은 마리아가 그 말씀이 그대로 내게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말씀은 이론이 아니라 실재라는 말입니다.
말씀은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까? 그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리아의 믿음은 순종과 헌신을 통해 나타났습니다(38절).
38절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믿음의 여인 마리아는 자신이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렸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자 마리아가 뭐라고 응답했습니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함께 고백하십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자신을 여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종이란 주권이 주인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말이라면 전적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 존재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늘 “예, 주인님”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여종에게는 “안돼요, 주인님”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여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문이 떠돌게 될 때 마리아는 온갖 수모와 수치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 소문이 정혼자인 요셉에게 알려지면 당장 파혼하자고 할 것이 뻔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평생 부정한 여자로 낙인찍혀서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니까요,
그녀는 자기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면 무엇이든지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삶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자신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은 어떠한 고난도, 어떤 값비싼 대가도 치르겠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받은 자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머리로 계산하고 판단하고는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부인하고 반대하는 자가 아닙니다.
은혜받은 자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손해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없어지고 내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이 한 목숨 어떻게 되도 괜찮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보십시오.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의 고백이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는 바로 이렇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오직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리아의 신앙고백은 생명을 하나님께 바친 신앙고백이요 결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때 마리아의 나이가 얼마나 된 것같습니까? 학자들에 의하면 그 때 나이가 12,13세정도의 소녀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린 소녀가 이렇게 고백하였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마리아처럼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고백은 바로 하나님앞에 자신을 다 내어드린 헌신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놓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순종과 헌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하여,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사람은 학식있는 사람, 돈 많은 부자, 권세있는 유력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단순하지만 믿음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언제나 그 삶의 앞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가라면 가고 말씀이 서라면 섰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습니다.라고 외친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마리아가 어떻게 영광스러운 성탄을 맞이하였습니까? 우리 모두는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성도들입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시고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 성탄이 여러분 모두의 성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이 그대로 내게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은 것입니다. 헌신한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내 안에 모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앞에 자기를 내려놓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