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가는 공간
윤승희
이번 여행은 책숲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육지를 건넜던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처음 접한 이야기가 정말 많았던 만큼 얻어가는 것들도 많아서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었다. 건축을 주제로 잡고, 사전 공부도 하여서 그런지 보람 있었는데 이번엔 이 여행에서 내가 처음으로 접한 것들과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들,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고 싶은 것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들을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조사했던 곳.
역시 여행 후기하면 빠질 수 없는 내용이다. 내가 조사했으며 사람들 앞에서 발표한 만큼 제일 기억이 뚜렷하다. 사실 방주교회를 조사하면서 아직 건축에는 감각이 없는 나로서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됐던 부분도 몇 가지 있었다. 처음 여러 사람이 올린 블로그를 탐방하면서 이 건물이 이렇게까지 의미 있고 엄청난 건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첫인상이 엄청 강렬하진 않았기 떄문이다. 건물 외형이 생각보다 단순하고 심플해 보여서 환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럭저럭 조사를 마치고. 어찌어찌 제주도로 건너가고, 어찌어찌 방주교회(내 차례가) 왔을 땐 정말 놀라웠다. 아연이라는 금속으로 만든 교회의 지붕이 햇빛을 받아서 번쩍이고 있었다. 마치 고등어처럼. 블로그에도 ‘방주교회의 지붕은 정말 아름다웠다.’라는 글이 많이 보였는데, 사실 나는 그 말들이 과장이 섞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에는 담을 수 없을 만큼 멋있는 그 상황을 보자니 사전 조사와 견학의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다.
건물 내부도 정말 신기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은 구조여서 예배당이 한층 더 무게감 있고 웅장해 보였다. 다 같이 자리에 앉아서 내부를 감상했는데, 느긋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내부뿐만이 아니라 주변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다. 방주교회를 지으신 이타미 준 건축가님은 터를 굉장히 잘 잡으시는 것 같다.
-수풍석 박물관.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 선생님은 제주도에 방주교회 말고도 수풍석 박물관도 만드셨는데, 이번 제주 여행에서 수풍석 박물관을 관람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수풍석 박물관은 커다란 건물 안에 갖가지 물건들이 전시된 보통의 박물관하고는 매우 달랐다. 건물 3채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데다가 규모도 조그마했다. 특히 하나하나의 느낌이 전혀 다르고 최소한의 재료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웅장함과 멋이 깃들어있었다. 말로 100번 설명해도 한 번 가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생각난다. 다들 신나서 사진 찍고 난리가 났었는데, 함께 가서 재미도 누릴 수 있었다.
-4.3 기념관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사건이자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예전에 얼핏 들어서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이번 계기로 더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소름이 끼쳤다. 우리나라 안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기념관 안에서 전시물들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멍하게 보고만 있었다. 무고한 희생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옆에서 같이 봤던 다른 선배, 동생들도 다 그랬을 것 같다. 어디서 날아온 지도 모르는 총에 턱을 맞아, 턱 없이 남은 일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할머니. 이유 없이 팔과 다리를 잘라가 멀쩡했던 몸이 불구가 되어버린 할아버지. 내가 그분들이었다면 어이없고 절망스러울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우리나라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민 미술관.
또, 건축 여행인 만큼 이타미 준 건축가님뿐만 아니라 안도 타다오 선생님께서 만드신 유민미술관도 아주 감명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법을 유행시킨 장본인 이라고 하시는데, 이번 계기로 나도 노출 콘크리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유민 미술관 내부는 되게 미로처럼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길 찾는 게 까다로웠는데, 그만큼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고. 빛을 또 하나의 소재로 삼아서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나는 전시물 중에 버섯 전등이 가장 맘에 들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커다랗고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 그 전등이 있었는데, 주변 분위기 덕분인지 더 반짝거리고 영롱한 빛을 띠는 것 같았다. 천장이 엄청 높아서 웅장한 느낌도 들었다. 근데 실내로 들어가기 전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심지어 방향이 계속 바뀌어서 머리카락이 정상이 아니었다.
-우도
제일 재밌었던 곳이다. 그렇게 재밌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해변의 모래가 보통 모래가 아닌 자갈 같은 하얀빛의 홍조단괴 라는 홍조류가 만드는 석회 성분을 띄는 것이라고 한다. 그랬기 때문에 모래였다면 하지 못했을 짓을 많이 했다. 청바지를 입고도 그냥 털썩 앉아도 모래가 묻지 않아서 좋았다. 심지어 바닷물도 굉장히 맑고 청량해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수족관 보듯이 모두 보였다. 너무 예뻤다.
내가 내 다리 위에 홍조단괴를 뿌리니까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마치 모래찜질하듯이 홍조단괴를 퍼부었다. 덕분에 축축한 자갈들이 내 다리를 모두 덮어버렸고 바지도 촉촉(?)해졌다. 다 같이 수다를 떨며 깔깔 웃었는데 너무 좋았다. 별로 많이 놀았던 것 같지도 않았는데 1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 끝나고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땅콩 가루 뿌려놓은 느낌이었는데 적은 양에 5000원이나 해서 많이 놀랐다. 그래도 맛나게 먹었다. 우도에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면 배를 타야 했다. 옛날에 배를 탔다가 뱃멀미를 심하게 했던 적이 있어서 배 타는 게 그리 즐겁지는 않았지만 멀미도 안했고, 풍경도 너무 이뻐서 좋았다. (사실 너무 피곤해서 절반 이상은 잤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굉장히 많이 잤다. 버스에서도 자고, 배 타면서도 자고, 정말 알차게 틈틈이 자두어서 그런지 꽤 쌩쌩하게 보냈다. 숙소도 나름 괜찮았고 아침에 같이 동그라미 김밥 만드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돌아온 당일은 너무 힘들고 진이 다 빠졌지만, 건축 여행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기를 쓰면서 내가 갔던 곳들, 함께 수다 떨고 놀았던 것들. 하나씩 짚어가면서 다시 떠올리니 너무 좋다. 특히 내가 조사했던 곳을 무사히 발표 잘 마치니 기분이 좋고 보람 있다.
-소감.
건축 여행, 공부하며 건축이란 단어가 그저 집을 짓는 행위인 줄 알았던 내가 건축에 대한 생각이 확실히 바뀐다. 그저 똑같이 생긴 아파트. 정사각형 직사각형 모양의 비슷한 건물들. 단순히 조각같이 꾸미는 예술이 아니라 색다르고 멋있는 공간을 창조해낸다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건축이 예술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시간의 계기로 건축의 멋을 알아버린 것 같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이 아닌 심플하고 단순하며 최소한의 재료만으로도 웅장함, 독특함 등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이번 여행에서 봤던 수풍석 박물관, 방주교회, 유민 미술관과 같은 건물들을 보며 ‘도대체 저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만 수십번은 들었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건축에다가 색다르게 바라보는 이타미 준 선생님. ‘건물을 하나 지었다고 그 건물을 완성한 것이 아니다. 그 건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과정도 하나의 건축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부터 정말 대단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3박 4일 온종일 운전하느라 수고하신 희동선생님,
요리, 많은 도움 주신 봉희선생님,
그리고 같이 즐겁게 여행할 수 있게 해준 친구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