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영업과 시절
81.11 - 84.5
오비맥주는 보통 2년마다 인사이동을 했다.
명분은 누구든지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기에
여러부문의 일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책때문에 자주 부서를 옮기고 그 때마다 이사를 했다.
특히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집을 장만하지 못했기에 전세를 전전했다.
주민등록표를 떼보니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 몇 장이 붙을 정도로
집주소가 많이 변경되었다.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하기까지 20번 이상을 이사했다.
아내는 농담으로 이사포장의 달인이라고 했다.
아내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당시는 포장이사를 하지않고 박스에 담아서 짐을 꾸렸다.
박스 중에서는 병뚜껑(왕관) 박스가 최고였다.
두껍고 튼튼한데다 규격이 일정해 공장에 부탁해서
재활용 왕관 박스를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과일박스, 라면박스등 다양했기에
차량에 짐을 쌓기도 나쁘고 튼튼하지도 못했기에
그나마 우리 이사짐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부산에서 판매과 영업사원으로 많은 고생을 하며 2년 근무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라
고생은 되었지만 희망을 갖고 즐겁게 생활했다.
친구들에게 가끔 맥주도 사주고 원없이 맥주는 마셨다.
맥주회사답게 맥주마시는 내기도 많이 했다.
빨리 마시기, 많이 마시기 등이다.
1,000cc 맥주 잔에 맥주를 가득채우고 빨리 마시는 것이다.
숨도쉬지 않고 목에 드리부어야 한다.
병째로 마실 때는 빨리 나오도록 병을 돌려 회오리를 만들어
목에 부어야 빨리 마실 수 있다.
그리고 50미터 거리에 맥주조끼(Jug)를 놓아두고
100미터 경주하듯 달려가서 마시기도 했다.
많이 마시기 시합도 했는데
1만cc(500cc 20잔)은 많은 사람들이 마실 수 있었기에
그 보다 더 마셔야 이길 수 있었다.
해외 출장을 가서도 피쳐(1600cc)를 들고 마셔서 많은 외국인들이
흥미롭게 쳐다보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나는 빨리 마시기, 많이 마시기에는 명함도 내지 못했지만
자주 맥주를 마시며 청춘을 보낸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 간이나 다른 장기는 건강한 것이 신기하다.
아마도 거의 매일 새벽 아침 운동을 한 것이 도움을 준 것 같다.
81년 네델란드 맥주 하이네켄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 하이네켄을 담당하기위해 특수영업과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부산지점 근무 시 키맨 생일 선물을 다른 날짜에 전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이디어가 있는 사원이라고 생각한 상무가
담당자로 픽업했다는 것이다.
하이네켄 담당과장이 서울에 올라와 근무한 며칠 후
생맥주를 마시면서 나에게 담당하게 된 이유를 말한 것이다.
어째튼 이상한 맥주를 론칭(시판)하는 업무를 한 것이다.
맥주병도 색깔도 이상한 맥주였다.
당시 맥주병은 보관에 유리한 갈색(햇볕에 강함)이었는데
하이네켄은 녹색병에 꼭 소주병 같았다.
맛은 독특했는데 효모를 특수한 것을 사용해서
고소한 맥주맛을 냈다.
생산은 광주공장에서 했는데 네델란드 하이네켄사에서
생산담당중역(Brewmaster)이 파견되어 관리 감독을 했다.
마케팅 쪽에는 따로 중역이 있었는데 호이벤이라는
네델란드 사람으로 파견 근무하였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않고도
거래처 관리하는 판매사원 활동으로 판매를 했었다.
물론 광고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은 부족한 상태였다.
맥주시판을 위해 많은 선전품을 개발했다.
쿨링백, 모자, 그라스, 우산, T-shirt, 장화모양의 컵, 오프너 등 다양했다.
그리고 처음보는 판촉물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특히 쿨링백의 인기가 아주 좋았다.
결재과정에서 호이벤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그라스를 만들 때 거래처의 의견을 반영하여
잘 깨지지 않도록 두껍게 만들었다.
하지만 호이벤은 맥주를 마실 때 입술에 닿는 촉감이 부드러워야 하므로
가능한 얇게 맥주 잔을 만들도록 요구받았다.
우리는 거래처 위주의 사고에 젖어서 이견을 제시했지만
철저하게 소비자 위주의 마케팅 사고를 갖고 있는 그를 이기지 못했다.
디자인, 완성도, 납기 준수 등 상당히 까다로운 통제를 받았는데,
이때 올바른 소비자 중심 마케팅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맥주를 판매하는 과정도 그 동안은 1차 거래처 위주로 관리했다.
그래서 도매상 키맨을 관리하면 시장 점유율은 올라간 것이다.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요구해도 다른 맥주를 갖다주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하이네켄은 출시하기 전 팔 수 있는 거래처 명단을 작성했다.
전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 수출하는 맥주이기에
해외 출장을 다녀본 사람들은 하이네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가격도 일반맥주보다 비싼 프리미엄맥주였다.
그래서 지점별로 하이네켄을 팔 수 있는 업소 명단을 미리 작성한 것이다.
호텔, 골프장, 고급 경양식, 일식, 요정 등..
다시 말하면 전 거래처에 판매를 하지 않고 판매가능한 업소에
사입(판매)하고 점차 거래처를 늘려가는 방식이다.
판매수량을 일자별 업소별로 수기를 하며 관리했다.
1차 거래처의 역할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소비자가 중요한 것이다.
푸쉬(push)가 아니라 소비자로부터 풀(pull)하도록 했다.
2년간 하이네켄을 담당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것이 결국 이후에 마케팅에서 근무하게 된 밑거름이 된 것이다.
특수영업과라는 명칭의 부서에서 근무했지만
나중에는 마케팅의 프리미엄맥주팀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적성에 맞지않는 키맨들과의 영업에서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맺는 하이네켄 업무를 하면서
새로운 스킬도 배웠지만 소비자를 대상으로 노력한 만큼
판매량이 늘어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