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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
강하고 담대하라. / 조용기 목사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강하고 담대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최선을 다하여 모든 것을 준비했다 할지라도 결국 실천에 옮길 때는 담대한 신념이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항상 소심하여 겁이 많고 늘 돌다리도 두들기면서 건너는 이런 사람은 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자기가 익숙히 알고 있는 생활주변에서만 머물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새로운 창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본론>
오늘 읽은 이 본문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세상을 떴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탁한 말씀 중에 세 번 연거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마음을 극히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간절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허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없이는 실천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의 짧은 35년의 목회생활을 통해서 볼지라도 저가 가장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실천했을 때 가장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제가 마음이 소심하게 되어서 위축되고 불안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고 담대하게 실천하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의 역사도 사라졌던 것을 저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럼 첫째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강하고 담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믿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은 강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단11:32에 보면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건강하고 좋을 때라도 한계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지적인 한계점이 있고 육체적인 한계점이 있고 또 자기 재력의 한계점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큰소리해도 그 한계점을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한계에 부딪히면 인간은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에게는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의 말씀으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지으시고 모든 하늘의 만상을 하나님이 불러 내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이 땅위에 만물이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며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우리가 알아야 인간의 한계점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지적인 한계점, 육체적인 한계점, 생활의 한계점을 뛰어 넘어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지 인간의 한계점을 아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우리가 믿는 이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빼앗아 가시고 우리에게 책망하시고 꾸짖으시고 우리를 못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마음이 위축되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을 때부터 온 세상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빛을 지으시고 주님 궁창을 지으시고 주님께서 모든 육지를 나게 하시고 만물을 지으시고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공중의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세상 지으신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 것은 좋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좋은 목자라. 좋은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지 예수께서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려 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은 우리 일생을 좋게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죄를 다 짊어지고 질병과 저주와 절망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이것을 청산하게 만들어 주신 깊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해서 관심이 대단히 깊습니다. 성경에 주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우리 머리털 하나까지 아버지는 세시고 계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중에 하나라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는 법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너희 머리털까지 다 세심바 되었으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워온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낳으신 친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하나님 우리의 친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이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몸과 마음을 맡겨서 하나님을 삶의 근본으로 삼을 때 우리 마음속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태산 같은 준령을 바라보지 않고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 마음속에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죄보다 크신 하나님, 질병보다 크신 하나님, 마귀보다 크신 하나님, 절망보다 크신 하나님,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 불가능보다 더 크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나의 친아버지가 되시고 이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갈 수 있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 때 우리의 가슴속에 불안과 공포를 제하고 강하고 담대한 용기를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 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생깁니다.
요일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늘 양심에 가책이 있고 죄책이 있으면 우리 마음속에 담대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죄를 짓고 나면 부모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마음이 위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양심에 가책이 있으면 그 양심이 소리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자격이 없다. 무자격한 자가 무슨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느냐?’마음에 강하고 담대함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가책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은 우리는 마음속에 강하고 담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살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성경에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 현실적 세상에서 교회가 하늘나라입니다. 교회를 제켜 놓고 하늘나라가 전파되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를 제켜 놓고 하늘나라 백성이 모이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를 제켜 놓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큰 역사를 베푸는 곳이 없습니다. 바로 교회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열심으로 받들라는 것입니다. 교회 상처를 주지 말고 교회를 헐뜯지 말고 교회를 보양하고 교회를 잘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은 그 의란 바로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가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속에 예수님을 본받는 그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시고 우리는 마음에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고 살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운 공로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명을 지키므로 하나님과 교제가 늘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늘 기억하고 그 계명을 지키려고 우리는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 우리는 하나님을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할 자가 하나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마음에 신앙이 충만할 때는 그렇게 하나님이 감사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신앙이 사라지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마음이 부정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크게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때 우리 하나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해지고 우리가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계획을 따라 살 때 우리 마음속에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내 뜻대로 아니하고 아버지 뜻대로 하는데 아버지가 하는 일을 내가 하는데 누가 나를 감히 막으리요. 그것은 너무나 담대한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하나님 계획 속에 살게 될 때 우리 마음은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계획한 것 보십시오.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이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죄를 다 예수님이 청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거나 불의하거나 추악하거나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나는 구원받았다는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의로운 행위를 하고 아무리 타종교를 믿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흉악한 죄인이라도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의 계획은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케 하는 것이니 이 자리에 ‘주여 나는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습니다.’ 받아들이면 강하고 담대하게 구원받았다고 시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바로 죽음에 이른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우리의 삶의 실패를 십자가에서 다 청산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좋은 축복의 밭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고 헌물을 드리고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는 이제 축복의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축복을 달라고 우리가 부르짖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왜,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 저주를 다 제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믿음의 씨앗을 심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라고 말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도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 십일조와 헌물을 내 창고에 들여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와 있으므로 이제 그 일은 내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프로젝트입니다.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누가 막겠습니까? 온 천하에 막을 자가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와서 저가 실천하므로 하나님이여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업에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저주야 물러갈 찌어다. 실패야 물러갈 찌어다. 가난아 물러갈 찌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라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치료와 건강의 계획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하나님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저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 찌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무슨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치료할 계획을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함과 병을 다 십자가에서 짊어 지고가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치료를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교회 주의 종이나 장로들이 오셔서 기름 바르고 안수하고 기도하라고 말했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보통 믿는 평신도라도 믿는자 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가 병든 자 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안수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치료가 오도록 하나님이 계획을 해놓은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내가 기도를 했으면 이제는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이 일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쫓아서 내가 기도를 한 이상은 이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플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도 믿지를 않습니다. 믿지 아니하므로 아무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 믿지 않습니까? 치료가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알지 않고 우연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아니하므로 능력을 얻지 못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저희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우리가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의 은혜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에 대한 모든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시139에 말씀하기를 “내가 태어나 이 땅에서 하루가 지나기 전에 내 일생이 야훼의 책에 다 기록 되었나이다”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일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미 다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저를 위해서 계획한 그 삶을 따라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나의 일생의 한 연극의 각본을 다 적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각본을 따라 내가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하나님 계획대로 인생을 살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목회하고 온 세계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제가 그 계획을 따라서 목회생활을 하고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는 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저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그러나 저가 만일 하나님의 계획이 주의 종이 되는 것이 분명한데도 저가 그것을 버리고 사업을 한다든지 정치를 한다든지 하면 하나님 계획밖에 나갑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도와준다는 그러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담대함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서서 사는 동안은 나는 강하고 담대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느낄 때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가 함께 계실 때 힘이 생깁니다. 개도 주인이 있으면 개가 싸움을 잘하지요. 주인이 없으면 개조차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배속으로 집어넣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면 그때 용기백배하고 큰 힘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여호수아에게 주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수1장 5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1장 9절에는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하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께서 나의 배경이 되셔서 나와 함께 계신다. 그러니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성경도 친히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이가 무엇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뇨”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는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내가 늘 마음속에 느낄 수가 있나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날 말씀을 통해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눈에 안보입니까? 하나님을 왜 옷자락 손에 잡지 못합니까? 하나님은 오늘날 시대에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과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등한이 하면 하나님과 만남을 등한이 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마음에 담대함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말씀의 진설병이 뜨끈뜨끈한 진설병이 김을 무럭무럭 내면서 늘 새롭게 하나님 말씀이 마음속에 진설되어 있으면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뚜렷하게 됩니다. 오늘날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 것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무신론자라도 하나님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듣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러므로 모세가 죽고 난 다음 여호수아가 지도력을 얻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한 것은 “네가 이 율법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이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율법이란 구약시대는 성경을 보고 율법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야로 읽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이 말씀이 시키는 데로 행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와 같이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말씀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등한이 하고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을 등한이 한다면 우리 강하고 담대함을 가질 수가 없지요. 그 다음 우리가 성령이 충만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압니다. 요일 3: 24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성령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늘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늘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삽니다. 사람이 100%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키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으로 성령이 우리 속에 충만할 수 있고 성령이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성령이 충만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성령이 충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는데 우리가 입을 넓게 여는 것이 뭡니까? 기도하는 것이 입을 넓게 여는 것입니다. 입을 딱 다물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진수성찬이 있어도 어떻게 먹입니까? 아무리 하나님이 성령 주실 려고 해도 입을 다물고 기도 안하는데 어떻게 성령 채울 수 있습니까? 네 입을 넓게 열라. 기도를 많이 하라. 그리하면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여러분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질 때 여러분을 통해서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위에 우리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다가옵니다. 태산 같은 경제적인 타격도 다가오고 원수들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환경의 어려움도 다가옵니다. 우리는 마음이 위축되어서 그만 놀래서 뒤로 물러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살펴본 이러한 요건들이 구비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아직 군인이 될 수 있는 나이도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대적해서 싸우러 나갔을 때 모든 이스라엘의 장정들이 다 동원되어서 나가서 블레셋 대적하여 진을 쳤으니 블레셋 군대 중에 장군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지라 이스라엘 군인들이 모두 다 놀라고 두려워서 바위 밑으로 나무 밑으로 다 숨어 버렸었습니다. 그는 키가 9척이요, 눈알이 종발 만했다고 했었습니다. 그의 창은 베틀 채만했습니다. 이것 도무지 아무도 그 근처에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다윗은 형들이 전쟁에 나가있기 때문에 형들 위문하러 아버지가 주는 음식을 가지고 갔다가 보니 상황이 이렇습니다. 골리앗이 나와서 산이 쩡쩡 울리도록 ”이스라엘이 남자가 있거든 내게 와서 대적하라. 나와 싸워서 이기는 자는 우리가 너희 종이 되고 너가 지면 너희들이 우리의 종이 되겠다. “이스라엘 군인들 중에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들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무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이 그 말을 듣고 그가 왕에게 와서 말했습니다.”내가 나가서 싸우겠다. 저 할례 없는 놈이 왜 우리가 두려워하느냐? 내가 아버지 양을 치다가 곰이나 사자가 오면 그를 잡아서 양을 빼앗았고 달려들면 내가 쳐서 죽였다. 저 곰이나 사자보다 못한 저 인생을 무얼 두려워하느냐?“ 조그만한 다윗이 그것도 갑옷도 입지 않고 칼도 가지지 않고 자기 목동의 옷 그대로 입고 물매에 물맷돌을 채워 가지고서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다윗이 한말을 들어보면 참 기가 막힙니다.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네게 가노라. 오늘날 이스라엘 하나님이 계신 것을 내가 만천하로 알리게 하노니 너희를 죽여서 너희 고기를 찢어 공중의 새와 짐승의 밥을 만들겠다.“ 골리앗이 뭐라고 했습니까? ”너 나를 개인 줄 알고 부젓갱이를 들고 나오느냐? 이놈 단칼에 베어 버리겠다.“ 그러나 이 조그만한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골리앗을 대결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믿음으로 물맷돌을 물매에 먹여서 뛰어 나가서 놓아 버리니까 그 돌이 정통으로 이마를 때려서 이마를 깨고 골속에 들어가니까 그 거인 골리앗도 넘어지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목을 베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왔더라면 하나님이 그런 능력으로 주어서 사용했을 것인데 모두다 겁쟁이가 되었으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면서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막대기가 겁쟁이가 되니까 하나님이 쓸 수가 없었으나 보잘것없는 초립동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 하나님이 그를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시고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위에 굳세게 서서 믿습니다로 나가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셔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질 때 불가능을 도전할 수 있고 기적은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납니다. 마음이 위축되고 불안하고 공포에 떨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지도 아니하시고 사용할 수도 없사옵 나이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인생의 전쟁터에 나와 있는데 골리앗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속속히 다가옵니다.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가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울 수가 없사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으로 삶의 원수인 골리앗을 대결해서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믿고 담대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할 수 없다는 말 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못한다는 말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할 수 있거 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창조적인 대열에 서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