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李某가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다 문득 고모高某에게 전화를 건다 한참 울린 뒤에 전화를 받는다 뭐 하느라 전화를 안 받나? 뭐하긴, 정진하고 있지 뭘 그리 밤낮없이 정진만 해? 내가 할 줄 아는 게 정진뿐이잖아 이모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이모가 던지는 말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닦으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정진 중이라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나 접는다 스마트폰을 닫으며 중얼거린다 열심히 수행하는 친구 맞아 늘 정진하는 줄이야 알지 그러나저러나 저러다가 수혹修惑에 빠지면 어쩌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하긴 모두 다 잘 알아서 하겠지 수행 그 자체가 결국은 보살행이니
이모가 조모趙某에게 전화를 건다 조모가 전화에 대고 짜증을 낸다 아따! 이 사람 바빠 죽겠는데 뭐 하는 데 그렇게 바빠? 나야 항상 바쁘지 한데 뭐 때문에 걸었어? 바스락바스락 책장 넘기는 소리 이모가 겸연쩍어하면서 던진다 아! 미안, 전화 끊어 뚜둑! 끊는 전화에 상대 잔상이 남는다 하필 사색 중인데 전화를 걸고 그래....
십지 중 여섯째 단계 현전지가 뭘까 수혹修惑이나 사혹思惑을 끊고 가장 뛰어난 지혜를 발휘하여 보살의 진여眞如 경지에 도달함이다 닦음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듯 사색에만 빠져도 안 될 일이다 반야般若 경지가 무엇일까 수혹으로부터 떠나고 사혹마저 벗어나야 반야다 이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한다 진짜 비울 때 묘함이 있다는 것일까?
현전現前의 현現은 능동能動이며 동시에 자연스런 피동被動이다 일부터 드러냄이 능동이라면 때가 되어 저절로 드러나고 스스로 느껴져 옴이 피동이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현여래卽見如來 모습을 지닌 모든 상相의 세계는 한결같이 헛되고 사라지는 법 제상과 비상을 동시에 볼 때 곧 여래는 드러난다고 [東峰 옮김]
보살도 부처도 실제로는 마찬가지다 제상諸相에서 비상非相을 보고 상 없는 데서 모든 상을 보되 동시若에 볼見 수 있다면 곧바로 부처는 드러날 것이다 이때 볼 견見자는 드러날 현見자다 장인이 무심일 때 석굴암 부처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듯이 제상과 비상을 하나로 볼 때 여래는 그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나타날 현現자는 구슬 옥玉자와 함께 볼 견見자가 서로 결합한 모습이다 견見은 눈目을 크게 부각儿시킨 보다의 뜻을 갖고 있는 글자다 옥은 아무나 가질 수 없었다 왕과 중전만이 지닐 수 있기에 한자漢字에서도 점 하나 차이지만 왕王과 옥玉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옥을 가공하여 보석으로 만들면 애써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보석 그 스스로 찬란한 빛을 낸다
현전지 보살의 경지에 들기 위해서는 열 가지 평등을 얻어야만 한다 일체법은 본디 성품이 없고 이렇다 할 모양이 없고 태어남이 없고 멸함이 없고 오로지 청정하고 쓸데없는 말이 없고 취하거나 버리지 않고 집착으로부터 모두 떠나고 꿈과 환상과 거품과 그림자와 이슬과 번갯불과 같음을 깨닫고 있고 없음이 둘 아님을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