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氣象豫報)
어느 날,
이른 아침.
열두살 복순이는 동네 골목길을 가다가 타작 준비로 부산한 이웃집에 들어가
“아저씨,
오늘 타작 하지 마세요.
비가 올 거예요.”
이웃 아저씨는 눈을 왕방울만하게 뜨고
“이 가뭄에 무슨 비?
그런데 너는 옥황상제 말씀이라도 들었냐?”
이웃집 아저씨는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낭패를 당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始作)한 것이다.
타작하던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락 이삭이 둥둥 떠내려가 골목길이 나락더미를 이뤘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자 넋을 잃은 아저씨는 주저앉아
벌컥벌컥 막걸리 잔을 비우며 복순이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린 후회(後悔)보다
복순이가 어떻게 천기(天氣)를 귀신(鬼神)처럼 알아맞혔는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
복순이의 천기(天氣) 맞히는 소문(所聞)은 파다(頗多)하게 퍼졌다.
아랫동네 짚신장수 영감님이 찾아와
“복순아,
오늘 짚신 팔러 가도 되겠냐?”
복순이는 서슴없이
“가세요,
오늘은 비가 안 와요.”
소문(所聞)을 들은
윗마을 천석꾼 수전노(守錢奴) 오첨지 내외가 마주앉아 기발(奇拔)한 궁리를 짜냈다.
찢어지게 가난한 소금장수 외동딸을 며느리로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꿍꿍이속은
며느리의 천기신통력을 돈을 받고 팔자는 것이다.
부자 오첨지네 며느리가 된 복순이는
꾀죄죄한 치마저고리 대신 번쩍이는 비단옷을 입고 금비녀를 꽂았다.
장을 돌며 창과 춤판을 벌여 약(藥)을 파는 패거리 두목이
오첨지네 집을 찾아왔다.
“첨지 어른,
며느님께 뭐 좀 여쭤 볼 일이….”
오첨지는
단호하게 말을 막았다.
“공짜는 안되네.
서른냥 선불이네.”
그날 저녁
오첨지네 집은 난리(亂離)가 났다.
비를 흠뻑 뒤집어쓰고 약장수판이 엉망이 되자
약장수 패거리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천기예보값 서른냥과
손해배상액 백냥을 물어준 오첨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한번쯤 못 맞힐 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꾹 참았다.
문제는
그 이후로도 복순이의 천기예보는 계속 빗나갔다.
말할 것도 없이 복순이는 입은 비단옷까지 빼앗기고
오첨지네 집에서 쫓겨났다.
홀아비 소금장수 친정집으로 온 복순이는
또다시 그날의 천기를 정확히 맞히기 시작했다.
소금장수 아버지가 소금장수를 치우고 천기예보값을 받아내 살림은 불어나 번듯한 기와집에
복순이는 비단 치마저고리를 입고 손님을 맞았다.
복순이는 겉옷은 화려하게 입었지만
치마 속 고쟁이는 열두살 때 아버지가 손수 소금자루로 지어준 걸 입었다.
어린 처녀의 예민한 촉감이
소금에 절은 고쟁이에서 감지되었던 것이다.
비가 오려고 하면
소금자루 고쟁이는 눅눅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