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용기와 각오를 가지고 절복에 매진하자 ☞음성으로듣기☜
절복의 연(緣)은 다양한데, 부모, 형제, 부부 등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이 신심을 하지 않는 것은 신앙자에게 있어 아주 큰 고민입니다. ‘소중한 사람이기에 절복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일련정종 승속의 본심이며 비원(悲願)입니다.
그러나 상대는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좀처럼 입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듣지도 않으며 도리어 원한을 품고 우리의 신심을 막으려고 박해를 가합니다. 세간에서도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라고 합니다만, 절복은 아주 큰 충언이기에 거스르는 힘도 또한 큽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신심을 해야 할까요? 어떤 조언이 적절할까요?
이 문제에 대한 알맞은 지침이 본초 및 이케가미(池上) 형제의 신앙 자세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요점을 들어봅시다.
첫째, 대성인님을 신복수종(信伏隨從)하는 청정한 신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스미츠(康光)는 악승(惡僧) 료칸(良觀)의 책모와 꾀로 인해 동생 무네나가(宗長)에게 장남의 지위를 상속시킨다는 좋은 미끼를 주어 신심 강성한 형 무네나카(宗仲)를 실각(失脚)시키려 하였습니다. 당시에 의절이라고 하는 것은 부자(父子)의 연(緣)은 물론 경제적 보장, 사회적 권한 모두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네나가(宗長)의 입장에서 보면, 장남의 지위 상속에 동의할 경우 재산, 지위, 신분 모두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인님의 어지남에 신복수종(信伏隨從)하여 퇴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아우 무네나가(宗長)의 신심에 대해 대성인님은
「료칸(良觀) 등(等)의 천마(天魔)가 붙은 법사(法師)들이 부친(父親)·사에몬노다이후전(左衛門大夫殿)을 속여서, 귀하(貴下)들 두 사람을 없애려고 했는데, 귀하(貴下)의 마음이 현명(賢明)하여 니치렌(日蓮)의 훈계(訓戒)를 받아들였으므로 두 개의 바퀴가 수레를 돕고, 두 발이 사람을 지탱하고 있듯이 두 날개가 날듯이, 일월(日月)이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돕듯이, 형제(兄弟)의 힘으로써 부친(父親)을 법화경(法華經)에 들어오시게 한 계책(計策)은 오로지 귀하(貴下) 자신(自身)에게 있으며,」(신편어서 p.1270)라고 찬사를 보내시고 있습니다.
둘째, 지용(地涌) 권속(眷屬)의 경계를 열어 자행창제(自行唱題)에 정진한 것입니다.
훗날 대성인님은 형에게 「귀하는 상행보살의 화의(化儀)를 돕는 사람이 될지어다.」(신편어서 p.1435)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무네나가(宗長)가 지용(地涌)의 권속(眷屬)으로서의 경계를 열 수 있었던 열쇠는, 말할 것도 없이 부단한 창제행에 있습니다.
셋째, 절복화타(折伏化他)·인난홍교(忍難弘敎)에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법문(法門)을 말하면 반드시 마(魔)가 출래(出來)하느니라. 마(魔)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 제5권에 이르기를 『행해(行解)를 이미 힘쓰면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나느니라. 내지(乃至) 따르지 말지며 두려워 말지어다. 이에 따르면 바야흐로 사람으로 하여금 악도(惡道)에 향하게 하고 이를 두려워하면 정법의 수행을 방해하느니라』 등 운운」이라는 어지남처럼, 절복을 하면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납니다.
그때, 그에 따르거나 두려워하면 결국 신심이 퇴전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형제는 대성인님의 어지남에 따라 인난홍교(忍難弘敎)를 각오하며 용기 있는 절복을 관철하여 마침내 20년 동안 계속 거세게 반대했던 아버지를 료칸(良觀)의 마수(魔手)에서 되찾아 대성인님에게 귀의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 이체동심의 신심을 확립한 것입니다.
세간(世間)에서는 사이좋았던 형제가 재산을 둘러싸고 대립한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무네나가(宗長)는 「귀하가 형을 버리고 형의 뒤를 물려받는다 해도 천만년의 영화(榮華)는 어려우리라.」(신편어서 p.1185)라는 대성인님의 지엄한 어지남을 신심(信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형 무네나카(宗仲)의 부동(不動)의 신심과 아우의 현명한 신심으로 형제뿐 아니라 아내들도 마음을 하나로 하는 이체동심의 신심을 확립했습니다.
다섯째, 진심 어린 공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에서 넷째까지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 형제의 순수한 신심은 외호(外護)의 의지도 두터우며 하종삼보(下種三寶)에 대한 진심 어린 공양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케가미(池上) 저택이 대성인님 천화(遷化)의 장소가 되었던 것도 깊은 인연이라 배(拝)할 수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요점은 모두 누구라도 알고 있는 신심의 기본이지만, 이케가미(池上) 형제는 이를 충실히 실천하여 마(魔)를 이겨내고 난(難)을 극복하는 신심의 방도가 옳았음을 증명했습니다.
본초의 마지막에 「처음에는 믿고 있었으나 세상이 두려워서 버리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도 없고, 그중에는 오히려 비방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강성히 비방하는 사람들이 또한 허다하니라. 재세(在世)에도 선성(善星) 비구(比丘) 등은 처음에는 믿었지만 후에 버릴 뿐 아니라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고로 부처도 어찌하지 못하시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느니라.」(신편어서 p.987)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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