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지나가는 어둠이, 이건 남겨 두자고 바람에라도 걸어두자고, 슬픔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 어느날, 살기 힘든 사람이 바람 속에서 꺼내서 보게,
바람 속에 남기는 말은 사라지든 아니든,
그리워할 것 없는 사람이 나뭇잎 흔들리는 그것 하나,
외로움처럼 가을에 남겨두자고,
가을을 지나가는 외로운 사람이 외로움 하나라도 꺼내 볼 수 있게.
외로운 밤에
밤을 지나가는 시간 위에
외로움이라도 있어야 하는 걸까
깊은 밤 강물 속에서 기억할 수 없는 가을날들이 출렁이고 있을까
바닷가의 하얀 포말처럼 흩어지는 것이 상상 속에서라도 그리워지는 시간이 흘러가기도 할까
깊은 밤에 떠도는 바람 속에 남겨둔 말이라도 있다면
어둠의 독백을 맴돌며 떠나가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엇이 시간을 붙잡고 있는 걸까.
바람이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꺼내볼 수 있게, 바람 속에 걸려 있는 것이 있다면
바람 속에 걸어놓은 말은 흘러가는 바람 속에서만 들리네. 바람 속에 걸어놓은 말은 기댈 곳이 바람밖에 없을때에만 들리네
바람 속에 걸어놓은 말은 들리지 않는 소리 속에서만 들리네. 바람 속에 걸어놓은 말은 바람에게 쓰는 편지에서만 들리네. 바람 속에 걸어놓은 말은 대답없는 말에서만 들리네 바람 속에 걸어놓은 말은 부칠 곳 없는 편지 속에서만 들리네
그는 존재하는가
어둠은 존재하는가
그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둠은 존재하는가
그는 존재하지 않는데, 바람속에 남겨진 말들은 그 사람의 바람 속을 불어가네
그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둠은 그의 윤곽을 그리네
바람은 왜 불어가고 있는지 이유도 모르는 시간 위를 불어가지만
이유도 모르는 시간 위에서 흔들리는
바람이 남기는 말은
지나가는 어둠이, 이건 남겨 두자고 바람에라도 걸어두자고,
바람 속에서 잊혀진 것들이 바람 속에서 돌아 올까
바람 속에서 사라진 것이 비어있는 것 위에 돌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