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난회(御難會)의 의의
어난회(御難會)란 1271년 9월 12일, 종조 니치렌대성인님의 다쓰노구치(龍口) 법난을 기념하여 보은을 드리는 법요입니다.
대성인님은 1271년 9월 12일 밤중에 가마쿠라를 출발하시어 축(丑)의 시각에 다쓰노구치(龍口)에서 목을 잘리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광물체가 에노시마 방향에서 북서의 방향으로 날아와 칼을 든 망나니의 눈이 멀게 되고 결국은 목을 자를 수가 없었습니다.
다쓰노구치법난에 대해서 『개목초』에 「니치렌(日蓮)이라고 했던 자(者)는 거년(去年) 구월(九月) 십이일(十二日) 자축(子丑)의 시(時)에 목이 잘렸느니라. 이는 혼백(魂魄)이 사도국(佐渡國)에 이르러서」(신편어서 p.563)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자축의 시각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 상에서는 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축은 음(陰)의 끝 · 사(死)의 끝, 인(寅)은 양(陽)의 시작 · 생(生)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석존을 시작으로 하는 많은 부처님도 이 축인의 시각에 성도[(成道): 부처님이 되는 것]하신 것입니다. 즉 1271년 9월 12일의 자축의 시각은 대성인이 범부의 몸으로써 사(死)의 끝이며, 인(寅)의 시각은 대성인님이 본불님으로서 생(生)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 때 대성인님은 범부의 입장에서 말법의 본불님으로서 진실의 모습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대성인님은 다쓰노구치(龍口) 법난을 이겨 낸 그 순간, 범부라는 수적[(垂迹): 임시의 모습]을 열어 흉중에 구원원초자수용보신여래라는 본지[(本地): 본래의 경애]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발적현본(發迹顯本)’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매년 9월 12일에 어난회 법요를 열어서 대성인님의 불은에 보은사덕을 올림과 동시에 미증유의 박해와 그 노고를 마음속 깊이 떠 올리며, 광선유포를 맹세하는 것에 어난회 법요의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신경법중 · 사신홍법의 정진행으로 니치렌대성인님의 다쓰노구치(龍口) 법난을 기념하여 보은을 드리도록 합시다.
2. 우리들의 발적현본(發迹顯本)
그러면 이 발적현본을 우리들의 입장에서 적용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지용의 보살로서의 본지를 자각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직 어본불을 믿고 있으면 된다는 손쉬운 일은 아닙니다. 본지를 열어 나타내어 진실한 자각에 서기 위해서는 대단한 신로가 요구됩니다. 대성인님의 경우도 생명에까지 미치는 난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명심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전도에는 여러 가지 비판이나 중상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그 이상의 난이 일어나는 일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어떠한 장해가 가로막는다 해도 강한 신심을 분기시켜 기꺼이 일어서야 합니다.
자신의 타약한 생명을 극복하고 어두움과 미혹의 경애를 불계로 전환하려면 불석신명의 실천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자칫하면 안일과 타성에 흐르기 쉬우며 왕왕 스스로가 법을 구하며 향상한다는 엄한 자세를 잃기 쉽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가령 우리들의 생활이 일상성 속에 매몰되어 추한 측면이 나와 있더라도 생명의 내오에는 깨끗한 부처의 생명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본존을 배례하여 진지하게 근행과 창제에 면려할 때 우리들의 생명에는 불계가 용현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더러워진 생명을 근행과 창제로 정화하며 대성인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자각해서 묘법 홍통의 결의를 굳게 할 때 거기에는 단순히 자기만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는 낮은 인생관은 크게 전환되어 갑니다. 그것은 참으로 지용 보살의 권속으로서 본지의 개현이며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발적현본이다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뜻으로 우리들은 매일 매일 발적현본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앞이 막히면 발적현본’을 착실히 지속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성장과 행복의 실증을 나타내 보일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