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월,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여느 때처럼 가족들과 외식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행정복지센터에서 한 통의 안내문이 왔다. 노인복지법에 근거하여 국가에서 노인에게 베푸는 복지서비스, 기초연금 수령과 통신비 할인, 노인 돌봄과 치매 안심 서비스 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나는 철도요금 할인과 지하철 무료 이용의 혜택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막상 법적으로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새싹처럼 파릇파릇하게 자랐던 청소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바쁘게 살았던 청년, 나름의 결실을 거두었던 중년을 다 보내고 황량하고 적막한 겨울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열차가 간이역에서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가족과 친구가 있고, 해야 할 일과 갈 곳이 많지만, 노년의 외롭고 적적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젊을 때, 백발의 할아버지와 허리가 고사리처럼 굽은 할머니를 보면서 노인이 되면 무슨 낙으로 살까 걱정을 해본 적이 있다. 자식들을 모두 떠나보낸 적막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료함, 죽음을 눈앞에 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보낼 거라 짐작했다. 실제 노인이 되고 보니 그렇지 않다. 의술이 발달해 건강하게 사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볼일이 많아 나날이 바쁘다. 며칠을 혼자 있어도 지루하기는커녕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둘 멀어져 가거나 다른 세상으로 먼저 떠난다는 것이다.
노인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최종 단계에 도달한 사람이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지만 아직 10여 년 정도의 여유가 있다.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과 패기가 남아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치인들은 경로 우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선거 때마다 떠들면서 막상 당선되면 노인의 복지와 권익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청년 정책에만 앞장서면서 노인들을 관심 밖으로 내몰고 있다. 젊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조용히 쉬다가 가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노인에게는 한 시대를 이끌어온 경험과 지혜가 있지만, 노인들의 목소리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아쉬울 따름이다.
노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나라는 없다. 아일랜드 출신의 '윌리엄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에로의 항해〉에 '저곳은 늙은이가 살 나라가 아니다. 늙은이는 그저 하나의 하찮은 물건.'이라는 시구가 나온다. 이 구절을 착상하여 미국의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소설을 발표했고, 얼마 후 영화로 제작되어 2008년 우리나라에 상영되었다. 제목만 보면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영화 같지만, 실제는 엽기적인 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에드 톰 벨'은 지성과 경륜을 갖춘 늙은 보안관이다. 그는 살인마를 추격하면서 자신의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는 사건으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사회현상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급변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계층이다. 노인의 생각과 경험으로 편안하게 기대어 살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현실을 복선으로 숨겨 놓은 영화다. 어딜 가든 노인들을 우대하고 대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이 들수록 금기 사항이 많아진다. 그중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격언처럼 말수를 줄여야 한다. 노인들은 지나온 세월과 자신의 인생을 나열하고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젊은이들은 '꼰대'라며 싫어한다. 가끔 집에 오는 30대 애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하면 "제가 알아서 잘 합니다."라며 말을 끊는다. 애들의 얼굴에서 '우리 아버지도 꼰대구나'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이들에게 참견보다 응원의 목소리로 사기를 북돋아 주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유행가 제목이기도 하지만 작고하신 이어령 박사가 노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안타까움을 토로한 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청년이나 중년이 노년의 삶을 이해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생로병사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노인답게 도리를 다하고 산다면 꾸미지 않아도 근사하고, 말하지 않아도 관용과 포용이 묻어나는 멋진 나이라고 생각한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라 인생의 참맛을 터득하는 깨달음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세고, 여자가 남자보다 6년 정도 오래 산다. 아흔을 바라보는 문인 중에 "내 인생의 황금기는 60대였다."고 말하는 선배가 있다. 자식들 출가시키고 특별한 걱정이 없으니 몸과 마음의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그가 얻은 자유는 '욕망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라고 짐작한다. 그의 60대와 현재 나의 환경은 비슷하다.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스스로 만든 굴레와 틀어서 벗어나 세상을 훨훨 날아봤으면 좋겠다.
해가 바뀌면 스마트폰에 몇 달간의 일정을 저장해 놓는다. 그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일에 대한 의무감과 자만심을 버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느긋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먹고 싶은 거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
여태껏 수많은 초보 단계를 거치면서 걱정과 기대, 두려움과 기쁨을 경험했다. 이제 내 생애에 또 하나의 초보 단계인 노인이 되었지만 특별한 감정이나 떨림이 없다. 무엇을 탐내고 채워야 하는 욕심보다 덜어내고 비워야 할 일만 남았기에 마음이 편안하다.
노송처럼 나이테를 드러내지 않고 세월의 향기를 풍길 수 있다면 노년의 삶도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