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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사람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수 있다.
修 : 닦을 수(亻/7)
身 : 몸 신(身/0)
齊 : 가지런할 제(齊/0)
家 : 집 가(宀/7)
治 : 다스릴 치(氵/5)
國 : 나라 국(囗/8)
平 : 평평할 평(干/2)
天 : 하늘 천(大/1)
下 : 아래 하(一/2)
수신(修身)은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심신을 닦음을 뜻하고, 제가(齊家)는 집안을 잘 다스려 바로잡음을 뜻하며, 치국(治國)은 나라를 다스림을 뜻한다. 이국(理國)과 같은 말이다. 평천하(平天下)는 천하를 평정함, 또는 온 천하를 편안하게 함을 뜻한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제일 먼저 자신을 수신(修身)한 연후에 제가(齊家)하며, 제가(齊家)한 연후에 치국(治國)하며, 치국(治國)한 연후에 평천하(平天下)할 수 있다는 뜻으로 세상사를 다스리는 모든 일은 순서가 있으며 그 단계를 밟아가야 그 이치를 깨닫고 이치에 그르지 않으며 순리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해석 내용이다.
진리란 현실성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해석에 현실성이 빠져있다면 그것은 환상을 쫓는 설교가 될 뿐이다.
어느 한명의 훌륭한 지도자가 수신제가(修身齊家)후에 치국(治國)하고 그 다음에 세상을 다스리면 평천하(平天下)가 된다는 것은 환상이다. 평천하(平天下)가 어느 한사람의 훌륭하고 도덕적인 지도력으로 이루어 질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2천년전의 예수님이나 3천년전의 석가모니님 시대에 이루어 졌을 것이다.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치면서까지 나라의 평안을 위해 노력했어도 평천하(平天下)는 커녕 한 나라의 평화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실속에선 한나라의 평화도 이렇듯 어려운 일인데 한사람이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을 이루었다 하여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원문을 훼손하지 않고 속뜻을 제대로 본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핵심은 수신(修身)이다.
자식은 자식으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몸 가짐를 바르게 하고,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몸 가짐를 바르게하는 것이다.
수신(修身)이 되면 자연적으로 제가(齊家) 즉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식과 아내와 남편이 몸가짐을 바르게(修身)하면, 제가(齊家) 화목한 가정이 안 될래야 안 될수가 없는 것이다. 나라의 각 가정마다 수신(修身)으로 제가(齊家)를 이루게 되면 나아가 치국(治國)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그릇됨을 지적하며 싸워서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데 힘을 쓴다면 평천하(平天下)는 저절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평천하(平天下)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한몸을 바르게 하는데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만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작위하지 않고 그 스스로 완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고 백성 한사람 한사람이 제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할때 그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나아가 세상이 편안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무위사상은 처음에 도가의 사상이었으나 후에 유가에서도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고차적인 자연행위, 완성적 행위라고 인식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수신(修身)이 가장 앞에 있는 것은 각 의미의 크고 작음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제가치국평천하(齊家治國平天下)의 근본이 내 한 몸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윗물이 아무리 맑아도 바닥에 오염된 침전물이 깔려있다면 그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수 없듯이,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다스린다 하더라도 백성이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면 결코 평화롭다고 할수 없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집안일에 아무리 힘을 쓴다고 해도 자식은 효도를 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면 그 가정은 제가(齊家), 화목함이 이루어 졌다고 할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같이 도리를 다할 때 제가(齊家)가 이루어 지는 것이며, 백성과 임금이 서로 각자의 도리를 다할때, 비로소 그 나라는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나아가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수 있는 나라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은 자식으로서 부모는 부모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修身), 학생으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修身), 회사원으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修身), 가정주부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修身), 정치인으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면(修身),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가 저절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며, 고로 수신(修身)을 이루는 것이 곧 평천하(平天下)를 이루는 일과 같다는 뜻이다.
중국의 고전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있다. 사서(四書)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말하고,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그리고 역경(易經; 周易)을 말한다.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어린아이가 학문에 처음 입문하면 맨 먼저 배우는 것이 천자문(千字文)이고, 다음이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이다. 여기까지를 기초과정이라고 한다면 본격적인 학문에 드는 첫 단계가 대학(大學)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대학(大學)의 첫 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사람은 원래 밝은 덕(明德)을 타고 태어나는데 살다보니 욕심이 가려 밝은 덕(德)에 때가 묻고 혼탁해지므로 본래의 밝은 덕(德)을 갈고 닦아 더욱 밝게 만드는 것이 대학(大學)의 첫번째 목표이고(在明明德), 밝은 덕(德)을 잘 밝혀서 새로운 사람이 됐으면 세상 사람들 또한 새롭게 해 줘야 하고(在親民), 저울추가 오락가락하면 무게를 잴 수가 없듯이 사람 또한 경지에 오르면 그칠 줄 알아야 한다(在止於至善).
이것을 대학(大學)의 삼강령(三鋼領)이라고 한다. 삼강령을 이루기 위해 여덟조목(八條目)이 있는데, 사물에 직접 부딪치는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아는 치지(致知), 뜻을 세우는데 온 정성을 바치는 성의(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는 정심(正心), 자신을 닦는 수신(修身), 집안을 엄하게 단속하는 제가(齊家),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治國), 마침내 천하를 공평하고 편하게 한다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게 된다.
이 팔조목(八條目) 가운데 끝의 네 조목(四條目)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따로 떼어 남자의 처신술로 인용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는 수신(修身)이라 하겠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른다는 우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도 나오듯이 주변 상황이 어떻게 변하여도 자기 자신의 중심만 확고하다면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나’를 깨끗이 못했기 때문에 가족이 부정과 비리에 쉽게 물들고 결국은 나라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유학(儒學)의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인데 모두 여덟개로 되어 있어 대학(大學)의 팔조목(八條目)이라고 한다.
대학(大學)은 이 팔조목을 해설한 책이다. 또 대학(大學)은 덕에 관한 책이지 정치서적이 아니어서 팔조목은 집안을 다스리고 천하를 지배하는 내용이 아니라 덕을 어떻게 닦을 것이며 천하에 어떻게 덕을 펼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 대학(大學)의 8조목(八條目)
⚪ 격물(格物) : 사물의 바탕에 대해 궁구하고 자신의 주관을 가짐.
⚪ 치지(致知) : 그리하여 그 앎을 투철히 함.
⚪ 성의(誠意) : 명료하고 투철해진 앎을 통해 그 뜻을 성실하게 함.
⚪ 정심(正心) : 성실한 뜻을 통해 마음을 바르게 함.
⚪ 수신(修身) : 마음이 바루어져야 몸이 바루어짐.
⚪ 제가(齊家) : 몸과 마음이 선명해지면 집안이 바로 잡힘.
⚪ 치국(治國) : 자신이 닦은 덕을 나라와 나누어야 함.
⚪ 평천하(平天下) : 나라를 떠나 명덕(明德)을 천하에 밝힘. 여기서 평(平)은 평정의 뜻이 아니라 평화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예로부터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의 불을 밝혀주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나라를 다스렸다.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려 할 경우는 먼저 자신의 씨족집단(氏族集團)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자신의 씨족집단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할 경우는 먼저 자신의 인격을 닦았다.
개인적 삶에 충실한 사람들 말고 소위 정치적 소명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잘 저지르는 실수는 자기 단속, 집안 단속의 실패이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적, 역사적 소명의식에 불타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불의(不義)와 잘못을 해소하고 타파하기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자기 자신을 자주 치외법권 지역에 두곤 한다.
그러나 대학(大學)은 말한다. 커다란 다스림은 사실 작은 마음의 보살핌에서 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자신의 양심의 불을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어 그들도 같은 양심의 불을 지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작은 행동, 즉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행위와 생각을 맑고 깨끗하게 닦는 데서 출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이 점층적 논리전개는 이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그런 이유로 오래도록 동양정치의 주요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가(齊家)를 흔히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다고 풀이한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 가(家)를 요즈음의 핵가족화된 가족 정도로 이해하고 만다.
하지만 고대의 가(家)는 일종의 씨족집단을 뜻한다. 따라서 그 숫자가 몇백명은 된다. 즉 대학(大學)의 제가(齊家)란 바로 수백명 씨족집단의 욕구와 갈등을 해소해 나갈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언행의 합리성, 즉 언행일치에 있다. 말과 행동의 일치는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일 때만 가능하다. 해서 수신(修身)의 필요조건은 마음을 올바르게 다잡는 것이다.
한편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이중 격물(格物)에서 정심(正心)까지가 빠져 있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후에 해당하는 ‘몸이 다스려지면 집이 다스려지고, 집이 다스려지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지면 천하가 다스려진다(身爲而家爲, 家爲而國爲, 國爲而天下爲)’라는 말이 나오는데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말인 걸로 보아 전국시대(戰國時代) 당시에는 교양인의 상식이 아니었나 보여 진다.
대학(大學)이건 여씨춘추(呂氏春秋)건 다같이 단계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고, 초(楚)나라 임금이 첨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단계를 무시한 임금의 질문이 불쾌한 첨자가 퉁명스레 “나는 내 몸을 다스리는 방법밖에 모르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들어본 일이 없소”라고 내뱉았을 만큼(여씨춘추) 반드시 순서에 입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사물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개념이 정립이 안된 사람이 집안을 다스리려하면 불화가 일어나는 법이며, 집안이 화목하지 않는데 그를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의 4가지 행실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들의 순서가 어떠하냐가 관건인데 대체로 작은 범위의 분야로부터 차례대로 성취시켜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기가 쉽다.
앞의 문장은 그러한 순서에 따라서 나열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을 그 순서대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4가지 행실 가운데 수신(修身)만은 일단 지켜야 한다고 보지만 그 외에의 경우, 성취시키는 것이 이상적일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모두 유가(儒家)의 목표이며 덕목일 뿐이다.
다른 항목들도 그러하지만 수신(修身)이나 제가(齊家)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가 심히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제가(齊家)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해 보면 과연 제가(齊家)의 한계는 어디일까?
단순히 결혼하는 것만으로 제가(齊家)를 성취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자녀를 낳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면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부부간에 금실이 좋아 서로 화합해야 (옛날이라면 부모도 효성스럽게 모셔야 되고 일가친척들 간에도 화목해야 한다) 제가(齊家)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한계가 대단히 고차원적이라고 한다면 수신(修身)하는 것만으로도 일생이 모자랄지 모른다. 언제 수신(修身)을 다 끝내고 제가(齊家)를 하며 제가(齊家)를 끝내고 치국(治國)을 하며 치국(治國)을 끝내고 평천하(平天下)할 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특히 현대에 이러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이어 치국(治國)하고 평천하(平天下)할 만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인생은 짧은데 할 일은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순서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도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차례대로 성취시켜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지만 평천하(平天下)를 위해 가정을 돌보지 못할 수도 있고 치국(治國)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치국(治國)을 위해 제가(齊家)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순서를 유감없이 성취시키면서 평천하(平天下) 아니 치국(治國)이라도 한 사람이 있었을까? 결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大學)은 중국 고대 철학서로서 4서(四書) 중의 하나이다. 몸을 닦아 천하를 다스리는 원칙을 기술했다.
원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는데, 송(宋)나라 주자(朱子)가 원문의 순서를 고쳐 전문을 경(經)과 전(傳)으로 정리하고, 또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지선(止至善)의 세강령(三綱領)과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八條目)의 체계를 세워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어, 그 해석이 유행했으나, 명(明) 나라 왕양명(王陽明)은 이에 대하여 원문에 복귀할 것을 주장, 대학고본방주(大學古本旁注)를 지었다.
대학(大學)은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며, 특지 조선은 과거시험의 중요한 과목으로 삼는 한편, 양반층에 널리 읽혀졌다.
중국에서 유교(儒敎)가 국교로 채택된 한대(漢代) 이래 오경(五經)이 기본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송대(宋代)에 주희(朱熹)가 당시 번성하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는 새로운 유학의 체계를 세우면서 예기(禮記)에서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두 편을 독립시켜 사서(四書) 중심의 체재를 확립하였다.
49편으로 구성된 예기(禮記) 중 제42편이 대학(大學)에 해당한다. 주희(朱熹)는 대학(大學)에 장구(章句)를 짓고 자세한 해설을 붙이는 한편, 착간(錯簡; 책장 또는 편장의 순서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았다.
그는 전체를 경(經)1장, 전(傳)10장으로 나누어 경(經)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제자 증자(曾子)가 기술한 것이고, 전(傳)은 증자의 생각을 그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대학(大學)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전통적으로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이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주희(朱熹)는 전(傳)을 증자(曾子)의 사상을 그의 문인이 기술한 것이다라 하였는데, 자사(子思)가 바로 증자(曾子)의 문인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도 대학(大學)은 자사(子思)의 저작이라는 견해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청대(淸代)에 오면 실증적, 고증적으로 검토, 비판하는 학풍이 일어나면서, 종래의 자사(子思) 저작설도 비판되어 진한(秦漢) 사이에 또는 전국시대 어느 사상가의 저작이라는 설, 자사(子思)가 지은 것이 틀림없다는 설 등이 있으나, 유가(儒家)의 학자가 지은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대학(大學)의 내용은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강령은 모든 이론의 으뜸이 되는 큰 줄거리라는 뜻을 지니며,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이에 해당되고, 팔조목(八條目)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대학(大學)은 예기(禮記) 가운데 한 편의 형태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이라 추측된다. 7세기경의 신라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는 예기(禮記)를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함께 습득할 것을 맹서하는 화랑(花郞)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372년(소수림왕 2)에 세운 태학(太學)을 관장한 사람이 오경박사(五經博士)였으니, 고구려에서도 일찍부터 예기(禮記)가 교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統一新羅) 때에도 국학(國學) 3과정과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의 과목으로 예기(禮記)는 중요시된 경전이었다.
고려 유교의 학풍은 경전 중심이어서 예종(睿宗) 때의 국학칠재(國學七齋)와 사학 등에서도 경연의 주요과목으로 예기(禮記)가 자주 강론되었다.
조선(朝鮮) 태조(太祖)는 대학(大學)의 체재를 제왕의 정치귀감으로 편찬한 송대(宋代)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유창(劉敞)으로 하여금 진강하게 하였다. 그 뒤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어전에서 강의하는 전통이 마련되었다.
주희(朱熹)가 독립시킨 대학(大學)은 1419년(세종 1) 성리대전(性理大全), 사서오경대전(四書五經大全)이 명(明)나라로부터 수입될 때 함께 들어왔다.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대한 최초의 비판은 이언적(李彦迪)에서 비롯된다. 그는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에서 주희(朱熹)의 일경십전(一經十傳)을 일경구전(一經九傳)으로 산정하면서 편차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주자학(朱子學)이 관학(官學)으로 정립되고 성현의 편언척구(片言隻句)가 신성시되던 조선중기에는 주희(朱熹)의 체계를 긍정한 바탕에서 나름의 해석을 모색하는 데 그쳤다.
박세당(朴世堂)은 대학사변록(大學思辨錄)에서 철저한 고증에 의해 대학(大學)이 복원되어야 하며, 주희(朱熹)가 가한 해석이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고 고답적(高踏的)이라 비판하면서, 구체적 실천의 관점을 강조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은 정조(正祖)와의 문답을 정리한 대학강의(大學講義), 그리고 고본대학(古本大學)에 입각해 대학(大學) 본래의 정신을 탐색한 대학공의(大學公議)를 저술해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만으로도 강령이 될 수 있으며 격물(格物), 치지(致知)는 팔조목(八條目)에 들 수 없다 하여, 격물(格物), 치지(致知)에 입각한 성리학적(性理學的) 사유의 재검토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예기(禮記)는 이미 유포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 유입과 전파 경로는 알 수 없다.
1045년(정종 11) 왕이 당(唐)나라의 공영달(孔穎達)이 찬한 신간예기정의(新刊禮記正義) 한 질을 어서각(御書閣)에 두고 나머지는 문신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가 처음 반입된 것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9년(1370) 명(明)나라에서 대통력(大統曆), 육경(六經), 통감(通鑑)과 함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高麗史)에 있다.
1423년(세종 5) 대학(大學)을 포함한 사서오경(四書五經) 10부를 성균관(成均館), 오부학당(五部學堂)에 분급하였고, 1435년 각 도의 수령에게 명하여 그것을 향교(鄕校)에 비치하라고 하였다. 개인이 자비로 갖추고자 할 때는 종이를 보내면 주자소(鑄字所)에서 찍어주게 하였다.
15세기 말 함경도(咸鏡道), 평안도(平安道), 제주도(濟州道)에까지 대학(大學)이 보급되었다. 선조(宣祖) 때부터 진행된 언해사업(諺解事業)은 1576년(선조 9) 이이(李珥)가 왕명(王命)을 받아 13년만에 완성, 간행하여 도산서원(陶山書院)에 하사되었으며, 1605년에 재반포 되어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다음은 대학장구(大學章句) 주희(朱熹)의 내용이다.
주희(朱熹)의 대학(大學) 해석은 리(理)와 기(氣), 성(性)과 심(心), 체(體)와 용(用)의 이원론적(二元論的) 틀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대학(大學)의 첫 문단(그가 경1장으로 칭한 부분)을 대학(大學)의 전체 구조를 밝혀주는 핵심으로 파악했다.
이에 따라 전체 내용을 3강령(明明德, 新民, 止於至善)과 8조목(致知, 格物,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형식으로 이해하며, 이런 맥락속에 고본대학(古本大學)의 전체를 재배열, 교정, 보완하는 방식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완성했다.
명명덕(明明德)을 개인적 수양의 완결로, 신민(新民)을 사회적 실천으로,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대학(大學)의 궁극적 이상으로 본 주희(朱熹)는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의 양 강령에 8조목(八條目)을 분할, 배치하여, 8조목(八條目)을 3강령(三綱領)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실천의 밑그림으로 이해했다.
주희(朱熹)에 있어 수신(修身; 明明德)의 차원으로 부터 치인(治人; 新民)에 이르는 실천과 참여의 이론은 앞서 언급한 이원론적 틀에 근간하고 있다. 이에 따르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理(리)나 性(성)등의 본질적, 실체적인 것에 대한 주체의 각성이란 계기이다.
여기에서는 사대부(士大夫; 지식인)가 수신(修身)의 과정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하늘로부터 품수(稟受) 받은 본연(明德)의 理(리)나 性(성)을 통찰한 후 타자들을 교화(去其舊染之汚)시킨다는, 수신(修身)으로부터 치인(治人)으로의 순차성(循次性; 本-末)과 연속성,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인 성격이 부각된다.
물론 주희(朱熹)의 수양과 실천의 이론에 있어 근본에 놓여 있는 격물(格物)의 개념이란, 物(물)이 지시하듯,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의 탐색과 실천, (경전에 의한 학습과) 축적의 과정을 통한다는 점에서, 불교와는 날카롭게 구분되는 인간관계의 그물망 안에서의 자기실현으로서의 성인의 길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당연지리(所當然之理), 또는 소이연지리(所以然之理), 즉 이미 주어진 선험적(先驗的)인 실체와 같은 것으로 상정된 理(리)나 性(성)등의 개념은 항상적으로 주지적인 수신(修身)의 과정(窮理/格物致知)을 선결적으로 요구하는데, 이는 어떤 사회가 안정화되고 질서화 된 경우에 있어서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제시될 사회적 상태를 근거로 현실적 변화나 새로움의 출현을 기질의 차원인 것으로, 즉 교정해야 할 것으로 파악하고, (기존의 세계에 대한 질서감각일 수 있는 理를 기준으로) 환원시키는 정적주의적(靜寂主意的) 요소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판단과 행위의 근거란 이미 확정되어 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 경문(經文)
경문(經文)은 대학(大學)의 총론으로 주희(朱熹)가 본편(本篇)을 경문(經文)이라 하고 나머지 편을 전문(全文)이라 이름 지었으며, 공자(孔子)의 말씀을 증자(曾子)가 기술했다고 한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新)民, 在止於至善.
대학(大學)의 도(道)는 밝은 덕(德)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善)에 머무르는데 있다.
知之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머무를 곳을 안 뒤에야 정함이 있고, 정해진 뒤에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할 바와 나중에 할 바를 알면 곧 도에 가까운 것이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나라를 다스렸고,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집안을 바로잡았고,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자기의 집안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몸을 닦았고, 자기의 몸을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마음을 바로 하였고,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 在格物.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뜻을 성실히 하였고, 자기의 뜻을 성실히 하려는 사람은 먼저 앎을 이르게 하였고, 앎에 이르게 되는 것은 사물을 구명(究明)함에 있다.
物格而后, 知至,
知至而后, 意誠,
意誠而后, 心正,
사물을 구명한 뒤에 앎에 이르고, 앎에 이른 뒤에야 뜻이 진실하게 되고, 뜻이 진실하게 된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心正而后, 身修,
身修而后, 家齊,
家齊而后, 國治,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야 집안이 바로 잡히고, 집안이 바로 잡힌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國治而后, 天下平.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몸을 닦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았다.
其本, 亂而末治者, 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그 근본이 문란한데도 말단이 잘 다스려지는 일은 없으며, 두터이 할 곳에 엷게 하며, 엷게 할 곳에 두터히 함은 있지 아니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무식한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고 못생긴 얼굴을 탓하는 사람같이 무능하고 못난 사람은 없다.
비록 생활이 빈곤하다 하여 마음까지 빈곤한 것이 아니며, 배움이 부족하여 무식하다고 양심마저 무식한 것이 아니요 얼굴이 밉다고 생각하는 마음씨까지 미운 것이 아니다.
얼굴이 예쁘고 미모가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방자함이 스며들지만 얼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며 산다.
가난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돈을 주어도 돈보다 귀한 보화를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나 가난한 사람은 조그마한 도움에도 감격을 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진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은 음식의 맛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밥 한 숟갈이 입에 들어가는 그 자체가 바로 생명의 환희와 기쁨이 되는 것이다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은 천하에 감로주(甘露酒)로서 모래알로 황금을 맛보는 것과 같으며 자갈로 옥을 만드는 묘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이 배운 사람은 유식함을 뽐내며 거만하기 쉬워 자기의 분수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으나 무식한 사람은 자기의 무식을 부끄러이 여기여 언제나 낮은 자세로 임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우러러 보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배움이 많다고 잘난 것이 아니요 똑똑한 것이 아니다 비록 신체에 장애가 있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얼마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으며, 또한 얼마나 인간답게 삶을 살았느냐, 그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충실하며 인간답게 삶을 살아간 사람이 진정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생활이 괴롭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괴로워지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불행해지고 슬프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관이요 도덕관이며 삶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하고 냉철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렇게 슬프고 괴롭고 불행하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며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려면 스스로 자신을 지배할 줄 알아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사람은 오로지 자신을 지배 할 줄 알아야 남을 지배 할 수 있으며 자신을 지배하려면 쉽게 흥분하지 말고 침착한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즉 병이 들면 조용히 누워서 안정을 취하듯 솟아오르는 흥분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바로 자신을 지배한 것이다. 자신의 가는 길이 험하다고 포기하면 한발자국도 옮기지를 못한다.
또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평생을 가도 행복 할 수가 없다 행복이라는 것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나에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보는 어려운 것을 쉽게 생각해서 실패하고 현명한 사람은 쉬운 것을 어렵게 생각해서 실패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어리석은 듯이 보이면서 속내는 현명해야 성공하며 나를 지배하고 남을 지배하는 것이다.
내가 초라하고 내가 빈곤하다 생각하기 전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한번쯤 생각하여, 나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 생활인지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모두가 만족한 행복이라는 것은 없다. 보이지 않는 불행은 누구나 있는 것이며, 오히려 가진 자와 풍요로운 자가 불행은 더욱 많다는 것을 생각하고, 세상에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위안을 가져야 한다.
어느 날 토끼들이 모여 세상을 비관하는데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나도 약한 존재다. 그러기에 모든 동물들이 우리보다 강자이기에 날마다 우리를 공격하니 그들의 손에 죽기 전에 차라리 우리 모두 한꺼번에 물에 빠져 죽자고 의결을 본다.
그래서 모두 강가에 죽으러 가는데 마침 강가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던 개구리들이 혼비백산하여 강물에 뛰어들어 몸을 숨기니, 풀밭에 있던 벌레들이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강물에 물고기들마저 덩달아 비상이 걸려 쏜살같이 도망친다.
이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토끼 한 마리가 풀벌레와 물고기는 물론이고 개구리를 가리키며 외친다.
여러분!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약한 동물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동물들이 우리보다 더욱 무서움을 타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같은 강자가 세상을 버린다면 어디 살아남을 짐승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모두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 있다.
그렇다 토끼들이 자기보다 못한 풀벌레들을 생각 못하고 자살하려 했던 것은 자신들이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내듯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고통과 불행은 나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음을 평화롭게 가지고 어려움이나 고통같은 것들을 즐겁게 맞아드려야 하며 즐겁게 맞아드리려는 마음들이 바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을 현명하게 만들며 현명해 진다는 것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기에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 수신제가(修身齊家)
자신을 수양해서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
'대학(大學)'이란 책에 "자신을 닦고(修身)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齊家) 자기 나라를 잘 다스리고(治國) 마침내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平天下)"라는 구절이 있다.
'대학'의 줄거리는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으로 돼 있다.
삼강령(三綱領)은 '세 가지 큰 줄거리'라는 뜻으로, 첫째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큰 덕(德)을 밝히는 일(明明德), 둘째 백성들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일(新民, 일설에는 親民), 셋째 지극히 좋은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止於至善)이다.
팔조목(八條目)은 여덟 가지 실천 항목인데, 수신(修身) 이전의 단계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일(正心)'이 있고, 그 앞 단계로는 '마음의 작용인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일(誠意)'이 있고, 그 앞 단계로는 '자신의 앎을 확실히 하는 일(致知)'이 있고, 그 앞 단계로는 '사물의 이치를 캐는 일(格物)'이 있다.
'자기 몸을 닦는다'는 말은 요즈음 말로 하면 '자신을 잘 관리해서 좋은 곳으로 발전해 나가는 일'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부터 '내 몸을 잘 닦아야지'라고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앞 단계인 마음을 잘 다스리고 통제해야 한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통제하려면 사물의 이치를 잘 밝혀서 자신의 식견을 올바르게 가져야 한다.
옛날의 공부는 크게 보면, 수신 제가하는 공부였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수신 제가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단지 지식만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의 도덕적 수준은 날로 떨어져 세상이 점점 더 어지러워진다.
단적인 예로 대선주자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옛날의 대선주자들도 완전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지금 대선주자들은 옛날 주자들보다 훨씬 못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내에서 경선할 적에 수신 제가에 관한 사항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뽑는 당내 경선 후보 가운데는 이낙연 후보나 정세균 후보가 이재명 후보보다 수신 제가 면에서 월등하게 낫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낙연 후보는 지극한 효자라고 한다. 정세균 후보는 약속을 잘 지키고, 남을 잘 배려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제일 많은 이재명 후보를 대통령후보로 뽑았다.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후보는 차치하고 정상적인 보통 사람의 자격도 안 된다.
형제간에 불화하고 자식들은 모두 범법자 수준이 문제가 있고 부인은 공사의 구분이 전혀 안 돼 공금이나 공물(公物)을 자기 개인 집 물건 쓰듯이 마음대로 썼다. 공무원을 자기 집 하인 부리듯 부렸다.
윤석열 후보도 배우자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만약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이재명씨가 아니고 이낙연씨나 정세균씨를 후보로 내놓았더라면 쉽게 당선됐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민들 모두가 수신 제가는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인류가 계속 생존하려면 인권이나 복지만으로는 안 되고 수신 제가가 돼야 한다. 마치 차를 운전할 때 운전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교통법규 준수나 운전할 때의 매너가 꼭 필요한 것과 같다.
수신 제가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일이 아니고, 결국은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 修(닦을 수)는 ❶형성문자로 俢(수)는 고자(古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攸(유, 수)와 사람의 몸이나 사물을 털고 정돈한다(彡; 터럭삼) 하여 닦다를 뜻하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攸(유)는 사람이 내를 가다, 시내의 흐름, 길다의 뜻이다. 터럭삼(彡; 무늬, 빛깔, 머리, 꾸미다)部는 장식하다, 정돈하는 일, 사람의 몸이나 사물을 정돈하다,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修자는 '닦다'나 '연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修자는 攸(바 유)자와 彡(터럭 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攸자는 몽둥이로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修자는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그린 攸자에 彡자를 더한 것으로 여기에서 彡자는 땀이나 피를 흘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修자는 누군가를 피가 나도록 때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修자는 본래 누군가를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였다. 그러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이나 품행을 '기르다'라는 뜻이 파생되면서 지금은 '닦다'나 '연구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修(수)는 ①닦다, 익히다, 연구하다 ②꾸미다, 엮어 만들다 ③고치다, 손질하다 ④다스리다, 정리하다 ⑤갖추다, 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⑥도덕, 품행을 기르다 ⑦길다, 높다 ⑧뛰어나다 ⑨행하다, 거행하다 ⑩뛰어난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배울 학(學), 갈 연(硏), 익힐 련(練), 익힐 습(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导), 끌 인(引),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새로 고쳐서 정돈함을 수정(修整),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서 고침을 수정(修正),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며서 보다 아름답고 정연하게 하는 일을 수사(修辭),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교제를 맺음을 수교(修交),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을 수신(修身), 고장난 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을 수리(修理), 학문이나 기예를 닦음을 수행(修行),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학업을 닦음을 수학(修學), 낡거나 허름한 것을 손보아 고침을 수선(修繕), 학업이나 실무 따위를 배워 익힘을 수습(修習), 서적 등의 잘못을 고침을 수정(修訂), 용언에 딸리어 그 뜻을 좀더 자세히 설명함을 수식(修飾), 심신을 단련하여 품성이나 지식이나 도덕을 닦음을 수양(修養), 일정한 기간에 정해진 학과를 다 배워서 마침을 수료(修了), 마음과 몸을 잘 닦아서 단련함을 수련(修鍊), 자신의 몸을 닦음을 수기(修己), 사이 좋게 지냄을 수호(修好),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음을 연수(硏修), 학문의 과정을 순서를 밟아서 닦음을 이수(履修), 잘못된 곳을 고치어 수정함을 개수(改修), 반드시 학습하여야 함을 필수(必修), 한 번 배웠던 과정을 다시 배우는 일을 재수(再修), 낡은 것을 보충하여 수선함을 보수(補修), 책의 저술 또는 편찬을 지도 감독함 또는 그런 사람을 감수(監修),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침을 중수(重修), 자기의 몸을 닦고 집안 일을 잘 다스림을 일컫는 말을 수신제가(修身齊家), 내 몸을 닦아 남을 교화함을 일컫는 말을 수기치인(修己治人), 선악의 인을 닦아서 고락의 종말을 느낌다는 말을 수인감과(修因感果), 얼굴을 벽에 대고 도를 닦는 것을 이르는 말을 면벽수도(面壁修道), 학문을 전심으로 닦음으로 공부할 때는 물론 쉴 때에도 학문을 닦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둔다는 말을 장수유식(藏修遊息) 등에 쓰인다.
▶️ 身(몸 신, 나라 이름 건)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기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몸을 뜻한다. 형성문자로 보면 人(인)과 申(신)의 합자(合字)인데 人(인)은 뜻을 나타내며 부수가 되고 申(신)이 발음을 담당하는 글자로 본 것이다. 부수(部首)로서는 몸에 관계가 있는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身자는 ‘몸’이나 ‘신체’를 뜻하는 글자이다. 身자의 갑골문을 보면 배가 볼록한 임신한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身자의 본래 의미는 ‘임신하다’였다. 身자에 아직도 ‘(아이를)배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를 그린 身자는 후에 ‘몸의 상태’나 ‘몸’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여자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는 의미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身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관련된 글자는 없다. 그래서 身(신, 건)은 ①몸, 신체 ②줄기,주된 부분 ③나, 1인칭 대명사 ④자기, 자신 ⑤출신, 신분 ⑥몸소, 친히 ⑦나이 ⑧아이를 배다 ⑨체험하다 그리고 ⓐ나라의 이름(건) ⓑ건독(身毒; 인도의 옛이름)(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물건 물(物), 고기 육(肉),스스로 자(自), 몸 궁(躬), 몸 구(軀),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또는 계급을 신분(身分), 일신 상에 관한 일을 신상(身上), 일신 상의 처지와 형편을 신세(身世), 몸과 목숨을 신명(身命), 몸에 생긴 병을 신병(身病),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건강 상태의 빛을 신수(身手), 몸과 몸의 주위를 신변(身邊), 사람의 키를 신장(身長), 사람의 몸을 신체(身體), 제 몸으로 딴 말에 붙어서 딴 어떤 것도 아니고 그 스스로임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을 자신(自身), 어떠한 행위나 현상에 상응하는 것이거나 그의 대가임을 나타내는 말을 대신(代身), 무슨 지방이나 학교나 직업 등으로부터 나온 신분을 출신(出身), 죽은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을 시신(屍身), 신명을 바쳐 일에 진력함을 헌신(獻身),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몸가짐이나 행동을 처신(處身),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을 수신(修身), 몸을 움직임을 운신(運身), 몸을 불사르는 것을 분신(焚身), 모양을 바꾼 몸 또는 몸의 모양을 바꿈을 변신(變身),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을 입신(立身), 온몸으로 열정을 쏟거나 정신을 집중하는 상태 또는 그때의 온몸을 혼신(渾身), 체면이나 명망을 망침을 만신(亡身), 집이 가난하여 종을 두지 못하고 몸소 종의 일까지 함을 신겸노복(身兼奴僕), 홀로 있는 몸이 아니고 세 식구라는 신겸처자(身兼妻子), 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신외무물(身外無物),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를 신체발부(身體髮膚),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몸소 맡아함을 신친당지(身親當之),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등에 쓰인다.
▶️ 齊(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는 ❶상형문자로 斉(제)의 본자(本字), 䶒(재)와 동자(同字)이고, 齐(제)는 간자(簡字), 亝(제)는 고자(古字)이다. 곡물의 이삭이 가지런히 돋은 모양을 본떴다. ❷상형문자로 齊자는 ‘가지런하다’나 ‘단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齊자는 亠(돼지해머리 두)자와 刀(칼 도)자와 같은 다양한 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의 齊자는 매우 단순했었다. 齊자의 갑골문을 보면 곡식의 이삭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곡식이 가지런히 자라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후에 글자의 획이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갑골문에서는 곡식을 가지런히 그려 ‘가지런하다’나 ‘단정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齊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대부분이 가지런함과 관계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齊(제)는 중국 춘추 시대에 산둥성(山東省) 일대에 있던 나라의 뜻으로 가지런할 제의 경우 ①가지런하다(제) ②단정하다(제) ③질서 정연하다(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다)(제) ④재빠르다, 민첩하다(제) ⑤오르다(제) ⑥같다, 동등하다(제) ⑦좋다, 순탄하다(제) ⑧다스리다(제) ⑨경계하다(제) ⑩지혜롭다(제) ⑪분별하다(제) ⑫이루다, 성취하다(제) ⑬섞다, 배합하다(제) ⑭약제(藥劑)(제) ⑮배꼽(제) ⑯한계(限界)(제) ⑰삼가는 모양(제) ⑱제나라(제) ⑲가운데(제) ⑳일제히, 다 같이(제) 그리고 재계할 재의 경우 ⓐ재계하다(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다)(재) ⓑ공손하다(재) ⓒ엄숙하다(재)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재) 그리고 옷자락 자의 경우 ㉠옷자락(자) ㉡상복(上服: 윗옷. 위에 입는 옷)(자) ㉢제사에 쓰이는 곡식(자) ㉣꿰매다(자) ㉤예리하다(자) 그리고 자를 전의 경우 ㊀자르다(전) ㊁깎다(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집안을 바로 다스리는 일을 제가(齊家),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소리를 질러 부름을 제창(齊唱), 어떤 행동이나 동작을 일제히 함을 제거(齊擧),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모두 바침을 제납(齊納), 반열을 정돈하여 가지런히 함을 제반(齊班),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분개함을 제분(齊憤),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정성을 바침을 제성(齊誠),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큰 소리로 호소함을 제유(齊籲), 큰 일을 의논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앉음을 제좌(齊坐), 여럿이 일제히 떨쳐 일어남을 제진(齊振), 여럿이 한 자리에 모임을 제회(齊會), 한결같이 가지런함을 제균(齊均), 금전이나 물건 등을 균등하게 나누어 줌을 제급(齊給), 일제히 길을 떠남을 제발(齊發),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일제히 소리를 지름을 제성(齊聲), 마음을 한 가지로 함을 제심(齊心), 가지런히 열을 지음을 제열(齊列),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죄를 일제히 꾸짖음을 제성토죄(齊聲討罪), 남편과 한 몸이라는 뜻으로 아내를 이르는 제체(齊體), 음식을 눈썹 있는 데까지 받들어 올린다는 제미(齊眉) 등에 쓰인다.
▶️ 家(집 가, 여자 고)는 ❶회의문자로 宊(가)와 동자(同字)이고, 姑(시어미 고)와 통한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안에서 돼지(豕)를 기른다는 뜻을 합(合)하여 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家자는 ‘집’이나 ‘가족’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家자는 宀(집 면)자와 豕(돼지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예로부터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은 집안의 귀중한 재산이었다. 그러니 도둑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곁에 두는 것이 가장 안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돼지우리를 반지하에 두고 그 위로는 사람이 함께 사는 특이한 구조의 집을 지었었다.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은 집안에 돼지를 기르고 있다. 家자는 그러한 가옥의 형태가 반영된 글자이다. 그래서 家(가)는 (1)일부 한자어 명사(名詞) 다음에 붙어 그 방면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나 또는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2)어떤 일에 능하거나 또는 지식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3)어떤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4)성 다음에 붙어, 그 집안을 나타내는 말 (5)호적상, 한 가(家)로 등록된 친족의 단체 등의 뜻으로 ①집 ②자기(自己) 집 ③가족(家族) ④집안 ⑤문벌(門閥) ⑥지체(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⑦조정 ⑧도성(都城) ⑨전문가 ⑩정통한 사람 ⑪용한이 ⑫학자(學者) ⑬학파(學派) ⑭남편(男便) ⑮아내 ⑯마나님(나이가 많은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 ⑰살림살이 ⑱집을 장만하여 살다 그리고 ⓐ여자(女子)(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궁(宮) 등이 있다. 용례로는 부부를 기초로 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을 가족(家族), 한 가족으로서의 집안을 가정(家庭), 집안 살림에 관한 일을 가사(家事), 집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음을 가출(家出),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집안의 보물을 가보(家寶), 집안 식구를 가구(家口), 남에게 대하여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친(家親), 남에게 자기 아들을 이르는 말을 가아(家兒),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의 상태를 가계(家計), 한 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가옥(家屋), 집안이나 문중을 가문(家門), 집안의 어른을 가장(家長), 집안 어른이 그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을 가훈(家訓),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에게 길들여져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가축(家畜), 집안 살림에 관한 일을 가사(家事), 한 집안의 대대로 이어 온 계통을 가계(家系),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빈한한 집안이라서 아무것도 없고 네 벽만 서 있다는 가도벽립(家徒壁立), 타국이나 타향에 살 때는 고향 가족의 편지가 더없이 반갑고 그 소식의 값이 황금 만 냥보다 더 소중하다는 가서만금(家書萬金) 등에 쓰인다.
▶️ 治(다스릴 치, 강 이름 이)는 ❶형성문자로 乿(치), 乨(치)는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台(태, 이, 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물(水)의 넘침에 의한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다스리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治자는 ‘다스리다’나 ‘질서가 잡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治자는 水(물 수)자와 台(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台자는 수저를 입에 가져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台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먹이다’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농경사회에서는 강이나 하천의 물을 잘 다스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治자는 물을 다스려 백성들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治(치, 이)는 ①다스리다 ②다스려지다, 질서가 바로 잡히다 ③병을 고치다 ④익히다, 배우다 ⑤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비교하다 ⑥돕다 ⑦성(盛)해지다, 왕성(旺盛)해지다 ⑧도읍(都邑)하다 ⑨수양(修養)하다 ⑩구걸(求乞)하다 ⑪공(功), 공적(功績) ⑫도읍(都邑) ⑬정사(政事), 정치(政治) ⑭정도(正道), 사람의 도리(道理) ⑮조서(調書: 조사한 사실을 적은 문서) ⑯말, 언사(言辭) ⑰감영(監營) 그리고 ⓐ강(江)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厘), 다스릴 발(撥), 다스릴 섭(攝), 다스릴 리(理), 다스릴 할(轄), 다스릴 리(釐), 지날 경(經),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지러울 란(亂)이다. 용례로는 나라를 다스림을 치국(治國), 병이나 상처를 다스려서 낫게 함을 치료(治療),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을 치유(治癒),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림을 치안(治安), 하천이나 호수 등을 잘 다스려 범람을 막고 관개용 물의 편리를 꾀함을 치수(治水), 잘 매만져서 꾸밈을 치장(治粧), 백성을 다스림 또는 그 사람을 치인(治人), 혼란한 세상을 다스림을 치란(治亂), 병의 열기를 다스림을 치열(治熱), 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치자(治者), 잘 다스린 공적 또는 정치상의 업적을 치적(治績), 국가의 주권자가 국가 권력을 행사하여 그 영토와 국민을 다스리는 일을 정치(政治), 도맡아 다스림을 통치(統治),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다스림을 자치(自治), 물리쳐서 아주 없애버림을 퇴치(退治), 나라의 관리가 맡아 다스리는 정치를 관치(官治), 법률에 의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정치를 법치(法治), 나라 안의 정치를 내치(內治), 병을 고침을 요치(療治),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병을 완전히 고침을 완치(完治), 산과 물을 다스려 재해를 막는 일을 치산치수(治山治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치국안민(治國安民), 실을 급히 풀려고 하면 오히려 엉킨다는 뜻으로 가지런히 하려고 하나 차근차근 하지 못하고 급히 해서 오히려 엉키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치사분지(治絲焚之), 애써 법을 정함이 없이 인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의상지치(衣裳之治), 백성의 사정을 잘 살펴서 정치를 잘함을 선치민정(善治民情), 까막눈인 사람들을 가르쳐 글 모르는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을 문맹퇴치(文盲退治), 내 몸을 닦아 남을 교화함을 수기치인(修己治人), 어떠한 약이 무슨 병에든지 다 보람이 있음을 백병통치(百病通治), 어떤 한 가지 약이 여러 가지 병에 다 효력이 있음을 만병통치(萬病通治) 등에 쓰인다.
▶️ 國(나라 국)은 ❶회의문자로 国(국)은 간자(簡字), 囗(국), 囶(국), 圀(국)은 고자(古字), 囲(국), 围(국)은 동자(同字)이다. 國(국)은 백성들(口)과 땅(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國(국)은 (1)어떤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국가(國家), 나라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나라, 국가(國家) ②서울, 도읍(都邑) ③고향(故鄕) ④고장, 지방(地方) ⑤세상(世上), 세계(世界) ⑥나라를 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 백성을 국민(國民), 나라의 법적인 호칭을 국가(國家),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나라의 안을 국내(國內), 나라의 군대를 국군(國軍),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자기 나라 밖의 딴 나라를 외국(外國),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국가의 수를 세는 단위를 개국(個國), 조상 적부터 살던 나라를 조국(祖國), 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순국(殉國),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나라의 급료를 받는 신하를 국록지신(國祿之臣),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힘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등에 쓰인다.
▶️ 平(평평할 평, 다스릴 편)은 ❶상형문자로 물 위에 뜬 물풀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수면이 고르고 평평(平平)하다는 뜻이다. ❷지사문자로 平자는 ‘평평하다’나 ‘고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平자는 干(방패 간)자와 八(여덟 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平자는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또 사물의 모습을 본뜬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平자는 악기 소리의 울림이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뜻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平자는 소리가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의미에서 고르거나 평평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후에 ‘안정되다’나 ‘화목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平(평, 편)은 (1)일정한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평범(平凡)한, 평평(平平)한의 뜻을 나타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평평하다, 바닥이 고르고 판판하다 ②고르다, 고르게 하다 ③정리되다, 가지런하게 되다 ④편안하다, 무사하다 ⑤평정하다 ⑥정하다, 제정하다 ⑦이루어지다 ⑧바르다 ⑨갖추어지다 ⑩사사로움이 없다 ⑪화목하다, 화친하다 ⑫쉽다, 손쉽다 ⑬표준(標準) ⑭들판, 평원(平原) ⑮산제(山祭: 산에 지내는 제사) ⑯보통(普通) 때, 평상시(平常時) ⑰보통, 보통의 수준 ⑱평성(平聲), 사성(四聲)의 하나 그리고 ⓐ다스리다, 관리하다(편) ⓑ나누다, 골고루 다스려지다(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평탄할 탄(坦), 편안할 녕(寧), 편안 강(康), 클 태(泰)이다. 용례로는 어떤 가정 밑에서 많은 수나 같은 종류의 양의 중간의 값을 갖는 수를 평균(平均), 평온하고 화목함을 평화(平和), 평상시를 평소(平素), 뛰어난 점이 없이 보통임을 평범(平凡), 평상시의 소식을 평신(平信), 차별이 없이 동등한 등급을 평등(平等),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지표면이 평평한 넓은 들을 평야(平野), 무사히 잘 있음을 평안(平安), 벼슬이 없는 일반민을 평민(平民), 평평한 표면을 평면(平面), 평탄한 들판 평야를 평원(平原), 난리를 평온하게 진정시킴을 평정(平定), 까다롭지 않고 쉬움을 평이(平易), 어느 한 쪽에 기울이지 않고 공정함을 공평(公平), 마음에 들거나 차지 않아 못마땅히 여김을 불평(不平), 균형이 잡혀 있는 일을 형평(衡平), 대지의 평면을 지평(地平),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을 화평(和平), 넓고 평평함을 편평(扁平),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평롱망촉(平隴望蜀),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마음을 평이담백(平易淡白), 엎드려 땅에 머리를 댄다는 뜻으로 공경하여 두려워하는 모습을 평신저두(平身低頭), 고요한 땅에 바람과 물결을 일으킨다는 평지풍파(平地風波), 마음을 평온하고 순화롭게 함을 평심서기(平心舒氣) 등에 쓰인다.
▶️ 天(하늘 천)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서 있는 모양(大)과 그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一)의 뜻을 합(合)한 글자로 하늘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天자는 ‘하늘’이나 ‘하느님’, ‘천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天자는 大(큰 대)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天자를 보면 大자 위로 동그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天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하늘’을 뜻했었지만 소전에서는 단순히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天(천)은 (1)하늘 (2)범 인도(印度)에서 모든 신을 통들어 이르는 말. 천지 만물을 주재 하는 사람, 곧 조물주(造物主)나 상제(上帝) 등 (3)인간세계보다 훨씬 나은 과보(果報)를 받는 좋은 곳. 곧 욕계친(欲界責), 색계친(色界天), 무색계천(無色界天) 등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늘 ②하느님 ③임금, 제왕(帝王), 천자(天子) ④자연(自然) ⑤천체(天體), 천체(天體)의 운행(運行) ⑥성질(性質), 타고난 천성(天性) ⑦운명(運命) ⑧의지(意志) ⑨아버지, 남편(男便) ⑩형벌(刑罰)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민(旻), 하늘 호(昊), 하늘 궁(穹),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지(地), 땅 곤(坤), 흙덩이 양(壤)이다. 용례로는 타고난 수명을 천수(天壽), 하늘과 땅 또는 온 세상이나 대단히 많음을 천지(天地), 타고난 수명 또는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상태를 천연(天然),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 곧 황제나 하느님의 아들을 천자(天子),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의 총칭을 천체(天體), 부자나 형제 사이의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천륜(天倫), 타고난 성품을 천성(天性),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천하(天下),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천문(天文), 하늘과 땅을 천양(天壤),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재주를 천재(天才), 하늘에 나타난 조짐을 천기(天氣), 하늘이 정한 운수를 천운(天運), 자연 현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천재(天災),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엄청난 차이를 천양지차(天壤之差),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 세상에 뛰어난 미인이라는 천하일색(天下一色) 등에 쓰인다.
▶️ 下(아래 하)는 ❶지사문자로 丅(하)는 고자(古字)이다. 밑의 것이 위의 것에 덮여 있는 모양이며, 上(상)에 대한 아래, 아래쪽, 낮은 쪽, 나중에 글자 모양을 꾸며 지금 글자체가 되었다. ❷지사문자로 下자는 ‘아래’나 ‘밑’, ‘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下자는 아래를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下자의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오목하게 아랫부분은 짧은 획으로 그려져 있었다. 윗부분의 오목한 형태는 넓은 대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래의 짧은 획은 땅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下자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하여 ‘아래’나 ‘밑’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금문에서 숫자 二(두 이)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소전에서는 아래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下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下(하)는 (1)아래. 밑 (2)품질(品質)이나 등급(等級)을 상(上)과 하(下), 또는 上, 中, 下로 나눌 때의 가장 아랫길(끝째). (3)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밑에서, ~아래서의 뜻으로, 그 명사가 조건이나 환경 따위로 됨. 나타냄. ~하에, ~하에서, ~하의 형으로 쓰임 등의 뜻으로 ①아래 ②밑(물체의 아래나 아래쪽) ③뒤, 끝 ④임금 ⑤귀인(貴人)의 거처(居處) ⑥아랫사람 ⑦천한 사람 ⑧하급(下級), 열등(劣等) ⑨조건(條件), 환경(環境) 등을 나타내는 말 ⑩내리다, 낮아지다 ⑪자기를 낮추다 ⑫못하다 ⑬없애다, 제거하다 ⑭물리치다 ⑮손대다, 착수하다 ⑯떨어지다 ⑰항복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낮을 저(低), 낮을 비(卑), 내릴 강(降), 항복할 항(降), 낮출 폄(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공중에서 아래쪽으로 내림을 하강(下降), 값이나 등급 따위가 떨어짐을 하락(下落), 어떤 사람의 도급 맡은 일을 다시 다른 사람이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 아래쪽 부분을 하부(下部),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낮은 자리를 하위(下位),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옴을 하교(下校), 한 달 가운데서 스무 하룻날부터 그믐날까지의 동안을 하순(下旬),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하오(下午), 차에서 내림을 하차(下車), 위에서 아래로 향함을 하향(下向), 보호를 받는 어떤 세력의 그늘을 산하(傘下),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치적이 나쁜 원을 아래 등급으로 깎아 내림을 폄하(貶下),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을 귀하(貴下), 끌어 내림이나 떨어뜨림을 인하(引下), 원서나 소송 따위를 받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각하(却下), 낮아짐이나 내려감 또는 품질 따위가 떨어짐을 저하(低下),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하석상대(下石上臺), 붓만 대면 문장이 된다는 하필성장(下筆成章),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뜻 등이 막히지 않고 위에 잘 통함을 하정상통(下情上通),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한다는 하우불이(下愚不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