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15)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주는 장학금은 사양합니다”
(대가 없는 장학금이라며 계속 사양하자 도서관서 일할 수 있는 학생 조교로 임명)
손봉호 교수가 1970년대 철학 박사 과정을 이수했던 네덜란드 자유대학교 캠퍼스의 과거(위)와 현재 모습.
네덜란드어로 강의 듣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들으려고 나는 늘 교수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인식론과 과학철학 담당 반 퍼슨(C. van Peursen) 교수는 내 노트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강의 내용을 제대로 적지 못하면 다시 반복해 주셔서 친구들이
“반 퍼슨 교수는 너만 위해 강의한다”고 놀렸다.
그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유명한 철학 교수였다.
어느 날 외국 학생 담당 직원이 불렀다.
돈이 없다는 것을 왜 자기에게는 알리지 않고 반 퍼슨 교수에게 말했느냐고 화를 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고
같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미국 친구 스투더가
반 퍼슨 교수에게 “손봉호가 돈이 없어 고생한다”고 말해 버린 것이다.
등록금은 면제됐지만, 생활비는 부족했으나 나는 아무에게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 직원은 그때부터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반 퍼슨 교수에게 말한 일도 없거니와 장학금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계속 사양하니까 그 직원은 마침내 “너처럼 교만한 학생 처음 봤다”고 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장학금을 사양하는 것은 교만해서가 아니라 열등의식 때문입니다.
나에게 장학금을 주려는 것은 내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 아닙니까.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장학금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했다.
얼마 후 철학부에서 나를 학생 조교로 임명한다고 통고했다.
‘손봉호는 자존심이 강해서 일을 시켜야 돈을 받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네덜란드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조교 일을 하겠느냐고 했더니 도서관을 위해서 철학도서 구매를 책임지라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발간되는 철학 학술지에 게재되는
신간 철학서의 서평을 읽고 구매 가치가 있는 책을 추천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 독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 된 철학서는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은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수락했다.
조교에도 급이 있었다.
학생 조교로 시작했는데 2년 후에는 연구조교,
다시 2년 후에는 그 나라에 독특한 ‘학술동조자’란 지위로 승급해서
학부생에게 강의도 하고 자비로 건강보험에 들 정도의 임금도 받았다.
1970년에는 거기서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이듬해 아들도 얻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할 때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33년간 교수와 총장직을 끝내고 은퇴했을 때 네덜란드 연금공단에서 편지가 왔다.
조교로 근무했을 때 세금을 납부했으므로 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납세액도 많지 않고 기간도 짧아서 액수는 많지 않으나 20여년간 연금을 받고 있다.
가난한 나라 국민의 자존심을 이용해 유학 생활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