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화백과 오해균 명장과 촌장과 야송 화백>
명장(名匠) 오해균(吳海均) 고희전(古稀展)
김철진(시인, 예술촌 촌장)
지난 11월 4일부터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에 있는
청송군립 '야송미술관(野松美術館)'에서 대한민국 목공 명장인
일정(一丁) 오해균(吳海均) 명장(名匠)의
고희전(古稀展)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다음달 3일까지 한 달간 열린다고 한다.
'야송미술관'은 관장으로 있는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畵伯)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야송 화백은 경북 봉화군에 있는 청량산 곳곳을 발 품으로 답사하여
1년여의 작업 끝에 1992년 가로 48m, 세로 6.7m나 되는
세계 최대의 수묵화인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를 그린
한국의 대표적인 수묵화가(水墨畵家)로
일정 명장과는 호형 호제하는 사이인데,
이번 전시회는 진정한 두 예술가(藝術家)의 우정(友情)과
예술혼(藝術魂)이 만들어 낸 매우 뜻깊은 전시회이다.
필자도 일정(一丁) 명장이나 야송(野松) 화백과는
교분(交分)이 있는 터라 당연히 전시회 개막식날 참석해야 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미리 들러 한참 전시를 마무리하는 작품들을 둘러보고
저녁에 식사와 술자리를 가진 다음 하룻밤을 묵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일정 명장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고희전 작품들을
그냥 혼자만 보고 감탄하며 지나치기에는
70 평생을 외곬으로 한 길만 걸어온 명장의 장인 정신에 대한 모독이며,
나아가 전시회를 몰라서 못 본다면 그분들에게는 죄를 짓는 것 같아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필자는 1999년 11월 20일 오해균 명장이 공주에서 공방을 열 때
초대받아 가서 세 번째 만나
'지순(至純)한 영혼의 고독을 불사르다
손끝에 신명이 지펴
창칼로 끌로 정으로
나무와 옥과 돌에
그 처절하도록 치열한 아픔을 갈아
새로운 영원을 창조하는 일정(一丁)'
이라고 읊었었다.
일정 오해균 명장은 참된 장인 정신을 지닌
이 시대의 마지막 장인(匠人)으로, 그는 진정 위대한 '장이'이다.
야송 화백은 도록(圖錄)에서
'그는 일생을 두고 집 한 칸 가져 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셋방으로 살아오며
아이들의 학비마저 제때에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중단 시켜야 했을 때
부모로서의 쓰린 심사를 목각으로 풀어 가야 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오해균 형은 아직까지도 단 한 점도
상품으로 내놓은 바 없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다.
장인 정신이 그의 일생을 통해 전신에 배어 있어
조선 시대 사람을 오늘에 다시 대하는 심정이다.
오해균 형은 작품에 손을 대었다 하면
작은 장신구일망정 10여 일은 걸리고
보통 보름간이나 한 달 정도 한 작품에 몰두하는데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불감(佛龕) 한 작품에
3년의 세월을 투자한 것이 될 성 싶다.
그야말로 세계 어느 예술가가 한 작품에 3년씩이나 투자할 수 있었던가.
그 치열한 작가 정신은 아름다움을 넘어 고귀하고도 성스럽다.'
라고 쓰고 있다.
오해균 명장의 작품은 어느 하나 감탄을 자아내지 않는 것이 없지만,
불감(佛龕)은 물론이고
지름이 8cm인 '칠구투공유환각주(七球透孔遊幻刻珠)'란 작품은
특히 많은 사람들이 탄복을 했다 한다.
이 작품은 한 개의 통나무 괴목을 사용하여
용운문, 당초문, 실구름, 심형무늬, 완자문, 새털구름, 점선구름을
일곱 개 구슬 표면에 하나하나 정밀하게 투각하여
큰 구슬 안에 작은 구슬을 만들고 그 안에 더 작은 구슬을 만들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7개의 구슬이 서로 따로따로 돌게 만든 것으로,
가히 신기(神技)가 아니고는 만들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2005년에는 열두 개의 구슬로 만들어진
지름 10cm의 '십이투공유환각주(十二透孔遊幻刻珠)'란 작품을 완성했으니,
이 세상 어느 누구가 그런 작품을 또 만들 수 있겠는가.
일정 명장의 신기(神技)에 그냥 입을 벌린 채 말을 잊었었다.
하룻밤을 묵고 미술관을 떠나오던 날
야송 화백은 영양에 볼일이 있어서 가고
오해균 명장과 점심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 중
오 명장이 하던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인간문화재 될 생각은 없어.
내가 못 배워서 그렇지 만일 내가 많이 배워 대학 교수쯤이나 되었다면
나도 작품은 안 하고 돈을 밝혔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자탄 비슷한 그 말 속에서 실력보다는 실력 외적인 것이 더 작용하는
예술계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학력이나 연줄이나 돈보다는 실력이 우선시되고 인정되는 그런 예술계,
가난 속에서도 치열한 정신으로 예술의 길을 가고 있는
예술가들이 대우받는 그런 세상을 기대해 본다.
|
첫댓글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리시고 싸움에 승리하신 모두가 명장 입니다
날씨도 차가워지는데 잘 지내시남요?
',,,,,,대학 교수쯤이나 되었다면 나도 작품은 안 하고 돈을 밝혔을지도 모르지.' ,,,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평소에도 가끔 났었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관운장만 명장이 아니네 하하. 名匠님들 존경합니다.
장비와 조자룡은?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