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려타곤(懶驢 坤) 36-5
'스쳐도 죽는다! 무조건 피해야 된다!'
자신을 공격하는 흑색(黑色)의 검이 엄청나게 무겁고 단단하다는 것을 부딪치는 순간 알아보게 된 오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연신 몸을 뒤로 내빼고 있었다. 황제를 죽이는 일은 물 건너 간 일이고, 지금은 눈앞의 고수(高手)를 피해 자금성을 도망칠 때였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게된 상태에서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일 하나 뿐이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도망치는군.'
소구는 숨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고 팔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한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런! 이놈이 빠른 게 아니라 내가 느려진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무거운 검을 들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머리 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소구는 갑자기 몸을 멈춰 세우고,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는 오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겨우 숨돌릴 여유를 가지게 된 오배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헉 헉, 너는 누구냐? 자금성에는 너와 같은 자가 없다."
대답은 황제에게서 들려왔다.
"그분은 나의 무공 사부시다! 너의 실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초절정의 고수시지!"
소년 황제는 약올리듯 그렇게 소리치며 소구의 옆에 서서 오배를 바라보았고 그순간--.
'딱!'
알현실에 모여 있던 모두는 놀란 눈으로 소구와 황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번 다시 내 제자라고 떠들지마! 나한테 배운 놈이 저런 놈 하나 못 이겨서 죽을 뻔하냐?!"
주먹으로 곁으로 다가온 황제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소구가 대뜸 내뱉은 말이었다.
"씨--, 그러는 사부는 왜 아직까지 저놈을 못 잡고 있어요?"
황제는 주먹만한 혹이 불룩 튀어나온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쳤다. 소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지. 왜 내가 아직까지 저 놈을 못 잡고 있을까 하고 무척 궁금했지."
오배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던 소구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내밀면서 말했다.
"잡고 있어라."
"사부?"
싸우는 와중에 검을 맡기는 비상식적인 일을 하는 소구의 모습에 현엽은 의아하게 소리치다 다음 순간 기겁을 해야했다.
그의 두 손에 천하에서 가장 무거운 극악검이 들려진 것이다.
'으 헉! 무-- 무겁다!'
비명도 나지 않는 상태에서 현엽은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면서 간신히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온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한 현엽은 뒤로 넘어지려는 몸을 간신히 추스리면서 단 한가지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너- 넘어지면 깔려 죽는다!'
현엽의 눈앞에서는 그가 그토록 미워하던 신하 오배가 검도 떨구고 엄청나게 두들겨 맞는 즐거운 광경이 연출되고 있지만, 소년은 그 광경을 감상할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너무나 무거운 검의 무게에 오직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는 단 한가지 일에 매달려야 했던 것이다.
온몸이 파랗고 붉은 멍이 가득 새겨진 상태로 기절한 오배의 가슴을 뒤진 소구는 가슴에 줄로 연결해서 대고 있는 하나의 거울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금성에서의 볼일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 갈 수 있었다.
"사--사--부--니---ㅁ---."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현엽의 목소리를 듣고 소구는 거울을 챙긴 후 뒤돌아 섰다.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소년 황제는 천천히 검과 함께 뒤로 쓰러져 가고 있었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소구의 신형이 움직이면서, 현엽은 자신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의 검이 몸에서 떠난 것을 알고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다시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운 현엽은 질린 얼굴로 소구의 손에 들린 흑색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 검은 대--대체 멉니까?"
"이건 극악검(極惡劍)이다."
소구의 말을 듣고 현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과연 말 그대로 극악한 극악검----."
끔찍한 검의 무게에 놀라서 말하는 현엽의 태도를 소구는 이해 할 수 있었다. 봉의 형태에서 검으로 모습을 바꾸긴 했지만 지독한 무게는 여전했고, 그 무게에 소구 역시 처음에는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나의 볼일은 끝났다. 저기 저자의 무공을 폐쇄했으니 이제 더 이상 너를 위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구는 손가락으로 쓰러져 기절해 있는 오배를 가리키며 말하고, 현엽은 고개를 돌려서 오배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저자에게 벌을 내릴 수 있게 되었군요."
말을 하면서 고개를 돌린 현엽은 소구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안하고 떠나시다니---."
낮은 탄식을 토하면서 현엽은 소구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 분은 소림파의 사람일거야. 사문이 어디인지 가르쳐 주지 않으셨지만--, 나한테 가르쳐 준 무공의 대부분이 소림의 것이었어. 그분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소림사를 복원시키고 수배령을 풀어야겠다. 내가 진정한 황제가 되게 만들어주신 분이고 아무런 보답을 원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일이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금수와 같다고 했고--, 천하를 통치해야 할 내가 은혜를 입었는데 갚지 못한다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현엽은 언제까지나 소구가 서 있던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강호의 기인으로 인해 허수아비 황제는 진정한 황제가 되고 허약했던 육신과 정신은 강철같이 단단해진 상태였다.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얻은 현엽은 정말로 소구에게 감사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몸을 날리고 있는 소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금성에서의 내 볼 일은 모두 끝났다. 더 이상 너와 연루되면 귀찮은 일이 계속 될 테니 이대로 떠나는 것이 상책이지.'
무섭게 빠른 속도로 몸을 날리고 있는 소구는 잠도 식사도 거르고 계속 몸을 날렸다. 너무 오래 집을 비워뒀으니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 보아야 했다. 일년이 넘는 시간이었으니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생겼을 것이고, 그가 원하는 방향의 미래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을 틀어야 했다.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일도 해 보았고,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도 해 본 소구였다. 그러나 소구의 가장 큰 적은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소구로서는 자신의 운명을 슬프게 할 어떤 요소라도 사전에 발견하고 제거해야만 했다.
이틀을 내리 달려 드디어 집에 도착한 소구가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정말이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치료는 어떻게든 해 드릴 테니--."
온 몸이 퉁퉁 부은 한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백초당의 문 앞에 서 있고,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아내 당정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입니까?! 아드님의 무공이 높고 백초당의 후계자라지만 동네 아이들을 이렇게 날마다 쥐어 패도 되는 겁니까?!"
불산에서 세공업자로 일하고 있는 이정은 잔뜩 흥분해서 당정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치며 당정을 나무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던 백초당의 안방 마님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등뒤로 가 있었다. 그의 뚱뚱한 아내도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는지 연신 남편의 소매를 붙잡아 끌고 있는 상태였다.
무섭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흑색의 검을 등에 걸치고 서 있는 마른 몸매의 몸을 발견한 순간, 이정은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쫘악 흘러내렸다. 그가 세상을 살면서 별 사람을 다 보게 되었지만 지금처럼 무서운 눈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여--여보!"
백초당의 안방 마님에게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다. 당정의 입에서 한 마디가 튀어나오자마자, 이정은 아내의 아들을 손을 붙잡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백초당의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백초당의 주인인 방소구는 불산에 머무르는 내내 집안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불산에 널리 퍼진 상태였다. 백초당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장소였고, 호신강기를 두르고 한 자루의 둔탁한 봉을 손으로 깎아서 검으로 만드는 광경을 본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소구가 강하다는 것과 그의 성질이 더럽다는 것 또한 널리 퍼진 상태였다.
눈물을 뿌리며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내를 안으며 소구는 도망치는 일가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놈들 뭐야?"
"당신 아들한테 두들겨 맞은 아이의 부모죠."
원망 어린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소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옥이가?"
"말도 말아요. 그 놈이 누굴 닮았는지 하루도 싸움을 거르는 날이 없다구요."
"그래?"
"그래요. 반병신이 되어 집으로 찾아오는 아이가 이틀에 한번 꼴이니---."
품에 바싹 안기어 아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소구는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지."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고 걸음을 옮기면서 소구는 물었다.
"세옥이가 두들겨 맞는 일도 있었나?"
"하루가 멀다하고 그렇게 싸우는데 두들겨 맞는 일이 왜 없겠어요?"
지금까지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소구는 갑자기 성난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세옥이가 두들겨 패지 못하고 맞았단 말이지? 당장 세옥이 불러와!"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치는 남편의 모습에 당정은 흠칫 놀라서 물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그렇게 화를 내면 어떻게 해요?!"
"당장 세옥이 불러와!"
막무내가인 소구의 고함은 계속되고, 당정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는 남편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구의 고함 소리에 놀라 백초당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당으로 몰려나와, 일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집주인 방소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이제 아홉 살 난 소구의 아들 세옥이도 껴 있었다.
"저기---아버지 저 왔는데요--?"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소구에게 다가온 아이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면서 소구는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이놈, 두들겨 맞았다고? 두들겨 패지 못하고 맞았다고? 나 방소구의 아들이?"
동네 아이들을 두들겨 패는 일 때문에 혼나리라 생각하고 있던 방세옥은 물론,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어 소구를 바라보았다.
"딱 한 번----."
"이렇든 저렇든 때리지 못하고 맞았단 말이지?"
으르렁거리는 아버지 방소구의 모습에 방세옥은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수그렸다.
"맞을 거면 뭐 하러 무공을 배우냐?! 약한 놈들을 두들겨 패고 강하다고 자랑하면 그게 센 것이냐?! 진정으로 강한 자는 함부로 싸우지 않는다! 싸워야 할 때와 참을 때도 모르는 너 같은 놈이 무슨 무술이냐?! 앞으로는 의술과 글공부만 해!"
일년만에 돌아온 아버지 방소구의 입에서 연신 터져 나오는 호통 소리는 이제 아홉 살 난 소년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게만 들리는 말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줄줄 흘리고---.
"여보, 얘가 울잖아요. 그만해요."
옆에서 멍하니 보고만 있던 당정이 아들을 감싸 안으면서 말하자, 아직도 뭐라고 떠들어대려던 소구는 입을 다물고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구경났어! 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들 해!"
마당으로 몰려 나왔던 사람들은 소구의 호통이 터지기가 무섭게 재빨리 마당에서 도망쳤다. 이미 무형지기(無形之氣)를 이루고 있는 소구의 시선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백초당의 마당에 존재하지 않았다. 소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서운 기운이 무엇인지 무림세가 출신이 당정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기운이 자신을 보호하는 기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그녀는 웃는 낯으로 아들을 향해 말했다.
"세옥아, 너는 방으로 돌아가 있거라."
"네--에."
시무룩해진 얼굴로 대답한 세옥이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면서 흘낏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았다.
'체, 밖에 일년이나 놀다 오셨으면서 선물도 안 사오셨어---. 오자마자 혼내 키다니 너무해.'
아들의 불평과는 상관없이 소구는 아내와 함께 걸음을 옮기면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제 내가 집에서 떠나는 일은 없을 거요. 내가 하려던 일은 아직 반 밖에 끝나지 않았지만, 구하려던 것을 구했으니 밖에 나갈 일은 없소. 그건 그렇고 집에 내가 없는 사이 별일은 없었겠지?"
남편의 말에 당정은 한숨부터 흘렸다.
"왜 그러오?"
"당신이 떠나고 난 두달 쯤 뒤에 어머님이 찾아오셨어요."
"뭐? 무슨 일로?"
"북해에서 혼자 지내기 심심하시다고요. 그래서---."
"그래서 뭐?"
"취하와 취앵 언니가 북해로 끌려갔지요."
세 번째 아내인 당정의 말을 듣고 소구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 소구의 머리 속에는 끔찍한 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얼굴에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입술---,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냉기를 뿜어내는 두 여자의 모습---.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모습이 되어 돌아올 아내를 떠올리게 된 소구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당정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얼굴로---?"
"지금 당장 북해로 갖다 와야겠소."
"하지만 정각 대사님에게 인사라도 하고---."
소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지금 당장 가서 둘을 데리고 와야겠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소구의 몸은 다시 집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오자마자 떠나는 남편의 등을 당정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독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