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계 이일대로(以逸待勞)...
말 그대로 편안함으로써 피로함을 상대한다, 주도권의 선점에 대한 계책이다. <손자병법><군쟁편>에 그 출전이 있다.
孫子曰, 凡用兵之法, 將受命於君, 合軍聚衆, 交和而舍, 莫難於軍爭. 軍爭之難者, 以迂爲直, 以患爲利. 故迂其途, 而誘之以利, 後人發, 先人至, 此知迂直之計者也 故軍爭爲利, 軍爭爲危. 擧軍而爭利, 則不及. 委軍而爭利, 則輜重捐. 是故券甲而趨, 日夜不處, 倍道兼行, 百里而爭利, 則擒三將軍, 勁者先, 疲者後, 其法十一而至. 五十里而爭利, 則蹶上將軍, 其法半至. 三十里而爭利, 則三分之二至. 是故軍無輜重則亡, 無糧食則亡, 無委積則亡. 故不知諸侯之謀者, 不能豫交. 不知山林, 險阻, 沮澤之形者, 不能行軍. 不用鄕導者, 不能得地利. 故兵以詐立, 以利動, 以分合爲變者也. 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難知如陰, 動如雷霆. 掠鄕分衆, 廓地分利, 懸權而動, 先知迂直之計者勝, 此軍爭之法也. 軍政曰, 言不相聞, 故爲鼓金. 視不相見, 故爲旌旗. 夫金鼓旌旗者, 所以一民之耳目也. 人旣專一, 則勇者不得獨進, 怯者不得獨退, 此用衆之法也. 故夜戰多火鼓, 晝戰多旌旗, 所以變民之耳目也. 故三軍可奪氣, 將軍可奪心. 是故朝氣銳, 晝氣惰, 暮氣歸. 故善用兵者, 避其銳氣, 擊其惰歸, 此治氣者也. 以治待亂, 以靜待譁, 此治心者也. 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此治力者也. 無邀正正之旗, 勿擊堂堂之陣, 此治變者也. 故用兵之法, 高陵勿向, 背丘勿逆, 佯北勿從, 銳卒勿攻, 餌兵勿食, 歸師勿?, 圍師必闕, 窮寇勿迫, 此用兵之法也. 손자는 말했다. 무릇 군사를 움직이는 도리는 장수가 군주로부터 명을 받으면 군을 모아 편제를 갖춘 다음 이들을 이끌고 출전하여 적과 어우러지는 것인데, 이 가운데 적과 더불어 서로 유리함을 다투는 것 - 군쟁軍爭 - 이 가장 어렵다.
군쟁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돌아가면서도 바로 질러가는 듯 만들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도리어 유리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아군이 길을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 적을 기만하고, 작은 이익으로써 적의 움직임을 유인해낸다면 적보다 늦게 출동하고서도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여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돌아가면서도 바로 가는 지혜를 안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쟁이란 이로우면서도 위험하다 할 수 있다.
군을 모두 이끌고 요충을 차지하려 그 속도를 다투면 오히려 아군의 움직임은 도리어 둔해져 적보다 늦게 제 때에 도달하지 못한다. 움직임을 빨리 하려고 장비를 내버리며 적보다 빨리 앞서기에 급급하면 장비나 보급품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갑옷과 투구를 벗어던지고 달려나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보통의 몇 배나 되는 백 리를 강행군하여 적과 다투어 나가려 한다면, 전군의 장수들이 모두 적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이는 건장한 병사만이 앞서고 약한 자는 대열에서 처지게 되어 병력의 10분의 1만이 전장에 도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십리를 강행군하여 적과 그 속도를 다투게 된다면 그 대장은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하면 병력의 절반만이 전장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삼십리를 강행군하여 적과 다툰다면 병력의 3분의 2만이 전장에 도착하여 적과 싸우게 되니, 그러므로 군대란 장비와 보급품을 잃어 망하고, 식량이 없어 망하며, 물자의 비축이 없어 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여러 제후들의 뜻하는 바를 알지 못하면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 숲과 험지와 늪 등의 지형을 잘 알지 못하면 제대로 행군하지 못한다. 그 지역을 잘 아는 길잡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면 지리적인 이점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병사를 움직이는 것이란 속임수로써 아군의 뜻하는 바를 숨기고 승리를 쟁취하며, 유리한 상황에 움직이며, 병력의 분산과 집중을 끊임없이 바꾸는 전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빠르기는 바람과 같고 고요하기는 숲과 같고 치고 빼앗기는 불과 같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하며, 숨을 때는 어둠 속에 잠긴 듯 하다가도, 움직일 때는 벼락치듯 적에게 손 쓸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적의 땅에서 빼앗은 식량과 물자는 병사들이 나누어 가지게 하고, 점령한 적의 땅은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어 지키게 하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절히 움직이도록 한다. 이렇게 돌아가면서도 바로 가는 효과를 거두는 묘수를 먼저 터득하는 자가 기선을 잡아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쟁의 원칙이다.
옛 병서인 군정軍政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말을 해도 서로 들리지 않으므로 징과 북을 사용하고, 보려고 해도 서로 보이지 않으므로 깃발을 사용한다." 징과 북 그리고 깃발은 군대의 많은 병력을 한 사람처럼 눈과 귀를 통일시키는데 쓰이는 도구이다. 병사들의 행동이 하나로 통일되면, 용감한 자라도 혼자서 뛰어나가지 않고 비겁한 자라도 혼자서 물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많은 병력을 지휘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야간에 전투할 때에는 횃불과 북소리를 주로 사용하고, 낮에 전투할 때에는 깃발을 주로 사용한다. 이와 같이 밤낮의 신호 방법이 다른 것은 병사들의 눈과 귀의 쓰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적과 싸울 때 적군 전체의 사기를 꺾고, 적장의 판단을 혼란에 빠뜨리는 방법이 있다. 어느 군대든 전투가 처음 시작될 때에는 사기가 왕성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전투가 이어지면 사기가 느슨해지며, 전투가 끝날 무렵이 되면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철수할 생각만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용병술에 능한 장수는 적군의 사기를 살펴서 적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할 때에는 싸우는 것을 피하고, 적군이 지치고 사기가 떨어진 틈을 타서 공격을 가한다. 이것이 바로 적과 아군의 사기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아군은 엄격하게 질서를 유지하면서 적이 혼란해지기를 기다리고, 고요한 태세로 적이 떠들석하게 흔들리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적과 아군의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아군이 가까운 곳에서 전쟁터에 먼저 도착하여 요충지를 점령한 다음에 적이 먼 거리에서 강행군하여 도착하기를 기다리며(以近待遠以佚待勞), 아군은 넉넉하게 먹고 마신 상태에서 적이 굶주림에 빠지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바로 적과 아군의 전투력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깃발이 정연한 적을 맞아 싸우지 않아야 하며, 진용이 당당한 적을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적과 아군의 변화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병사를 움직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높은 언덕을 점령하고 있는 적을 올려 보면서 공격하지 않는다. 언덕을 등지고 있는 적에게 정면 공격을 행하지 않는다. 아군을 속이기 위해 거짓 후퇴하는 적은 추격하지 않는다. 적의 정예부대는 공격하지 않는다. 적이 아군을 유인하기 위해 드리운 미끼를 물지 않는다. 자국으로 철수하는 적의 후퇴로를 막지 않는다. 적을 포위하였을 때는 한쪽을 터 주어 적에게 도망갈 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막다른 곳에 몰린 적은 너무 압박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용병의 원칙인 것이다.
사실 이일대로의 요체는 이 문장에 다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배가 고프다고 손닿는 대로 입안에 밀어넣다 보면 반드시 탈이 생긴다. 목이 마르다고 한 번에 물을 들이키려 하면 마시는 것보다 다시 토해내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오히려 천천히 조금씩 시간을 두고 꼭꼭 씹어먹어야 하고, 목이 마를 때는 입술부터 적시며 조금씩 입안을 적신다는 느낌으로 마셔야 한다. 그래야 먹어도 더 먹고 마셔도 더 마시고 배고픔도 목마름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돌아가는 듯 질러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적보다 먼저 움직여 요충을 점령함으로써 편안함으로써 피로함을 기다려 상대한다고 하는 것이다.
왜 편안함으로써 피로함을 상대해야 하는가는 굳이 부연하지 않겠다. 본문에 다 나와 있으니까. 군에서 특히 보병으로 복무해 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한 시간에 4킬로미터씩, 50분 행군에 10분 휴식을 하며 통상 속도로 행군해도 20킬로 - 50리다. - 행군을 마치면 반드시 한두 사람의 낙오자가 나오고, 도착해서는 또 상당수가 지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40킬로 - 100리다. - 행군을 마치고 나면 군의관 지프를 타고 오는 병사가 한 개 대대에서 두 자리 숫자는 넘고,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어깨는 군장의 무게로 저리고 결려 한동안 몸을 쉬어 주어야 한다. 하물며 더 빨리 가겠다고 속보로 행군하려 했다가는 아마 절반도 가기 전에 다 퍼져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군장을 놔두고 행군하려 한다면 도착하고 나서도 필요한 물자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현대군에서는 대부분의 중요한 물자를 차량이나 다른 운송수단으로 추진해 줌에도 그렇다. 하물며 직접 식량이며 갑옷이며 무기를 모두 짊어지고 다녀야 했단 당시라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전쟁에서 속도와 기세는 무척 중요하다. 상대보다 빨리 상대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보다 우월한 조건에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면 승리는 이미 맡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유능한 지휘관이란 군을 지휘하여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지휘관이었다. 병사들을 단련시키고, 군을 체계화 조직화시켜, 유기적이고 체계화된 지휘로 일사불란하게 병사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같은 조건에서도 더 빨리 더 먼저 더 강한 기세로서 이동하고 움직여 싸우는 것이야 말로 역사상 모든 지휘관들이 고민한 문제였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거의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손자는 그것이 "이로우면서도 위험하다." 한 것이다. 당장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고수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당시 수양제는 요동성에서 전황이 고착되자 우문술, 우중문 두 장수에게 30만의 별동대를 보내 평양성을 급습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우문술과 우중문 두 장수가 지나치게 공을 서두르느라 병사들을 한계까지 다그치면서 병사들은 지휘관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추기 위해 지니고 있던 물자들을 땅에 파묻고 이동했고, 평양성에 도착했을 때에는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약탈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을지문덕에 의해 들과 마을을 텅텅 비어 버렸으니 주린 배를 끌어안고 물자마저 부족한 상황에 기다리고 있던 고구려군과의 불리한 싸움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이미 고수전쟁은 결판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우문술과 우중문의 생각은 그렇게 틀린 것이 아니었다. 기왕 고착된 전선을 우회하여 후방을 기습하는 만큼 적이 눈치 채기 전에, 미처 준비를 갖추기 전에 공격을 가하는 것이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그랬던 것처럼,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의 독일군이 그랬던 것처럼, 평양성만 바로 점령할 수 있었다면 전쟁은 수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요하에서 평양까지는 너무 멀었고, 그 움직임은 고구려군에 모조리 파악되었으며, 그런 상황에 병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기동은 손자가 말한 대로 물자를 모두 버리고 병사들마저 낙오된 채 제대로 전투력을 유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을 맞아 싸우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속도와 기세가 중요하되 그것에 너무 집착함으로써 도리어 군과 작전이 무너져 버렸으니, 이롭되 위험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일대로는 바로 이러한 "이롭되 위험한" 군쟁의 모순을 이용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일대로에서도 적보다 먼저 요충을 점령함으로써 적을 기다린다고 하는 속도와 기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거리다. 즉 나에게서는 가깝고 적에게서는 먼 보다 수월하게 빨리 이동하여 점령할 수 있는 지점을 선점함으로써 나는 보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여 보다 적은 노력으로 편히 쉬며 적을 기다리고, 적은 나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하여 보다 큰 노력으로써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피로한 채로 공격하도록 하는 것이다. 거리가 가까우니 무리하지 않고도 적보다 빨리 이동하여 점령할 수 있고, 먼저 도착하여 점령했으니 적이 오기까지 쉬며 곧 있을 싸움을 준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일대로 - 편안함으로써 피로함을 상대한다고 하는 것이다.
계릉에서 방연의 위군을 크게 깨뜨리고 13년이 지났을 때 조와 제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 주위의 나라를 끌어들이려던 위가 끝내 자신들의 제안을 거부한 한을 공격하려 하자, 한과 동맹을 맺고 있던 제는 다시 한 번 위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때도 제나라의 대장은 ‘전기’였다. 전기는 13년 전 계릉의 싸움에서도 도움을 받은 바 있기에 여전히 식객으로 머물고 있던 손빈에게 다시 조언을 구했다.
"이번에도 대량을 공격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손빈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방연도 이미 한 번 당한 적이 있기에 전처럼 허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위에도 많은 대비가 되어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떤?" "원래 위와 조, 한은 진에서 갈라져 나온 세 나라로서 평소 제나라를 오랑캐라 업수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군이 약세를 보인다면 저들은 기고만장하여 성급히 달려들 것입니다. 과거 방연과 동문수학할 때 아궁이의 수를 보고 병력의 규모를 헤아리는 법을 배운 바 있으니 이를 이용하여 적으로 하여금 끝까지 우리 군을 쫓도록 만들면 주도권은 우리가 쥐게 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나라 군대가 위의 수도 대량을 공격하니 이미 방연은 군을 이끌고 제나라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차례의 충돌이 있고 한동안 대치가 이어지는데, 방연의 휘하 가운데 한수라는 이가 세객으로 위장하여 제군의 허실을 염탐하러 오자, 손빈은 그것마저 이용하기로 한다. 흙과 모래로 채운 쌀가마니로서 허장성세를 보인 다음 그것이 탄로나도록 일을 꾸밈으로써 방연에게 돌아가 제군의 군량사정이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임을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서 바로 군을 뒤로 물리는 한편 솥과 아궁이를 줄여 식량이 떨어져 병사들이 흩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하니, 방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혹시라도 손빈을 따라잡지 못할까 보병은 그대로 두고 기병만으로 손빈이 남긴 흔적을 쫓아 반용산 마릉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릉도에는 이미 손빈이 3만의 복병을 숨겨두고 있었다. 마릉도에 이르러 손빈의 전차가 이십리 앞에 있을 것이라는 인근 사람의 말에 복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건의를 물리치고 더욱 말을 재촉해 그 뒤를 쫓으니,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
손빈이 직접 적어 놓은 글 아래 방연은 여러 발의 화살을 맞은 채 손빈이 보는 앞에서 자기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다. 지칠대로 지친데다 말이 움직이기에 불리한 골짜기에 갇혀 복병의 공격을 받게 된 2만의 위나라 기병도 거의 전멸해 버렸고, 그 기세를 몰아 공격해 들어간 손빈의 제군에 위군의 본대까지 무너져 위의 태자마저 포로로 잡히는 최악의 패배를 당한다. 계릉의 싸움에 이은 유명한 마릉의 싸움이다.
역시 이 싸움에서도 손빈은 방연이 준비해 놓은 싸움터가 아닌 자신이 준비한 싸움터로 방연이 멀리 급하게 이동하도록 만듦으로써 먼저 이동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지치고 고립된 방연과 위군을 공격하여 섬멸하고 있다. 마릉이 방연보다 손빈에게 크게 더 가까울 것도 없었지만 미리 모든 계책을 세우고 준비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마릉과의 거리는 손빈에게 더 가까웠고 방연에게 더 멀었다. 물리적인 거리마저도 자유자재로 하는 것, 그것이 곧 이일대로의 요체일 것이다.
이일대로의 예로서 또 유명한 것이 니폴레옹 전쟁에서의 제정 러시아다. 당시 나폴레옹과 그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영국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유럽의 다른 열강들을 모조리 패퇴시키고 불패의 상승군으로서 그 명성과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더구나 폴란드 등지에서도 병력을 동원하여 그 수가 물경 50만에 이르고 있었으니, 누가 보더라도 러시아의 패배는 기정사실로 보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넓었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또한 적지에서의 약탈로 보급을 해결하던 나폴레옹의 방식은 50만이라는 대군과 청야전술로 텅 비어 버린 동러시아의 평야와 마을, 도시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 황제와 귀족은 물론 약탈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나폴레옹의 대군은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질병, 싸우기 전에 이미 나폴레옹의 군대는 와해되어가고 있었으니,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가 이끄는 러시아군이 패주하는 나폴레옹을 뒤쫓기 시작했을 때 나폴레옹의 신화는 러시아의 동토에서 파멸로서 끝나게 되었다. 불패의 나폴레옹으로서는 너무나도 뼈아픈, 그러나 결정적인 패배였다. 역시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와 추운 기후를 이용하여 먼 길을 이동해 온 적을 피로하게 만들어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 싸우는 이일대로라 하겠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을 지휘한 알렉세이 쿠로파트킨은 일본이 갖고 있던 한계와 약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바로 급조된 근대국가로서 전쟁지속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만주에 주둔중이던 러시아군의 약점과도 맞물려 있었는데, 당시 유럽의 열강들을 긴장시키던 군사강국 러시아였지만 그 대부분의 힘은 유럽에 가까운 서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증원과 보급을 받자면 시베리아를 멀리 가로지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말하자면 시간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전쟁수행능력이 먼저 바닥나는가, 아니면 러시아군이 먼저 증원과 보급을 받아 일본군과 결전을 꾀하는가, 여기에 대해 쿠로파트킨은 일본군을 만주 깊숙이 끌어들임으로써 일본군의 보급선을 늘리고, 나아가 일본군을 지치게 만듦으로써 증원과 보급으로 강화된 러시아군으로 하여금 격멸하겠다고 하는 대담한 전략을 세워 일본군을 상대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에서 입은 물적 인적 피해로 말미암아 일본이 겪어야 했던 혼란과 어려움을 생각하면 일본의 입장에서 매우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전략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쿠로파트킨의 이러한 전략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는데, 당시 러시아의 짜르였던 니콜라이 2세가 연이은 패전소식과 그로 말미암은 러시아 국내의 소요를 이유로 일찌감치 전쟁의 종식을 선언한 때문이었다. 실제 러시아는 전쟁이 끝나고 종전협정을 맺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이 졌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물적, 인적 피해가 컸던 일본으로서는 조선 하나만 얻고 만족하는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놓여야 했다. 아무튼 이일대로의 약점, 적을 끌어들여 무찌르는 것은 좋은데, 그러기까지 오히려 이쪽에서 승리를 기다리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드러난 장면이라 하겠다. 아마 당시 니콜라이 2세가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쿠로파트킨을 믿어 주었어도 세계의 역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역시 같은 러일전쟁에서 있었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중요한 해전 가운데 하나인 쓰시마 해전도 이일대로의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시 러시아의 주력함대는 극동이 아닌 북유럽 발트해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지도를 펴 보면 알겠지만 발트해에서 대한해협까지는 거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나마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당시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을 갖고 있던 영국은 일본의 편을 들어 러시아 함대의 통과를 거부하고 있었다. 여기에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항구에서 제대로 보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조선해협에 이르게 되었을 때 러시아 함대는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오랜 항해로 배는 삐걱거리고, 선원들은 지치고, 수중생물마저 배 밑바닥에 달라붙어 속도를 늦추는, 그런 상황에서 충분한 준비와 훈련을 마친 채 기다리고 있던 일본의 함대를 맞아 싸우게 되었으니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독창적인 정자진도 대단했지만, 그보다는 이미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어 버린 러시아 해군 내부의 사정이 자멸한 것이나 다름없이 러시아가 자랑하던 발틱함대를 전멸로 몰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무술계에 전해지는 말 가운데 "적으로부터는 최대한 멀리, 나로부터는 최대한 가까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싸움을 할 때 주먹질 하고 발길질 하는 것보다 그것을 붙잡아 자빠뜨리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 일단 중심이 멀어지는 만큼 주먹질이든 발길질이든 중간에 자세를 바꾸기도 쉽지 않고, 상황의 변화에 대해 빠르게 대처하기도 어렵다. 반면 중심을 자기에게 가까이 두면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그래서 무술을 보면 가장 위력이 강한 것은 멀리 지르는 타격기이되, 가장 위협적인 것은 상대를 가까이 끌어들여 지르는 기술들이다. 당장 이종격투기만 보더라도 최강의 격투기로 손꼽히는 것은 가까이 붙어 상대를 공격하는 유술 타입의 그레이시 유술이다.
이일대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 말하자면 거리다. 물리적인 거리, 시간적인 거리, 심리적인 거리, 그 거리를 자신에게 가까이 둠으로써 변화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고, 그 중심으로써 주도권을 삼아 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자신이 의도하는 바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다. 기다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않고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더 피로하도록, 더 몰리도록,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도록 능동적으로 만들고 꾸밈으로써 상대로부터 영구히 주도권을 박탈하는 것이 이일대로의 요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능동적으로 적용한 것이 현대전에 있어 기본이 된 종심방어다.
종심방어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선방어 - 적과의 접촉면을 따라 길게 병력을 배치하여 대치하던 것 - 에 대해 여러 개의 선을 겹쳐 배치함으로써 위에서 보았을 때 면을 갖도록 -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깊이를 갖도록 한 것으로써 현대전에 있어 거의 기본이 되다시피 한 방어전술이다. 간단히 북한군이 만의 하나 남침을 감행한다고 해도 먼저 휴전선에서 한 번 막히고, 그리고 후방에서 병력이 집결하여 작전계획에 따라 여러 단계의 방어선을 펼치면 그것을 하나하나 돌파하는 과정에서 병력과 물자는 소모되고 피로가 누적되어 어느 순간에는 공세한계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럴 때 미리 충분한 휴식과 보급을 마친 준비된 예비대로서 역습을 가하면 북한군의 주력은 분쇄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단순히 기존의 거리를 이용하여 적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용한 전력으로써 거리를 강요하는 것이니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의 이일대로라 하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쿠르스크 전역에서 소련군도 바로 이러한 종심방어를 통해 독일군의 예봉을 꺾은 바 있었다.
물론 이일대로가 싸움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당장 친구와 말싸움을 할 때도 먼저 떠드는 사람은 항상 불리하기 마련이다. 상대가 마음대로 떠들도록 만들면 어디선가는 반드시 파탄이 드러난다. 논리적인 문제라거나, 논거의 적합성이라거나, 하다못해 표정이라든가 태도와 같은 것들에서도 약점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 말꼬리를 잡든 아니면 태도를 가지고 시비를 걸든 주도권은 이쪽에 있다. 인터넷에서 자기 글 쓰는 사람이 리플러에게 절대적인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리플러야 글 가운데 부분만 가지고 시비 걸면 되지만, 본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자기가 쓴 글 전부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결국 자기를 먼저 노출하게 되는 사람이 불리할 수밖에 없고 열세에 놓이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그렇다. 아젠다라는 게 왜 중요한가? 아젠다를 먼저 선점함으로써 모든 논의가 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비판을 하든 비난을 하든 동의를 하든 결국 그 아젠다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되고 아젠다를 선점한 자신 또한 역시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된다. 결국 어떠한 이유로든 사람들의 관심을 그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버리니,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모을 수 있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2002년, 2006년 대선에서 결국 누가 승리했는가를 본다면 아젠다의 선점이야 말로 정치인으로서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다만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그 아젠다가 굳이 말로 설명할 것 없이 정치인 자신의 이미지와 바로 직결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것, 말로서 길게 설명하게 되면 선점한다기에는 너무 멀어지게 된다. 너무 멀면 선점의 효과도 떨어지고 마찬가지로 다른 정치인과 같이 자신도 지쳐버린다. 그래서야 이일대로라 할 수 없으니 그 심리적인 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싸움이든 일상에서든 결국 중요한 것은 주도권이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상황을 주도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고자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한 때 그 핵심을 자기와 가까운 곳에 두어 상대로 하여금 나를 중심으로 더 많이 더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보다 쉽게 상대의 파탄을 유도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병법삼십육계의 제 4계 이일대로, 상대를 움직임으로써 내가 주도권을 쥐도록 만드는 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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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잎 클로버 원문보기 글쓴이: 네잎 클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