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이 있는
희끄무레한 구름 사이로 낮달이 하나, 떠 있었다
이중섭이 날마다 나와 안아보던 달, 물 건너 친정 보낸
일본인 아내가 되기도 하고 꿈에나 보던 아이들이 되기도 했을
그 선창의 허연 달이
하루에 두 번 끄덕끄떡 했다던 영도다리 아래, 바다쪽으로 살짝 비탈진 내리막길
자갈치 들머리, 50년대 국산영화 세트장 같은, 연안沿岸 골목길
축대 난간에 바람 부는 날의 쪽배처럼 나붓나붓 떠 있는 포장마차 머리 위로
취객들이 포장 들추고 나와 철철 쏟아낸 오줌 받아 안은 잔물결처럼
이지러진 낮달이 하나, 박혀 있었다
―고맙습니다
앞치마에 손 닦으며 나와 돈 받던 주인 아낙이
둥근 허리를 깊이 구부렸다
두 세평, 바람막이 포장 안에 열두 명 시인들이 대낮부터 끼여 앉아
전쟁하듯 마셔댄 생막걸리에, 고봉으로 구워주던 고등어 꽁치 삼치 안주 값이 4만원,
몇 발짝 돌아가면 즐비한 횟집, 회 한 접시 값도 못 되는 하루 노동을 순식간에 끝내 준 취객들을 따라 나오며
아낙은 몇번이나 희미한 달빛 웃음을 던져주었다
자갈치, 자갈치 하면 그 시절 피난민들이 생선 사러 와서 밟던, 자갈이 자갈자갈 하는 소리 들리고
갈매기, 부산 갈매기들이 선창에 부려진 생선 낚아채 날아오르던 이미지로 가득했던 나의 풍경에
화덕 하나, 석쇠 하나, 잠시 쉴 틈에 아픈 허리 지지기도 할 전기장판 평상과
탁자 두 개에 달린 앉은뱅이 의자 몇 개가 전부인 그 겨울 포장마차와
산처럼 느릿해서 좋았고, 한 걸음 뒤쪽에 물러선 바다처럼 도무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중년 아낙의 둔중한 허리에 슬슬 감기던
생선 굽는 달콤한 연기 냄새와, 그 연기에 말없이 쓸리던 낮달 하나가 추가되었다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 작은숲,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