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젊은공인중개사의모임
 
 
 
 
 
 

카페 통계

 
방문
20240912
37
20240913
50
20240914
19
20240915
45
20240916
16
가입
20240912
0
20240913
1
20240914
0
20240915
1
20240916
0
게시글
20240912
0
20240913
1
20240914
1
20240915
0
20240916
1
댓글
20240912
0
20240913
0
20240914
0
20240915
0
20240916
0
 
카페 게시글
좋은 글 스크랩 제6계 성동격서
잠실/맥(조문희) 추천 0 조회 24 15.02.25 11: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6계 성동격서(聲東擊西)... 

 

 

말이 필요없는 성동격서다. 소리는 동쪽으로 내고 치기는 서쪽을 치는, 가장 전형적인 기만술이다. 출전은 <통전> <병전>으로, 초한지로 유명한 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이 다투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중원은 항우와 유방 외에도 한, , , , 연 등 진에 멸망한 전국시대 일곱 나라가 새로이 일어나 가장 세력이 컸던 항우의 초와 유방의 한 사이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위왕 표가 항우에게 투항해 그의 편에 섰으니,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중원의 한군이 북쪽의 위와 남쪽의 초군에 포위당하는 형세가 되어 버렸다.

 

당연히 한고조 유방은 위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사신으로 역생을 보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미 천하의 패권이 항우에게 있다 여기고 있던 위왕은 역생이 전하는 유방의 제안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말로 통하지 않으면 결국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결국 유방은 한신을 불러들여 좌승상의 벼슬을 내린 뒤 그로 하여금 위를 정벌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한군이 지금의 산서에 해당하는 위로 들어가고자 하면 먼저 포판을 통해 황하를 건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 포판은 위왕 표의 명령을 받은 백직이라는 장수가 병사를 이끌고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백성들에게 명을 내려 작은 배 한 척도 띄우지 못하도록 한 다음, 맞은 편 강둑에서 한신의 한군이 강을 건너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적이 기다리는 가운데 강을 건너는 것은 그냥 죽여 달라는 소리다. 더구나 황하는 바다만큼이나 넓고 거칠다. 강을 건너는 사이 활을 쏘거나 하면, 설사 화살에 맞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배에서 내려 건너편 기슭을 오르는데 준비하고 있던 적이 대열을 갖추고 공격해 오거나 하면 그대로 꼼짝없이 전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백직도 알고 위왕 표도 알고 한신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백직과 위왕은 마음을 놓았고 한신은 다른 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신으로서도 그대로 적이 보는 앞에서 강을 건널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일단 보이기로는 진을 세우고 깃발을 꼽고 배를 준비하고 강을 건너는 훈련을 하고, 밤에 횃불을 크게 밝히는 등 예상한 대로 위군이 보는 앞에서 포판을 통해 강을 건너려는 듯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그렇지 않아도 황하라는 천혜의 방벽을 믿고 있던 백직과 위왕이 그 모습을 보며 비웃고 있는 사이, 병사를 움직여 미리 보아 두었던 보다 상류의 하양으로 이동해서 뗏목을 엮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한신이 노렸던 곳은 포판이 아닌 바로 이곳 하양이었던 것이다.

 

결국 백직도 위왕도 위군도 모두 마음을 놓고 있는 사이 한신은 군을 몰아 하양을 통해 강을 건널 수 있었고, 백직이 황하를 지켜보고 있는 사이 그 후방의 위왕이 머물고 있던 안읍을 공격하여 갑작스런 기습에 허둥대는 위왕 표를 패퇴시키고 그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한신의, 적으로 하여금 포판으로 강을 건널 것처럼 보이게 한 뒤聲東, 군을 하양으로 몰아 적이 전혀 대비하지 못한 곳을 공격하여 수월하게 적을 무찌르는擊西 계책이었다.

 

 

말하자면 성동격서란 기만이다. 만천과해은밀함 속에 자신의 의도를 숨기려 하는 것이라면 성동격서소란스러움 속에 자신의 의도를 상대로 하여금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고조 유방이 한을 건국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천하를 나누어 자신의 일족으로 하여금 왕으로 삼아 다스리도록 한 것이었다. 수도 근방은 황제가 직접 다스리고, 멀리 떨어진 지방은 각기 나라로 나누어 왕으로 봉해 다스리도록 하는, 이른바 말하는 군국제였다.

 

원래 유방이 일족에게 나라를 나누어 왕으로 봉한 것은 아무래도 생판 남보다야 피를 나눈 혈족 쪽이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일단 황제가 모두 다스릴 수는 없으니 땅을 나누어 맡기기는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맡기자니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에 그래도 믿을 수 있는 혈족에게 그 자리를 맡긴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이란 비정하기 이를 데 없어서 부모자식간에도 서로 칼을 겨누고 죽고 죽이는 것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당시 각 왕들에게 주어진 권한이라는 것은 강대하기 이를 데 없어서 스스로 재정을 키우고 군사를 기르는 사이 특히 오, , 제와 같은 큰 나라들은 어느새 한의 조정과 대항할 정도로 그 힘이 커져 있었다. 이미 유방의 계산과는 달리 분란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물론 한 조정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문제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경제는 태자시절부터 자신의 스승인 조착의 영향으로 각 왕들의 권한과 영토를 삭감할 것을 주장하던 이였다. 그가 황제에 오르자 가장 먼저 조착을 어사대부로 임명하여 그동안 주장해 오던 각 나라와 왕들에 대한 권한과 영토를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이미 수십 년 뿌리를 내리고 세력을 키워 온 각국의 왕들은 조정마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그 힘이 커져 있던 상태였으니.

 

결국 가장 세력이 컸던 오왕 유비를 중심으로 초, , 교동, 교서, 제남, 치천의 여섯 나라가 조착을 제거할 것을 명분삼아 반란을 일으키게 되니 바로 이것이 오초 7국의 난이다. 여기에 천월과 동월까지 가세하니 바야흐로 한왕조는 건국한 지 수십 년 만에 크나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경제는 반란의 소식을 듣자 즉시 건국공신인 주발의 아들로 대위조후로 있던 주아부를 불러 특히 세력이 강했던 오와 초의 군대를 막을 것을 명령했다. 주아부는 명령을 받자 바로 낙양으로 들어가 각지의 군대와 회합한 뒤 군을 이끌고 회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싸움으로 단련된 유비와 그가 수십 년 각고의 노력으로 길러낸 수십 만의 오군은 결코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주아부는 정도위의 건의를 받아들여 오초군과 직접 맞아 싸우기보다는 창읍에 성을 쌓고 양나라를 공격하는 오군이 지치기를 기다려 그 배후를 치기로 결정한다.

 

당시 오왕 유비는 심각한 전략적 실수를 범하고 있었는데, 전략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수양의 공격에 집착하느라 병력과 물자와 특히 시간을 허비한 것이었다. 사실 수양은 점령하든 안 하든 전략적으로 전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곳이었다. 따라서 그의 신하들이 건의한 대로 수양의 성을 내버려두고 병참을 확보하여 전선을 확장하거나, 아니면 배후에 또다른 전선을 만들어 한의 토벌군을 분주하게 만들었다면 반란은 조금은 다른 결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그럴만한 도량도 식견도 없었고, 따라서 처음 정한 대로 수양성을 공격하느라 귀중한 시간과 병력과 물자를 허비하고, 끝내는 창읍의 주아부에게 배후의 보급로마저 차단당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유비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창읍의 주아부와 결전을 벌여 한 번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낙양으로 바로 진격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 한 가지 뿐이었다. 말하자면 막다른 골목에서의 결전이라 할 수 있는데, 유비는 비장한 심정으로 마지막 길을 찾아 창읍의 주아부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창읍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주아부가 창읍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던 터였다. 수양성에서 이미 인력과 물자를 소모하고 또 지치고 사기마저 떨어진 오군으로서는 한 순간에 함락시킬 수 있는 그런 성이 아니었다. 다시 한참을 공격하고도 성에 의지해 굳게 지키고 있는 주아부 앞에 오군은 무력해 다시 한 번 시간과 인력과 물자를 소모하고 있을 뿐이었다. 창읍만 넘으면 되는데 그 창읍을 넘는 것이 너무나도 버거운 벽으로 다가온 것이다. 마침내 오왕은 창읍을 함락시키기 위해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낸다. 전장에서 단련된 그의 경험이 만들어낸 계략이었다.

 

그날 오군은 유독 성의 동남쪽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켜 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마치 성의 동남쪽에 공격을 집중해서 한 순간에 떨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러나 주아부는 그러한 오군의 움직임에 오히려 서북쪽의 방비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처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오군의 주력이 서북쪽을 공격하기 시작하니, 결국 주아부에 의해 방비가 한층 강화된 창읍의 서북쪽은 오왕 유비와 오군의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공격을 훌륭히 막아낸다. 한 마디로 유비가 역전의 노장답게 성동격서로서 주아부의 판단을 흐리려는 것을 주아부가 훌륭히 파악하여 대응한 결과라 하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다시 이탈리아에서 연합군의 상륙을 허용한 바 있던 독일군은 과연 연합군의 주력이 프랑스의 해안 가운데 어디로 상륙할 것인가에 모든 정보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당시 그 후보지로 거론 된 것이 노르망디와 파 드 칼레였다. 특히 칼레가 유력시되었는데, 영국과도 최단거리에 위치해 있고. 따라서 연합군의 항공기들이 영국의 기지에서 출동하여 작전을 펼치기에도 좋은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연합군 스스로 가상의 전차와 가상의 부대를 칼레가 바라보는 도버해협 연안에 배치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니, 이미 붕괴되어 버린 독일의 스파이 조직으로부터도 칼레가 상륙지점이라는 보고가 날아오는 가운데 독일군 지휘부는 결국 칼레를 주공방향으로 보고 그쪽으로 방어를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독일의 지휘부 가운데서도 노르망디의 가능성을 제기한 사람은 있었다. 대표적으로 히틀러와 롬멜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독일군, 특히 프랑스의 서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에게 칼레와 노르망디 양쪽 방면에 모두 전력을 증강할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독일 참모부는 그곳을 칼레로 판단했다. 히틀러와 롬멜에 의해 부분적인 전력의 강화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오버로드 작전"이 실행되던 당시, 노르망디의 방어력은 물밀듯 밀고 들어오는 연합군의 상륙전력을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 심지어 연합군이 상륙을 하던 그 순간에도 룬트슈테트는 오히려 노르망디가 칼레로의 상륙을 기만하기 위한 양동작전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결국 연합군은 노르망디 해안을 지키고 있던 소수의 2선급 부대에 의해서도 적잖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결국 독일군의 주력이 도착하기 전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동부전선에서의 패전으로 경각에 달려 있던 나치독일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게 된다. 철저히 상륙지점을 기만하여 독일군 지휘부로 하여금 오판하게 만든 연합군 지휘부의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성동격서라 하겠다.

 

 

성동격서의 요체는 결국 기만이다. 더 정확히는 페이크. 패널티킥을 찰 때 킥커가 살짝 눈으로 오른쪽을 보면 골키퍼도 그리로 정신을 집중하게 된다. 그런 때 왼쪽으로 날아오는 공은 아주 헛방만 아니면 네트를 가르게 된다. 농구를 할 때도 공을 튀기며 몸의 중심을 옮기며 눈으로는 다른 방향을 보면서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여 그 빈틈을 노린다. 권투시합에서 태권도 시합에서 자주 발을 바꾸며 어깨의 위치를 달리 하는 것도 상대로 하여금 어디로 올 것인가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페이크. 상대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거짓과 기만이야 말로 성동격서의 전부라 할 것이다.

 

결국 한 마디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만천과해가 드러내지 않고 은밀함 속에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것이라면 성동격서는 겉으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 의도를 잘못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왼쪽으로 가려 하면 오른쪽으로 먼저 움직이고, 달리려 하면 먼저 멈추고, 멈추려 하면 먼저 달리고, 도망치려 할 때는 달려들 것처럼 하고, 달려들려 한다면 먼저 도망칠 것처럼 보이고, 내가 의도하는 바와 전혀 다른 정보를 상대에게 강요함으로써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여 그 틈에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아뭇소리 않고 있다 깜짝파티를 열어 사람 놀라게 하는 것이 만천과해, 생일따위는 모른다며 전혀 기대조차 하지 않게 만들었다가 마지막 반전으로 선물과 축하메시지, 그리고 파티로서 놀라게 만드는 것이 성동격서이다. 아마 이것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만천과해와 성동격서의 차이라 할 것이다.

 

사실 성동격서는 계략이라고 하기에도 일상에서 너무 흔히 자주 쓰이는 계략이다. 사람이란 결국 감각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판단을 하기 전에 먼저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데, 인식은 인지로부터 비롯되고, 인지는 다시 감각으로부터 비롯된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 결국 사람을 속이고자 해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보고 듣고 느끼는 일차적인 정보에서부터 혼란을 줌으로써 판단과 행동에까지 이르는 모든 메커니즘 자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게 되니, 결국은 그 의도하는 바는 완전히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의도하는 바를 숨길 수 있으면 그만큼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알아서가 아니라 거의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를 속이려 할 때 먼저 거짓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는 성동격서를 흔히 쓰게 된다.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는 과정이 그러하기에 거의 본능 수준으로 쓰는 것이다. 그 스케일이나 결과에 있어서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적잖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 마디로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이고 서민적인 전략 성동격서랄까? 병법삼십육계의 제 6계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