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과 '자서전'은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 쉽지만 서로 다른 면이 있습니다.
<회고록은 자서전과 상당히 비슷하며 종종 혼동되기도 하지만, 외적 사건을 강조한다는 점에 있어 자서전과 구별된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는 데 반해,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역사적 사건에 직접 가담하거나 그것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들로, 회고록을 쓰는 목적은 그 사건들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7세기 영국의 청교도혁명에 대한 많은 회고록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에드먼드 러들로와 존 레레스비 경이 쓴 〈회고록 Memoirs〉이다. 20세기에는 많은 뛰어난 정치가나 군인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회고록에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유명한 회고록으로는 영국의 몽고메리 자작이 쓴 회고록(1958)과 샤를 드골이 쓴 〈전쟁 회고록 Mémoires de guerre〉(1954~59)이 있다.>[Daum백과] 회고록 – 다음백과, Daum에서 발취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수상을 지낸 에드워드 처칠의 '2차 세계대전 회고록'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기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잘 썼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쓰하루의 회고록에는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이것은 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싸움이었다. 나는 이곳 한산도에서 생애 최대의 패배를 당했다. 나의 함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적의 화포는 우리의 조총을 능가했다. 이 싸움에서 나는 76척의 전함 중 69 척을 잃었다.
적은 우리를 반달 모양으로 둘러싼 후 공격 해왔다. 완벽한 패배였다. 조선의 장수 이순신. 그는 놀랍게도 한번도 패배하지 않는 해전의 신화를 창출해냈다." "나는 그때까지 적장 이순신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만난 조선의 장수들은 모두 나약했다. 그들은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한채 나 와키자카 야스하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순신 역시 일개 조선 장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록 그가 몇몇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것은 우리가 방심했던 결과였을 뿐..., 나는 승리를 장담했다 내가 겪은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 달랐다.
나는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며칠 몇날을 먹을 수 가 없었으며 앞으로 전쟁에 임해야 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 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라는 솔직한 얘기가 적혀 있어 그가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잘 나와 있다고 합니다.
저는 회고록을 쓸만한 일을 겪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서전을 쓸만한 사람도 아니어서 그런 것들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5공화국 때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와 그의 부인 이순자 씨가 나란히 회고록을 냈다고 하는데 제가 그것을 읽을 일은 아닌 것 같고, 관심도 없지만 그 회고록의 내용 중에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또 상처를 주는 내용들이 있는가 봅니다.
물론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서 자신에게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는 본인들이 생각할 문제이긴 하지만 역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변명을 일삼는 내용이라면 회고록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읽지도 않았는데 일부 언론에서 특정한 대목만 잘라서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왜곡보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런 시비를 겪지 않으려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