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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조각 눈썹의 사나이
해질 무렵 황혼이 물들고 어둑어둑해졌다.
이때가 용상 여관이 가장 바쁜 시간이고, 아래층 식당에는 탁자마다 손님
으로 가득 차 있을 때이다. 뛰어 올라오는 점원, 소북경(小北京)은 바빠서
땀을 흘리고 있었고,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위층에는 스물네 칸의 방이 있는데, 모두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칼을 지닌 강호의 호걸들이었다. 누구도 평상시에는 쓸
쓸하기만 한 이곳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번잡해지기 시작했는지 몰랐다.
느닷없이 촉급한 말발굽 소리가 나더니, 말 두 필이 문 밖에서 뛰어 들어
왔다.
실내는 말울음 소리로 잠시 소란해졌으나, 말에 타고 있던 두 명의 푸른
옷을 입은 사나이들은 꿈쩍도 않고 안장에 앉아 있었다.
한 필의 말에는 한 쌍의 번쩍이는 은 갈고리가 안장 옆에 걸려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붉은 얼굴에 수염이 잔뜩 나 있었다. 눈동자는 은으
로 만든 염주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소북경의 얼굴에 시선을 못박고 천천히 말했다.
"그 녀석은?"
"아직도 천자호(天字號) 방에 있습니다."
붉은 얼굴에 곱슬한 수염이 있는 사나이가 물었다.
"아홉 낭자들은 어디에 있지?"
"위에서 그와 대결하고 있습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삐를 움켜잡았다. 말은 화
살처럼 빨리 위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한 필의 말에 탄 사람의 동작도 빨랐다. 이 사람의 왼쪽 귀는 반쪽
이 없었다. 얼굴에는 왼쪽 귀에서 오른쪽 입 있는 곳까지 칼자국이 그어져
있어, 그의 검푸른 얼굴을 더 징그럽고 무섭게 보이게 했다.
말이 위층에 도착하자, 사나이는 안장을 박차고 높이 솟았다가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고는 쿵, 하고 계단 옆 천자호 방의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안
으로 뛰어 들어가는 그의 손에는 여러 번 단련되어 완성된 검판관필이 들려
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방안에는 단지 한 사람의 여인
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풍만한 가슴, 곧게 뻗은 다리에 옷이라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여자였다.
어떤 남자라도 한 번 보기만 하면 같이 지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여자였
다. 그러나 그녀는 대들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얌전히 앉아 있었고, 표정은 뜨겁게 달구어진 함석판 위에서 발바
닥을 동동 구르며 다급해 하는 고양이 같았다. 그녀는 입이 막혀 있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휘둘러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홍자색의 수건을 벗겨내었다.
칼자국이 있는 사나이가 물었다.
"그 녀석은?"
그 여인은 여러 차례 숨을 돌리고 나서야 대답했다.
"갔어요. 그는 이미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칼자국의 사
나이는 급히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갔지?"
"말발굽 소리를 들어 보니 북쪽의 황석진(黃石鎭)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요." 그녀는 다시 급히 말했다.
"당신들이 먼저 나를 내려가게 해주고, 나와 같이 쫓아가도록 해요." 칼자
국의 사나이는 쌀쌀하게 말했다.
"너를 도울 사람은 없다. 네 스스로 내려올 수밖에." 이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아 다들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여인은 다급하게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내려갈 수 없어요. 그 나쁜 녀석이 다리의 혈도를 짚었어요." 그러
나 두 사나이는 들은 척도 않고 창 밖으로 나갔다. 아래쪽에는 벌써 사람들
이 다른 두 필의 말을 준비하고 고삐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말에 올라탔고, 두 필의 말은 즉시 화살처럼 북쪽으로 달려갔다.
여인은 이 말발굽 소리를 듣고는 화가 나서 입술까지 하얗게 질렸다. 그녀
는 발버둥을 치며 한스럽게 외쳤다.
"후레자식들, 나쁜 놈들!"
문이 열리며 소북경이 걸어들어와 그녀의 알몸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
다. 그 여인은 교태스럽게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물론이지."
소북경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는 문이 닫혔다.
황석진은 제법 큰 고을로 거리는 번화하고 시끄러운 곳이다.
지금은 밤이 깊어 갈고리 같은 초승달만이 잘 포장된 길 위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두 마리의 발빠른 말이 도착했을 때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
다. 칼자국이 난 사나이는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그가 여기서 하룻밤을 새울까?"
"그럴 거야."
칼자국의 사나이는 다시 물었다.
"그가 머문다면 어디서 묵을까?"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훅 내뱉었다.
"영춘각(迎春閣)이다."
영춘각은 이 고장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가 잠을 잘
때는 꼭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알고 있었다.
영춘각의 대문엔 빨간 등불이 걸려 있어 지나가는 사내들을 유혹하고 있
었다. 사내들은 여기에 와서 황홀한 밤을 즐기곤 했다.
문은 반쯤 닫혀 있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채찍을 쥐고는 소리치며
말을 타고 들어갔다. 깡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뜬 사나이가 마당가 등나무
아래에 앉아 졸고 있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손에 쥐고 있던 채찍으로 그의 목을 감고 무섭게
말했다.
"오늘 저녁 이곳에 큰 체구에 붉은 옷을 입은 청년이 오지 않았느냐?" 그
는 채찍에 감겨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가 그를 풀어주며 물었다.
"아직 있느냐?"
그는 가쁜 숨을 내 몰아쉬고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있느냐?"
"방금 전까지도 도화청(桃花廳)에서 네 명의 사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
고 있었어요. 네 명이 서로 권하여 이미 취했을 거예요!" 칼자국의 사나이가
놀라며 물었다.
"네 명은 어떤 사람들이지?"
"매우 흉악해 보이는데, 그에게는 예의바르고 친절해요!" "일행인가?"
"그들은 그를 방으로 보냈을 거예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말머리를 돌려 왼편의 복숭아나무 숲으로 들어갔
다. 거기에 있는 도화청(桃花廳이 환했다.
도화청의 탁자에는 술잔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세 개의 술항아리가 모
두 비어 있었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몸을 날려, 한 발로 뒷문을 차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
어갔다.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안에는 네 사람만이 있는데, 네 사람은 나란히 문가에 무릎을 꿇고 앉
아 있었다. 모두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칼자국이 난 사내를 보
자 그들의 안색이 빨개졌다.
네 사람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 평소에는 기풍이 있는 사람들 같이 보
였지만, 지금 네 사람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첫 번째 사람의 얼굴에는 거북이가 그려져 있고, 얼굴에는 <나는 거북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의 머리에는 자라가 그려져 있고 <나는 자라>, 세 번째 사
람은 <나는 돼지>, 네 번째 사람은 <나는 똥개>라고 얼굴에 적혀 있었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문앞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그려
진 그림과 글자들을 보자 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
다. 평생 동안 이렇게 우스운 일은 보지 못한 듯이 허리를 잡고 웃었다.
네 사람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 서려 있었다. 뛰어가서 그를 죽이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네 사람은 모두 다 똑바로 꿇어앉아 있어 뛰지도 못할 뿐 아니라, 꼼짝도
못했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위풍당당한 강동사걸(江東四傑)이 언제 거북이, 자라, 돼지, 똥개로 변하
셨나? 이거 정말 이상한 일이야."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박수를 치며 소리
를 질렀다.
"모두들 여기 와서 명성 높은 강동사걸의 위풍을 보시오. 누구라도 와서
보면, 내가 은 아홉 냥을 주겠소." 꿇어앉아 있는 네 사람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고,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칼자국의 사나이가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정말로 개자식인가 봐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다시 외쳤다.
"여러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정말 억울할 겁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아야 열다섯 살 가량의 소녀였다. 머리를 보석으로 장식하고 얼굴은 연
지와 분으로 화장을 하였지만 아직은 어린애 티를 감출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물었다.
"두 분은 육 도련님을 찾아오신 거죠?"
칼자국의 사나이가 놀라며 물었다.
"네가 어찌 그걸 알지?"
소녀는 우물쭈물 거리며 말했다.
"방금 육 도련님이 술을 많이 마시고 있었는데, 나도 그 옆에 앉아 억지
로 두 잔이나 마셨는걸요!" 칼자국의 사나이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가 여자들 틈에 나자빠져 있는 게 틀림없군!"
소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신들에게 팔라고 하면서 그가 나에게 뭔가를 주었어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다급히 물었다.
"그가 네게 준 것이 뭐지?"
"그것은..... 말 한마디예요."
"말 한마디? 무슨 말?"
"그는 이 말 한마디에 적어도 은 삼백 냥은 받으라고 했어요. 한푼도 깎
지 말고요. 그리고 또 그가 말하길, 두 분께 먼저 돈을 받고 나서 말하라고
했어요." 그녀는 자기가 느끼기에도 황당한지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얼
굴이 붉어졌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가 망설이지도 않고 즉시 백 냥짜리 은표(銀票)를 석
장 꺼내더니 소녀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좋아, 내가 너의 말 한마디를 사겠다."
소녀는 눈이 커지면서 석 장의 은표를 보았다. 말 한마디를 정말로 은 삼
백 냥에 사다니 세상에 이렇게 황당한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리 와서 내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얘기하렴, 저기 있는 짐승들이 듣지
못하게 말이다." 소녀가 머뭇거리며 다가와서는 그의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그가 한 말은 이거예요. 나를 찾으려거든, 먼저 주인 마누라를 찾아라."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
다.
세상에 주인 마누라는 수도 없이 많은데, 그리고 가게마다 모두 주인 마
누라가 있는데, 어떻게 그를 찾으라는 것인가? "만약 당신이 말뜻을 이해
못하면, 한마디를 더 해주라고, 그가 말했어요. 그 주인 마누라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대요." 소녀는 난감해 하는 사나이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더 묻지 않고, 그의 동료에게
손짓을 하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칼자국의 사나이도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빈 술항아리를 번쩍
들어 던졌다. 그 빈 술 항아리는 공교롭게도 두 번째 사람의 머리 위에 떨
어졌다.
"이거 정말로 틀림없는 자라인가 보군."
세상에 예쁜 주인 마누라는 아주 많다. 가장 예쁜 사람은 누구일까? 칼자
국의 사나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가게를 한집 한집 돌아다니며 그 녀석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까?
가게의 주인 마누라를 모두 나오게 해서 하나하나 살펴보면서요?" 붉은 얼
굴의 사나이가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그가 한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뜻이었는데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웃으며 말했다.
"넌 주정(朱停)의 별명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어?"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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