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 아니라 혁명을 시작하라." 2007년 영국 맥주 업계에 등장한 '또라이' 회사, 브루독(Brewdog). 창업자 제임스 와트(James Watt)와 마틴 디키(Martin Dickie)는 미국 스타일의 크래프트 맥주로 라거와 에일 맥주를 고수하는 기성 영국 맥주업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크래프트 맥주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다양한 제조법으로 만드는 수제 장인 맥주로 대기업에서 대규모로 생산하는 라거와 에일 맥주 등과는 차별된다. 스코틀랜드 북동부에서 직원 2명으로 시작한 브루독은 2008년 테스코의 맥주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그 맛을 인정받았고, 이후 빠르게 성장해 이제 임직원 750명을 갖춘 기업이 됐다. 브루독에서 운영하는 전용 바도 현재 전 세계 50여 곳에 이른다.
'펑크족'을 자처하는 브루독 창업자 와트와 디키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혁신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매일경제 더비즈타임스는 최근 제임스 와트 브루독 CEO를 만나 브루독의 21세기형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기성 맥주업계를 부수고 새로운 맥주문화를 창조하겠다는 신념을 알리기 위해 브루독은 '또라이' 짓을 벌였다. 두 창업자가 탱크를 타고 런던을 활보했고, 더 작은 용량의 맥주 잔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난쟁이를 앞세워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했다.
제품 콘셉트와 디자인도 논쟁의 중심에 섰다. 2014년 브루독은 러시아의 반(反)동성애 법에 항의하는 의미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조롱하는 맥주를 만들었다. 맥주 이름은 '안녕, 내 이름은 블라디미르(Hello, My Name Is Vladimir)'. 맥주 레이블에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스타일을 차용한 푸틴의 초상을 그려넣었다. 이 맥주 한 상자를 푸틴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2010년 독일 맥주업체 쇼르슈브라우(Schorschbrau)와 독한 맥주 만들기 경쟁을 펼쳤을 때 내놓은 55도짜리 맥주에는 '역사의 끝(The End of Histor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보다 더 화제가 된 건 병 디자인이었다. 박제된 다람쥐로 맥주 병을 감싼 것이다. 와트 CEO는 "맥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브루독은 자본 조달 방식에서도 비주류의 방식을 선택했다. 창업 3년째인 2009년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해 현재 전체 자본의 20%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조달했다. 투자자 수는 5만여 명에 이른다. 올해는 미국 진출을 앞두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창업자 와트와 디키는 둘 다 24세에 맥주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맛있는 맥주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맥주에 대한 열정을 퍼뜨리겠다는 사명감으로 브루독을 세웠다. 와트 CEO는 젊은 창업가들에게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명을 위해 사업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브루독은 맥주 문화를 재정의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워왔다. 앞으로 맥주 문화가 어떻게 바뀔 거라고 보는가.
▷영국 맥주문화는 다원적으로 바뀌고 있다. 다양한 특색을 가진 맥주가 인기를 얻는 추세다.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변할 거라고 본다. 현재 미국 맥주시장에서 크래프트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6% 정도다. 영국도 10년 안에 미국식으로 변할 것 같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영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2007년에는 0%였지만 지금은 3%까지 성장했다. 아직 작은 시장인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를 만드는 게 나의 목표다.
―브루독은 대형 맥주 업체들을 비판해왔다.
▷큰 브루어리(Brewery·양조장)들의 가장 큰 문제는 맥주 가격을 낮추는 데 급급해서 좋은 맥주를 안 만든다는 것이다. 양으로 승부하다 보니 맥주 맛이 떨어진다. 원료를 줄이고, 물을 타는 방식으로 많은 양을 생산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다 보니 결과적으로 맥주가 특색도 없고 맛도 없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커질 거라는 걸 예감했는지.
▷주류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업계의 관행이라든지 전통에 대해 하나도 몰랐는데 오히려 그 점이 우리를 키운 원동력이 됐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2주 만에 그만둬버렸다. 이런 일을 평생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리고 3년 동안 어선에서 일했다. 선장도 한 번 해봤다.
―창업 첫해에 상당히 어려웠던 걸로 알고 있다. 공동 창업자인 마틴 디키와 사이가 틀어진 적은 없었나.
▷첫해에는 하루하루 회사가 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마틴과는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그와 나는 10세 때부터 죽마고우였고 중·고등학교도 같은 곳을 다녔다. 서로가 뭘 잘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없었다. 서로 언성을 높인 적조차 없다. 나는 마틴보다 아내와 다투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회사를 창업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당신은 맥주 양조뿐만 아니라 마케팅, 재무 등 경영 전반을 모두 공부했다.
▷창립 초기에는 직원에게 말 그대로 돈 한 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를 받고 이익을 창출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직접 모든 분야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노련해진 것 같다. 재무 관련 업무만 해도 건물 집세 내는 것부터 세금 고지와 환급까지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 했다. 돈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했던 거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 전체가 재무에 대한 이해를 쌓을 수 있었다.
―과격하고 충격적인 마케팅 방법을 사용해왔다. 어쩌다 이런 방법을 생각하게 됐나.
▷창업 초기 마케팅에 투자할 만큼 충분한 돈이 없었다. 또 우리는 기존 영국 맥주 문화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충격적인 방법을 써야만 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이익을 많이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영국 맥주의 수준 자체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쓰고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마케팅 수단이 단순히 주목을 끌기 위한 기행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벤트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벤트에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강조했다.
―이 같은 전략이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점차 사람들의 반응이 미지근해질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사업은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것이고, 그 목표를 위해 이렇게 충격 요법에 가까운 마케팅 전략을 계속 쓸 생각이다. 이 같은 전략은 한 방에 기회를 잡는 데 효과적이다. 잘되면 엄청난 성공이고, 안 되면 쪽박을 차는 거다. 다 망해서 내가 고기잡이배로 돌아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일 생각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조금 더 보수적이고 안전한 방향을 찾으라고 한다. 우리의 마케팅 전략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 운명을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게임을 하고 싶다. 브루독은 하나의 긴 여정이고, 여기서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재밌다.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할 뿐이고 누군가 그걸 싫어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니아 층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 있는 맥주를 만들 생각인가.
▷그렇다.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여정에 합류하기를 바란다.
―크라우드펀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는데.
▷우리는 크라우드펀딩을 단순히 자본 조달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건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해나가는 일이고, 우리 회사와 맥주에 헌신적으로 관심을 가져줄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다.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들은 투자자이자 브루독 맥주를 즐기는 소비자이고, 우리 맥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브루독은 크라우드펀딩 투자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것 이외에도 브루독 맥주 할인, 신제품 시음회, 5000~6000명이 모이는 연간 정기 미팅 초대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투자자들은 브루독이 운영하는 바에서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유치한 20% 이외의 자본금은 어떻게 마련된 건가.
▷대부분 우리가 벌어들인 이익을 재투자한 것이다. 이익을 재투자하고, 크라우드펀딩을 받아서 사업을 하고, 여기서 남는 이익을 또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법으로 자본을 조달할 계획이다. 특히 크라우드펀딩은 전망이 밝다고 본다.
―자금 문제로 어려웠던 적이 있는지.
▷2008년 테스코 맥주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뒤 테스코에 맥주를 공급하기로 했다. 맥주를 생산하기 위해 급히 자금이 필요했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한 은행에 가서 다른 은행이 좋은 조건에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고 속인 것이다. 다행히 그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기로 해 맥주를 만들 수 있었다(웃음).
―직원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직원 교육에 투자하고 있고, 맥주 전문가 공인 자격증인 시서론(Cicerone)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교육뿐만 아니라 연금과 의료보험도 따로 제공한다. 또 매달 이익의 10%를 모든 직원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직원에게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생겨야 하고, 직원이 회사의 목적 의식에 공감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 투자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교육 투자를 많이 하면 재정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지 않나.
▷교육에 투자하면 자금이 부족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우리 팀은 말 그대로 끝내주게 훌륭하다. 이렇게 훌륭한 팀을 유지하려면 교육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경영철학은 주류와는 다르다. 처음 2년 반 동안 나 스스로는 봉급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직원 교육만은 그만둔 적이 없다. 창업 초기부터 직원 교육에 투자해온 것이다. 교육에 대해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면 우리 특유의 기업문화와 훌륭한 팀을 꾸려나갈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런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싶었고, 이를 실천한 것뿐이다.
―회사가 성장하고, 덩치가 커지면 문서 작업, 관리 업무가 늘어나면서 혁신성을 잃을 수도 있는데.
▷내가 우리 팀에 항상 강조하는 건 우리는 똑같은 맥주를 마시고, 똑같은 투지(Spirit)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회사의 크기로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바를 실천하고 되는대로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직원들이 맥주를 좋아하는 한 회사가 계속 성장할 거고 모험정신도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렇게 되려고 실제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대기업이 되면 표준화되고, 제도화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고정관념을 부술 거다. 그게 우리의 목표다. 더 혁신적인 기업이 되고, 더 투지를 불태우고, 더 선두에 설 거다.
―젊은 창업가들에게 틈새시장을 공략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뭔가.
▷처음부터 틈새시장을 공략하려고 하면 스스로의 가능성보다는 이 업계, 이 시장에 어떻게 적응할지에만 급급하게 된다. 처음부터 적응하고 순응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사업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그럴 거면 비즈니스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창업을 위해 MBA 등 경영 수업을 듣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MBA는 시간낭비다. 수영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수영을 하러 물가로 가는 게 아니라 부력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가서 원리를 공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업은 학문적 영역에서 배우기보다는 실제 비즈니스에 직접 뛰어들어서 배워야 한다.
―당신은 계속 맥주 양조 과정에 참여하고 있나.
▷그렇다. 아직도 집에서 취미로 양조를 하면서 계속 새로운 양조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이렇게 구상한 양조법을 주말에 공장에 가서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본다. 한 달에 새 맥주는 두 개 정도 만들고 새 아이디어나 콘셉트는 매주 한 개 정도 구상한다. 이 모든 과정이 내게는 정말 재밌고 신나는 일이다.
―다른 사업이나 상품으로 확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맥주에만 집중할 것이다. 사업을 확장하다 보면 원래 갖고 있던 관점과 전략 등 기초가 허약해질 수 있다. 우리는 열정을 따라 사업을 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 제임스 와트는…
▷ 브루독(Brewdog)의 공동창업자인 제임스 와트는 에든버러대학에서 법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2004년 대학을 졸업한 후 3년간 어선에서 일하다가 2007년 동갑내기 친구인 마틴 디키와 함께 브루독을 창업했다. 브루독에서의 공식 직함은 '캡틴(Captain)'이다. 와트는 전 세계 단 11명만 있다는 마스터 시서론(Master-Cicerone·시서론 자격증의 최고 단계) 소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