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기, ‘여인과 항아리/ '우주'(Universe 5-IV-71 #200)./
김환기, '매화와 항아리' 1957년, 유화, 55×35㎝./ ’달 두 개‘, 1961년./ ’산월‘, 1960년.
김환기 성북동 자택, 1954년
✺ KBS1 <예썰의 전당> [35회] 뿌리 깊은 나무 – 수화 김환기
김환기, '매화와 정물', 1950년대 후반
✺ KBS1 <예썰의 전당> [35회] 뿌리 깊은 나무 – 수화 김환기. 2023년 01월 15일 방송 다시보기
김환기 '새와 달'. 1958년, oil on canvas, 60x80cm
김환기, '새와 항아리 52 40'.
김환기, '날으는새 80 3 65 1', 1958년.
김환기, '운월', 1963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달과나무, 1948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 <예썰의 전당> 서른다섯 번째 이야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뿌리, ’수화 김환기‘
지난 2018년, 김환기의 대표작 ‘우주’가 약 132억 원에 낙찰되면서 국내 미술품 역사상 최초로 경매가 100억을 넘겼다. 뿐만 아니라 국내 미술품 경매가 상위 10개 작품 중 9개가 김환기의 것으로, 경매에 나올 때마다 매번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김환기의 경쟁상대는 김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화가로만 김환기를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추상’이라는 미술 언어로 표현해 일찍이 세계 평단에서 호평 받았던 1세대 K-화가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뿌리이기 때문이다. 고국의 전통을 토양삼아 단단히 뿌리 내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웠던 수화 김환기. 예썰 박사들과 함께 김환기에 얽힌 흥미로운 예썰을 풀어보자!
수하 김환기, '우주'(Universe 5-IV-71 #200), 1971년, 254×254㎝,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이 소장
2019년 경매 당시 약 132억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경매 낙찰자인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이 소장 하게 되었다. 김 회장은 ‘우주’가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의 국보 같은 이 작품이 외국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에 한국에서 이 작품을 매입해야 한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 끝에 낙찰을 받았다고 한다.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인 ‘우주’는 독립된 그림 두 폭이 합쳐져 한 작품을 이루는 형태로, 김환기 작품 중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폭화다. 전체 크기는 254×254㎝다.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작가의 말년, 이른바 ‘뉴욕 시기’(1963-1974)에 완성된 작품이다.
수하 김환기(1913∼1974), ‘3-Ⅱ-72 #220’, 1972년, 254×202㎝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수하 김환기(1913∼1974), ‘3-Ⅱ-72 #220(붉은색 전면점화)’, 1972년,2018년 5월 27일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200만홍콩달러(약 85억 2996만원)에 경매 되었다.
200호(254×202㎝) 대작에 한 점도 어긋나지 않은 조형성이 마지막 정점의 완결성에까지 이르는데. 특이한 건 그림 상단의 푸른 역삼각형. 대다수 푸른 색조의 전면점화 가운데 4점 정도로만 파악된 붉은색 전면점화의 희소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혼합구성으로 작품성을 높여왔다. 타계 두 해 전 ‘3-Ⅱ-72 #220’을 그릴 때 김환기가 쓴 일기가 몇 가지 정보를 보탠다. 1972년 1월 30일 재목을 사 틀을 만들고, 2월 1일 틀에 코튼 천을 맸고, 3일 제작을 시작해 9일 완성. 꼬박 엿새가 걸린 그림에 쓴 물감은 ‘로즈 매타’(로즈 매더 컬러)라고 밝혀 뒀다.
김환기, '무제(Untitled)', 1971년, oil on cotton, 255×204.1cm
- 1919년 서울옥션 홍콩 그랜드 하얏트 살롱 경매가 72억 원
화폭에 붉은색 점들이 채워져 있고, 상단과 좌측 하단에 푸른 색면을 함께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김환기가 제작한 작품 중 붉은색 전면점화는 그 수가 매우 적다.
김환기 화가의 작품이 한국 미술품경매에서 가장 비싼 작품 순위 1위부터 6위까지, 또 8위를 전면점화가 싹쓸이하게 됐다. 새롭게 1위에 오른 ‘3-Ⅱ-72 #220’을 선두로 ‘고요 5-Ⅳ-73 #310’(1973·65억 5000만원), ‘12-Ⅴ-70 #172’(1970·4150만홍콩달러·63억 2626만원), ‘무제 27-Ⅶ-72 #228’(1972·54억원), ‘무제’(1970·3300만홍콩달러·48억 6750만원), ‘19-Ⅶ-71 #209’(1971·3100만홍콩달러·47억 2100만원) 등 1∼6위와 더불어 ‘무제 3-V-71 #203’(1971·3000만홍콩달러·45억 600만원)가 8위에 올랐다. 이들 전면점화 외에도 10위에 반추상화 ‘항아리와 시’(1954·2900만홍콩달러·39억 3000만원)가 한 점 더 있다.
✵ 예썰 하나. BTS RM도 푹 빠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그림 ‘우주’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점으로 전체 면을 덮는 김환기만의 시그니처, 전면점화 작품 중 하나인 ‘우주’는 방탄소년단 RM의 인증샷 덕분에 MZ세대 사이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 2m가 넘는 작품 앞에 서 있으면 관객들은 마치 그림 속 별들의 움직임에 휘말려들 듯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자, 세계 미술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김환기의 ‘우주’. 얼핏 보면 카펫(?) 같기도 하고, 그저 똑같은 점을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도 같은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환기, '하늘과 땅 24–Ⅸ–73 #320', 1973263.4×206.2cm, 캔버스에 유채,개인 소장
'하늘과 땅'을 부제로 한 이 작품은 제목이 연상시키듯, 화면을 구분하는 대지의 능선을 따라 하늘의 축과 땅의 축을따라 서로 다른 점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즈음 그는 건강이 악화되서 작업의 힘겨움을 종종 토로했고 이 작품 역시 완성의 날 일기에 ‘죽을 힘을 다해서 완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공간적인 제목을 붙인 유일한 작품으로, 이 당시 그의 일기에 드러나는 도가적 사유를 볼 때 그것은 인간과 자연, 삶 모두를 아우르는 보다 큰 세계를 의미한다고볼 수 있다.
김환기, '무한한 점의 우주', 1963년.
김환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작
‘산울림 19-Ⅱ-73#307’, 1973년, 캔버스에 유채, 264×213cm.
김환기, '십만개의 점', 1973년, 코튼에 유채, 263 205cm.
추상의 세계는 다른 아무 것도 아닌 화면 그 자체의 구성일 뿐이라지만 김환기의 추상에는 자연에서 느껴지는 서정적 감흥이 존재한다. 뉴욕시절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의 점들을 찍으면서 점 하나하나에 조국의 강산과 그리운 사람들을 연상하면서 찍어갔다고 고백하였다. 조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의 표현이 온 화폭 가득히 넘쳐 흐르고 있다.
김환기, '무제 3-V-71 #203', 1971년
김환기, ‘새벽 #3’, 1964-1965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2016년 K옥션 경매에서 13억 원을 지불하고 구매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사들인 역대 최고 금액의 작품이기도 하다. ‘푸른빛의 화가’ 김환기의 서정적인 작품세계가 잘 드러난 회화다.
김환기, 무제, 1966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수화(樹話) 김환기, ‘무제 23-Ⅶ-71 #218’, 1971년, 코튼에 유채, 211×291cm
"거의 완성되어가는
그림을 부숴버렸어
참 용기가 필요해요
부수는 용기가 말이야
자잘한 것은 뭉개버리고
커다란 주제만을 남겼지
한결 좋아졌어요"
-1963, 11. 김환기
김환기, 무제 Ⅴ-66, 1966년, 캔버스에 오일, 178×127cm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 1970년, 232x172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김환기가 뉴욕으로 떠난 후 한국화단에서 잊혀질 무렵인 1970년 고국에 대한 그리움, 별을 노래한 시정이 점화에 녹아들어 김환기의 새로운 추상세계를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김환기는 자신의 근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반추상화에서 화면 전체를 점으로 찍은 추상화로의 변신은 당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점과 선, 면으로 5년 여의 다양한 추상 형식을 시도한 끝에 1969년과 1970년 사이, 점화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 김환기에게 지우인 시인 김광섭(金珖燮)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즉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 수록/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이다. 김환기는 이러한 자신의 점화에 대해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그의 일기에 쓰고 있다. 김환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대작의 점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점화의 작업방식은 화면 전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 하나를 여러 차례 둘러싸 가는 동안에 색이 중첩되고 번져나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체 화면을 메꾸어가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먹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색의 작은 점들을 화면 전체에 찍어나간 작품으로, 무심코 찍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과 번짐의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된다.
‘환기블루’로 일컫는 김환기(1913~1974)의 파란색 점화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수작이다. 김환기는 화면에 다채로운 여러 컬러를 도입했으나, 그중에서도 파란색은 작가가 가장 즐겨 사용한 색이었다. 점화는 캔버스에 유채로 완성되는데, 동양화의 그것처럼 번짐 효과를 한껏 살린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특성이 김환기의 점화에 더욱 신비롭고 묘한 감성을 더한다.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푸른 빛깔은 보는 이를 매료하며 심연으로 이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사는
우리들은 푸른 자기 청자를 만들었고
간결을 사랑하고 흰옷을 입은 우리들은
흰 자기, 저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1957년 프랑스 니스 방송국과의 인터뷰 中
김환기, ‘고향의 달밤, 기좌도(箕佐島)’ 194x145.5cm
“내 고향은 전남 기좌도.
고향 우리 집 문간을 나서면
바다 건너 동쪽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순하디 순한 마을 안산에는
아름드리 청송이 숨 막히도록 들어차 있고
옛날에 산삼도 났다지만 지금은 더덕이요,
복령, 가을이면 버섯이 무더기로 난다.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내 고향이다.”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김환기, ‘새벽별’ 1964년, 캔버스에 유채, 143.3x143.3cm
다른 하나는 물위에 내려앉은 고향의 달일까!
그리운 고향의 출렁임 같은 서정이 아름답다.
✵ 예썰 둘. 피난 때 두고 가려니 눈물이 뚝뚝…김환기가 ‘달항아리’와 진한 사랑에 빠진 이유는?
- 환기블루로 승화된 고향을 향한 그리움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는 ‘우주’와 같은 전면점화 스타일을 만들어내기까지, 화풍의 변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언제나 중심에 있던 것은 ‘우리나라의 미(美)’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환기가 사랑했던 것은 바로 ‘달항아리’! 달처럼 둥글고 뽀얀 백색의 달항아리는 김환기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매화와 항아리’, ‘항아리’, ‘백자와 꽃’ 등 김환기는 달항아리를 그림의 주요 소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달항아리를 예찬하는 글까지 썼다. 6.25전쟁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을 때는 모아둔 달항아리를 우물로 내리면서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는데. 김환기가 이토록 달항아리에 푹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김환기, '매화와 항아리', 1957년, 유화, 55×35㎝.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김환기 ,'무제', 1958년, 종이에 연필과 과슈 , 20x32cm, 환기미술관 소장
김환기, ‘항아리', 1955년. 오른쪽에 서정주의 시 ‘기도’.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사방 탁자’, 1956년/ 김환기, ‘항아리’, 1958년
김환기, '항아리' , 1956년, 100 x 81cm, 캔버스에 유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국제 미술무대를 꿈꾸며 1956년에 파리로 건너간 김환기는 한국적 예술을 더욱 파고들어, 항아리와 산 등 전통과 자연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한편 파리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조형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 작품은 이전과 같은 달과 항아리의 직접적인 비유 대신 도자기 자체의 다양한 둥근 기형과 선반의 수평선을 조형요소 삼아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애장 도자기를 빼곡히 보관한 성북동집 작업실의 나무 선반을 연상케 한다. 전시장 아카이브 공간에서 당시의 선반과 그림 속에 보이는 도자기들 일부를 볼 수 있다.
김환기, ‘달과 매화와 새’, 1959년, 캔버스에 유채, 100×65cm/ 김환기, ‘달과 배’, 1959년
김환기, '달항아리', 1955년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1958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항아리', 1955-56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달밤의 화실', 1958년.
김환기, '항아리', 1958, 50×60.6cm.
김환기, '구름과 달 193 130'.
김환기, '산월', 1962년.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60년, 281×568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수십 년 간 제작연도가 모호했던 이 작품은 작가의 유품속에서 발견한 1960년도 수첩을 통해 제작연도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1959년 12월 30일부터 기록이 시작된 이 수첩에는 작업 중의 김환기의 복잡미묘한 심경이 담겨 있다. 작품을 완성하여 내보낸 1960년 1월 25일 작가는 “나대로의 그림대로 밀고가자”며 소회를 짧게 남겼다. 작가의 말대로 그는 항아리와 여인, 사슴, 구름과 새, 나무와 인물 등을 캔버스 전면에 고루 배치하고, 배경의 불규칙한 색면들로 이 개별적인 요소들 사이를 이어주며 화면에 통일감과 변화를 동시에 주고 있다.
김환기, ‘항아리와 여인’, 1956, 캔버스에 오일, 개인 소장
김환기, '항아리와 여인들', 1951년. 유화.
백자 달 항아리(白磁 壺, 보물제143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는 조형과 미와 민족을
우리 도자기에서 배운다
지금도 내 교과서는 바로
우리 도자기일지도 모른다”
-김환기
✵ 예썰 셋.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도전하다. 김환기 예술세계의 정점, ‘전면점화’의 탄생비화!
‘전통’이라는 토양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운 김환기. 그는 아내 김향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1956년 파리로 떠난다. 먼 타국에서도 우리나라의 미를 잊지 않고, 더욱 심화시킨 김환기는 5회의 개인전을 열고, 피렌체에서 열린 단체전에 초대까지 받으며 세계에 자신의 예술을 알린다.
3여 년의 파리 생활 후 국내로 돌아온 김환기는 홍익대학교 학장직 등을 맡으며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1963년, 그는 돌연 이 모든 걸 버리고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 ‘뉴욕’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김환기는 기존의 화풍을 깨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수많은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김환기의 도전 정신은 ‘전면점화’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고국에 대한 김환기의 애정과 그리움이 담겨있다는데. 김환기가 쌓아올린 거대한 예술세계의 정점, ‘전면점화’의 탄생비화를 밝힌다.
1957년 팔짱을 끼고 파리 거리를 활보하는 김환기(왼쪽)와 김향안.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가 가족들에게 보낸 그림편지, 1956년, 1950년대 미공개 스케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타국에서 끊임없이 한국의 미를 노래한 화가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세계적 이기에는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김환기
김환기, '새와 항아리', 1957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창공을 나르는 새’, 1958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김환기, '산', 1958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 윤이상에게
"네 음악의 뿌리를 한국적인 것에사 찾아라"
-보리스 블라허(Boris Blacher, 1903-1975), 독일작곡가. 윤이상의 스승
오선지 위에 윤이상이 그린 한국의 뿌리
윤이상, ‘7Etudes for Solo Cello 3 Parlondo’
"내 음악은 둥글게 그린 붓글씨와 같다"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여기 파리에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1957, 1. 김환기
김환기, '북서풍 30–VIII–65', 1965년, 178x127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뉴욕 이주 이후 1965년부터 김환기의 작업은 양식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해, 이 작품에서 보듯이 달과 산 등 도식화된 풍경 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들로 대체된다. 물감층이 얕아지면서 마티에르는 사라지고 색면 사이의 경계가 중첩되고 흐릿해진 가운데, 파스텔 색조의 파란색이 차가운 대기의 느낌을 전한다. 작품에서 재현적 풍경 요소는사라졌지만 비가시적인 대기의 느낌을 추상화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은 여전히 작가에게 중요한 추상의 원천이다.
김환기, '새뵥3#', 1964-65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무제', 1966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봄의 소리 4-1-1966'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1913~1974), ‘무제’, 1964-1965년, oil on canvas, 170.7x129.5cm
출품작은 김환기가 뉴욕으로 이주하며 화풍의 변화를 보이던 때로 뉴욕 시기 초기에 해당한다. 출품작이 제작되기 한 해 전인 1963년은 김환기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때이다. 그는 일본 유학과 파리 체류, 그리고 뉴욕에 정착하면서 세계적인 흐름을 포괄적으로 경험해왔는데,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일본 문화를 통해 모더니즘을 수용하게 되고 파리 체류 시기에는 오히려 이국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1963년에는 한국인 대표로 참여하게 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산월을 모티프로 한 <섬의 달밤>, <여름 달밤>, <운월> 총 3점을 출품했다. 출품작은 동양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국적 미를 표현하는데 집중돼 있는데, 그 이유는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시 김환기의 예술의 주체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김환기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국제적인 흐름이 미국 추상표현주의 특유의 거대 화폭과 완전 추상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이에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의 규모는 급격하게 커지게 된다. 화면의 확장으로 인해 무한성과 숭고함이 느껴지는 화폭을 구축하기 시작하는데, 출품작 역시 세로가 1미터 70센티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 작업이다.
김환기, '섬의 달밤', 1959년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그리운 노을은 캔버스의 붉은 점이 되고
뛰어놀던 황금빛 보리밭은 노란 점이 되어
✺ KBS1 [35회] 예썰의 전당
하나의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의 삶뿐만 아니라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이 담겨 있고, 그 때문에 예술가 개인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역사적, 미학적, 나아가 의학, 과학, 심리학, 경제학적 접근까지 다양한 감상법이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썰'을 푸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박사들이 모여 예술 작품을 둘러싼 창의적인 감상법을 공유한다.
그리고 어제의 예술이 품은 '썰'을 통해 오늘의 시청자들에게 통찰과 위로를 전해주고자 한다.
✵ 장르 시사교양
◦ 출연 김구라, 김지윤, 양정무, 조은아, 재재, 심용환
◦ 연출 서재호, 김선희, 황지현, 박정연, 김용태, 노현우, 안효준, 장예솔
◦ 극본 이주희, 정세영, 이미령, 김선영, 곽청흔, 김혜인, 이승후, 김솔빈
김환기, ‘야상곡(Nocturne)’, 1961-1964년, oil on canvas, 65.1×100㎝
김환기, 환기미술관.
김환기, '사슴', 1958
김환기, '산 65 81', 1958년.
김환기, '산', 1958, 캔버스에 유채, 100X73cm, 서울미술관.
김환기, ‘날으는 새 두 마리’, 1962년
김환기, ‘산1955-56’,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김환기, ‘론도(Rondo:회선곡回旋曲), 1938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풍경’, 1930년 후반, 캔버스에 오일, 리움미술관 소장
김환기, ‘정물’, 1957년, 96×146cm
✵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3) 화가는 전남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출생이다. 1936년 일본 니혼 대학 미술학부를 마치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46년-1949년 사이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신사실파전(新寫實派展)에 출품했다. 여러 차례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1952년 홍익대 미술학부 교수, 1954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엠베지트 화랑을 위시하여 1957년 파리·니스·브뤼셀 등에서 계속 개인전을 가졌다. 1959년 귀국하여 홍익대 교수·초대 예술원 회원·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브라질로 갔고, 동 국제전의 명예상을 받았으며, 그곳 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1964년 이후 부인인 수필가 김향안(金鄕岸, 본명 변동림)과 함께 미국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 중 그곳에서 사망했다.
2015년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 <19-Ⅶ-71#209>은 서울옥션 홍콩 경매서 한화 47억 2100만원(31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이로써 이전의 최고가로 남아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국내 작가 미술품 경매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2019년 11월 23일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Universe 5-IV-71#200>은 크리스티 홍콩 경매서 한화 132억 3600만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한국 미술품 중 최초로 한화 100억을 넘긴 작품이 되었다.
한국의 서양화가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김환기는 추상 계열에서 벗어나 구상을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조형수단의 자율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또한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면, 선, 형태, 색체, 리듬 등으로 대상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표현했다. 작가는 달, 도자기, 산, 강, 나목(裸木), 꽃, 여인 등 한국의 전통 소재를 통해 한국적인 미와 풍류의 정서를 절제된 형식으로 표현했다.
주요 작품에는 ‘종달새 노래할 때’(1935), ‘론도’(1938), ‘야상곡(夜想曲)’, ‘산월(山月)’, ‘항아리와 여인들’(1951), ‘항아리와 매화’(1954), ‘영원의 노래’(1957), ‘산’(1958), ‘달과 산’(1960), ‘18-VII-65 밤의 소리’(196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Echo 22-1’(1973), ‘09-05-74’(1974) 등이 있다.
김환기, '무제'(작품 부분 확대), 1969-1973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김환기, ‘영원의 노래’, 1957년, 캔버스 유채, 162.4x130.1cm, Whanki Museum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ㅡ김환기의 1973년 10월 8일 일기 중에서.”
김환기, ‘항아리’, 1958년, 현대화랑./ 김환기, ‘귀로’, 1950년대, 위키백과.
/ 김환기, ‘항아리와 날으는 새’, 1958년, 동아일보./ 김환기, ‘새벽별’, 1954년, 현대화랑.
/ 김환기, ‘종달새 노래할 때’, 1935년, 캔버스에 유채, 178×127cm(김환기가 직접 원색엽서 도판)
/ 김환기, ‘판자집’, 1951년, 아트조선.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35회] 뿌리 깊은 나무 – 수화 김환기 / 2023년 1월 15일(일) 22:30 방송/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