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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혼수는 웃음을 멈추고는 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말했다.
"육형은 이미 우리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셨습니까?" 철면판관이 말했다.
"우리들은 이번에 명령을 받아서 왔습니다. 육형께서는 수고스럽겠지만
우리들과 같이 가시지요. 우리들은 당신을 모셔 가기만 할 뿐 아니라, 육형
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드립니다." 육소봉은 마침내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우리들이 있는 곳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여기에나 있지요!" "당신들이 이
미 이 일을 알고 있다면, 당장 가서 당신네의 그 성이 위(衛)인 사람에게 알
리시오.. 주정을 괴롭히면 내가 즉시 당신들의 108 청의루를 불태워 버리겠
다고!" 철면판관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들이 주정을 죽이면, 당신이 더 좋지 않나요?" "당신들은 듣지 못했
나 보군요. 나는 원래 과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우리들과 같이
간다면, 나도 절대로 주인 여자를 과부로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의 이 말이 다 끝나자,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이 언제 들어왔는지 아무도 몰랐
다.
그는 손으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손이 없었다.
석양이 창 밖에서 비쳐 들어와 문을 두드린 사람의 얼굴을 잘 볼 수가 있
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왼쪽이 반이나 없었다. 상처는 이미 쪼글쪼글해졌고, 그
의 코와 눈은 모두 비뚤었다. 하나의 완전한 코가 아니라, 반쪽뿐이었고, 두
개의 눈이 아니라, 하나의 눈이었다.
그의 오른쪽 눈도 이미 검고 깊은 구멍만 남아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칼
로 열십자가 그어져 있었다. 손 하나는 손목이 절단되어, 지금은 오른쪽 손
목에 섬뜩한 빛이 나는 쇠갈고리가 끼워져 있었고, 왼쪽 손목에는 사람 머
리보다 더 큰 쇠공이 끼워져 있었다.
철면판관과 그의 동료가 이 사람에 비하면 영준하고 말쑥한 미소년 처럼
보였다.
지금 그는 문 안쪽에 서 있는데, 오른쪽 손목의 쇠공으로 문을 치고는 말
했다.
"나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방에 들어 갈 때 반드시
문을 두드리지요!" 그가 이 말을 할 때 반쪽만 남은 얼굴은 계속 실룩거려
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사람을 보고 철면판관은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로 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지를 못했다. 구혼수는 두어 발자
국 물러서서 엉겁결에 물었다.
"유여한(柳餘恨)?"
이 사람의 목에서는 녹슨 칼 같은 웃음소리가 났다.
"세상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드문 일이야!" 철
면판관도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이 정말 그 옥면낭군(玉面郎君) 유여한입니까?" 이런 얼굴을 한 사람
이 정말 옥 같은 얼굴의 도령이었을까?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울하
고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옛부터 정이 많으면 한이 많다고 했고,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더니.....
옥면낭군은 이미 죽고 한 많은 유여한만 이렇게 살아 있다." 철면판관의 얼
굴색이 변했다.
"당신..... 당신은 도대체 왜 여기에 왔습니까?"
그는 이 사람에게 아주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
었다.
유여한은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
"십 년 전에 유여한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뜻밖에도 지금 이렇
게 살아 있어 놀랐겠지. 나는 원래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당신들도 내
가 죽었기를 바랐겠지?" "우리가 왜 당신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겠습니까?"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죽일 것이니까....." 철면판관은
멍하니 있었다. 구혼수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다.
이때, 그들은 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밖에 서 있었지만, 삽시간에 안으로 들어왔
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그의 앞에서는 얇은 종이처럼 변해 버렸다.
그는 부딪치지도 않고, 발로 차지도 않았다.
쉽게 앞으로 걸어 들어왔는데, 그의 앞에 있던 문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포악하게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점잖고 고상했으
며, 글만 읽는 서생같이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람입니다. 문을 두드렸으니까요."
철면판관은 그의 웃고 있는 눈 속에서 칼날 같은 살기(殺氣)를 느낄 수가
있었다.
구혼수는 뒤로 물러서며 놀라 외쳤다.
"소추우(簫秋雨)!"
그 사람도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당신은 과연 견문이 넓고, 안목이 높으시군요." 철면판관은 놀라
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로 단장검객(斷腸劍客) 소추우라구요?"
"가을 바람과 가을 비는 근심으로 애가 타지요. 그래서 그때마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집니다. 나는 언제나 이것이 걱정입니다!" "무슨 걱정입니까?"
"지금 나는 걱정 중이라서 당신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유형이 당
신을 죽이겠지요?" 철면판관은 갑자기 크게 웃었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마
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구혼수는 매우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도망갈
길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찾고 있어요? 혹시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이 은갈고리가 아닙니
까?" 또 한 사람은 창가에 서 있었다. 검고 여윈 얼굴이 자그마했는데, 얼굴
에는 온통 털투성이였다. 손에는 구혼수의 은갈고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을 대신해서 내가 은갈고리를 가져왔다, 가져가라!" 가져가라는 말과
함께 이 은갈고리가 천천히 구혼수를 향해 날아왔다. 느려서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래에서 받쳐들고 있는 것 같았다.
철면판관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천리독행(千里獨行) 독고방(獨孤方)?"
독고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일이 드문데 이번은 예외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문에 나타나서는, 부서진 문을 두
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리고는 또 갑자기 창가에 나타나서 안으로 들어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람입니다. 문을 두드렸거든요."
문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문을 두드리곤 창을 통
해 들어온 것이다.
구혼수는 그의 갈고리를 받고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도 우리들을 괴롭히려고 왔습니까?"
독고방이 대답했다.
"나는 짐승은 죽이지 않고, 사람들만 죽이지."
그는 아예 긴 의자를 옮겨 창가에 앉았다. 창 밖은 어둠이 더 짙어졌다.
육소봉은 여전히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여한, 소추우, 독고방--강호에서 이들 세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
었다. 그러나 지금 육소봉을 침대 아래로 내려오게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
이었다. 그는 거의 이 침대에 눌러앉을 준비가 다 된 것 같았다.
유여한, 소추우, 독고방 이 세 사람은 강호에서 가장 괴팍하고, 가장 기이
한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 그들이 모두 여기에 모였다. 갑자기 여기에 나타
난 것은 왜일까? 구혼수가 창백해진 얼굴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
"청의루와 세 사람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세 분은 왜 우리 형제를 찾아
오셨소?" 소추우가 말했다.
"그저 즐거워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항상 누구든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오늘도 너희들을 죽이는게 즐
거워서 온 것이다!" 구혼수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 즐겁지 않다면?"
소추우가 말했다.
"내가 즐겁지 않을 때는 너희들이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하면, 나도 죽
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도 해!" 구혼수가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철면판
관이 몸을 날렸다. 손에는 한 쌍의 검은 판관필을 들고 재빨리 유여한의 천
돌(天突), 영춘(迎春) 두 곳의 혈도를 공격했다.
그가 사용한 기습 공격은 조용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고도 신속해서 효
과가 있었다.
유여한은 이 판관필을 전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오히려 한걸음 다
가서니 뚝, 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한 쌍의 판관필이 이미 그의 어깨와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때 그의 왼쪽 손목이 철면판관의 얼굴을 후려쳤다. 철면판관의
얼굴은 대뜸 뭉개져 버렸다. 그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
고는 넘어졌다.
유여한이 오른쪽 쇠갈고리로 그의 몸을 찍었다.
한 쌍의 판관필이 아직 유여한의 피와 살 속에 있었다. 그의 혈도까지는
가지 못하였지만 깊숙이 찔렸다.
유여한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차갑게 웃으며, 철면판관의 피범벅이
되어 엉망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얼굴이 원래가 철판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군!" 쇠갈고리를 휘두
르자, 철면판관은 진짜 판관(判官)을 만나러 창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때
구혼수의 은갈고리도 창 밖으로 날아갔다.
구혼수의 두 팔뚝 관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추우의 손에 쥐어진 한 자루의 단검에서도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구혼수를 바라보고 말했다.
"너의 양손을 보니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사람의 혼도 빼앗을 수가 없겠
군!" 구혼수는 계속 딱딱,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갑자기 큰소리
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냐?"
소추우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너를 죽이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지. 네가 돌아가서 너희들 두목
에게 두 달 동안 몸조심하라고 전해라." 구혼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한마
디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문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독고방이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너는 원래 창문으로 들어왔으니 창문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 구혼수
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발을 돌렸다. 창문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이렇
게 모두 창문으로 나갔다.
유여한은 몸에 박힌 판관필을 뽑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의 깊
어가는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추우가 다가가서 가볍게 판관필을 뽑아 주었다. 그는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고, 그의 냉혹한 눈 속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유여한은 한숨을 길게 쉬고는 말했다.
"애석하다, 애석해."
소추우가 물었다.
"이번에도 죽지 못한 것이 아쉬운 건가?"
유여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에서 한 사람이 죽고 소동이 나서 엉망이 되었지만, 육소봉은 아무
것도 못 본 것처럼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방 안에서 살인이 벌어졌으나 육소봉은 본 척도 하지 않는 것이다. 더 이
상한 것은 이들 세 사람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을 전혀 모르는 것 같
았다.
방안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을 뿐,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누구도 가지도 않았다.
이때 솔솔 부는 바람 속에서 은은한 음악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너무 아
름다워서 신선의 음악처럼 들렸다.
독고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셨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육소봉도 듣고 있었다.
이런 음악소리는 어느 누구도 듣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는 이 피비린내로 가득 찬 방이 향기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
다. 향기는 더욱 짙어져서 바람을 타고 음악소리와 같이 실려왔다. 마치 온
세상이 이 기묘한 향기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어두운 방안이 갑자기 밝아지
기 시작했다.
육소봉은 마침내 눈을 뜨고는 방안 가득히 춤추고 있는 꽃을 보았다. 여
러 종류의 꽃이 창 밖으로부터 날아 들어와 가볍게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
은 마치 꽃으로 짠 깔개가 문 밖에서부터 덮여 있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천천히 문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육소봉은 많은 여인을 보았다. 추하게 생긴 여자도 있었고, 아주 예쁜 여
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
는 새까맣고 부드러운 비단 도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바닥에 끌려서 꽃 위
에도 끌렸다.
그녀의 흑단 같은 머리털은 양 어깨에 놓여 있고, 얼굴색은 아주 창백했
다. 얼굴에는 흑단 같은 눈동자가 아주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장식도
없었고, 다른 색깔도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조용히 꽃 위에 서 있으니, 바닥의 오색찬란한 꽃들이 무
색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이미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속세를 벗
어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유여한, 소추우, 독고방은 이미 조용히 벽 구석으로 걸어가 있었는데, 매
우 공손해 보였다.
육소봉은 거의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옷의 소녀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두 눈동자는 봄날 이른 아침
에 장미 꽃잎 위에 맺힌 맑은 이슬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해질 무렵
먼산 위의 연못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가 더욱 신비스러웠다. 그것은 밤에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같이 연하고 길게 끌려서, 다른 사람을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육소봉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파란 하늘의 한점 하얀 구름이 갑자기 바람을 타고 인간 세상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육소봉은 다시 침대에 눕지 않고 일어났다.
그는 화살처럼 급하게 일어나, 침대 위의 천장을 뚫어 버렸고 퍽, 하는 소
리와 함께 천장을 부수어 버렸다.
그가 낸 구멍을 통해서 달빛이 들어왔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눈이 매우 크고, 차림도 매우 얌전한 소녀가 검은 옷의 소녀 뒤에 서있었
다. 육소봉이 귀신을 본 것처럼 급하게 도망을 가자, 이 소녀도 놀라 조용히
물었다.
"공주님이 그에게 이렇게 예를 갖추어 대했는데, 그는 왜 도망을 갔을까
요? 그는 뭐가 무서운 거죠?" 검은 옷의 소녀는 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흐르는 구름 같은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일어났
다.
또렷한 눈동자 속에는 이상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조
용히 말했다.
"그는 확실히 총명한 사람이야, 아주 총명해!"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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