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이 쓴 책 이름입니다. 피폐해져 가는 70년대 우리 농촌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절절한 애정으로 풀어냈던 책이지요.
다시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매달립니다. 오늘 오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여의도의 한 중국집에 7사람이 모였습니다. 부천실업고등학교 설립자이며 운영자인 이주항 선생과 그의 부인 박수주 선생, 서울예전 연극학과 출신이며 부천학교 국어선생님인 김진호, 공연기획 전문 회사 <메두사>의 대표 박혜숙 선생, 극단 한강의 장소익 대표와 빈곤층 아이들을 연극으로 지도하는 ㅇㅇㅇ 선생, 그리고 나. 연극, 혹은 예술이라는 힘을 빌어 금년 한해 <아이>들을 이끌어 주기 위해서 이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실은 제가 제안을 하고, 연락을 해서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렀습니다.
<이주항> 부천실업고등학교(www.jalani.or.kr)를 소개할께요.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이 학교에는 산업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애들이 100명쯤 다니고 있습니다. 일단 이 학교에 들어오면 낮에는 공장에서 노동을 해야하고 밤에는 4시간의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3년의 과정을 거치면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해 줍니다. 하지만 가혹한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입학생의 삼분의 일 정도만 졸업하는 실정입니다. 말하자면 옛날의 야간 재건학교라고나 할까, 아니면 야학의 규모가 좀 거대해진 수준입니다. 선생님은 정규직이 12명 있고, 무보수 강사의 지원도 받습니다. 평생교육법에 의해서 관리되는 이 학교는 학교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정식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애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 60만원중 일부를 학비로 받고, 지방자치 단체의 일부 지원금, 독지가의 후원, 그리고 자동차 보험대리점으로 등록하여 일부 수익을 내서 보태 씁니다. 선생님들의 월급이 평균 150만원 정도인데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애들 키우는 보람으로 버팁니다.
애들이 문제지요. 거의 전원이 결손 가정 출신입니다. 가정에서 일단 이 학교에 보내지면 가족과 거의 연을 끊고 삽니다. 육체적으로,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한계상황에서 버티는 인생들입니다. 극단적인 소외감, 앞이 안보이는 절망감과 상실감에 젖어 있는 이 아이들을 보듬고 사는 것이 우리 부부의 숙명입니다. 오늘 좋은 연을 맺고 앞으로 많이 도와 주세요.
<김진호선생> 애들이 엄청 경계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지원한다고 해도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안됩니다. 애들의 특성상 성격을 맞춰 가면서 교육하기 힘들 거에요. 솔직히 연극반 모집한다고 해도 들어 오지도 않아요. 그러나 나는 생활연극을 통한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태룡이 형은 금년 1년동안 애들에게 뭔가 주입하겠다는 의욕이 있는 모양인데 꿈 깨세요. 애들과 코드를 못맞추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김태룡> 애들에게 뭔가 기여하고 싶습니다. 가칭 <서울 가서 구경하는 반>이라는 특별활동반 하나를 내가 맡게 해 주십시오. 매월 한차레씩 공연을 보여준 후 저녁을 같이 먹으며 공연 내용을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난타>,<지하철1호선>,<영화 말아톤>, 그리고 4월의 <창경궁 벚꽃 음악제>,<하드락 카페>...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도 예술의 향기가 있는 작품을 정기적으로 감상하다 보면 그 애들의 가슴에 어떤 희망의 새싹이 움틀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소익 대표> 소외 계층 청소년을 상대로 연극교육을 지속적으로 하면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크게 성장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 보고 싶습니다. 매월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두번씩 주십시오, 내 생활 근거지는 충북의 한 폐교인데 매월 두번씩 올라 오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극단도 재정이 매우 열악하므로 연극 재료비와 파견교사 인건비에 최소한의 재정지원이 있다면 좋을텐데요...
돈이야기가 잠시 주제가 되었습니다. 내가 연간 1천만원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는 애들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조사와 연구를 많이 해 나가기로 했지요. 금년 한해 손을 맞춰 보자고 다짐하며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내와 나는 연초에 이 애들을 돌보기로 합의했었습니다. 그 결심을 여러번 시험하고 다듬어 이제 구체화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내 역할이라고 해 봐야 엄밀히 말하면 극장표 사주고, 밥값 내고, 이야기판 만들어 주는 치닥거리 정도지요. 그리고 연극반 활동비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아내가 극장이나 밥집을 이리저리 예약하고, 지도교사와 협의를 하느라 바빠질 것이구요.
나는 애초부터 100만원만 출연하기로 아내와 약속했습니다. 아내 정서로는 그 이상의 지원하는 것이 큰 부담일 것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나머지 돈은 내가 지인들에게 쿠폰을 팔아 장만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일을 벌려 주위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좋은 일을 하는 친구를 기쁜 마음으로 도와줄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 쿠폰 사는데 관심있는 사람은 연락바랍니다.
부천학교는 원래 제 고등학교 동기동창 <이 규>가 위의 <이주항> 선생과 같이 1989년부터 신월동 판자집에서 시작했었고, 지금도 <이 규>의 처는 이 학교의 상담 선생으로 봉사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이 학교를 후원하던 <최명규>의 손에 끌려 인연을 맺었습니다. 몇번 선생님들의 회식비를 지원해 준 이후 앞으로 이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몇년간 재정 지원을 좀 해 보았는데, 언발에 오줌 누기였습니다.
나의,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어린 나이에 황폐해져 있는, 우리 자식 또래되는 애들의 가슴에 훈김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다면 그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