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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vAlign=top><B>시는 묘사여야 하나 진술이어야 하나</B><BR><BR>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BR><BR><BR> 시가 구체적인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초의<BR>자유시로 일컬어지는 주요한의 [불놀이]는 저녁노을에 대한 묘사가 잘 된<BR>시입니다만 죽은 연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기에 서사적인<BR>구조, 즉 이야기성을 지닌 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근대시의 출발이라고<BR>볼 수 있는 [불놀이]부터 시가 묘사인지 진술인지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BR> 이야기시의 대가는 백석이며, 80년대에 백석의 의의를 부각시키면서 이<BR>야기시론을 전개한 시인은 [대꽃]과 [성에꽃]을 낸 최두석입니다. 80년대<BR>에 이른바 ‘민중시인’으로 불려진 이들은 거의 다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BR>사보다는 이야기성을 강조한 시를 썼습니다. 최근에 나온 김진완의 시집 <BR>[기찬 딸](천년의 시작)을 보고 이야기시의 전통이 훌륭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BR>수 있었습니다. 일단, 묘사와 진술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까요?<BR><BR>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BR>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BR>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BR>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BR>억년 비정의 함묵에<BR>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BR>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BR>흐르는 구름<BR>머언 원뢰遠雷<BR>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BR>두 쪽으로 깨뜨려져도<BR>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BR><BR>-‘바위’ 전문 <BR><BR> 유치환의 이 작품은 바위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대신 단단하고 비정한<BR>바위의 본질을 잘 파악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는 이야기시<BR>가 아니라 묘사의 시입니다. 이야기라는 것은 줄거리가 있는 법인데 이 시<BR>는 나의 희망과 결심을 피력한 관념 편향의 시입니다. 시인은 단단하고 비<BR>정한 바위의 본질을 생각하고는 바위를 본받고 싶어하지요. 또한 나약한<BR>인간의 본성을 안타까워하면서 삶의 가치를 바위처럼 견고하게 추구하겠<BR>노라고 굳게 마음먹고 있습니다. 묘사의 효과는 시인이 사물을 얼마나 구<BR>체적으로 묘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구체적인 묘사’란 존재와 깊은 관<BR>련을 맺고 있는데, 존재란 것은 인식의 문제로 연결되지요. 전통이나 관습<BR>의 힘 보다는 사물이나 대상을 구체적으로 그림으로써 시가 힘을 얻는다는<BR>말입니다. 존재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사물 혹은 대상에 대한 적절<BR>한 묘사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BR> 하지만 진술, 즉 이야기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이 있어야 합니다. <BR>우리가 이야기를 왜 하는 것입니까? 내 주장을 펴기 위하여, 결국은 내가<BR>무엇을 주장하여 타인을 설득하고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BR><BR>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한복판에 순이야<BR>너와 나는 지나간 꽃피는 봄에 사랑을 한 어머니를<BR>눈물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BR>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BR>오빠는 가냘픈 너를 근심하는,<BR>서글프고 가난한 그늘 속에서도<BR>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이곳 청년을 가졌었고,<BR>내 사랑하는 동무는.....<BR>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 <BR><BR> -‘네거리의 순이’ 제 2연<BR><BR> 흡사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 같은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듯이 전개되는<BR>이 시는 카프문학의 맹장 임화가 노동운동의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쓴 것입<BR>니다. 비장하고 처절하지만 당대적 의미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BR>다. 시 자체는 무척 쉽지만말입니다. ‘이야기시의 대가’라고 한 백석이 풍<BR>경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볼까요. 현대식 표기로 고칩니다. <BR><BR>흙꽃 이는 이른봄에 무연한 벌을<BR>경편철도輕便鐵道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 <BR><BR>멀리 바다가 보이는<BR>가假 정차장도 없는 들판에서<BR>차는 머물고<BR>젊은 새악시 둘이 내린다 <BR><BR> -‘광원曠原’전문<BR><BR> 제목은 ‘넓은 들판’이지요. 협궤열차가 정거장도 없는 어느 들판에 멈춰<BR>섰는데 내리는 사람은 단 둘, 젊은 색시입니다. 무언가 사연이 있을 법합니<BR>다. 이 시는 비록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시인은<BR>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지 않고 보따리째로 독자에게 내민 것이지요. <BR><BR>신살구를 잘도 먹더니 눈 오는 아침<BR>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BR><BR>인가 먼 산중에<BR>까치는 배나무에서 짖는다<BR><BR>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버지가 미역국을 끓인다<BR>그 마을의 외딴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BR><BR><BR> - ‘寂境’전문<BR><BR>이것 역시 백석의 작품입니다. 제목은 ‘고요한 경계’나 ‘고요한 상태’를<BR>뜻하겠지요. 나이 어린 며느리의 출산을 기뻐하며 미역국을 끓이는 이는<BR>홀아비인 시아버지입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부재하는 이유는 말해주지<BR>않고 있습니다. 이웃집 어린 아낙의 출산 소식에 마을의 외딴집에서도 축<BR>하의 뜻을 전하고자 산국을 끓입니다. 고즈넉한 산골마을, 어느 일가의 고<BR>요한 외로움을 가족 간의 정, 이웃 간의 정이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독자의<BR>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집니다. 이 작품은 이야기시의 전형입니다. 하지만<BR>이 시에는 주의. 주장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백석 시의 생명력이 여기에<BR>서 기인하는 것이지요.<BR> 시에서는 시적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도 중요하고 시적 진술이라고<BR>할 수 있는 이야기성도 중요합니다. 시인에 따라서, 또 시인이 쓰는 각각의<BR>작품에 따라서 비중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시의 언어와 일<BR>상의 언어는 같은가 다른가를 갖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BR><BR>가갸거겨<BR>고교구규<BR>그기가<BR><BR>라랴러려<BR>로료루류<BR>르리라<BR><BR> 한센병에 걸려 불우하게 살다간 시인 한하운이 쓴 [개구리]의 전문입니<BR>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교과서에나 볼 수 있는 한글 자모음의 나열,<BR>그 가운데 몇 개를 뽑아놓았군요. 이 시에 무슨 뜻이 있을까요? 저는 뜻이<BR>있다고 생각합니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이렇게 표현해본 것일 수도 있고,<BR>개구리 울음소리와 아이들 글 배우는 소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본 것일 수<BR>도 있고, 자신의 우울한 심사를 개구리 울음소리에 빗댄 것일수도 있습니<BR>다. 마음껏 울 수 있는 개구리의 자유와 울음조차 울 수 없는 자신의 한계<BR>상황을 비교해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신세가 한 철 울다 가는 개구<BR>리와 다를 바 없어, 이렇게 한글 자모음을 빌려 울고 있음을 고백한 것인지<BR>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다르다고요? 여러분의 생각이 물론 맞<BR>는 것일 수도 있지요.<BR> 이것이 시이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해석을 해보는 것이지, 일상용어<BR>의 차원이라면 단순히 한글 자모음을 나열해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BR>런 것이 어찌 시라고 할 수 있냐고요? 아, 분명히 시입니다. 시인인 한하운<BR>이 시라고 발표했는데 시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BR> 시는 의미전달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지 전달, 마음과<BR>정情의 전달을 꾀할 때도 있습니다. 충격도 주고 감동도 주고 깨달음도 줍<BR>니다. 일상어의 목적은 의사소통과 정보전달에 있지만 시어의 목적은 ‘낮<BR>설게 하기’,‘뒤집어 생각게 하기’ ‘일상어 넘어서기’등에 있습니다. 일상<BR>어의 세계에서는 언어와 사물과의 관계가 1:1이 아니면 곤란합니다. 밥이<BR>영어meal, prey,one's share처럼 사전에 나오는 의미 중 하나로 쓰이지<BR>않으면 우리 사회에 큰 혼란이 올 것입니다. 밥이 meal을 가리킬 때는<BR>meal만 가리켜야지 meal이기도 하고, prey이기도 하고 one's share이기도<BR>하다면 곤란하다는 거지요. 시인은 ‘밥’이라는 낱말의 사전적인 의미에 충<BR>실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합니다. 특히 시인은 언어와 사물과의 관계를<BR>1:多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어 중의 밥은 meal, prey, one's<BR>share 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포함하기도 하는데, 그런 점을 시어에 애매<BR>성이라고 합니다. 일상어는 명확성을 지향하는 반면 시어는 애매성을 지향<BR>하므로 일상어와 시어는 다르지만 사용되는 언어 자체는 다르지 않습니다. <BR>밥을 일상적으로 쓸 때는 ‘밥’이라고 하고 시에 쓸 때는 ‘법’이라고 하지 않<BR>거든요. 다 ‘밥’이라고 쓰지만 해석은 달리 하게 됩니다. <BR><BR>이런 밥,<BR>부잣집 개라면 안 먹일 거야<BR>기계라도 덜거덕 소리가 날 거야<BR>우리들은 식사를 거부하고<BR>마지막 지점,<BR>옥상으로 모였다 <BR><BR> - 박노해, ‘밥을 찾아’제 1연<BR><BR><BR>이 시에서의 밥은 우리가 끼니때마다 먹는 그 밥과 일용할 양식 정도를<BR>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런 시를 보십시오.<BR> <BR>밥으로 苦痛을 만든다 밥으로 시를 만든다 밥으로 철새의 날개를 만든다 밥<BR>으로 오르가즘을 만든다 밥으로 양심가책에 젖는다 밥으로 푸념과 하품을 만<BR>든다 세상은 나쁜 꿈 나쁜 나쁜<BR> 밥은 나를 먹고 몹쓸 시대를 만들었다 밥은 나를 먹고 동정과 눈물과 能辯 <BR>을 만들었다, 그러나<BR> 밥은 希望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 오<BR>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BR><BR> -이성복 ‘밤에 대하여 ’끝부분<BR><BR> 국어사전 속에 나오는 밥의 의미만을 가지고는 이 시를 이해할 수 없습<BR>니다. 밥으로 고통. 시. 철새의 날개. 오르가즘등을 만든다고 하는 것도<BR>이상야릇하지만 밥이 나를 먹고 눈물과 능변을 만들고, 밥이 곧 국법이고,<BR>끝에 가서는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라고까지 하니 몹시 혼란스럽습니<BR>다. 이 시에서는 밥이 상징의 기재機才로 쓰였기 때문에 사전적인 의미 영 <BR>역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BR> 요즈음에는 시인들이 ‘시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합니다. <BR>소월과 영랑, 백석과 이용악, 미당과 청록파 3인의 시를 보면 정제된 시어<BR>선택이 시 쓰기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BR>않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몇 명 시인에 의해 씌어진 해체시(혹은 포스트<BR>모더니즘 시)의 등장 이후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가 아니어도 무방하게 <BR>되었습니다. 패러디(남의 작품 변용하기)를 잘하는 사람, 혼성모방(남의<BR>작품 짜깁기)을 잘하는 사람, 몽타주와 콜라주를 잘하는 사람, 펀(pun, 말<BR>장난)의 재주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시인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BR>다. 하지만 시가 언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어는 우리의 정서를 자극<BR>하는 데 이용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풍부한 애매성을 지니는 것이 좋습니다. <BR>애매성이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 가지 뜻을<BR>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다중의 의미’를 뜻합니다. 자, 이제 ‘같지만<BR>다르다’라는 앞에서 한 제 말의 뜻을 이해하셨습니까? <BR><BR><!--"<--></TD></TR></TBODY></TABLE><BR></P><!-- end clix_cont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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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림 시인님~ 늘 좋은 자료를 구하느라 애쓰고 계시는군요. 아버님에 대한 기사글도 감사드립니다. 이 자료도 좋은 자료라 구로문협에 올리겠습니다.이리 봉사 하시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람이 되는지 자신의 깨달음이 있을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립니다.
첫댓글 미림씨 좋은 자료 잘 읽고 갑니다.
박미림 시인님~ 늘 좋은 자료를 구하느라 애쓰고 계시는군요. 아버님에 대한 기사글도 감사드립니다. 이 자료도 좋은 자료라 구로문협에 올리겠습니다.이리 봉사 하시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람이 되는지 자신의 깨달음이 있을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