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함벽루(涵碧樓 창건-김영돈), 해인사 여행기
2005. 4. 9(토) 18:00시 노란 개나리와 하얀 목련이 봄비를 맞으며 밝고 화사하게 피어있는 늦은 오후다.
우리 안사연 식구(발용, 상석, 윤만, 태영, 태우, 항용, 권행순, 이명희)들은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황강가에 고려 충숙왕 8년(1321) 합주지사를 지낸 상락공의 아들 김모(金某)가 창건하였다는 함벽루를 찾아 장도에 올랐다.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내 고향 감곡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구마고속도로 논공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내 합천을 향해 달린다. 빗속을 뚫고 달리는 차안에서는 이야기 꽃과 함께 우럭과 아나고를 안주삼아 소주잔이 오고간다.
어느새 22:00시가 조금 지나 가야산 해인사 지척에 있는 야로마을 국일모텔 숙소에 도착했다.
4.10(일) 08:00시 한정식으로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고, 길을 잘못찾아 합천호를 돌고 돌아서 09:20분쯤 함벽루에 도착하니 멀리 대구에서 온 부사공파 환묵 대부가 먼저 환한 미소를 띠며 반긴다. 그리고 합천신문사 박환태 사장, 향토사학자 변용규님, 합천문화원 이호석 부원장과 반갑게 수 인사를 나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곳 함벽루를 찾아오기까지 이정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침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면서 빙빙 둘러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민원으로 합천군 관계부서에 건의를 하기로 하였다.
함벽루를 찾아가려면 합천 읍내에서 합천경찰서를 지나 합천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다가 육교 바로 30m 전에 우측골목으로 빠져 직진하다가 합천상회를 지나 우회전하여야 한다. 육교를 지나자마자 주변에 합천 한국전력과 합천 시외버스터미널도 있다.
<함벽루 : 경남문화재자료 제59호>
합천신문사 박환태 사장은 함벽루에 오를 때 "신을 벗으시오"라는 문구도 선조님의 유지를 찾아온 후손들이니 오늘만큼은 예외라고 농담까지 건네신다.
나는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함벽루 창건자 ‘상락공의 아들 김모’가 문영공 김순의 묘지명을 통하여 김영돈으로 확인한 바 있다.(고려묘지명집성/김용선/한림대학교출판부) 오늘은 이곳 함벽루에서 합천지역 향토사학 관계자들과 함께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뜻 깊은 날이다. 합천신문사 박환태 사장 또한 향토사하가로서 안사연으로부터 자료 제공을 받아 이러한 사실을 합천신문사에 3회에 걸쳐 연재하기도 하였다.
함벽루는 합천8경중 제3경에 해당된다.
건축은 팔작지붕, 겹처마, 2익공, 측면 2칸 정면 3칸, 민기둥 10개, 가운데 마루받침 4개, 2개의 대들보, 우물마루, 계자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하게도 함벽루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바로 황강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오늘의 또 다른 소득이라면 이러한 정경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데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비가 그치면 함벽루는 한 마리 용이되어 하늘로 치솟을 것만 같다.
<학술발표회>
<황강과 함벽루>
비가오면 함벽루 처마의 낙숫물은 바로 황강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제 날씨가 서서히 개이면서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대구 환묵 대부와 다시한번 인사를 하며 술 한잔씩 들면서 함벽루에 걸려 있는 현판 시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퇴계 이황(李滉), 남명 조식(曺植)선생을 위시하여 조준(趙俊), 권시경(權時經), 김시영(金始英), 조진익(趙鎭翼), 조두순(趙斗淳), 민치순(閔致純), 이범직(李範稷), 허사렴(許士廉), 이중하(李重夏), 상집(尙集), 김영헌(金永憲), 이대형(李大馨), 문경종(文璟種), 최익현(崔益鉉), 송병선(宋秉璿) , 정이오(鄭以吾), 표근석(表根碩). 우아! 대단하지 아니한가.
<퇴계 이황의 시>
함벽루 우측 대들보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시가 걸려 있고
<남명 조식의 시>
함벽루 좌측 대들보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시가 걸려 있다. 영남학파 중 퇴계선생과 남명선생은 서로 쌍벽을 이루고 있는 분이다.
<'함벽루' 우암 송시열의 암각문>
<앞줄 좌부터 상석, 항용, 윤만. 뒷줄 좌부터 태우, 발용, 태영, 합천문화원 부원장, 합천신문사 사장, 환묵, 권행순, 사진 찍느라고 없는 이는 전주이씨 이명희>
<연호사(煙湖寺)>
연호사는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203번지 함벽루 뒤에 황강과 연하여 있는 절로서 가야산 해인사보다도 더 오래된 고찰이라 한다.
다음 행선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있는 호국불교의 상징 팔만대장경이 보존되어 있고, 10년 장좌불와(長坐不臥), 1대면(對面) 3,000배, 돈오돈수(頓悟頓修 : 돈오돈수란 단 한번에 불심의 이치를 알아 구극의 깨달음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수행이 필요없는 경지를 말하며, 반면에 돈오점수(頓悟漸修)란 깨닫고 나서도 계속 수행하여 깨달음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함) 사상으로 유명하신 가야산 호랑이 성철 큰스님이 계셨던 해인사(백련암)로 향했다. 함벽루를 찾아오던 그 길을 반대로 돌린 것이다. 해인(海印)이란 물속에 비친다는 뜻으로 본디 중생의 모습이라고 한다. 해인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채비빔밥에 막걸리 한사발을 곁드리면서 귀경을 감안하여 해인사만 구경하기로 결정하였다.
<합천 가야산 해인사>
<퇴옹당 성철 큰스님 사리탑>
성철스님 사리탑은 해인사 일주문 밖 1백m 전방에 있는데 조경을 제외한 면적 1백8평 규모에 높이 3.5m로, 설치예술가 최재은씨가 설계했다. 사리탑은 원(圓)·구(球)·반구(半球) 등을 기본개념으로,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자유자재한 세계에 도달하는 구도(求道)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대적광전>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鳳凰門), 해탈문(解脫門) ,구광루(九光樓)를 거치면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廣殿)이 나온다.
본래 대적광전에는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여 좌우에 보신(報身) 아미타불과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을 삼존불로 모셔 이들 세 부처가 삼위일체를 이룬 조화의 세계, 즉 연화장세계를 재현한다.
법신은 진리 그 자체를 말하고, 보신은 육바라밀(六婆羅密)의 수행을 통해 무궁무진한 공덕이 갖추어진 이상적 부처이며, 화신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따라 특정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나는 부처이다.
본존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오른손으로 왼손의 검지를 감싸쥔 지권인(智券印)이며, 이것은 이(理)와 지(智), 중생(衆生)과 부처(佛), 어리석음(迷)와 깨달음(悟)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참고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 비로전과 대적광전인데
대적광전은 문수보살-아미타불-비로자나불-석가모니불-보현보살을, 비로전은 문수보상-비로자나불-보현보살을 모신다.
<팔만대장경각 정문>
장경각에는 81,258판의 대장경이 4개의 서가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 전각 지붕>
<숙소앞 벗꽃길에서 일행과 함께>
사진 중 예쁜이들은 이(전주인) 명희 코치, 권(안동인)행순 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