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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를 입은 두 남자가 호숫가에 놓인 거대한 축음기를 향해 걷는다. 양손에는 몸집보다 더 큰 음반을 들었다. 에리크 요한 손의 작품 ‘Soundscape’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하늘과 구름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다. 감각적인 제목과 어울리는 동화 같은 스토리가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스웨덴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보정가인 에리크 요한손은 현실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풍부한 상상을 표현하는 초현실주의 작가다. 모든 요소가 정교하고 사실적이지만 실제로 촬영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진술Impossible Photography’을 선보인다. 직접 촬영한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하고 재조합해 마치 현실 같은 초현실 세계를 만든다.
스웨덴 중부의 작은 마을 괴테네G¨otene에서 자란 그는 15세에 첫 디지털카메라를 갖게 되면서 사진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화가였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상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카메라로 시간과 장소를 포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이디어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졌다.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옮긴 뒤 간단한 툴을 활용해 색을 바꾸거나 여동생을 지붕 위에 올리는 편집 작업을 놀이 삼아 즐겼다. 대학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인터랙션 디자인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사진 속에 상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더 정교해졌다. 일상에서 영감을 얻은 수많은 아이디어를 가능한 현실처럼 표현하기 위해 리터칭과 합성 기술을 다양하게 연구했고, 결과물을 온라인에 업로드했다. 지역 광고 에이전시 몇 곳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과 협업하는 사진작가로 성장했다. 스웨덴 고센버그와 독일 베를린에서 사진과 컴퓨터에 관한 공부와 작업을 이어온 그는 현재 체코 프라하를 기반으로 광고, 전시, 협업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11월, 세계 최고 명사들이 참여하는 첨단 기술 관련 강연회 TED 콘퍼런스에서 사진 제작 과정에 대해 강연했고, 2013년에는 어도비 MAX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소개했다. 올해 2월 26일부터 4월 10일까지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포토그라피스카 현대사진 박물관Fotografiska Museum of Photography에서 전시와 강연을 열기도 했다. www.erikjohanssonphoto.com
‘Soundscapes’ ©Erik Johansson |
1. Electric Guitar 2. The Architect 3. Cut & Fold 4. Fishy Island ©Erik Johansson |
상상력이 남다르다. 작품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가?
주변의 모든 것이 아이디어가 된다. 특히 일상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숲과 초원, 호수, 붉은 지붕의 집 등은 고향인 스웨덴 괴테네에서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풍경이다. 다른 아티스트의 작업과 음악 등도 좋은 양분이 된다. 포토그래퍼보다는 화가의 작품을 즐겨 보는데,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허르 등이 대표적이다.
사용하는 장비와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카메라는 핫셀블라드 H5D-40 과 캐논 5D MarkⅡ를 애용한다. 합성과 보정을 위한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7을 기반으로 한 어도비 포토샵이 유일하다. 색다른 툴을 활용하기보다는 기존 튜토리얼을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한다.
상상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먼저 머릿속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위한 밑그림을 그린다. 상상하는 장면과 어울리는 장소를 찾고, 합성할 이미지를 수차례 수정해가며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에 따라 적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까지 걸린다. 준비가 마무리되면 촬영에 들어간다. 아이디어 구현을 위해 필요한 사진을 여러 장 준비하는데, 이때 중요한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자연스러운 합성을 위해 비슷한 높이, 같은 종류의 빛을 활용해 촬영해야 한다는 것. 거리감과 그림자까지 철저히 계산해야 극도로 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사진을 오리고, 보정하고,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서로 다른 현실의 조각들을 포토샵을 통해 퍼즐을 맞춰나가듯 조합한다. 이전 단계가 잘 이뤄졌을 경우 가장 쉬운 과정이기도 하다.
로건 질머는 자신의 사진 속에서 여행자를 자처한다. 슈트를 차려입고 큼직한 여행 가방을 든 채 안개 벽과 거대한 옥수수 밭을 헤매고, 구름이 가득한 방과 하늘로 뚫린 문을 오가며, 자동차를 탄 채 하늘을 난다. 그가 여행하는 풍경은 단조롭지만 아름답다. 미국 중부의 광활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그랜드 라피즈에서 나고 자라며 경험한 주변 환경이 모티프가 됐다.
로건 질머의 작품은 기발하고 유쾌하다. 르네 마그리트의 상상력과 찰리채플린의 위트에 영향을 받은 그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경험을 사실적인 이미지로 표현한다. 겨울 장막 뒤에 숨겨진 여름, 하늘 높이 떠오른 집, 지구 위에 떨어진 달은 ‘미스터리’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을 통해 사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대학에서 영화 철학을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서 일하던 중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업무를 위해 19세기 그림들과 현대사진 등 수많은 이미지를 접하면서 어린 시절 동경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워커 에번스Walker Evans 등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세계에서 한 발짝 벗어나 ‘상상’과 ‘조합’이 만드는 다른 차원의 사진 세계에 호기심을 갖게된 것. 독학으로 촬영과 포토샵을 익힌 그는 전문 사진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13년 1월, 로건 질머는 1년 동안 매일 새로운 사진을 소개하는 ‘365 포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6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다른 상상을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 자신의 SNS 계정에 업로드했다.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필요한 현실의 요소를 촬영한 뒤 포토샵으로 합성하고 보정하는 방식으로 완성한 사진 365장은 로건 질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 됐다. 2014년 미시간 주 갤러리에서 개인전 를 연 그는 같은 해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 ‘텀블러 Tumblr’가 선정한 ‘올해 주목받은 포토그래퍼’에 이름을 올렸고, 현재 뉴욕 타임스 매거진 , 렌즈 매거진, ‘컨버스Converse’, ‘텀블러’ 등과 협업하며 다양한 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www.loganzillmerphoto.com
‘The Crew’ ©Logan Zillmer Photography LLC |
1. The Herd 2. The Hidden Door 3. Looking for Sun 4. The Cleaning Crew ©Logan Zillmer Photography LLC |
‘365 포토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 졸업 후 영화 관련 회사에서 일하며 상상을 사진에 표현하는 작업에 관심이 생겼다. 당시 나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가능성과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 결과가 ‘365 포토 프로젝트’다. 매일 다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진을 제작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덕분에 스스로 포토그래퍼로서 지향점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발전의 큰 계기가 됐다.
합성과 리터칭 기술은 어떻게 익혔는가?
어도비 포토샵의 기본 기능을 숙지한 후 다양하게 실험하는 방식으로 독학했다. 표현이 어렵거나 아이디어의 전환이 필요할 때는 젊고 유망한 포토그래퍼들이 모여 만든 소규모 크리에이티브 그룹 ‘PHLEARN’이 제공하는 튜토리얼을 참고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참신하고 독창적인 내용이 많아 상당한 도움이 됐다. 홈페이지(Phlearn.com)에서 누구나 무료로 살펴볼 수 있어 포토샵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모든 작업에 애정을 갖고 있지만, 특히 ‘트래블러’ 시리즈에 좋아하는 작품이 많다. 겨울 장막 사이로 여름 풍경을 바라보는 ‘Matter’, 하늘에 뚫린 문으로 들어가는 ‘The Hidden Door’ 등이 있다. ‘365 포토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기도 하고, 상상과 촬영, 합성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결과물이어서 좋다.
프랑스 사진작가 알라스테르 마그날도의 작품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달과 별, 하늘과 구름, 들판과 바다를 배경으로 동물과 아이들이 뛰놀고, 다채로운 빛이 꿈과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다. 사진 속 아이들은 배 위에서 해와 별을 따고, 거대한 달팽이를 끌어당기거나 거북이 등에 올라탄 채 도로를 질주하며, 노란 들꽃 위에서 잠을 청한다. 이런 동심의 상상력이 해 질 녘 들판, 어두컴컴한 밤, 먹구름 낀 호수 같은 현실적인 시공간과 어우러져 마치 꿈속을 여행하는 듯한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열 살 때 사진을 처음 접한 알라스테르 마그날도는 빛이 만들어낸 흑백 이미지에 매료됐다. 독일 RF 필름 카메라의 대명사 포이크틀랜더 Voigtlander 카메라와 작은 조명을 갖게 된 후 본격적으로 흑백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독특한 빛과 새로운 컬러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존 예술사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대학 전공으로 과학을 택한 그는 현재 물리학, 화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지닌 과학자이자 포토그래퍼로 활약하고 있다. 2000년에 기존 프린터를 대체할 네거티브 스캐너를 구입하면서 디지털 사진에 눈을 떴고, 기술적인 툴을 활용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숙지하면서 무한한 상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사진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서 아내, 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알라스테르 마그날도는 카메라와 컴퓨터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순수하고 동화적인 상상을 재현할 일상의 요소를 선별하고, 빛의 굴절도와 색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후 촬영과 합성을 통해 전혀 새로운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절묘한 조화를 경험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의 유망한 사진작가를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의 프랑스 사진 전문 갤러리 옐로우코너 YellowKorner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www.alastairmagnaldo.com
1. La Voleuse 2. La Mer 3. La Lampiste 4. Le Zèbre ©Alastair Magnaldo |
합성을 거쳐 이미지를 완성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빛과 사진을 통해 표현한 ‘꿈속 세상’이다. 상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촬영한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장면 자체를 설정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훌륭한 아티스트도 많지만, 그것은 사진보다 현대미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사진만으로 꿈의 영역을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사진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특정 상황의 빛을 조합해 전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사진 속에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다수가 풍경을 바라보며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보인 채 서 있는 점이 독특하다.
아이들은 나 자신이자 당신이며, 우리 모두의 관찰자다.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의 대명사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푹신한 구름 위에 눕거나 별 사이에서 뛰어노는 꿈을 꾸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이야기는 철없는 ‘헛소리’가 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직관적이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진의 디테일이다. 완성된 사진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완벽한 조화’를 추구한다. 그래서 작품에 필요한 요소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 직접 촬영하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몽환적인 하늘을 위해 달의 여러 모습을 몇 달에 걸쳐 수십 장씩 촬영하는 식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톤, 빛의 움직임과 표현 방법을 미리 계획한 후 필요한 요소들을 꼼꼼히 리스트업해 촬영에 돌입 한다. 이후 평균 6시간 이상의 컴퓨터 작업과 1시간가량의 스캔 및 프린트 작업을 거쳐 최종 이미지를 완성한다. 작품의 디테일을 잘 보여주기 위해 일반적으로 40×40cm 이상의 인쇄물을 제작하는 편이다.
사진 제공 : 에릭 요한슨, 로건 질머, 옐로우코너
기자/에디터 : 글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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