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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1 화동 페리에 몸을 싣고 글/사진: 이종원 (사진: 태산의 天門) 에필로그 장보고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천년전 중국 반군을 제압한 장군이며 청해진에서 해적을 소탕한 해상왕, 한,중,일 세나라의 역사책에 이름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기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다. 완도 청해진으로 추정된 장도에 올랐을 때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장보고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의외로 기회가 빨리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가장 멋진 모놀식구들과 함께 했다. 2천키로를 오고가는 힘든 여정이지만 군소리 하나 내밷은 사람 없다. 국내 답사때 빡빡한 일정에 단련이 되었거나 모두들 마음속에 제각각 목표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건만 그는 부하 염장의 칼에 쓰러졌다. 역사책의 페이지를 한참 넘겼지만 그가 남긴 뱃길은 오늘날에도 이어졌고 그의 선조기술은 훗날 거북선으로 되살아났다. 한국이 경제 대국이 된 것도 우수한 손기술로 만든 제품이 바다를 통해 세계와 경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역사속에 묻혔지만 그 혜택은 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돌아왔다. 정신문명이 세계를 지배했지만 물질문명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분명 그것을 제자리에 돌려 놓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낙엽처럼 나뒹굴며 천대받았던 유교문화는 공산주의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혹독한 겨울을 맞았다. 영원히 잊혀질 줄 알았던 공맹사상은 한국의 유교문화를 통해 다시 봄을 맞은 것이다. 그런 중국이 80년대부터 꿈틀거리더니 이제는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정신문명과 기술력이 절묘하게 만난다면 세계를 제퍠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산동의 대평원사이로 쭉 내뻗은 고속도로를 보면서 그들의 힘을 느껴본다. 차도 지나가지 않는 그곳에 시원스런 고속도로를 만들어낸 뚝심이 그저 무서울 뿐이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리고 5백년을 이어온 우리 유교문화의 생장점은 어디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걸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이번 답사인 것이다. 그걸 찾아 팔 천리를 달리고 달렸다. 인천항 국제 여객터미널 인천국제공항과는 전혀 딴판이다. 협소한 공간에 사람과 짐이 함께 어우려져 북새통을 이룬다. 짐 싣는 카트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짐에 치이고 사람에 부딛치고....몸집보다 큰 짐을 나르는 사람, 빙 둘러 앉아 수박을 깨먹는 사람들, 후미진 곳에서 위엔화를 바꿔주는 환전상도 보인다. 여행객, 보따리상과 중국인들까지 한데 어우러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이곳을 통해 움직이는 물건들이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비행기처럼 짐을 부치는 일도 없다. 워낙 배가 크기 때문에 왠만한 짐은 그냥 들고 탄다. 긴 통관시간이 끝나면 면세점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담배나 양주도 인천공항보다 훨씬 싸다. 2천5백원짜리 엣세 담배가 8백원에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터미널에서 나오면 바로 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버스를 타고 배 가까이 간다. 드디어 배에 오른다. 짜릿한 기분이다...각자 무거운 짐을 지고 계단을 따라 배에 오르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물며 보따리상들은 얼마나 힘들까? 배에 올라가 갑판에서 기념촬영 화동페리를 즐기자. 예쁜 조선족 아가씨가 안내소를 지키고 있다. 이 배에 탄 승무원들은 48명인데 주 3회씩 중국을 오가니까..거의 배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다. 면세점, 야식코너, 잡화점, 회의실, 목욕탕, 노래방까지 갖추고 있다. 1등석 객실 복도다. 양쪽에 방이 있는데...우리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창측에 배정되었다. 화장실은 객실 바깥에 있는데 여자화장실을 '부인세수간'이라고 쓰여진 푯말이 눈길을 끈다. 1등석 내부...4개의 침대가 놓여있고 세면대, TV, 탁자등이 놓여 있다. 담소도 나누고 일기도 쓰고...독서도 하고....페리 여행은 본인이 즐기기 나름이다. 따이공에게는 이곳은 호텔이다. 딱딱한 마루바닥에 새우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해역에 들어서도 위성을 통해 한국방송이 나온다.
맛있는 식사시간. 한국음식이 나온다. 돈을 아껴야 하는 보따리상들은 한사람이 두 사람분의 밥과 반찬을 담는다. 눈치만 줄뿐...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다. 그나마 밥을 사먹는 사람은 행복하다. 컵라면으로 때우거나 뜨거운 물에 찬밥을 말아 먹는 사람이 수두둑 하니까... 그런 분들을 생각하니 밥을 하나도 남길 수 없었다. 갈비탕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배에는 널찍한 노래방도 있었다. 때마침 결혼 34주년 기념여행을 나선 형아, 향기야님께 34년만에 선상 결혼식을 올려 드렸다. 축하곡은 노래방 기계에 다 들어 있었다. 웃는돌님이 사회를 보고...대장이 주례를 섰다. ^^ 축하드려요. 모놀의 끼있는 댄서들이 무대를 빛냈다. 비수님의 댄쓰....댄쓰.. 이렇게 개성이 강한 모놀식구들의 끼를 억제시키는 것이 안전의 길이며 대장의 주로 하는 몫이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휘엉청 달 밝은 밤에 .....타이타닉호를 연출!! 유종규, 김선희 부부 실컷 놀고 마시다가 그만 취해 버렸다. 해롱해롱 거리다가 침대에 뻗었는데 숙취와 멀미가 짬뽕이 되니까...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함께 객실을 쓴 유종규님께서 귀미테를 붙이고 온 것을 보고.. 막 웃었다. 이렇게 큰 배를 타는데....뭘 그런 것 까지 붙이냐고... 그렇게 깐죽거리다가 내가 멀미할 줄은 몰랐다.^^ 멀미를 하든 잠을 늘어지게 자든간에 중국땅이 눈앞에 다가왔다. 도선사가 배에 올라탄다. 배 두척이 달리는 속도에서 올라타야 한다. 중국땅을 보고 감회가 새로운 달새님.. 동북, 동남, 서남아시아까지 달새님의 향토적인 얼굴은 모두 고향친구다. 남미의 페루까지... ^^ =========================================================
(한국으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페리 여행의 장점은 원없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망망대해에서 석양과 일출까지 감상할 수 있다. 우리 국토가 아름답다는 것을 깨우치는 여정이다. 중국 석도에서 출발한 배는 하염없이 서쪽으로 향한다. 바로 영흥 화력발전소 옆을 스쳐간다. 자동차로 말하면 운전석인 브릿지 구경을 했다. 100미터가 넘는 배는 이 곳에서 통제되고 움직인다. 이 거대한 쇠덩어리가 바다를 가르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선장님의 친절한 설명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 거린다. 선장님은 지시만 할 뿐 이 배의 모든 조작은 바로 이 어여쁜 항해사의 손끝에 달려 있다. 인천에서 석도까지 바로 장보고 장군이 다녔던 해로란다. 1천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장보고의 후예들은 이렇게 서해를 지키고 있었다. "애인 만날 시간은 있어요?" "애인이 없어요." 수줍게 미소 짓는 여인의 잔영이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다.
블리지에서 기념촬영^^ (사진설명:인천항에서 따이공들이 풀어 놓은 보따리) 따이공 페리호가 한번 움직이는데 8천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관광객이라고 해봐야 100여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들 가지고는 이 배를 움직이기엔 어림도 없다. 주수입원은 콘테이너 화물이다. 화물이 적으면 배가 일찍 출발하고 물동량이 많으면 하염없이 기다려야한다. 그 고충은 승객이 고스란히 떠 안아야한다. 그걸 불만으로 여기는 사람은 바보다. 만만디는 배를 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 주수입원이 바로 따이공(보따리상)의 여객운임이다. 따이공은 보통 산동성지역 (위해, 연대,청도) 그리고 천진, 대련등지에서 물건을 사서 한국에 넘기는 보따리상을 말한다. 10여개의 한중폐리 선사는 이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에서 가전제품을 사서 중국에 가서 다시 판다. 그러나 중국세관의 기준이 항구마다 달라 이곳 저곳 옮겨다니면서 물건을 실어나른다. 따이공들이 가장 긴장할 때다. 배는 그들의 일터이자 숙소다. 일주일에 중국과 한국을 3번이나 왕복한다고 하니 짐을 내리자마자 다시 승선한다. 주로 하선하는 곳은 중국땅이란다. 숙박비와 식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한국으로는 품목당 5KG, 1인당 50KG이 이들이 가져올 수 있는 양이다. 깨, 마늘, 생강, 참기름,고추등이 이들이 가져오는 물품이다. 40만원어치 물건을 사오면 대략 15만원은 남는다고 한다. 월 200만원의 수입이다. 큰 짐을 낑낑메고 배에 실고 내려야지...흔들리는 바다에서 살아야지...그리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따이공 노인이 하얌없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중국세관의 심한 단속과 현지 폭력배들의 등쌀에 허리까지 휘어져 있다. "한때 이배는 따이공이 500명이나 되었는데 지금은 150명도 채 되지 않아요. 저도 이젠 이 생활 청산해야겠어요." 노인의 좁은 등에는 회한이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인천 도착하기 전 선창가에서 헤어지기 아쉬어 마지막 모놀포즈를 취해본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중국답사는 이것으로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손가락은 과연 어디를 가리킬까요? 인천항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동방명주호다. 바로 북한 신의주시 바로 앞에 단동으로 가는 배다. 광개토대왕비, 집안, 백두산이 우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모놀답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시작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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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 노래
첫댓글 중국기행 가실 때 배삯을 한 푼도 보태드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글과 좋은 사진으로 중국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시는 대장님, 고맙습니다! 역사 공부를 생생하게 하는 것 같아 참말 좋네요.
요즘 대장님은 왜 여인의 잔영이 오래도록 남을까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 ^....좋은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그렇게 많은 짐들이 줄지어 있는것을 보면서도 보따리상들의 애환과, 배를 움직이는 위력에 대해선.. 무관심 했었네요. 찬찬히 두번이나 읽어봅니다. 중국답사는 끝나지 않았다...어딜 가든.. 모놀이 함께 하는곳엔 꼭 같이 가고싶습니다. 바짝 긴장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더욱 알찬 답사가 되도록 노력도 해야겠구요.
선실배정받자 마자.. 이거이 딜럭스 실이면..일반실은..? 했었는데..따이공들의 애환을 읽어내리며 내심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좌우간 모르는건 죄악인것 같습니다..^^* 담번에 혹 선박여행을 하게 되면 보는 시선이 달라질테죠. 역시 대장님의 후기입니다..^^*
데이지님 말처럼 저도 부끄럽네요. 부산스런 따이공들의 모습부터 중국이 대국의 앞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선상에서 느끼고 보지 못한 것을 후기를 통해 보게 되니, 중국답사가 새롭게 다시 시작한은 것 같네요. 감사^^*
우아하게 비행기만 타다가..이런 체험은 난생 처음!! 새삼 나를 다시 살펴 보았던 기회였습니다.더 남을 배려하고 .더 나눠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제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는 5박6일이었지요.하늘에 계신 그분과 남편에게 감사한 일정이기도 했구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러워요.다음엔 꼭 갈수 있도록 배려 해 주세요.
영화에서 보던 호화 유람선이 각인되어 있던 나에게 처음 본 그 객실은 좀 실망 스러웠지만 곧 맘을 고쳐 먹었지요..윗층 복도에 쭉 내어 놓은 짐보따리들과 그들의 땀내 나는 옷들 을 보며 너무나 열심히 사는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잊고 살았던 배고픈 그 시절이 생각나 나를 뒤돌아 보는 좋은 시간
페리호에 대한 상세한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대장님 다음에 꼭 뵈요
저도 오랫만에 들러 뒤늦게 글을 보게 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 정말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겨울에 배를 타고 일본 가는길에 원없이 밤바다를 즐겼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여기 올린 글이 더 아름답게 다가오네요. 저도 남편 꼬셔서 배타고 중국 가고 싶어요.아들은 벌서 갔다 왓는데 ..
대장님....기관실 아닙니다, 브릿지(Bridge)라고 하고 "선교"라고 하는곳입니다. 배의 운항을 여기에서 하죠..-_-a
낭만강아지님 감사합니다..수정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