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의를 얻고, 그 의인에게 성령께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주의 피 안에서 주와 한 몸 한 영이 된 채로 생명의 길로
나아갑니다. 과연 하늘과 땅이 연결이 된다는 의미의 공(工)사(事)입니다.
생수를 얻고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참 예배하는(요4:24) 공사입니다.
이 수로공사가 준공이 되어야 비로소 천국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렇게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요7:39)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셨음에도
이와 같은 영적인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왜 흔치 않는 걸까요? 그 이유는
세대주의를 좇거나 그 이후 복음주의 운동을 따르는 성령의 은사나 표적의
성령의 역사에 휩쓸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에 의해 밖으로
나타나는 체험담은 분분하지만 속은 여전히 혼돈, 공허, 흑암(창1:2)입니다.
무당으로 표현하는 무(巫)는 하늘과 땅이 연결된 원리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의와 열심에 의해 발출이 되는 신명이나 간절한 염원으로 춤을
추는 모습니다. 심지어 목사들조차 신나게 찬양하자는 이들이 적잖습니다.
만일 그 목사가 진리를 안다면 신나게 운운하는 건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걸 스스로 알겁니다. 이건 공(工)이 이루어진 그리스도인들의
언어가 아닙니다. 자신의 흥과 에너지를 발출하는 도덕적인 향락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에서 모세를 기다리다 지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덩실덩실 춤추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파티와 같습니다.
광야의 장막을 추억하며 물의 축제를 벌이는 그들 앞에서 주 예수께서
자신을 믿는 자는 뒤집어쓰는 물세례가 아니라 그 뱃속에서 샘솟듯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진리의 성령에 의해 그
약속이 실현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예배 곧 그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과 주의 나타나심의 복을 받습니다(요14:21)
그러나 모세가 없어질 영광을 가리려 수건을 쓴 것 같이 지금도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마음을 가려 그 영광을 보지 못하고는 관상의 기도나
신사도운동이니 하면서 헛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무당이 따로 있나요?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생명을 얻어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모르고 찬송이든 기도이든 방방 뛰면 그 모습 그대로 무(巫)가 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종교축제는 그게 바로 오락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진리의 성령이 없이 성령의 나타나심만 좇아 날 뛰고 있는
고린도교회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믿음이 있나 시험해 보고 나서
확정하라고 강하게 권고합니다(고후13:5) 만일 아니라면 버림을 받는 답니다.
또한 롬8장9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므로 몸은 죽은 것으로 계산하고 살아 있는 영을 좇아
살므로 생명과 평안을 얻고,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므로 살게 됩니다(롬8:13)
문제는 다 외모를 지키며 죽음을 향해 갈 뿐 영생 안에서 살아가질 못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육신의 생명과 정신력의 생명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영과
생명(요6:63)이시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라고 하십니다(고전15:45)
이 영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조에) 만일 어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고 육체의 힘이나 정신력으로 찬양을 하든 아름답게
춤을 추든 그건 사람들의 말초의 기쁨을 유발할 수는 있겠지만 무(巫)를 벗어난
행사는 아닙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도 별별 몸짓을
다 해댔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오직 여호와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과 그가 주의 종으로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임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왕상18:32-36) 거기에 신나는 노래도 춤도 없었습니다.
비록 그는 한 권의 예언서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선지자의 대표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를 하든지 찬양을 하든지 예배를 하든지 행여 무(巫)와 같은 몸부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기독교를 천박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반드시 진리의
영 안에서 다윗처럼 은혜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을 마주 보듯 바라보며
경배와 찬양을 드릴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14-16장을 백번 읽기를 권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춤을 추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