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니산은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에 있는 산이다.
정상의 높이는 472.1m로 강화군에서 가장 높다.
이곳은 단군왕검이 정상에 참성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또한 마니산은 남쪽 한라산까지와 북쪽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같아 국토의 배꼽이라 불린다.
마니산(摩尼山)의 본래 이름은 ‘마리산’이었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태종실록’ 등에는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으로 기록돼 있다.
‘마리’란 ‘머리’라는 뜻의 고어(古語)로 온 겨레,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마니산으로 명명되면서 현재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마니산 참성단 가는 길은 찾는 이들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생기(生氣)가 넘치는 명산이라서 그런지 그 산 입구부터가 참 편케 해준다,

마니산을 찾는 이들이 잘 이용하지 않은 다리이다.
참성단 가는 길 오른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참 이쁘다.
그 다리는 이름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아담한 게 주변 산과 계곡 그리고 물에 잘 어울린다.



조선 영조 정조 때 문신 죽석 서영보가 그의 시문에서 '참성단'을 노래하고 있다.

조선의 3대 왕 태종의 어제 참성단이 나무판에 실려 길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 몸에서는 1년동안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알려주는 게시판이다.
심장이 박동 숫자와 자는 시간 걷는 길이 등을 전하는 이색적인 내용이다.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 정상부가 점차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아주 희미하게 참성단 불쑥 솟아오른 윗쪽 방형(方形) 제단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긴 계단을 올랐다면 드디어 참성단이다.
단군왕검 재위 51년(BC 2283년) 운사(雲師) 배달신이 단군왕검의 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전해온다.
참성단은 매년 전국체전 때 성화가 채화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참성단은 현재 보호를 위해 철책이 둘러쳐 있지만 일부는 개방돼 올라가 볼 수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 드리던 제단(摩利山在府南 山頂有塹城壇 世傳檀君祭天壇)"
-고려사 권 56 지리지-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는 마니산이다.
그 정상에 하늘과 땅에 제사 드리는 참성단이 있다.
이 마니산 참성단에서부터 남쭉으로 한라산, 북쪽으로 백두산에 이르는 거리가 똑같다고 한다.
하늘과 땅에 제사 드리는 성지로서 으뜸 가는 마니산이다.
이 곳은 단군의행적이 살아 있는 민족 정신의 고향이요 국풍의 중심 도량이다.


"무오 51년(B.C2283) 단군왕검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제천(祭天)의 단(檀)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바로 그것이다.(戊午五十一年 帝命雲師倍達臣 設三郞城于穴口 築祭天壇於摩璃山 塹城壇是也)"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려 공민왕 시절 충신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이 저술한
<단군세기(檀君世紀)>에 기록되어 있다.
참성단은 지금으로부터 4296년 전에 단군왕검이 하늘의 삼신(三神)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쌓은 제단으로
천손민족(天孫民族)의 정기가 서린 신성한 곳이라 하겠다.

이 나무는 전형적인 관목 모습에 나무갓이 단정하고 균형 잡혀 있다.
참성단(塹星壇)의 돌단 위에 단독으로 서 있기 때문에 한층 돋보인다.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 소사나무를 대표한다.
소사나무는 잎이 작고 줄기가 고목의 모습을 가져 예부터 분재 소재로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전통나무이다.
여러 개로 갈라진 줄기에 나무갓 모양이 단정하고 균형이 잡혀있다.
이 나무는 분재 등으로 사랑 받아온 대표적인 전통나무이나 아직 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는 없다.'
그 규모나 수형의 아름다움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 소사나무를 대표하고 있다.
수령은 150년 정도이며, 높이 4.8m, 밑둥 둘레 2.74m 이다.

소사나무 아래 석축 밑에 뚜껑이 덮힌 우물 '단군의 샘'이 보인다.
예로부터 소원을 이뤄주는 영험한 존재 우물 '단군의 샘으로 숭배되고 있었다.
어느날 '단군의 샘'에 물이 끊겼다.
마니산 주변에는 '신이 노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인 1930~1940년대 이 '단군의 샘' 영험한 우물에 변고가 생긴 것이다.
‘감로수(甘露水)’를 뿜어내던 '단군의 샘'이 갑자기 활동을 멈춰버린 것이다.
마을엔 물이 끊어진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한 여인이 이곳에서 생리대를 빨아 부정을 탔다.”
“똥물을 퍼부어 신이 노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변고가 났는지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마을 노인들은 아직까지도 '부정을 탔기 때문에 샘이 말라버렸다'고 믿고 있다.

참성단은 거친 돌을 다듬어 쌓은 제단이다.
오른 쪽 나무가 있는 곳이 아래로 둥근 원(圓)의 모양을 하고 있다.
나무 뒤로 불쑥 솟아오른 위는 네모난 방형(方形)을 갖추고 있다.
이는 하늘을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참 이상하다. 하늘이 둥글다고 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을 기준으로 위에 있다.
땅은 네모지다고 했다. 땅은 인간으로 기준할 때 아래에 있는 게 원칙이다.
그렇다면 상원하방(上圓下方)의 구조가 옳다. 그래야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닌가.
참성단은 그렇지 않다. 그와는 반대의 구조를 하고 있다.
상방하원(上方下圓)의 구조이다.
땅이 위로 올라가 있고 하늘이 아래로 내려간 형국의 참성단이다.

마니산 정상 해발 472.1m임을 알리는 나무기둥이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마니산 정상에 올라
민족의 성지 참성단을 바라보며 '참성단 시'를 남겼다.
"향 피우고 맑게 앉아 시 읊으며 머리를 갸우뚱하니
한 방이 비고 밝은데 작기가 배 같네
가을빛을 가장 사랑하여 지게문 열고 들이는데
다시 산 그림자 맞아들여 뜰에 가득히 머물게 하네
봄은 가뿐하여 때가 없으니 봉(鳳) 타길 생각하고
맘은 고요하고 기틀을 잊었으니 갈매기를 가까이하려 하네
단을 만들어 신선되기 구할 필요 없고
육착만 제거하여 바로 십사천유일세라고 하였는데
나도 향 피우고 여기 앉아 먼 바다 갈매기를 가까이하랴
내 손 뻗으면 닿을 그리운 이들을 가까이하랴."
목은 이색이 또다른 참성단 시에서
" 이 단이 하늘이 만든 것은 아닌데
누가 쌓았는지 알 수 없어라"라고 말 한 점으로 보아
이 참성단은 고려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케 한다.




단군이 찾아 하늘에 제사를 올린 마니산이다. 그 마니산은 기(氣)가 대단히 왕성한 산으로 꼽히고 있다.
마니산 공원에 들어서면 강화군에서 세운 '마니산과 기(氣)' 설명문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