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거사 이야기
재경강릉중앙고동문회 히말라야산악회
감악산 가을 소풍 소감문
사람이 웃고 있을 때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행복해서 노래하는 게 아니고 노래 하니까
행복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하나 삶이
힘겹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행복해 보이고
어떤 사람은 세상의 번뇌를 다 짊어진 것처럼
인상을 쓰는 사람이 있다.
지금 자신만이 너무나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거울속의 자신을 향해 한번 웃어보자.
그 웃음으로 인해
하루의 기분이 바뀔 것이다.
어깨 힘을 빼고
눈을 지그시 감고, 편안하게 웃어보자.
얼굴을 활짝 피고
웃는 것을 반복해보자.
이것을 3초씩 반복하다 보면 아주 좋은
"뇌 운동"이 된다 그런 후에 본격적으로 웃어보자.
사람이 웃고 있을 때
몸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웃으면서 계속 뇌에 집중을 하면
뇌와 가슴이 하나로 연결된다.
가슴에 있는 에너지의 샘이
열리면서 아주 순수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이 에너지에는 몸과 마음의
부정적인 기운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어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제 기쁨에겨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속삭이자.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라고
- 좋은 글 중에서 -
2016. 10. 16(일)은 참 약속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고향에서는 고교동창생들의 정기모임이 개최나는 날인데, 꼭 참석해 주길 바라는 강릉 회장단의 멧세지가 몇차례나 있었고 또 고향에선 초등학교 절친인 동네친구의 아들결혼식도 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회사 직원의 아들 결혼식도 있고, 재경고교동문회 산악회에서는 감악산 등산행사가 개최되는 날이었지요. 하여 많이 갈등했습니다만, 결국 한가지밖에 선택할 수 없어서 고심끝에 고교동문회 산악회 행사에 참석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경복궁으로 향하는 1711호 시내버스에 승차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승객이 별로 없었고 정차하는 정류장에서도 승차하는 승객이 없어서 불과 10분도 안되어 경복궁에 도착했고, 경복궁에서 3호선으로 을지로 3가까지 갔고 다시 잠실종합운동장으로 향하는 2호선 지하철에 탑승하여 30여분만에 집결지인 잠실종합운동장 2번 출구앞에 도착했지요.
날씨가 많이 흐렸습니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날씨였으나 무덥지 않아 등산하기에는 딱이었습니다.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기에 약간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8시 30분이 되었을 때까지 참석자는 45인승 버스에 고작 27명 정도였으나 곧 출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행부에서 준비한 뭉셍이떡과 된장국 국물 맛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동기생인 최종민 산악회장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꼭 참석해야만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등산을 하게된 이곳 '감악산'은 오래전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여름캠프를 겸한 감자적을 지져먹으러 몇번 갔던 곳이고 또 영국군 참배묘지가 있어서 수차례 방문했기에 더욱 정감이 가는 곳입니다. 잠실종합운동장을 출발한지 약 1시간이 지날 쯔음인 Am 9시 40분경, 우리는 감악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엔 얼마전 국내 최대 규모인 길이 150m의 흔들다리를 설치하였기에 작금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란 소문이 있어 많이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 그저 한가했던 이곳 감악산에는 이른 아침부터 엄청 차량이 붐비고 등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놀라웠습니다.
감악산의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감악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에서 임꺽정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한양으로 집출입하는 요충지이기도하지만 활동하기가 쉬운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악산 정상엔 아이같은 마음을 지닌 수많은 어른들이 마치 가을 소풍을 온 것 같았습니다.
감악산 정상에는 파주시 향토유적 제6호로 지정된 ‘감악산비’가 있는데 이 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감악산비(紺岳山碑)
감악산 정상에 우뚝 서있는 이 고비는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석비로 높이 170㎝, 너비 70~79㎝ 규모이다. 이 비는 글자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물자비(沒子碑)라고 부르기도하고 『설인귀비』, 『빗들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비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속전(俗傳)에 의한 기록만이 존재하고 있다. 1982년 동국대학교 감악산 고비 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이 비를 조사한 결과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순狩碑)』와 흡사하고 적성지역이 전략적 요충지로서 진흥왕대에 영토확장 정책에 따라 세력이 미쳤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제5의 진흥왕순수비의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그 역시 결론을 낼만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 비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감악산비 전설
감악산 정상에 있는 비석으로 ‘빗물대왕비’ 혹은 ‘진흥왕순수비’로 알려져있다. 비석이 감악산 정상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감악산비는 원래 양주시 남면 황방리(초록지기 마을)입구 간파고개 도로변에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을 타고 가다 내려서 절을 하고 지나가야 무사히 고개를 넘었으며 이를 무시했을 시는 화를 당하였다고 한다. 타지에서 이 내용을 모르고 지나던 행인들도 피해를 보게 되는 등 불편이 있어 감악산신령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제를 올리게 되었다. 어느날 이 근방의 주민들이 같은 꿈을 꾸었는데, 감악산신령이 나타나 소를 빌려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꿈 속에서 빌려주겠다고 한 주인들의 소는 땀을 뻘뻘흘리고 있고, 거절한 주민의 소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그런데 평상시 산모퉁이에 있던 비석이 어느새 감악산 정상으로 옮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감악산 신령님의 행동이라고 여기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감악산에는 영험이 있다하여 감악산 자락에 제당을 지어놓고 주민들이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 아울러, 양주시 남면 황방리(초록지기마을)부터 감악산신령 제당을 지나 정상으로 연결하는 ‘전설의 숲길’을 조성하여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전승하고 있다.
감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암석이 많고 비교적 가빠르긴 했으나, 여럿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하다보니 힘든줄 모르고 오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가는줄 몰랐습니다. 재경동문회 산악회에서는 이런 명산의 등산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했는데도 아직 홍보가 부족한지? 관심이 부족한지? 헌신적으로 노력한 집행부의 노고에 비해 호응도가 낮아 무척 아쉬웠습니다.
하산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산에 오르는 시각은 2시간 30분이었지만 하산길은 1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법륜사 앞에는 주변을 둘러보는 산책코스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감악산의 새로 만든 흔들교량은 그 길이가 150m로 국내에서 가장 긴 흔들다리라고 하는데, 감악산의 최고 명물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이 흔들다리의 설치로 인하여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손으로 곱을 정도의 인원이 등산을 하던 곳이었습니다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환경을 조성한 탓으로 갑짜기 수백배의 성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약 4시간의 등산을 마친 오후 Pm 3경, 하산을 완료한 우리 일행은 관광버스에 올라 감악산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입장했습니다. 아침엔 버스에서 뭉셍이 떡을 하나씩 지급했고 또 된장국도 컵으로 하나씩 제공 받은 바있고, 감악산 정상에서는 각자 준비한 과일과 떡 컵라면 등의 간식을 먹었기에 무려 4시간 등산이었으나 그렇게 허기를 느끼지는 않았습니다만, 일단 공식적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입장했던 것이지요. 2~3만원의 회비로 관광버스 교통비는 물론이고 간식과 점심식사까지 제공하는 정말 땡잡는 멋진 여행입니다. 예스 관광(주)를 비롯한 뜻있는 동문들의 후원에 감사드리고 또한 알찬 테마여행을 만든 재경동문회 히말라야산악회 임원진들의 헌신적인 희생에 무한한 신뢰와 더불어 감사의 인사를 드릴뿐입니다.
재경고교동문 가족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든 아주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감악산은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에 산행을 마치고 비교적 일찍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일요일 주일 저녁미사를 참석하려고 했으나, 아슬 아슬하게 놓친것만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가슴 부듯한 기쁜 날이었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