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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밤 9시 반,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지리산 무박종주를 앞두고 최소한
사흘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는데..
그날 낮에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40살 먹은 제자의
축하 모임에서 과음을 한거다.
부인이 난치병을 얻어 가끔씩 전화 걸어 '죽고 싶다'던 이 친구
어찌나 맘고생이 심했는지 머리 한가운데 밤톨만한
구멍이 나있다. 그 고생끝에 받고 온 학위이니
모임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일찍 마시고 서너시간 자다 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커피 한병, 방울토마도와 참외, 샌드위치가 담긴 도시락 통을
주섬주섬 배낭에 담는다.
집안을 뒤져 고3 딸애가 사다 놓은 쵸콜렛과 사탕을 챙긴다.
지리산은 '먹는만큼 간다구'..
2년 전 지리산 종주 후 얻은 교훈이다. 플라스틱 소주 1병과 꼬냑 300ml,
이건 정상에서 마실거라 상상했다.
벌써 배낭이 불룩하다.
지리산은 '동전 하나도 무겁다'.. 그러나 뺄게 없다.
디카를 연구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냥 갈까 하다
택시를 타고 달려간다. 연구실에서 디카와 먹다 남은 고열량 안주를 더 챙긴다.
압구정역 집결지에 도착하니 밤 11시 10분전이다.
41명의 동문이 두대의 버스로 나눠 탄다. 내가 탄 버스에 동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뒷좌석 3분의 일이 포커 테이블처럼 되어 있는 버스였다.
모두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한변호사가 드디어 말문을 연다.
"너 종주할 수 있겠어?"
지난 번 4산 산행 때와 똑같은 그의 첫인사다.
(그런 말 마시게.. 난 정말 떨고 있다구..)
"네가 그럴수록 난 전투의지가 살아나.."
곧바로 나온 내 대답에 미안했던지
"넌 잘 할수 있을거야" 한변이 이번엔 격려의 말을 던진다.
모두 걱정반 기대반의 표정이다.
15시간의 지리산 무박종주 산행에 자신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2년전 첫 종주 때 어떤 산악회에서 성삼재-천왕봉-대원사 코스를
2박3일 일정으로 마련했었는데.. 난 1박2일로 끊은 적이 있다.
그 때 난 난생처음 죽을만큼 오래 걸었다.
당시 난 세석 산장에서 일박했는데.. 그 때 도착시간이 오후 5시쯤
저녁무렵이었는데.. 이번 산행은 그곳에 최소한 오후 1시반까지 도착해야 한다.
Cut off시간이란다. 그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한 사람은 천왕봉에 오르지
못하고 자른다는 것이다.
이전 경험이 더 두렵게 할 수도 있구나.
포커 테이블에 있는 동기들에게 나의 이력을 말해주며,
"내가 너무 늦으면 나를 무시하고 먼저 내려가라" 혹시
"나 혼자 늦게라도 천왕봉에 갈수있으니
연락할 수 있게 휴대폰을 켜 놓으라"는 당부를 하고
동기들의 전화번호를 물어 저장해 둔다.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두번 쉬었다. 옥산 휴게소하구
함양 휴게소였다. 함양 휴게소에서 모두 밥을 먹을 줄 알았는데..
밥먹는 동기들이 없다. 정이사가 술이 덜깼는지 종산이 잠이
안오는지 커피를 마시며 왔다갔다 할뿐이다.
홀로 산채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지리산은 '먹는만큼 간다구"
실은 저녁 식사도 거른채 잠을 자 배가 고팠다.
최악의 산채비빔밥이었다.
밥은 차갑고, 산나물은 딱딱하고, 고추장을 덜어 내었는데도 매웠다.
큰 산이 가까우면 웬만한 비빔밥은 다 맛있던데..
나의 비빔밥 이론이 틀렸거나 함양은 지리산과 가까운 곳이 아니리라..
한시간 쯤 지나 거의 새벽 4시가 다 되어서
성삼재에 도착했다. 버스가 성삼재를 구비구비 돌아 올라갈 때 늘 그랬듯 멀미가 났다.
걷지 않았는데 식은 땀이 흐르고 속이 울렁거렸다.
노고단으로 걸어 가는 길에 양총무를 만났다.
"요즘 넌 짧은 산행은 안하고 긴산행만 한다"고 농을 걸던 친구가
길동무를 해준다.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늘에 걸린 그믐달을 보았다.
예쁜 달이다. 나도향이 '그믐달'이라는 수필에서
저달을 보면 "애인을 잃고 쫒겨나는 공주나 원부(怨婦)"가 떠오른다 했다.
한 맺힌 여인의 달.. 그는 여자로 태어나면 그믐달과 같은 여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던가.. 문인의 감수성이란.. 시대를 초월한다.
노고단 거의 다와 전망대에서 구례 시내를 바라본다.
게스가 엷게 끼어 있는데도 불빛이 드문드문 보인다. 맑은 날 바라보았으면
올망조망 백열등 야경이 더 정겨웠으리라..
노고단 산장에 도착하니 모두 출발 직전이다. 맨뒤에 온 날보고
헌수 형이 "너 세석에 오후 5시에 도착했다며"..
기분 좋게 웃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낸다.
양총무에게 "뭐 좋은 말이라고 일러 바치냐?" 한마디하며
눈총을 쏴준다.
이제 모두 지리산 속으로 달려 나간다.
아니 지리산의 품속에 안긴다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
지리산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처럼 따뜻하고 푹은하다.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본 연이은 봉우리와 봉우리, 골과 골, 그 사이에 운해가
깔린 흑백의 실루엣은 언제나 온화하다.
누가 저 산을 보면 피가 끊는다고 했던가?
내 눈에는 늘 어머니 품속처럼 부드러운데..
임걸령을 지날 무렵 날이 밝아 왔다.
엷은 어둠 속에도 2년전 걸었던 지형 하나하나가
떠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익숙한 것이 편안하고
편한함이 두려움을 걷어내 주었다. 아마 4산 산행보다 두려움이
없다면 순전히 이전 경험 때문이다. 걸을 때마다
예전에 걸었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난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날이 밝아 오면서 야생화보다 산새들이 먼저 나를 반겼다.
깊은 산에서 듣는 새들의 우는 소리는 도시 산에서 듣던
소리보다 다양하고 청아하다. 맑은 공기 탓이리라..
마치 새를 사러 가게에 들어 온 것처럼
사방에서 재잘거리는 게 흥겨운 잔치집같다.
자주빛 물봉선모양의 야생화도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지만,
이 철에 지리산의 주인은 철쭉이다.
지난 밤 바람 탓인가? 달려있는거 반 떨어진 꽃 반이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의 '낙화' 전문)
낙화를 보며 읊은 지훈님의 마음을 누가 모르겠는가?
아마도 우리 나이쯤엔 모두 낙화를 보며
꽃잎 즈려 밟고 떠난 님이나
허허한 세상살이에
울고 싶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노루목을 지나 화개재로 향한다. 저멀리 반야봉이 보인다.
낙엽진 늦가을에 바라보면 영락없는 여인의 엉덩이 모양이란다.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의 세개의 주봉에서
일출을 모두 보려면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난 여직 노고단의 일출만을 보았다.
반야봉은 항상 거쳐 지나 가는 산이니
내 여생에 꿈같은 얘기다.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기 2Km 전쯤에
정이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점심을 먹고 백소령으로 떠나기 직전이란다.
나도 그 곳에서 사발면을 먹을 거니
먼저 떠나라고 알려준다. 한시간쯤 차이가 나 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내 몫으로 유부초밥을 매점에 남겨둘테니
먹고 오란다.
급히 오느라 김밥을 챙기지 못했는데.. 고마웠다.
연하천에 도착해서 사발면과 유부 초밥을 먹었다.
그럴듯한 점심이 되었다. 연하천 산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아담하고 쉬어 가기 그만인 곳이다. 특히 언제나 가까운 곳에
물이 넘치게 있으니 허기지고 갈증난 산악인들에겐
오아시스같은 곳이다. 맘씨 좋게 생긴 털보 주인이 여러 사람과
분주하게 수인사를 나눈다.
또 다시 걷고 또 걷는다.
벽소령에 도착해도 아는 이 없다. 그 사이 사이
어제 낮에 축하모임 때 만난 학생과 교수들로부터 격려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거지만 힘이 되었다.
"선생님,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처음엔 너무 빨리 가지 마세요"
"멋진 모습, 힘내세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진짜 외로운 사람은 홀로 떠나지 못하는 법이다.
내 나름대로 먼길 산행에서 터득한 주문을 왼다...
벽소령에서 선비샘까지 가는 길이 종주 산행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이리라. 길도 외길이고 탁트인 전망이
압권인 곳이다. 지친 다리도 쉬어갈 겸 연신 셧터를 눌러댔다..
선비샘에 도착해 물병을 채우고 곧 세석 산장으로 향한다.
이젠 많이 지쳤다. 이제부터 약 5km 구간이 가장 힘든 곳이다.
이 구간에서 나의 종주산행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구비구비 돌고 돌고 업다운이 끝이 없다. 한변호사와 정이사가
두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해낸다.
동기들은 세석 산장에서 쉬다가 장터목으로 가는데..
어느쯤 오느냐고 묻는다. 세석산장까지 한두시간쯤 걸리니
먼저 가고.. 난 Cut off 시간을 넘겨도 그대로 천왕봉으로 갈꺼라고 알려준다.
정말 마의 구간이다. 세석 산장 1km쯤 남겨두고 드디어 4명의 24회 선배팀을 만난다.
자기네들이 맨꼴찌인줄 알았는데 날 만나니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일행을 만나니 나도 힘이 난다. 그 분들은 모두 천왕봉에 가지 않고
세석 산장에서 거림으로 내려갈 꺼라고 한다.
그런 말을 들어도 난 이상스럽게 조금도 동요되지 않는다.
스스로 이상할 정도다. 세석 산장이 저 아래 보인다.
그들은 오늘 서울로 올라 갈꺼니 잘하라고 격려를 해주곤
갈림길에서 헤어진다. 그들은 세석 산장으로..
난 장터목으로.. 또다시 홀로 산행이다.
세석에서부터 산행은 같은 거리라도 두세배 힘이 든다했다.
맞는 말이다. 이년전 난 성삼재에서 세석산장까지 가서 하룻밤을 잤었다.
그당시 더이상 걸을 수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쉬지 않고 자지 않고 나머지 구간을 또 걸어야 하니
얼마나 긴 고행길인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세석 산장 이후의 산행이다.
장터목까지.. 그리고 천왕봉까지.. 그리고 법계사까지..
그리고 마지막의 중산리까지 그 구간이다.
장터목 산장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길엔
철쭉꽃이 더욱 만발해 있다. 전문 사진쟁이들이
삼각대를 세우고 고목과 야생화를 찍느라고 분주하다.
게중에 어떤 사람은 절벽에 삼각대를 세워두고
하늘이 열리기 기다리고 있다.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벗겨질 거 같지 않은 하늘인데..
벗겨지길 기다린다.
아마 장엄한 일몰을 기다리거나 구름 틈새 속 노을
한컷을 기다리는가보다.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조금 어둡지만 아직 랜턴이 필요한 시간은 아니다.
6월 하지 무렵이 아니고 가을이나 겨울 무렵이었으면
이 시간에 천왕봉에 오르는 건 내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바람이 심하지 않다.
구름이 날라다니지도 않는다. 하늘이 열리려나..
낮은 구름 사이에 간간히 푸른 하늘도 얼굴을 내민다.
기다리는 동기들을 위해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동기들은 중산리에 거의 다왔다는 연락이 왔다..
곧 내릴 어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전화로도 느껴졌다.
한국인의 정기가 발하는 곳, 천왕봉 1915m 비석의 앞뒷면과
게스가 잔뜩 낀 정상 주변을 몇 컷 찍고는 곧바로 중산리로 향한다.
앞으로 서너시간 후면 중산리 목적지에 도착한다.
힘이 없기보단 이제부턴 초행길이고 곧 어둠이 내릴 것이 걱정이다.
모르는 길에 사람도 없고 어둠이 내리는 깊은 산..
그걸 생각하곤 갈길을 재촉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치는지
다시 비오듯 땀이 났다. 한시간 반쯤 달려 내려가니 법계사와
로터리 산장이 나왔다.
우선 사람을 많이 만나니 반가웠다. 모두 지친 몸을 씻고 저녁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앞으로 중산리까지 두세시간 더 가야하는데
완전히 어두워져 랜턴없인 한걸음도 뗄수 없었다.
중산리로 내려오는 길은 천왕봉에서 가장 빨리 하산하는 길이지만
그만큼 험했다. 그믐이라 달빛도 없었고.. 있다해도 울울창창한 수풀속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체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어둠과 무서움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변호사와 정이사는 이제 한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해댄다.
하산길에 길을 잘못들면 끝장이다..
난 전력이 여러 번 있지 않은가..
하산길에 헤드랜턴이 꺼지면 진짜 구조 요청이다.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중간에 한 남자를 만났다. 서로 두려워했다.
그는 로타리산장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중산리에서
출발했는데 2시간 걸렸다한다.
젠장 한시간 남은 줄 알았는데.. 더 긴장되었다.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은 이상하게
내려갈수록 더 깜깜하고 험하고 미끄러웠다.
하산길에 땅이라 생각하고 디딘 곳에 물기가 있었는지
두번정도 곤두박질을 쳤다.
팔뚝이 까지는 정도의 상처를 입었지만, 넘어지면서
땅에 팽겨쳐진 랜턴이 더 걱정되었다.
넘어질 때 랜턴이 깨지면..
대형사고다.
땀이 비오듯 흘렀다. 머리띠 수건을 벗었다.
랜턴에 나방이 몰려들었다. 땅에는 불빛에 놀란 두꺼비들이
겁을내고 숨죽였다.
저멀리 백열등 하나가 가늘게 흔들렸다가 곧 사라졌다.
놀랬다. 저게 이 시간에 왜 왔다갔다 하지..
다른 사람의 랜턴일 거라는 생각이들지 않았다.
최근에 난 백열등 랜턴 불빛을 보지 못했으니까..
주뼛 소름이 끼치고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한 20분쯤 가니 그 불빛이 또 나타났는데 이번에
정지해 있고 사람 소리가 났다..
아이고.. 살았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났다.
가까이 가보니 젊은 연인들 한쌍이었다.
장터목 산장에 자러갔다 자리가 없어 하산 중인데..
두명이 하나의 랜턴으로 하산하기 힘들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안도하면서 삼십분을 내려오니 중산리에 도착했다.
그 연인들은 어느 산장의 세면대로 가 씻는다고 했다.
나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저멀리서 한변호사와 종산이 마중나와 있다.
내 고생한 걸 짐작했는지
반가워서 내 손을 꽉 잡는다.
동기들이 어둠을 헤치고 무사히 하산한 나를 보고
더 반가워 한다. 내가 더 반가워해야 하는데..
근데 범천과 한변과 종산부부는
이제 버스타고 서울로 올라간다한다. 아쉽지만 원래
그러기로 한거니 짧은 해후 짧은 이별을 한다.
양총무가 나를 선배들이 있는 술자리로 안내한다.
늦게 내려와 걱정끼친 나를 반갑게 마주한다.
원래 자식들도 대형사고를 치면 야단을 치지 못하는 법이다.
나를 위해 남겨둔 양주를 따라준다. 맥주를 따라 준다..
그대로 폭탄주를 만들어 한잔 들이킨다.
죽을 한사발 먹고 난후 양총이 산채 비빔밥을 가져온다.
반쯤 먹다가 땀이 식으니 온몸이 와들와들 떨린다.
저체온증이다.. 몸이 얼어 붇고, 숨을 쉴때마다 한기가 뼈속 깊이 잦아든다..
지나가는 후배에게 나를 도와달라 말하곤
짐을 넘겨주고 숙소로 올라간다.
현도성 후배에게 한기 증상을 말하니 빨리 더운 물로 샤워하라 한다.
좋은 경험이다. 더운 물로 샤워하고 옷을 새 것으로 갈아 입으니
다시 정상으로 회복된다..
그리곤 달고 긴잠을 잤다. 깨어보니 한방에 열댓명이 자고 있었다.
어젯 밤의 일이 꿈만 같다.
아침을 일찍 먹고 중산리 주변을 산책을 한다.
오전 6시인데도 연휴라 그런지 관광버스로 사람이 몰려온다.
이번 동문 산행에 41명이 출발해서 스무명 정도가 어제
서울로 올라가고 19명이 남아 있다.
하루가 또 남았는데 사천에 가서 와룡산에 올라간다 한다.
사천에 도착해서 반은 산에 올라가고 반은 버스에 남아있다.
양총무와 나는 버스에 남아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눈다.
15분쯤 지났을까 정이사를 비롯해 산에 간 사람들이 버스로 올라 온다..
산이 생각보다 험해서 포기한단다. 대신에 삼천포가서 연륙교를
한 두시간 정도 걷는다고 한다. 멋진 아이디어이다.
이후 스토리는 야유회 얘기이다. 한려수도를 바라보며, 삼천포교, 늑도교, 창선교를 걷고
남해 일부 섬을 한시간 정도 드라이브 한 후에 어시장에 가서 회감을 직접 사서
바다를 바라보며 회먹고 찌게먹고 진탕 소주먹고 올라와서
안세병원 뒤 평양면옥 가서 부드러운 편육에 만두에 물냉면으로
입가심을 하고 즐겁고 뒷풀이를 했다는 얘기..
연휴에 일생 잊지 못할 지리산 종주를 하고 난후
또 다음 날 산에 가려하고.. 여의치 않으니
한려수도 국립공원에 가서 쪽빛 바다 바람을 쐬며 싱싱한 회를 먹는다는 생각..
곰곰히 생각하니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집단이 적어도
우리 동문이 아니면 대한민국에 또 있을 성 싶지 않다.
우스게 소리로 경기고는 '기고' 경복고는 '볶고' 서울고는 '울고'라는데
학창시절에 울창한 수풀 속에서 자연을 벗하며
세상의 진리를 닦아온 학풍이 아니면
상상도 할수 없는 낭만적이고 친자연적인 사고가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큰 산을 타면 탈수록,
산행이 힘들면 힘들수록
연이틀 동안 선후배와 동기들과의 정이 더 깊어진 것이
이번 산행에서 얻은 나의 수확중의 가장 큰 수확이다.
다시 한번 나로 인해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친 동기들에게
미안하고.. 또 역경을 이길 수 있게 끊임없이 염려해 준 동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조만간 안세병원 뒤 평양면옥에서 이번에 승남이형이 사준대로
내 산우 동기들에게 한톡 쏠테니
빠짐없이 참석해 동기애를 다지자구..
안녕..
p.s.) 양총무의 상무이사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산우회일, 성당일 앞장서서
헌신하더니 드디어 하늘이 복을 내리누만.. 불행한 기억 덮고 행복한 일만
계속되기를 빌겠습니다.
p.s.) 범천 산우님, 왜 나만 언제까지 '하모'입니까? 대은(大隱)이란 산호를 받으려면
어떤 의식이 있어야 하나요? 4산 산행도 마쳤고 한턱 쏘는 자리도 마련할테니
이번 기회에 모..모는 떼어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