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녀석아! 반찬투정 그만하고, 엄마가 정성들여 싸준 반찬 고맙게 생각하고
맛있게 먹어라. 엄마가 네 도시락 반찬 싸주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줄 아냐?"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우리집 큰아들 녀석에게 오늘 아침 내가 내뱉은 말입니다.
아침 6시50분에 집에서 출발하면 밤 11시에 집에 돌아옵니다.
자기 딴에 공부에 집중하느라 생긴 스트레스를 도시락 반찬투정으로 푸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봄 소풍, 꽁치 도시락 이야기
도시락하면 생각는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입니다.
그 시절 나는 강원도 화천 논미리라는 동네에서 화천읍내 있었던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왕복 30리 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경찰 공무원을 하시다 그만두고 여기 저기 떠돌이처럼 지내셨습니다.
밖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집에 들어오시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모든 생계는 어머니 몫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시집오실 때 혼수품을 가지고 온 앉은뱅이 재봉틀을 돌려 근근이 입에
풀칠하고 살 정도로 빈한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내 위로 누나 하나, 남동생 둘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가난했던지 어머니는 우리와 한 밥상에서 밥을
잡수신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악착같이 사셨습니다.
농사짓는 시골에 살면서도 밥 한 뙤기 없었습니다.
우리집 모든 식구가 어머니만 바라보고 살았지요.
담임선생님이 종례시간에 봄 소풍 일정에 대해 말씀하시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꼭 엄마들이 동행을 했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소풍에 동행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소풍을 며칠 앞두고 누나는 어머니에게 노래를 하듯 졸라댔습니다.
"엄마! 이번 소풍에 꼭 김밥 싸줘요!"
누나가 아무리 졸라대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이 연신 재봉틀만 돌렸습니다.
드디어 소풍을 가는 날 아침, 나와 누나는 용수철 같이 일어났습니다.
누나는 일어나자마자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도시락!"
어머니는 빙긋 웃으시며 신문지로 돌돌 말은 도시락 두 개를 우리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누나는 신문지를 펴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습니다.
동시에 누나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마! 이게 뭐야?" 하고 도시락을 마룻바닥에 내던지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사각 도시락 통 안에는 흰쌀이 드문드문 섞인 보리밥이 있었고,
반찬통 안에는 꽁치 두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누나는 마당에 철퍼덕 주저앉아 더 큰 목소리로 울어댔습니다.
누나가 악을 쓰면 울어대자 어머니 눈에서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애들아! 그러지 말고 빨리 가! 소풍 늦겠다.
문숙아! 내년 소풍에는 엄마가 꼭 김밥 싸줄게. 얼른 가, 착하지!"
어머니는 누나를 달랬지만 누나는 막무가내로 울음을 그치지 않고 어깃장을 부리자
참다못해 어머니는 빗자루에서 싸리 한 가닥을 분질러 누나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인년아! 네 마음대로 해봐라. 엄마 마음도 몰라주고.
그래, 소풍가지마. 내일부턴 학교도 가지마!"
나는 꽁치가 들어있는 도시락을 어깨에 메고 학교엘 갔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누나가 빨리 따라왔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나도 안됐고, 엄마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