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왕
돼지 오백 마리를 거느리고 사는 '돼지 왕'이 있었다.
하루는 이 돼지 왕이 가족들을 거느리고 즐거운 소풍 길을 나섰다.
그런데 중간에 무서운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돼지 왕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도망치자니 그 동안 부하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이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강자라며 속여 살았던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그대로 버티자니 잡혀 죽게 되니 참으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돼지 왕은 호랑이에게 수작을 건다.
"여보게, 호랑이. 자네 참 잘 만났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여러 짐승들을 괴롭힌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만나려고 했는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늘인가. 참 안 되었네.
오늘은 보다시피 내가 우리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날이네.
오늘은 길을 좀 비켜줘야겠네."
"여보게, 호랑이.
이 말을 듣던 호랑이는 이런 건방진 돼지를 다 봤나싶어 그냥 둘 수 없다며 단단히 혼을 내려는데 돼지 왕이 또 말을 거는 것이다.
자네가 정 싸움을 하고 싶다면 우리 서로 약속을 하세.
그것은 생명을 걸고 사생결단을 낸다는 약속이네.
나는 원래 싸움을 했다 하면 상대의 목을 잘라버려야 속이 시원해 하거든."
돼지왕은 허세를 부리면 호랑이가 무서워서 마침내 물러설 줄 알았다.
그러나 호랑이는 더욱 완강했다.
다시 돼지왕은 말했다.
"자네가 정이 그렇다면 잠깐 기다려 주게.
이러한 중대한 싸움에는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갑옷을 입고 싸워야 하니..."
그리고는 돼지왕은 부하들을 기다리게 해놓고서는 바로 집에 가서 갑옷을 입고 다시 나타났다.
그 갑옷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돼지 똥이었다.
돼지왕은 똥을 온 몸에 쳐 바르고 와서는 "자 - 이제 갑옷을 입고 싸울 준비가 되었으니
덤빌테면 덤벼라."하는 것이다.
이에 호랑이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내가 어린 짐승들을 잡아먹지 않은 것은 이 강한 이빨의 체면 때문인데,
하물며 저렇게 더러운 똥칠을 한 돼지를 어떻게 잡아먹는담."하며 어쩔 수 없이 그만 길을 비켜주고 말았다.
이 위기를 어렵사리 통과한 돼지왕은 쾌재를 부르며 의기양양(意氣揚揚)하며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라. 이 왕을!"
그러면서 호랑이에게는 "언제든지 와라.
언제든지 싸워줄 테니"하며 고함을 지르며 지나갔다.
물론 돼지일행들도 이러한 돼지왕을 따라 피리 젓대를 불며 소풍을 잘 갔다 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불교의 아함경에서 나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인생을 구차하게 허세나 부리고, 교만과 자만에 차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돼지왕에 비유해서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세상을 살다보면 간혹 돼지왕과 같이 허세를 부리거나 만용을 부리며 어리석게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간혹 그러한 때를 당하면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야 되나, 또는 꼭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차하게 목숨과 권세, 자리와 명예를 연연해 사는 것보다는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겸양하며, 좀 더 양보하며, 자신있게 떳떳하며, 용기있게 사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 더욱 멋진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편, 돼지왕과 돼지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구차스럽기는 하지만 강적을 만난 돼지왕의 지혜도 참으로 슬기롭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