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23
민족의학民族醫學 신문에 “한의학 정체성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경원대의 이충열 교수님이 기고하신 글, 全文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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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수년 전 협회에 몇몇 젊은 개업의와 학자들이 모여 ‘한의학적’이란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규정하기 위한 토론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토론에서 어떤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의학적 연구, 한의학적 임상, 한의학적 진단, 한의학적 관점 등등, ‘한의학적’이라는 용어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고 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상적인 용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건들 속에서 어떤 의미의 동일성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의 ‘한의학적’이라는 용어는 ‘한의사들이나 한의학전공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의과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이루어지는 대다수의 연구들은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들과 거의 차별성이 없다. 재료만 침이나 뜸, 한약을 사용한다는 것뿐 연구방법이나 가설 그리고 목표 또한 거의 차이가 없다.
혹 이런 연구를 한의계에서만 한다면 또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서양의학계에서도 같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차별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한의계의 임상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의원에는 이름을 외우기도 힘든 각종 진단기계와 치료기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끔 이 기계들이 한의사로서의 당신의 임상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활용되고 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지만 피차 서로 곤란할까봐 참는다.
그리고 대체의학 붐이 일면서 한의사의 진료실은 더욱 혼란스러워 졌다. 대체의학 붐은 사실 우리 한의학의 독특한 치료기법이 외국으로 수출되는 계기로 작용해야 바람직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해외의 대체의학적인 치료기법이 국내 한의계에 역수입되어 활용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런 기법들이 ‘한의학적’인 것으로 포장되어서 말이다. 이처럼 ‘한의학적인 것’과 ‘한의학적이 아닌 것’ 사이의 구별은 점차 엷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구분을 시도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사석에서 같은 전공의 동료 교수가 걱정했듯이 대부분의 한의대 교수들이 연구비와 SCI를 좇아 아직 ‘한의학적’으로 토착화되지 못한 실험적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고 한의학 이론 그 자체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가속화된다면 한의과대학은 교육이나 연구에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 임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의학적인 것’의 대명사로 자타가 공인하는 변증시치를 발전시켜 치료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접어 둔 채 환자들이게 쉽게 어필하고 한의원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의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의원은 한의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걱정이 기우일 수도 있다. 그리고 기우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인 대부분이 의료의 공공성이나 사회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현재의 의료활동을 수행하기보다는 의료를 시장경제 논리로만 바라보고 의료인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지 않겠는가. 과연 우리의 민족의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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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9일자 민족의학民族醫學 신문에 기고된 이충열 교수님의 글을 통해 한의학의 정체성, ‘한의학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 한의학적.... ‘한의학’에 적的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멸종되어 가는 우리 한의학의 고유 언어를 지키는 사명감을 가져보자.
첫댓글 이런 현실속에서 허준이 재림하려해도 실력을 쌓기도 전에 굶어죽는 격이 되버리는게 요즘의 현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자본주의적 인식으로는 좀 요상한 분들(?)인 수도를 하시는 분들이 의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야 앞으로 의학이 제대로 개혁의 바람이 일어날꺼라 생각합니다.
배달민족이 꿈꾸던 의학은 무엇이었을까...무엇이어야 하나...고민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