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온전히. 약1:1-4. 1)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발명왕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은 모든 위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실패를 한 인물이다. 측음기를 발명할 때는 무려 5만 번이나 실패를 하였다. 초등학교 때는 저능아라고 퇴학을 당했었다. 그러나 수도 없는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믿음이 좋았다. 학교나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아니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안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신비를 발견하고 그것에 도전했다. 전등, 측음기, 전화, 전차, 영화 등 3천 4백 종이나 되는 엄청난 제품들을 발명하였다. 82세가 되어 죽는 날까지 약 10일에 한 번 꼴로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실패한 횟수가 무려 11만 번이나 된다고 한다.
야고보는 신앙생활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하여 기쁘게 여기라고 당부한다. 사탄은 넘어트리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공격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성도의 훈련과정으로 쓰셔서 성숙한 하늘의 상속자로 만드시는 것이다. <인내>는 ‘휘포모네(헬)’라고 하는데 ‘남아 있다’, ‘도망하지 않는다.’, ‘견디다’를 뜻하는 ‘휘포메노’가 어원이다. <인내>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굴복하지 않고 견디어 냄’이다.
삶이란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게 아님은 익히 아는 바다. 못된 상사들에게 어이없게 당하는 낭패, 일의 어려움으로 겪는 고통, 불합리한 제도, 규정 때문에 당하는 고난…… 불경기. ‘이제 되었다’ 싶으면 또 다른 고난과 역경이 악수 하잔다. 남의 일 같이 듣던 일이 어느덧 내 일이 되고, 거기 걸려 허우적대는 나를 보기 일수다. 나는 나지만, 나의 나는 아니다. 내 인생은 나만의 인생이 아니다. 부모의 소망이고, 가족의 대들보다. 친지들, 동지들…. 나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계시지 않는가? 주님의 십자가를 무용지물로 만들겠는가? 버텨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게 인내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하늘도 도울 수 있는 그루터기가 있어야 돕지 않겠는가?
Ⅰ. 깨지고 부서져 막다른 골목이 주님을 찾게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말고 연수과정으로 보라는 말씀이시다. 여러 가지 시험은 ‘밖에서 오는 것’들이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어렵지, 밖에서 공격하는 것들은 무시해도 된다. 이런 것들이 내 생각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무너트리지 않게 무장하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던가?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지 않았는가? 주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는가?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처럼 살자.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이 있는가? 아니다. 채찍보다 더 아픈 고통인가? 아니다. 벌거벗겨 매달리는 수치인가? 아니다. 지옥 같은가? 아니다. 그렇다면 견디지 못할 이유가 뭔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고로 내 안에 나와 그리스도 아닌 것들을 걸러내는 그물이 시험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바울은 감당키 어려운 약점들 때문에 사막에 들어가 40일 금식기도를 했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담대하게 선언해야 한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의 모든 시련과 고통은 떠나갈지어다." 내가 역사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신다. 고로 고난에 대해 불만하고, 불평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리자의 권한을 가지고 극복해야 한다. 할렐루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낙심하다>는 ‘엑카케오(헬)’인데 ‘마음을 잃다’라는 뜻이다. 마음을 일으켜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약속이다.
실패 없이 위대해진 사람 없다. 바닥에 깔려본 사람 … 해 볼 짓 다 해보고, 매달려 볼 사람 다 매달려 보고, 할 짓, 못할 짓 다 해봐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마지막 외길 <예수님 만나기>를 시도하게 된다. 반석이신 주님을 만날 때 모든 장벽은 무너지고, 바닥을 치고 올라올 수 있다. 할렐루야!
Ⅱ. 주님께 미쳐야 성공에 미친다. 미국 스탠더드 석유 회사의 점원 아치볼드는 회사에 미쳐 호텔에서 숙박계를 쓸 때에도 자기의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에 4달러 스탠더드 석유”를 앞에 쓰고 자기 이름을 썼단다. 누구와 대화할 때에도 “한 통에 4달러 스탠더드 석유”라는 말을 먼저 하고 용건을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 통에 4달러 스탠더드 석유”라고 불렀다. 이 소문을 들은 사장 록펠러(1839-1937)가 이 아치볼드를 불렀다.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스며 있는 애사심(愛社心)을 느낄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록펠러는 아치볼드야말로 스탠더드 석유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자기 뒤를 이을 사장으로 세웠다.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 사장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다. 충성된 청지기에겐 더 많은 일을 맡기신다. 바쁘기만 한가? 귀찮은가? 하나님이 믿고 맡기신다는 것은 축복이요, 은혜요, 범죄 할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요, 하늘의 상급을 늘리는 수단이니까 열심히 해야겠지. 그냥 예수에 미치자. 입만 열었다 하면 <나의 구세주 예수>. 누가 쿡 찔러도 <예수 청지기 ***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5:13) 미쳐야 미친다. 미치지 않고는 all in 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남녀 간에 눈에 콩깍지가 씌우면 물불 못 가린다. 국경도, 언어도, 왕좌도 버린다. 후회 없는 일생을 산다. 예수로 미치자. 은혜로 미치자. 예배에 미치고, 사명에 미치고, 말씀에 미치자. 눈에 뵈는 게 없는 <더 존 인>이 되자. 그리하면 고난 속에도 성령의 법 안에서 산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2)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 속사람이 예수로 꽉 찬 사람! 성령의 기름부우심속에 사는 사람! 성숙된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쳐야 결승선에 미친다. 할렐루야!
Ⅲ. 거칠 게 없는 승리자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40:1-2)
초전에 장인 사울 왕에게 고난을 당하던 다윗! 모질게, 무지막지하게, 이유 없이, 죽이려드는 사울 왕의 창끝을 피하여 얼마나 헤매었던가? 망명도 하고, 미친 체도 했다. 그 사울 왕이 죽고 민족 통일이 되는가 싶었는데 총참모장 요압의 개인적인 복수로 허물어져버린 기회! 참으로 길고 혹독하고, 어처구니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다 견뎌 낸 다윗을 온 국민들이 사랑하지 않던가?
40 + 40을 혹독하게 연단 받던 모세는 인류 역사상 누구도 해 낼 수 없었던 엄청난 일을 해 냈다. 북 아프리카 대륙을 제패한 바로 왕을 꺾을 군대가 있었던가? 무기는? 전략은? 없었다. 자기 백성들도 안 따랐다. 오로지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들 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이 함께 하셨다. 그 기나긴 광야의 여정, 가로막는 홍해, 뜨거운 태양과 밤의 추위! 믿음의 지팡이 짚고 나아갈 때 승리만 있었다.
모세의 시종으로서 청지기에 충실했던 여호수아! 애급에 빌붙어서 패장 하던 역적 다단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고도 수종드는 일에서 떠나지 않던 여호수아! 일생을 오로지 시종으로서 보냈다.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그 엄청난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땐 천하무적이었다. 온 국민이 잘 따랐다. 실패한 전투가 없었다.
경제 부흥을 일으켰던 오므리 왕조의 아합 왕. 철저한 바알 정치로 하나님을 대적했었다. 온 국민들도 ‘먹고 살기에 풍족해졌으니’ 절대 지지다. 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갔던 엘리야! 하루도 견디기 힘든 박해가 연속되었지만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갈멜산의 대결로 살아계신 하나님 선언과 바알, 아세라 제사장들을 척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승리의 끝은 지상의 영광으로 끝나지 않고 천국 영생으로 이어진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6-7)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