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상 위에 케이크가 놓여있고 과자와 과일과 컵들이 어수선한데, 이것들을 배경으로 한껏 기분이 올라온 듯한 예닐곱 명의 애들이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보이며 찍은 사진이다.
“도대체 애들 생일에 친구 초청하는 버릇은 어떤 엄마가 시작한 거야?” 라는 문자가 따라왔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한참 애들을 키울 때는 이런 풍습이 없었다. 아침 밥상에 미역국 한 그릇 놓고 생일 축하한다는 한 마디로 끝냈다. 그리고 선물 하나가 전부였다.
내가 어린애였을 때는 아침상에 미역국 한 그릇이면 생일잔치는 끝이었다.
다만 아버지 생신날은 예외였다. 집안 어른들과 친지 여러 분들을 모시고 잔치가 벌어졌다. 안방에는 여자 손님들, 건넌방에는 집안의 남자 손님들, 사랑방에는 아버지와 관계되는 분들이 자리했다. 생신날은 양력 정월이어서 한창 추울 때였다. 부엌과 마루에서 분주히 준비하던 형수님들과 누님들이 흉보았다.
“왜 푹하던 날씨가 생신날만 되면 추워지지?”
“왜는 왜야. 성질이 까다로운 양반이라 그렇지.”
어머니가 말씀하셔서 온 식구가 깔깔대고 웃던 생각이 난다. 광복 전후의 우리나라 겨울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추웠던 것이다.
아버지 생신은 이렇게 추억하는데 어머니 생신은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외식을 하셨을 리가 없다. 이런 풍습은 요즈음에 생긴 일이다. 그러니 전에는 생일에도 남존여비가 있었나보다.
생일잔치는 어른, 그것도 남자에 한했던 풍습이 변해서 애들 생일에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라는 것을 경쟁적으로 차려주게 되었다.
그런데 생일은 당사자가 즐거워하고 축하받아야 하는 날일까.
옛날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백일잔치, 돌잔치를 하며 생존을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보니 내 생일날은 실은 어머니가 목숨 걸고 나를 출산한 날이 었다. 지금은 병원에서 출산하지만, 전에는 여유 있는 집에서는 산파를 불러 출산 도움을 받았고, 보통은 집안 여인들이나 경험 있는 이웃 아낙들의 협조를 받아 출산했다. 그래서 사산율도 높았고 더러는 산모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생일날은 어머니에게 불효를 저지른 최초의 날인 셈이다. 출산의 고통만이 아니라 생명까지 담보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축하받을 게 아니라 어머니에게 감사의 잔치를 차려드려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어머니가 내 생일을 차려주는 게 아니라 자식이 어머니를 모셔야 마땅한 날이 내 생일날이다.
그런데도 생일날에 어머니는 철저히 배제되고 자식이 주인공이 된다. 어머니만 뒤로 숨는 게 아니다. 인생 모든 일에 아버지도 위정자도 절대자도 뒤에 감추어진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지은 동시다. 이 어린이의 눈에 아빠의 수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존재 자체를 배제한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나가 늦게 귀가하며 뼈골 빠지게 일한다. 아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열심히 일해서 냉장고와 강아지가 있게 해 준다. 애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격양가를 보면 임금의 존재가 희미하다.
격양가(擊壤歌)-무명씨(無名氏)
日出而作(일출이작) : -해가 뜨면 일하고
日入而息(일입이식) : 해 지면 들어와 쉬노라
鑿井而飮(착정이음) : 우물 파서 물마시고
耕田而食(경전이식) : 밭 갈아서 음식 먹으니
帝力何有于我哉(제력하유우아재) : 황제의 힘이 내게 무슨 필요 있으리오.
나라에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안 쓰면 성군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를 잘 하면 모든 일이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알고 위정자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다. 반대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위정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러고 보면 요임금만 아니라 2학년 학생의 아버지는 좋은 아빠인가보다.
인생도 이와 같다. 내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여러 가지 여건과 주변 사람들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내 능력이 발휘되는 게 아니겠는가.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볼 수 있게 된 예수 핍박자 사울이 개과천선하여 사도 바울이 된 것처럼,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사람들은 내가 나 되게 하는 힘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려고 애쓴다.
그 비늘이 벗겨지면 내 생일은 어머니에게 축하받을 날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하는 날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목숨 걸고 출산한 날을 기념해 새 생명 탄생의 기쁨을 주었던 자식에게 생일잔치를 차려준다. 자신이 잡수셨던 미역국을 자식에게 먹이며 당신의 수고는 뒤로 감춘다.
이제 나는 뒤늦게 이 진리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내 곁에 어머니가 안 계신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더더구나 내 생일이 가을이니 그 해 여름, 어머니는 만삭으로 여름을 나셨겠지. 냉방시설이 부실했던 그 시절,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미역국이 먹고 싶다. 그리고 그 미역국에 내 감사의 눈물 한 방울 떨어뜨려 어머니께 되돌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