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道
바람이 거칠다. 가을이 이 지경에 이르니 차라리 첫눈이 그립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괜히 무작정 걷고 싶다.
마음뿐이다. 길을 나서지 못했다. 선뜻 나서지지가 않는다. 언제부턴가 길을 걷기보다 도로를 자동차로 운행하게 되면서부터 길을 나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욕망은 세상을 또 그렇게 바꿔놓고 있다. 길은 넓혀지고, 직선으로 잡히고, 아스팔트로 포장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은 좌우로 나뉘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기가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기보다 멀고 어렵게 되었다.
분명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은 곳을 다니게 되었지만 사는 삶이 지치는 것은 왜일까?
우리 마을 홀애비산 쪽으로 길이 나고 마이산을 찾는 차량들 집 앞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하느냐고 길을 묻는다. ‘이리가도 되고, 저리가도 된다’ 하다가 헛갈려 해싸서 이제는 하나만 가르쳐준다.
홀애비산 쪽으로 난 새길은 삼거리를 만들었고 읍내를 가깝게 했다. 올 봄에는 선형공사라 하여 한 번 더 길을 직선으로 잡았다. 결국 새길을 이용하게 되고 직선에서 살짝 비껴선 곡선의 길은 잊혀진 길이 되었다. 그 곡선의 길이 마음이 쓰이면서도 업은 애기 찾듯이 무슨 ‘가지 않은 길’이 되었다.
가지 않은 길. 분명히 있는 길인데 길 아닌 길이 되어버린 길에 대한 미련은 우리 마을과 차원을 달리하며 전개되는 읍내의 풍경에 잊혀진다.
꼭 그 때,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굴다리를 지나면서다. 전주에서 무주를 빨리가기위해 지어진 굴다리를 지날 때면 조폭영화에서 상대방을 제압할 때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게 하는 행위처럼 그것은 굴욕이다.
그러고 보면 길을 그렇게 내는 것은 일상의 삶에 대한 깡패 짓이다. 일방적인 폭력이다. 고속도로 공사로 굴다리가 하나 더 만들어지고 있어 벌써부터 겁이 난다.
우리말에 ‘도가 지나치다’는 말, ‘도가 넘었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옛날에도 그런 때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말 그대로 ‘도가 지나치다’ 사방이 도로공사 아닌 곳이 없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다. 길을 나서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지 않는 길보다 지나친 길이 훨씬 더 억울하다.
한 때 길가에서 ‘도를 아십니까?’ 하는 게 있었다. 어쩌면 그 자체가 도일 텐데 새삼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슬슬 피해야만 했다.
학교 수업시간에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며 ‘너 자신을 알라’던 말씀에 내가 나일 텐데 그 이상을 알아내라 하시니 오히려 더 답답하기만 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길을 묻지 않는다. 주소를 묻는다. 위치추적장치 지피에스(GPS)라는 기계가 인도한다.
그것은 이제 우리에게 길이라는 것이 길을 걷는 이차원의 세계, 길에서 길을 묻는 삼차원의 세계를 넘어 사 차원의 세계로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허상의 세계가 엄연한 또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해도 우리의 삶에서 연결되지 않는다면 없는 길인 것이고, 설령 있다 해도 나의 길이 아니라면 그저 한낱 공상일 뿐일 것이다.
이 글 끝에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참 놀라운 세상이다. (2006,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