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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딤 젤란드
바딤 젤란드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딤 젤란드,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는 호기심 많은 독자들에게 저는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 아무도 아닙니다."
저는 트랜서핑의 창조자가 아니고 '재해석자'이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흥미거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이 고대의 신비지식 안에 어떤 이의 개인적인 곡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무도 아닌 사람, 빈 통로가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지식은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법칙들을 따른다면, 현실은 더이상 외부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조종 가능한 것으로 변화합니다. 신비는 너무도 광대하여, 그것을 지닌 자의 개성은 의미를 잃습니다. 아마도 신비를 지키는 수호자들만이 주목받을 가치가 있을 테지만, 그들 또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제 나이는 45세입니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에는 양자물리학을 연구했고, 그 다음에는 컴퓨터 공학을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책을 쓰고 있지요. 저는 러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그외에 다른 것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도 마찬가지죠.
트랜서핑이라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당신에게 나타났나요?
트랜서핑은 아이디어도 아니고,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트랜서핑은 고대로부터 우리에게 찾아온 지적 유산입니다. 이 신비지식은 초현실적인 방법으로 제게 전해졌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았고, 어디서 그런 내용을 읽은 적도 없었습니다. 정보가 스스로 제 머리속으로 들어왔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는 없어요. 저는 평범한 사람이고, 외계인이나 유령들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제가 저의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제 꿈에 나타났던 감시인입니다. 그분은 고대 신비지식의 수호자 중 한 분이지요. 그 꿈 이후에 제 머릿속에 정보의 흐름이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시인과의 만남은 책의 첫 부분에 묘사되어 있지요. 그 만남 이후에 제 삶은 갑작스런 변화를 겪었습니다. 별달리 특별한 재능이 없던 전직 물리학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책을 쓰기 시작했죠.
당신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마도 그 전환점은 제가 삶에서 극도로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던 때인 것 같아요. 제가 25년 전에 저의 책 <트랜서핑>을 읽었어라면, 제 삶은 훨씬 더 평온하고 바람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아마 이 책을 쓸 수 없었겠지요. 그 모든 시련 끝에 어떤 채널이 열렸고, 그 통로를 통해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평생 저는 반反 트랜서핑을 해왔어요. 모든 것을 트랜서핑과는 반대로 해왔다는 거죠. 영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보고 배우지만, 바보들은 자신의 실수에서 배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정말 바보였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와 남의 실수 중, 어느 것에서 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영리한 사람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만 알지요. 달리 말하자면, 영리한 사람은 정보만 알고 있을뿐, 그것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그와 달리 바보는 부딪혀 머리에 혹이 날 때마다 거기에서 실수의 핵심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그는 살이 있는 진정한 지식을 얻는 것이지요. 오직 바보만이 신비지식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떤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까?
독자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읽고 판단해보면, 독자들의 거주 지역, 나이, 사회적 지위 등은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신비지식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나 이것을 받아들으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부한 마음의 틀 속에는 트랜서핑이 자리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는 깨어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깊은 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트랜서핑은 그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대단히 감탄하며 받아들이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거부합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감사 편지가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거부하는 사람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있지요.
가능태 모델이란 무엇인가요?
현실은 두가지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형태로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이상학적인 형태로 우리의 지각범위를 넘어서 있으면서도 물리적인 형태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은 무한한 크기의 이중 거울과 같습니다. 한쪽 면에는 물질세계가 있고, 다른 면에는 형이상학적인 가능태 공간이 있지요. 그 가능태 공간은 가능한 모든 사건의 시나리오를 간직하고 있는 정보체입니다. 가능태의 수는 평면 위에 존재할 수 있는 점의 위치와 마찬가지로 무한합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가능한 모든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요. 거리에서 우리의 꿈과 투시력, 본능적인 지식, 그리고 깨달음이 나옵니다. 사람의 사념에너지는 특정한 조건 아래서 가능태 공간의 어떤 섹터를 물질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트랜서핑에서 우리가 '영혼과 마음의 합일'이라고 부르는 어떤 상태에서는 신비한 힘, 즉 외적의도가 탄생합니다. 당신이 만일 일정한 규칙을 따른다면, 이 힘은 당신이 주문하는 것을 실현시켜줄 것입니다. 당신이 얻고자 의도하는 것을 물질로 실현시킨다는 것이지요.
이 책은 그저 또 하나의 자기계발 기법인가요?
트랜서핑은 자기계발 기법이 아닙니다. 이것은 원하는 것을 얻게 하는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입니다. 성취하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그저 얻는 것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고,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단순합니다. 세상은 당신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거울처럼 비춰줍니다. 당신이 세상과 싸우면, 세상은 당신과 싸웁니다. 당신이 싸움을 멈추면, 세상이 다가와 당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얻도록 허용한다면 외적의도는 그것을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날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목표를 성취하기를 필사적으로 원하시나요? 이제 그만 원하기를 멈추세요. 당신은 어떻게든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저 당신이 원래 자기 소유인 것을 가진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그것을 요구하거나 주장하지 않고서 편안히 가지게 됩니다. 내가 그걸 가진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난 그냥 내가 바라는 것을 가지게 될 겁니다.
사회는 당신에게 완전히 다른 시나리오를 강요합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투쟁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당신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게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당신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신을 변화시키기 전에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믿게 됩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성공을 향한 투쟁에 돌입해야 합니다. 이 시나리오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에너지를 빼앗으려 매트릭스의 배양기 속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자신과 싸우면서 당신은 모든 에너지를 매트릭스에게 줘버립니다. 세상과 싸우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투쟁 속에서 당신은 많은 것을 얻었나요? 당신은 유배지로 가는 사람처럼 우울하게 지겨운 일터나 학교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따뜻한 바닷가로 가서 일광욕을 즐길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투쟁에서 승리해서 지금 삶을 즐기는 것일까요?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평생 스키 리조트에 갈 돈을 저축하지 못합니다.
트랜서핑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먼저 투쟁을 멈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신념체계에서 빠져나와 다른 길로 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그저 갖는 것을 허용하는 길, 이 책에서 당신은 그 길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다른 책들은 효과가 없는 데 반해, 이 책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트랜서핑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의 작품들과 자주 비교됩니다. 아마도 부분적으로 용어들이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와 테운 마레즈의 책으로 유명한 <전사의 길>은 전혀 트랜서핑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그 반대의 위치에 있는 톨텍의 가르침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두 가르침을 비교하려 한다면,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둘이 하나의 동일한 목표 즉, 자유-당신이 세상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를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자유에 이르는 길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습니다. 톨텍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에게 복종을 강요하려고 애쓰지만, 트랜서퍼들은 세상에게 복종을 허용합니다. 아마도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이 원칙적으로 서로 다를 것입니다.
당신의 책은 <시크릿>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똑같은 지식을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이라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느 한 가르침을 다른 것과 비교하다 보면 <우파니샤드>에 까지 갈 수도 있을 겁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이 모든 지식은 하나의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여러 다른 사람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똑같은 발견을 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많은 새로운 사조들이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타납니다.
나머지 다른 것들과 공통되는 요소를 전혀 갖지 않는 가르침을 한번 찾아보세요. 만일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현실에 관련된 가르침일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마음도 우리 세계와 관련이 없는 것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판타지 소설조차도 조만간에 현실이 됩니다. 판타지 소설가들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현실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실제로이 모든 아이디어와 이미지는 꿈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정보장에 정적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마스터'들도, 또 일반인들도 모두 같은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는 아주 간단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아무 서가에서나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고르는 것과 같지요.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지식에 접근할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 지식을 받으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기를 감행해보세요. 그것을 감행하는 사람은 새로운 발견을 하고 음악을 작곡하며, 책을 쓰고 여러 분야에서 걸작을 창조합니다. 지식은 그것을 붙잡으려는 의도를 밝힌 사람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이 이론이 당신에게는 어떤 효과가 있었나요?
말할 것도 없이, 제가 저 자신의 체험에서 트랜서핑을 시험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테크닉은 나무랄 데 없이 효과가 있고, 보통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평범한 경험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도 꽤나 자주 일어납니다. 이 모든 기적이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완전히 설명될 수 있기는 하지만 저는 아직도 거기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언제나 놀라곤 합니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누구든지 의도의 힘으로 현실을 조종하기를 시도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은 느낌 - 경이로움과 희열 - 을 체험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현실을 외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은 경이로운 일이지요. 당신은 자신이 더이상 환경조건에 매여 있는 작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며, 스스로 자기의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하면서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이 트랜서핑 이론을 개발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트랜서핑 이론은 제가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능태 공간에 이미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지요. 제 임무는 그 공간에서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었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책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모든 챕터를 동시에 병행해서 썼지요. 서로 분리된 여러 개의 아이디어들이 저절로 제 머리속에 들어왔고, 저는 그것을 받아적었습니다. 그런 단편들이 충분히 축적되자, 그들이 스스로 합쳐져 전체 그림을 만들었어요. 저는 단지 그 단편들을 엮어서 편집하기만 하면 되었죠. 그런 식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분리된 단편들이 모여 책이 된 겁니다. 보통 한 권을 쓰는데 일년에서 일년 반이 걸렸습니다. 어떤 때는 몇 주 동안 한 페이지도 못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성을 사용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할 때까지는 어떤 힘이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참된 지식은 느닷없이 저절로 나옵니다. 영혼의 깊은 곳 어딘가에서 나오는데, 저는 그곳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 이론은 따르기가 어려운가요?
트랜서핑은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대단히 효과적인 현실조종 기법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독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트랜서핑이 삶의 질을 눈에 띄게 높여주었다고 말합니다. 결과들은 다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이 주문한 것을 얻었지요. 직장, 승진, 새 차, 새 아파트. 인생의 짝을 찾기, 문제와 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기 등등.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트랜서핑의 정수를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당신의 세계는 당신이 세상에 생각하는 바이다."
세상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거울처럼 비춥니다. 누군가가 좋은 상품은 모두 다 팔렸을 거라고 확신한다면 실제로 그에게는 빈 진열대만 남아 있게 됩니다. 좋은 상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비관적인 기대와 의심으로 가득하다면 기대하는 그대로 반드시 일어납니다. 불친절하고 비우호적인 만남을 기대한다면 그 예감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세상이 자기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두었다는 순수한 생각에 가득 차 있다면, 그 일 또한 어떤 식으로든 실현됩니다. 모든 것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괴짜는 묘하게도 어쩌다가 판매대 맨 앞에 서 있게 되는데, 그때 마침 그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것처럼 상품이 도착합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첫 손님든 모든 상품을 공짜로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의 뒤에는 삶의 현실은 훨씬 더 우울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습니다.
트랜서핑은 외부 세계의 환상에 눈을 뜨게 해줍니다. 주된 환상은 현실이 당신과 무관하게 따로 떨어져 존재하며, 그래서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자기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몇몇 규칙들을 따라야 합니다. 규칙들의 자세한 내용은 <트랜서핑> 책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책에서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며, 유사한 가능태들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내가 잘못된 인생트랙이나 '너무 유사한' 가능태를 선택한다면 어떻게 하지요?
제가 유용한 원리를 하나 알려드리죠. 이것은 의도의 조율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삶은 다른 모든 물질의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의 사슬로 이루어집니다. 결과는 가능태 공간에서 항상 원인에 가까이 위치해 있어요. 가능태 공간의 섹터들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연결되는 흐름을 이루면서 인생트랙을 형성합니다. 인생트랙 위의 모든 사건은 두개의 지선을 가지는데, 하나는 행운의 쪽으로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불행의 쪽으로 나 있지요. 이런저런 사건을 만날 때마다 당신은 그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만일 그 사건을 긍정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당신은 행운의 지선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에 중독되어 있으면 당신은 불만을 표현하면서 불행의 지선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신이 뭔가에 화를 내면 새로운 문제거리가 뒤따라 찾아옵니다. 그래서 "불행은 겹쳐서 온다"는 말이 생긴거지요. 그러나 문제들이 줄줄이 뒤따라 나오는 것은 불행 그 자체를 따르는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당신이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규칙적인 패턴이 만들어집니다.
조율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사건을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려고 의도하면 모든 것이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실현됩니다. 지금 아무리 나쁘게 느껴지더라도 조율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미래에는 기쁘고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시험을 치기 전에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합격해도 좋은 일이고 떨어져도 역시 좋은 일이다'
어떤 일이 잘 안 되었다면 그것은 모르는 어떤 다른 문제를 겪지 않도록 피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가벼운 기분으로 당신이 창조한 운명과 데이트를 즐기세요. 이제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연히 필요에 맞춰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 책은 그냥 긍정적 사고에 관한 책인가요?
이 책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을 의도적으로 조종하는 테크닉입니다. 당신이 대단한 낙관주의자라 하더라도 평범한 마음으로는 모든 상황에서 용기를 잃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낙관주의자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희망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제가 비관주의자라면 어떨까요? 제가 과연 "모든게 다 잘될 거야"라는 진부한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꼭 잘 돼야만 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비관주의자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현실에 대한 저의 태도를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비관주의가 제 삶을 망쳐놓았었죠. 이제 불쾌한 일이 생기면 저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놓고 '유쾌함'으로 선언합니다. 그렇게 하면 백퍼센트의 효과를 발휘하지요. 그 결과로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흘러갑니다. 그런 태도 아래에서는 사건들의 흐름이 행운의 지류를 향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현실이 저를 조종하지 않고, 제가 현실을 조종하지요.
당신은 이 책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한 두마디로 설명하는 것으로는 명확히 이해시키기에 충분하지 않겠네요. 사실 이것은 전체의 주제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대답이 상당히 방대해질 겁니다.
첫째로, 이 책은 독자들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충격적인 사실 앞에 서게 합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진짜 현실보다는 편안한 환상 속에 사는 것이 언제나 더 쉽지요. 사람의 동기와 행동이 이성의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과학자들은 인간의 심리를 독립적인 객체로 여기면서 연구하고 있는데, 이는 쓸모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인간 심리가 어떻게 형성되는 가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자유의지가 없으며 외부로부터 조종된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조종을 하는 것은 교육자나 행정관리, 조직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미묘한 물질세계의 어떤 실체라는 점입니다.
알려진 대로 사념에너지는 흔적없이 자취를 감추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집단이 동일한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사념파'들이 중첩되어서 에너지의 바다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에너지-정보체인 펜듈럼이 창조됩니다.
펜듈럼은 일단 생겨나면 독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자기의 의지에 종속시키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펜듈럼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요. 펜듈럼이 사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조직 안에 심어져 있으면서 그 조직의 행동을 결정하는 기생식물이나 생체와 유사한 프로그램처럼 보입니다. 펜듈럼은 가족, 학교, 회사, 국가 등의 각 인간사회 위에 군림하는 상부구조로서 미묘한 세계에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펜듈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정말 사실입니다.
모든 조직은 구성요소인 사람들의 의도된 행동의 결과에 의해서만 살아가고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메카니즘이 일고리즘에 의해 지배되듯이, 조직은 펜듈럼에 의해서 지배됩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그 동기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하며, 무의식적으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게 됩니다.
펜듈럼들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먹고 삽니다. 어떤 것에 화가 나서 분노를 표현하면 당신은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강한 부정적 감정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은 펜듈럼에 의해 일어납니다. 부정적이 에너지는 펜듈럼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죠.
예를 들어 축구 경기가 시작될 때, 그 경기장 위에는 작은 공 모양의 어떤 물체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이 구체는 미묘한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에너지 광선의 촉수가 거기서부터 열광하는 관중에게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게임에 열광하는 감정이 뜨거워짐에 따라 그 펜듈럼은 에너지로 가득차서 부풀어올라 커지게 되지요. 곧 그것은 커다란 크기의 구체가 됩니다. 게임이 끝나면 그것은 다시 쭈그러들고 작은 공 모양이 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골치 아픈 문제는 펜듈럼이 그냥 에너지만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도록 사람들을 부채질한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당신이 어떤 일에 대해 걱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바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것도 당신이 편안히 좀 있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지요.
아이들이 조용히 있다가도 갑자기 정신없이 난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당신을 화나게 만듭니다. 또다른 사람들은 길을 가로막고, 문제거리를 가지고 와서 당신을 괴롭힙니다. 여기저기서 장애물들이 마구 튀어나오지요. 당신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가 아주 늦게 옵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꼭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만일 뭔가가 어느 순간에 당신의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다면 왠지 악의를 품은 것처럼 그 일이 꼭 일어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급하게 서두르며 늦을 것을 걱정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이 순간부터 모든 것은 당신에게 맞서서 작용하기 시작하지요. 사람들이 당신의 길을 막으며 우아하고 품위있게 걸어가면서 당신이 지나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최대한 신속하게 문을 지나가야 하는데 게으른 사람들이 문 앞에 줄을 서서 거의 움직이지도 않아요. 자동차 도로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마치 모든 일이 일부러 그렇게 준비한 것처럼 보입니다.
불쾌함이 축적될수록 외부로부터 오는 이 스트레스는 점점 더 강해집니다. 스트레스가 강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힙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런 행동이 다른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무의식적인 행동 동기를 만들어내는 그 힘이 사람의 마음 안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펜듈럼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법은 무엇일까요? 부정적인 자극이 올 때마다 매번 반응을 일으키는 어리석음을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의식적으로 깨어 있음으로써 초연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이 자극에 반응하기를 멈추면, 그것도 당신을 괴롭히는 일을 멈출 겁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펜듈럼 때문에 더 큰 규모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전쟁, 혁명, 자원전쟁, 시장쟁탈전, 판매경쟁, 테러리즘등 이 모두는 눈에 보이는 빙산의 수면 위 부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묘한 물질세계에 있는 이 사건들의 근저에는 펜듈럼들의 끊임없는 투쟁이 있습니다. 펜듈럼은 갈등의 에너지를 먹고 살기 때문에 그것들이 거의 모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겁니다. 이중 거울의 다른 면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요. 그런 일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겠지요. 사람들이 자원해서 서로 싸우는 겁니다. 그렇지만 진짜 그 일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은 항상 펜듈럼이죠. 예를 들어 개미언덕과 같은 비교적 원시적인 구조를 생각해봅시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그런 군집이 유지되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개미언덕이 분명히 할당된 임무체계를 가지고 있는데도, 종속관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 그 모든 개미들이 마치 중앙통제시스템을 갖춘 조직처럼 쉬지 않고 자기 일을 할까요?
개미들은 페로몬이라고 하는 방향물질로 서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방향물질을 따라서 그들은 먹이와 집을 찾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군집의 모든 구성원에게 동시에 정보가 전달될까요? 개미들 간의 더 높은 형태의 정보교환은 없습니다. 다른 형태의 정보교환 방식이 있다면 그들이 왜 그런 원시적인 방법을 쓰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분리된 구성원들을 하나의 조직체로 통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펜듈럼입니다. 어떤 조직이 설립되고 발전함과 동시에 그 조직의 운영과 유지를 담당하는 에너지-정보적인 실체가 생겨납니다. 펜듈럼과 그 조직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순행과 역행 양쪽 방향의 피드백 관계가 존재합니다. 펜듈럼은 지지자들의 에너지를 소유하면서 그들의 활동을 조종하고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조직된 사회를 만듭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죠. 모든 과정을 이 미묘한 물질 차원의 실체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매트릭스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상소설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이 배양실 속에서 배양되고 그들의 삶은 모두 가상현실인,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와는 다릅니다만 현실 상황은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매트릭스에 몰아넣으려면 중독으로 만든 그물에 사람들을 얽어매야 하지요. 지난 몇 년동안에 많은 중독이 나타났습니다. 음식은 비만에 시달리게 만드는 사료가 되었고, 컴퓨터 세계는 게임중독과 인터넷 중독을 탄생시켰죠. 사람들은 이제 휴대전화가 없으면 외로움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일은 사람들이 시스템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자유를 잃는 것만이 아니라 시스템의 이익이 되는 일을 열망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런 일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임무는 어느날 매트릭스의 배양기 속에서 깨어나 탈출할 수 있도록 그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펜듈럼이 그들의 목적을 위해 배양하는 문화식품인 것 같습니다. 인간 사회는 펜듈럼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도록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에 맞게 펜듈럼들을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펜듈럼을 이용하는 데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해야 되겠지요.
트랜서핑 시리즈를 세권 쓰셨는데, 독자들이 트랜서핑 이론을 이해하고 인생트랙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모두를 다 읽어야 하나요?
사실 트랜서핑 시리즈는 벌써 아홉 권이 출간되었습니다. 각각의 책은 나올 때마다 새로운 뉘앙스를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내가 말하지 못한 내용들도 더 있어요. 그렇지만 시작단계에서는 첫 세권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그저 책을 읽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 지식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스스로 놀랄 만한 발견들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트랜서핑은 현실을 조종하는 강력한 테크닉입니다. 트랜서핑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줍니다. 그 새로운 세계에서 당신은 더이상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고,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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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무한한 창조력의 근원에 접속하는 비법이 전해지다!
2012년 춘분(3월 20일)에 근원으로부터 전해진 현실창조의 방법을 처음 소개하는 책 !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y Transurfing 시리즈의 첫 책이 나온 후로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간 트랜서핑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또한 트랜서핑 워크숍을 안내하면서, 책에서 말하는 현실창조 원리를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던 것 같다.
다행히도 나는 그것을 무거운 숙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제 그 흐름은 나에게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창조근원’은 나에게, 현실창조란 어려운 것이 아니며 누구나 실천해야 할 이 시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니 널리 전하라고 말한다.
내가 감히 창조근원의 목소리를 전하게 된 사건은 2012년 3월 20일 춘분 날에 일어났다. 한때 마법과 비밀전승 등을 탐구하는 데 빠지기도 했던 나는 해마다 춘분이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습관처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곤 했다. 춘분은 마법사들이 입문식을 수행했던, 영적인 변형이 일어나기 쉬운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웬일인지 춘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넋을 놓고 있었는데, 그렇게 마음을 비운 상태가 가져온 행운인지 나는 예기치 않게 비몽사몽 간에 현실 너머의 세계에 닿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생생한 영상과 함께 창조근원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제 삶의 주인으로, 인생의 창조자로 깨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일 속에서 창조의 근원을 만날 것이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그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이제 그 방법을 알릴 때가 왔다.”
그 후로 창조근원은 내게 영감을 쏟아 부어주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모든 방법보다 더 쉬운 길이 보였다. 그동안 갈구하고 탐구해왔던 모든 길이 한순간 하나로 꿰어졌고, 나는 내 이성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폭발하는 그 체험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컴퓨터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그것은 내게 충격인 동시에 은총이었다.
그 체험에서 온 통찰을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말로써 설명한다는 것은, 한순간에 나를 관통했던 복합이미지를 어쩔 수 없이 해체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동시성의 차원에 속한 것을 시간(인과)의 차원 속으로 옮겨와야 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금 이 창조근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제를 무거운 짐이나 운명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흐름으로 가볍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 것은 내가 트랜서핑을 만난 이후 얻은 가장 큰 축복이다.
창조근원이 나에게 준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지금-여기’가 바로 창조공간이라는 것이다. 눈을 열면, 세상을 뒤집으면, 우리가 물질차원으로 알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근원의 세계이다. 이것은 숨겨진 비밀이 아니라 온 천하에 드러나 있는 열린 비밀이다.
나는 독자 여러분이 창조근원이 전해준 현실창조의 방법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많든 적든 꼭 실생활에서 실천해주기를 기대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깨어남이 지구를 점점 더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어줄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의 깨어남에 미리 감사드린다.
*
근원으로부터 전해진 첫 메시지를 기록한 것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일곱 차크라는 접속 포인트로서
안과 밖이 뒤집어지는 지점이다.
안은 무한한 창조력의 공간이고
밖은 물질현실이다.
각 차크라는 각각의 차크라에 해당하는 이슈를 통해
안밖을 바꾸는 지점이며
인간의 모든 삶의 이슈는 근원에 접속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안팎을 뒤집으라.
안이 곧 밖이다.
밖은 곧 안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우주는 곧 우리의 내면이 뒤집어진 것이다.
이것이 이중거울의 원리다.
바깥거울을 안 거울로 뒤집어라.
여기가 바로 거기다.
여기가 바로 창조력의 근원이 감춰져 있는 곳이다.
바라보는 눈을 바꾸면 여기가 바로 가능태공간이다.
눈앞에 드러난 모든 현실은
바로 그 내면의 그림이 뒤집어진 것이다.
내면 공간의 그림과 미니어처를 늘 확인하는 연습을 하라.
그러면 안의 거울에 뭐가 비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이 책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
경험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경험하는 존재는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현실을 창조하는 자로 살기 위해, 현실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우리는 이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수많은 삶의 고통과 기쁨, 행복과 슬픔 속에서 누구나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본 적이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이처럼 고통스러워해야 할까?
우리는 더 행복하고 더 기쁜 삶을 원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스스로 삶의 기쁨과 고통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고 외부에서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행복과 기쁨은 언제나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불안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정말로 확실한 행복을 찾아 나서게 되어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진짜 행복을 찾아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시적인 행복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내가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순간, 그때마다 창조근원은 나에게 모습을 드러냈었다. 내가 창조근원과 하나임을 온전히 신뢰하게 된 오늘날까지 많다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창조근원과의 조우는 늘 같은 통찰을 주었고, 그 체험의 깊이 외에는 다른 게 없었다.
나의 진짜 모습인 창조근원과의 강렬한 첫 만남은 대학 2학년 때였다. 당시에 나는 ‘내가 아는 나’로 산다는 게 너무 갑갑하고 힘들었다. 그 갑갑함이 점점 더 커져서 내가 다른 존재로 변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정신세계사에서 출간된 ‘마인드컨트롤’이라는 책을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면서 나의 탐구여정은 시작되었다.
마인드컨트롤 이후에 만난 ‘초월명상’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거치면서 나는 몸보다 좀 더 미묘한 차원의 에너지 세계에 눈을 뜨게 됐고, 에너지에 몸을 맡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면서 온갖 요가동작들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과정을 겪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요가동작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책에 똑같은 동작이 있음을 보고 알았다. 그런 기묘한 동작들은 ‘쿤달리니’라고 하는 창조에너지를 내 몸 안에서 폭발시켰다. 그 이후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체험들이 찾아왔는데, 결국에는 죽음에 대한 관심, 자아를 넘어선 존재의 근원에 대한 관심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창조근원과의 첫 만남은 그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벌이고야 만 죽음체험에서 찾아왔다. 당시에 나는 삶의 비밀을 너무나 알고 싶었기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 실험은 ‘자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 있을까?’에서 출발했다. 결국에 나는 ‘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아주 유사한 것이며 같은 뭔가가 있음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것이 바로 창조근원과의 만남이다.
우리는 매일 밤, 잠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창조근원과 다시 연결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절’하기 때문에 창조근원과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본질이 바로 그 무한한 창조력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그런 만남을 반복하게 됐고, 비록 삶의 경험에 몰두하면서 잊어버리고 살았던 적은 있지만, 언제나 다시 그 만남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런 벗어남과 되돌아옴의 반복이 내 인생의 큰 주제처럼 느껴졌다.
왜 우리는 자신이 창조자이고 근원임을 모르게 됐나?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가? 이런 의문들이 내 인생의 고통과 기쁨이 반복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아왔던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시도해왔던 수많은 실험과 연습들을 간추리고 정리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이 연습들을 통해 아주 쉽게 ‘현실창조자’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창조한다. 알든 모르든 그렇다. 그 사실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창조이기 때문이다. 삶을 경험하는 순간, 창조근원에서 한 발짝 내딛어 창조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보통은 그 삶의 경험 안으로 확! 하고 빠져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실험과 연습을 통해서 그 과정을 천천히 재현할 수 있고, 창조근원으로 다시 돌아가 하나가 될 수 있다.
본래의 우리는 언제나 시간과 공간이 태어나기 전 상태 그대로 머물러있다. 그러나 인생을 경험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창조하고 그와 동시에 공간이 벌어진다. 무시간성인 본질은 그대로는 스스로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통해서만 자신을 경험할 수 있다. 무공간성인 본질은 공간을 통해서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경험하는 물질현실 속에서 무시간-무공간성의 자신을 각성하게 되고 그 힘을 현실에 갖다 쓸 수 있다. 이것이 현실창조라는 마법에 통달하는 길이다.
그 본래의 창조력을 사용해서 우리는 매순간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보통의 경우 원리를 모르니까 무의식적으로 창조하고 있으며, 그 창조를 변화시키고 조종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이 책에 나오는 연습들을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창조하고 있는가를 알고, 그 창조과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시기 바란다.
가장 중심적인 것은 슬라이드를 바꾸는 법이다. 슬라이드를 바꾸는 것은 포토샵의 원리를 활용하면 이해하기 쉽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 말하듯 우리는 ‘자신만의 세계의 층’을 가지고 현실을 구성하는데, 그 층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여러 개의 슬라이드가 겹쳐져서 하나의 영화를 만든다.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필름이 하나지만, 우리 인생의 영화는 여러 장의 필름이 겹쳐져서 상영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된다.
슬라이드가 바로 그 필름인데, 필름들이 겹쳐져서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포토샵에서 여러 장의 레이어가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것과 그 원리가 동일하다. 그래서 그 원리를 알면, 포토샵으로 그림을 쉽게 창조하고 변화시킬 수 있듯이, 우리 인생도 간단히 바꾸고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원하는 현실에 맞지 않는 슬라이드는 빼내고 필요한 슬라이드를 맘대로 만들어 끼워넣을 수 있다. 그런 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바탕은, 자신의 본질이 창조근원이라는 것을 아는 지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작은 ‘자기’는 스스로를 제한하는 신념이다. 그 작은 자기로는 맘대로 슬라이드를 빼내고 끼워넣고 하지 못한다. 작은 자기로서는, 오랫동안 갖고 살아왔던 슬라이드를 제거할 때는 고통이 따르며, 새로운 슬라이드를 끼워넣을 때는 낯선 삶에 대한 두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자신이 창조자임을 깨닫게 된다면 아무런 고통과 두려움 없이 맘껏 원하는 대로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매순간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며, 그 결과 제한된 신념대로 결핍만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누구나 자신이 창조자임을 깨닫고 더욱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 인생의 참기쁨을 창조해야 할 때가 왔다. 지금은 인류의 무의식적인 창조, 결핍과 고통의 창조가 극도에 달해서, 우리 내면의 반영인 우리의 세상, 지구에 그 고통이 너무 크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들의 본래모습인 창조근원은 우리가 다시 돌아와 근원과 하나임을 알고 참 행복과 기쁨을 창조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가상현실 매트릭스에서 깨어날 시기다. 스스로 자신을 자유롭게 하라. 무의식적인 어두운 창조를 그치고 밝은 세상의 공동창조자로 거듭나라.
첫댓글 한국 트랜서핑 센터 다음까페/ http://cafe.daum.net/transurf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