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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동산
본문: 아4:13-14
설교자: 김남준 목사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4:13-14)
들어가는 말
아가서는 솔로몬이 실제 어느 여인을 사랑했던 경험을 토대로 적어 내려간 책입니다. 그래서 사전 지식 없이 성경을 보면 이 책이 정말 성경일 수 있는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과 당신의 백성들과의 애정 어린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신랑 신부 된 관계로 솔로몬의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가서처럼 훌륭한 복음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구약성경도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가서를 깊이 연구하면 우리의 내면의 세계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해야하고 주님과 어떻게 하나된 삶을 살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많은 공허한 신앙생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복음으로 밝혀 주는 데 커다란 유익이 될 것입니다.
본문의 앞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이것은 신부가 단지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내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혈육과 같이 느껴지면서도 연인의 사랑을 느끼는 친근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따로 존재하는 개체로서 사랑을 나누는 관계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하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이면서도 또한 혈육과 같이 느껴지는 관계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이것은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커다란 산의 중심부로 점점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큰 산에는 동산이 있고 그 작은 동산에는 우물이 있고 우물에는 샘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장부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산이 잠겨져 있고 우물은 덮여져 있고 샘은 봉해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마치 정원과 같아서 실제로 그 정원을 거닐어 본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그 신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모두 신앙 밖에 있었을 때는 신앙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신앙의 세계를 알게 하셨습니다.
말로 열심히 신앙의 세계를 설명하지만 신앙의 세계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그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모든 원동력이요 힘의 기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산에서 우물, 우물에서 샘으로 산의 핵심부를 향해 점진해 가고 있는 묘사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잠근 동산과 같고 하나님만을 향해 열 수 있는 덮인 우물과 같은, 그리스도만을 위해 개봉할 수 있는 봉한 샘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열매맺는 삶
오늘 성경은 여러 가지 과실과 나무의 이름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봐도 이 나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유대인들조차도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들은 아무 동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잡목이 아니라 매우 귀하게 쓰여지는 나무들이고 또 그 열매가 매우 아름답고 유익한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15장에서 당신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열매를 맺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사람들이 너희의 그 실과를 보고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너희들이 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요 그 열매를 많이 맺으면 그 열매를 보고 너희가 나에게 속한 자임을 세상이 보고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가 무엇인지 알리라고 말씀하신 이 말씀을 오늘 우리들이 가슴에 새기고 이 본문을 본다면 오늘 우리에게 나무의 이름으로 가득 찬 13절과 14절이 12절과 연결을 지으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많은 나무를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매맺은 것처럼 흉내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열매를 맺는 것, 진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비원에서 자라는 열매
오늘 성경이 "네게서 나는 것은..." "그 동산에서 나는 것은..."이라고 말할 때, 그 동산은 어떤 동산입니까? 모든 사람이 아무 때나 들어가서 짓밟고 유린하고 놀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곳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정원과 같이 오직 한 사람, 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동산의 주인인 신랑만이 들어와서 다닐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동산에서만이 진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고 각양 향기로운 수목들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는 열매들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인적이 끊어진 곳을 가면 열매들이 매달렸다가는 저절로 떨어지고 다시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잠근 동산에서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나 와서 유린할 수 있는 그러한 동산에서는 정말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확정되고 주님을 향해 준비되어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내면의 세계를 소유하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만 주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열매들이 맺힐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잠근 동산과 같은 마음을 갖지 않고 오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도 어쩌면 열매가 맺힐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생활이라고 하는 그럴싸한 열매가 맺힐지 모릅니다.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그러한 모습들이 열매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균형 잡힌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신앙의 열매가 자신의 삶 속에 맺힌 사람들은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내면 속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이러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잠그고 우리의 내면의 세계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만 지배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단속된 마음
또 하나 보여주는 진리는 이러한 아름다운 열매와 진기한 수목들이 모두 잠근 동산에서 생겨나게 되는데 이 사실은 모든 신앙의 열매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인격의 열매이든지 삶의 열매이든지 생활 속에 맺히는 모든 아름다운 열매이든지 모두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에서 감화 받는 것이 있을 때에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정한 관계의 감화가 없이 삶의 열매만을 맺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노예적인 삶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맺는 삶을 허락해 주실 때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열매에 몰두할 때는 오히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열매가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불러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관계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혹은 목양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에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시는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매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열매를 맺어야 하겠다는 열망보다,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끝없는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실패의 근원을 더듬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비밀스러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마음을 단속하고 하나님께만 그 마음을 드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구제를 하든지 복음을 전하든지 교회를 섬기든지 마음속에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삶의 동기가 되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어서 세상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즐거움과 하나님 앞에서의 정겨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면서 섬김을 행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인의 사랑
오늘 이 동산에 맺힌 아름다운 과목과 과수와 수많은 열매들은 이 동산의 주인으로 하여금 동산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솔로몬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이제 너울을 쓰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인을 맞이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그가 인격적으로나 삶에 있어서나 점점 더 이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자신의 삶의 정원에서 자라가게 하고 있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겠습니까?
얼굴만 아름다울 뿐 아니라 놀라운 삶의 열매가 있고 신랑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인격의 좋은 열매들이 신랑과의 관계 속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자라서 신랑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솔로몬에게 있어서 이 여인을 향한 사랑은 육체에 매혹된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아름다운 외모도 곧 지나가고 훌륭한 몸매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 동산에서의 아름다운 과목과 열매 때문에 솔로몬이 이 여인을 더 깊이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을 사고 팔 때 땅의 넓이만으로 계산하는 산은 잡목들로 가득 차고 쓸모 없는 악산이나 그렇게 합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열매가 자라나고 있고 훌륭한 열매가 자라나고 있으면 법 상으로도 따로 계약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동산에서 자라나는 백향목과 나도초와 번홍화와 석류나무와 모든 아름다운 나무와 과목들이 그 토지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그 놀라운 사랑으로 구원해 주셔서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삶 속에서 더 많은 열매들을 맺어 간다면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기쁜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한 주인을 위한 열매
세 번째로 살펴볼 진리는 이것입니다. 이 열매가 누구를 위한 열매였습니까? 동산은 잠겨졌습니다. 그 동산에서는 때를 따라 내리는 비와 아름다운 햇살을 머금으면서 아름다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구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낙원과 같은 그러한 동산에 들어가 보고 싶은 욕망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동산에서 맺힌 아름다운 과실에 대해서 한 번 눈을 감고 그려보십시오. 백향목이 하늘을 찌를 듯 위엄 있게 자라고 귀한 열매들이 모두 자라서 동산 전체가 그야말로 자연의 보화 덩어리 같은 동산이 되었을 때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감탄할 만한 동산이겠습니까? 그러나 그 동산은 잠겨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이 동산은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으면서 감탄과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위치에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동산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랑의 기쁨은 그 아름다운 과목과 열매들이 이 동산에 가득 자라고 있는데도 그 동산 앞에 와서 오래 전에 자기가 잠그어 놓은 그대로의 상태를 보면서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러하십니다. 누구든지 와서 앉아갈 수 있는 더럽고 순결하지 않은 마음의 자리에 주님을 앉으라고 한다면 주님이 정말 기뻐하실 수 있는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동산입니까?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어떠한 마음입니까? 이렇게 그 동산에서 맺힌 수많은 과목과 열매는 오직 한 사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산의 주인입니다. 여인의 마음에서 자라고 있는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는 모두 한 사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성경에서 신부가 신랑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처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기 위해 너울을 쓴 새색시가 신랑을 기쁘게 하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아무리 번창해도 그 교회는 실패한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삶의 목표는 오직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오늘 이 동산에서 자란 모든 아름다운 과목과 아름다운 실과는 오직 한 시선만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관계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과 관계를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시선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아름답게 자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도 사람을 기쁘시게 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실과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고 싶어하는 모든 이유는 우리 자신이나 혹은 우리 이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열매가 얼마나 주님께 기쁨이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시시때때로 열매를 사모하고 신앙의 과목과 아름다운 실과가 가득한 삶을 영위해 나가기를 하나님 앞에 바라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주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번에는 내가 정말 주님을 위해 열매를 많이 맺어서 주님이 나의 동산의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 이처럼 열매맺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삶과 인격과 마음과 신앙의 세계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밀 속에서 자라는 아름다움
우리는 이 모든 말씀을 통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아름다운 것은 비밀 속에서 자라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을 맛본 사람들은 기도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승리한 사람들은 복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이 알 수 없는 고통을 뛰어넘고 황폐한 삶을 낙원으로 바꾸게 된 놀라운 경험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신앙의 삶이 풍요로운 삶이 되도록 하나님 앞에 마음을 기울이면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의 정원은 어떻습니까? 황폐하게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놀라운 사랑과 지식은 우리의 삶에 뿌려진 씨앗입니다. 이것들을 통해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도록,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만 독점되도록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매순간 우리의 마음이 다른 것들에 의해 지배되고 전념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아뢰고 부르짖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맺는말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성을 지키는 일보다 더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만 바쳐진 삶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세상을 향해 잠그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이러한 우리의 신앙의 정원이 풍성한 정원으로 바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황폐했던 우리 내면의 삶, 신앙,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교회의 모습이 이렇게 돋아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시대의 조국교회를 보시면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향해 마음을 여는 교회, 그래서 주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실 때 아름다운 실과와 수목들로 향기가 진동하는 그러한 풍요로운 나무들의 정원이 있고 그 속에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신앙의 세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려진 문을 통해 세속주의와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이 와서 한번씩 밟고 지나가고 교회에 있는 높은 보좌에 한번씩 모두 앉아버린 그런 짓밟힌 교회 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아름다운 것들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사람들과 세상의 우상들이 소유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은 오직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 자신이 지배하시는 임재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늘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