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복하소서 -
한 이십 수년 전,
내가 안산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안산은 참 황량한 편이었다.
지금은 도시가 된 그 넓은 고잔벌이 모두 논이었다.
저수지나 수로 낚시터등 고향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하여 막지어진 예술인 아파트나 그 앞 4단지 그 옆 3단지등에서
거의 십여년은 산 것 같은데....그후엔 사리포구 대학동 근방등...
별 불편은 없었어도 워낙 기반시설이 부족해 멀리
원곡동이나 더 멀리 영등포로 시장을 보러 다닌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없지만 예술인아파트근방에 포장마차집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집이었다.
그렇게 성업은 아니어도 꾸준히 잘되는 편 같기도 하고 보통정도의 장사 같기도 하고 애매했다.
맛은 좋은 편이지만 다른 곳과 별다른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젊은 주인아줌마가 미인형이었다.
키도 보통일지 좀 작은 편인데 복스럽고 통통한 얼굴이었다.
주민들이나 수많은 예술인들이 드나들었고 우리 만화가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때만해도 밤새워 술마실만한 장소가 없어서 포장마차를 주로...그중에 **집이 단골이었다.
많은 추억이 있다. 특히 여름밤은 일찍 밝는다.
잠시 먹다보면 순식간에 날이 밝아 남들이 출근할 때
좀비처럼 비척거리며 허망하게 숙소로 들어가길 몇 번이었는지...ㅜ
저명소설가인 윤모씨와 싸우는데 **집주인아줌마가 내 편을 들어 이긴 적도 있고..
별 기억 없는 그녀의 남편은 간간 혹은 밤늦게 잠시 와서 거들 뿐이었는데
술인가 뭔가 아니 다른 일로 속 썩였던가...분명치...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 넘어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나 혼자 뿐이었고 그녀는 채소를 다듬는데 매우 불안하달지 심란해하는 것 같았다.
술을 한잔인가 권했는데 먹었던가 말았던가..
뭔 일 때문에 매우 속상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술 취한 탓도 있었겠지만 내가 큰 소릴 쳤다.
"아줌마 아무 걱정 마. 내가 관상을 좀 보는데 아줌마 얼굴에 복과 덕이 덕지덕지 붙었어.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몇 년 안에 반드시 성공하고 귀하게 될 테니 어디 두고 봐,
아니면 내손구락에 장을 지져!"
그 후 교문린가 관악구인가로 한동안 떠나 있다가 돌아와 보니 포장마차들은 모두 없어져버렸다.
아줌마가 김샘은 왜 안 오냐고 한두 번 물어 봤었다한다.
일이년 후든가 그 아줌이 멀지 않은 중앙동에 실내포장마차를 열었단다.
다른 이들은 자주 가는 모양이었으나 난 가본다가본다 하면서도 못 갔다.
'노점보다 나아졌으니 잘 되었구나'
그로부터 일이년 후, 그 아줌마가 닭발전문점으로 바꿔 장사가 썩 잘되어 돈을 잘 번다는 것이다.
하여 오늘날은...?
주식회사 '00'으로 큰 이른바 00닭발은 안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자체공장은 물론 빌딩도 여러 채고 알아보진 못했으나 체인점도 상당한 것 같다.
그 아줌은 외제차 타고 다니며 얼굴보기 힘들어진 사장인지 회장님의 신분이다.
물론 나도 지금껏 한 번도 못 봤다.
아니 만나려고만 들면 왜 못 보겠는가만 안 봤다.
그니가 나를 기억할지 못할지를 떠나 귀하게 된 사람은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애써 부정하고 잊고 싶어하리라 예단했기 때문인데...
가게를 가보면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자리가 없어 얼마간 기다려야 할 정도다.
매장도 매장이지만 배달 매출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오래전부터 나도 그 집 닭발을 종종 먹어봤는데 어찌나 매운지 거의 고문수준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젊은 여성들은 엄청 맛있어하며 잘 먹는 것 같다.
그걸 보면 울나라 여자들은 진짜 독한 것 같다^
피자나 치킨보다 값이 싼 요인도 있겠지만 매운맛도 다소의 중독성이 있고
면역이 생기는 것인지 얼마 전에 먹어보니 그리 맵지도 않고 썩 맛이 있었다.
...좋은 술친구 탓이었나..?
작년인가 00이 매달 삼백만원씩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낸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었지만....
어쨌든간에...
우리 집안의 여러형제 누이님들은 나가 볼 적엔 복과 덕이 붙은 관상이다.
벌써 행복수렁인 분도 있겠지만...거의 대부분 복이 붙었다.
하여 발복(發福)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장담한다.
아니면 내손꾸락에 장을 지진다.
다소 힘들고 갈등이 있을지라도 늘 웃으며 성실히 저거하다 보면
반드시 몇년 안에 발복하리니............
믿슙네까?
......믿는 이만 복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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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9, 친척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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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인가 되어서야 그니와 친분 두터운 선배님과 같이 만나봤지요.
사업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반 은퇴한 상태로 서해변 가까운 산자락에
멋진 저택과 갤러리에서 부러운 노후...
그러면서도 신규 사업의욕이 상당한 것은 과연스러웠지만...
....그래도 홀로 산다는 것은...ㅜ
대접은 잘 받고 왔지만 저를 잘 기억 못하는 것 같아 서운했는데...
나이가 지긋해진 탓인지 사업에서의 내공탓인지..
인생 관조하는 시선이 거의 반도통한듯한 느낌...
그리 새색시 같더니만 진한 농담도 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