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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철액의 민족사를 부정하는 기독교
▶단군조선
난 조선이란 단어를 무지 좋아한다.
조선이란 말은 좁게는 조선왕조를 뜻하는 말이지만
크게는 고조선이후 우리 역사를 통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시대에도 중국의 사서에는 조선이라고도 기술하였으며,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에는 기자조선을 기리어 건국하였기 때문에 결국 고조선을 계승한 것이다.
고조선(구이,동이)-고구려(고려,구려)-고려-조선 , 이 모두 같은 말이란 말이다.
이렇듯 면면히 이어져오는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작자들이 있는데 바로 기독교 환자들이다.
고조선은 47대 단군시대이다. 다시 말해 단군이라는 것은 일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직위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인 것이다.
고조선 이전에는 환국,배달국이 존재하였다고 하지만 아직 비공인 문헌상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고조선 47대 단군의 역사는 신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자세하고, 같은 시대 중국의 구이족의 침략에 대한 기록(예수가 태어나기 200년전에 씌여진 사마천의 사기를 보라,) 을 보면 동이족의 역사(환단고기, 중국의 산해경이라는 역사인문지리지)와 너무나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23대 단군인 색불루는 역성혁명을 하여 왕위를 찬탈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문헌은 1대부터 22대까지를 고조선이라 하여 1099년(?)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다른 문헌은 47대까지 묶어 21??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역성혁명이라는 개념이 기독교가 바라는 신화에 어울리는 개념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같은 시기의 중국의 사서는 침략을 당했다고 나오는 데 반해 환단의 역사서는 쳐들어가 굴복시켰다고 나온다.
한쪽에서는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갔는데, 침략을 당한 쪽은 태평하였다고 하는 경우라면 둘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톱니바퀴처럼 중국의 사서와 환단의 역사는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역사학계에서도 환단고기라는 책에 대한 위서논쟁은 있어도 고조선의 존재(단군의 존재)에 대한 시비는 없다는 점이다.
그럴진대 성경구절 밖에는 좆도 모르는 기독교 정신병환자들은 무얼 믿고 깝죽대는지 단군에 대한 부정으로 개거품을 물고 다니는지 참으로 한심하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것은 신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더더구나 신앙의 범주에서 다루어지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존재유무를 밝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환자들은 접근 방법론에서부터 틀려먹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단순무지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억지쇼에 다름 아니다.
아직 밝히지 못한 부분이 있어 할 일은 많다라고 들었다. 내가 한다는 것은 능력상 말도 안되지만 ,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고학과 문헌학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내고 있다. 예수쟁이들이 점쟁이 빤스를 입지 않은 이상, 더 이상 이럼 문제를 가지고 감내라 떡내놔라 하는 식은 곤란하다. 참으로 시건방진 짓거리가 아닌가!!!
제발 깝죽대지 말고 "모르면 모른다"라고 답하라.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예수식 접근방법을 취하는 것도 틀려먹었거니와, 알지도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마치 다 아는냥 생쇼를 벌리는 기독교 환자들을 보면 "왜 사냐?" 라고 묻고 싶어진다.
단군의 어원
단군Tangun은 몽고어Tengri ,터어키어 Tangri와 같은 말로서 우리말로는 당골입니다. 이는 우랄알타이어로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에 그 기원을 두는 우랄알타이어족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서 "하늘, 중심"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단군Tangun은 우리민족만의 용어가 아니라 우랄알타이어족 모두의 중심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중앙아시아의 천산이 한탱그리산이며 또 티벳트의 탱그라산맥을 비롯한 지명에서도 나타나며 그 외 많은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랄알타이어족이 유라시아대륙에 미친 종교적,문화적 영향력은 가히 근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단군Tangun은 바로 그 근본적인 영향력의 중심입니다.
신라이후 지금까지 외래정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말살에 말살을 거듭되어온 단군Tangun에 대한 개념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에서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눈을 돌려 유라시아대륙을 바라보고 또 동서양의 고대문명을 살펴보면 국내에서 어렴풋하던 단군Tangun의 모습이 뚜렷하게 그리고 거대하게 나타납니다
이 모습은 천부경,삼일신고,366사,단군팔조교등의 경전과 한단고기등의 역사서에서 찾아지는 배달Paedal 민족의 사상이 갖는 세계성과 역사가 갖는 광대한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됩니다.
협의와 광의의 단군
흔히 우리는 고조선을 세우신 왕검 할아버지만을 단군이라하지만 이는 협의의 단군Tangun이라 할 것입니다. 보다 큰 의미의 단군Tangun은 우리민족에게 삼성三聖으로 우르러진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던 한국의 시조 한인할아버지 ,중국대륙의 배달국의 시조 한웅할아버지 ,만주의 고조선의 시조 왕검할아버지를 모두 단군Tangun이라 할 것입니다. 또 이 세분 할아버지의 후계자들도 물론 단군Tangun이며 이 개념을 보다 크게 확대하면 이 세분할아버지의 모든 후손들 다시말해 우리 배달Paedal 민족 모두가 모두 다 단군Tangun라는 중요한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천손사상天孫思想입니다.
단군Tangun의 의미를 생각함에 가장 무지하고 허무맹랑한 것은 단군Tangun을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적인 인물로 생각하거나 아예 무시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식의 의미라 할 것입니다.
단군의 영향권
이 세분의 단군Tangun은 우리 민족만 우르렀던 존재가 아니라 알타이민족 전체와 고대이래 알타이어족의 영향을 받았던 여러 민족들까지 우르렀던 존재입니다.
그 영향권은 초기 한국桓國이 세워졌던 장소로 알려진 천산Mt.Han-Tengri을 중심으로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광할한 지역과 배달국이 세워졌던 태백산을 중심으로한 중국대륙 북부와 동쪽의 태산과 회대지방 그리고 단군조선이 세워졌던 백두산을 중심으로한 만주와 한반도로 볼수있습니다.
좀 더 넓게 범위를 잡는다면 이 세곳의 영향을 받은 유라시아대륙 전체와 더 나아가 아메리카대륙에서도 단군Tangun의 영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단군Tangun의 자손이라는 말을 합니다.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Tangun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까지도 단군의 역사서는 대단히 많은 종류의 것이 전해지고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단군의 역사서를 읽지 않았을리가 전혀없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저자들이 단군의 역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축소하고 애매하게 기록한 그 용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두권의 역사서에서 얻어지는 수준이 단군의 역사에 대한 수준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한계일 것입니다.
일찌기 변영만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아 ! 우리나라 서적계에 이찌 이른바 서적이라 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 열을 놓고 말한다면 다섯은 조정의 적을 기린 시詩요 ,셋은 주자,정자를 찬미한 노래며,나머지 둘은 한유,소식,이백,두보가 배앝은 침찌꺼기인데 ,그나마도 만에 하나도 닮지 않은 것이니 ,전체를 싸잡아 말한다면 노예의 학문이라 할 것이다."
변영만 선생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과거 우리의 극심한 사대주의적 풍토에 단군Tangun의 역사가 자리잡을 공간이 있을리 만무한 것입니다.
신채호 선생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옛날에는 그처럼 강인하고 그처럼 용감하더니 ,북방의 씩씩하고 헌걸처던 호남아여 ,그 옛날의 용감성과 날카로운 기개는 어디가고 오늘날 어찌 이리도 멍청하게 되었는가 ? 아아 ! 용의 씨가 미꾸라지가 되고 범이 강아지를 낳아 ,신성한 종족의 후예가 일제히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과연 어떤 마귀의 장난이며 무슨 액운의 조화인가 ?
신채호 선생의 한탄은 배달Paedal 민족이 정체성을 상실했음을 말합니다.그것도 사대주의자들 스스로 앞장서서 배달Paedal 민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단군Tangun의 역사를 부정하고 신화적인 존재로 설정하려함은 그 역사도 유구합니다.
단군의 역사가 부정된 배달Paedal 민족은 정체성이 부정된 열등한 민족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 강대국의 정치적,군사적,문화적 지도를 받아야 하거나, 상대적으로 우수한 다른 민족의 종교와 사상과 철학적 지도를 받아드려야만 사람구실 할 수 있는 당위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민족적 정체성도, 독자적인 사상체계도 없는 저급한 야만민족일때 비로서 주변강대국과 그에 기생하는 사대주의자들의 목표는 힘안드리고 쉽게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주는 길이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찌기 평양의 을밀대를 지은 을밀선인은 다물흥방가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전은 '지나간 것은 법이 되고, 새로온 것은 존중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고구려가 강력할 수 있었던 힘은 이 경전의 내용처럼 단군이래 전해오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을 중심으로하고, 새로 들어 온 유불선 삼교는 존중함으로서 고구려 사회의 정신적인 통합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같은 고구려 사회의 강력한 정신적 통합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민족에게 사대주의자는 있어도 국수주의자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는 이유입니다.
또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우리 조상들의 활동영역을 한반도안으로 몰아넣었지만 단군의 진정한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의 활동 영역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는 광활한 영역이었음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단군은 삼성이신 한인,한웅,왕검 세분 모두가 단군Tangun이며 ,단군의 역사는 이 세분께서 세우신 한국,배달국,단군조선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헝가리, 몽고,터어키,요,금,청 그리고 일본까지도 포함하는 우랄알타이어족의 역사는 직간접적으로 단군의 문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른바 서쪽으로는 항가리와 몽고,터어키가 아울렀던 동유럽과 러시아,소아시아,발칸반도등에서부터 고구려,백제,신라가 번갈아가며 아룰렀던 일본과 오끼나와까지의 광대한 유라시아지역이 단군의 문화와 직간접적인 영향권인 것입니다.
1980년대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한민족의 진정한 역사서 한단고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대국가의 웅대한 규모와 강력과 지식정보와 문화의 세련됨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단군이라는 용어와 개념에서 드러나는 규모는 한단고기가 오히려 왜소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물며 일연의 삼국유사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더이상 단군의 역사에 대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
그동안 정체성을 잃어버린 우리 배달Paedal 민족은 드높던 자부심은 짓밟히고 뒤틀려서 비생산적이고 자학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자존심을 잃은 노예근성은 지역감정이나 이기적인 신비주의와 현실도피적인 풍수지리사상, 인간이 인간을 도구와 수단으로 삼는 수직적인 인간관계등을 형성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배달Paedal 민족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생산적으로 발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가진 역량으로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비생산적이고 자학적인 역사를 꾸려왔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자학적인 역사를 꾸려오는 동안 과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만주등에서 우리민족과 한솥밥을 먹던 같은 알타이어족인 몽고,터어키,만주족들은 유라시아대륙이 좁다하며 종횡무진하여 그들의 존재를 세계사에 뚜렷하게 과시했음은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
우리가 단군Tangun의 역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회복하여 새로운 지식과 정보와 문화의 시대를 개척하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단군Tangun이래 지금까지 단절됨 없이 전하는 천부경,삼일신고,366사(참전계경),단군팔조교등 십수권의 경전은 우리만의 사상이 아니라 전인류의 보편적진리입니다. 단군Tangun의 역사는 또한 이 경전들의 진리가 현실에서 생활에 그대로 적용되던 진리의 시대였음은 단군Tangun의 역사를 보는 중요한 관점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와 식민사관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되었느냐 안되었느냐라는 문제를 가지고 여러 말이 많은데 그 시대의 동북아의 힘의 관계를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할까 한다. 그러면 다시 수천년이 지난 먼 훗날 21세기에 필리핀이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류의 유치한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사군이 설치되었었다는 한의 무제때만 해도 중화족은 흉노의 왕이 교체될 때마다 한실의 종녀를 상납하는 비루한 사대교린책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고, 만리장성의 관문 밖은 감히 나가보지도 못했다는 것이 사마천의 사기에도 엄연히 실려 있다.
그러한 옹졸한 한의 무제 따위가 어떻게 만주벌 대릉하를 건너 요동을 지나 압록을 건너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강원도에 한사군을 설치할 수 있었겠나 하는 것이다.
고려가 원나라에 기황후를 바친것과 같이 한나라는 흉노에게 종실녀를 흉노왕이 교체될 때마다 바쳐왔는데, 그 당시 한의 궁전에는 왕소군이라는 궁녀가 있었다.
그 때에는 궁안에 화공이 있어서 그에게 뇌물을 바치는 궁녀는 얼굴을 실제보다 예쁘게 그려서 황제에게 바치곤 하였다. 그런데 왕소군은 빼어난 미인이면서도 그러한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를 가까히 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종실녀를 데려가려고 흉노의 사신이 왔고, 왕소군은 흉노 사신의 눈에 띄어 흉노왕에게 가게 되었다. 황제는 그제야 왕소군의 미모가 뛰어남을 알고 한탄을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그때에 나온 시가 한나라 10대 원제의 후궁인 왕소군의 당언시라는 것이다.
한나라는 이처럼 몽고지방에 있던 흉노족의 한갖 부속국에 지나지 않았다. 종실녀뿐만 아니라 해마다 비단, 술, 쌀, 말등등 온갖 물건을 흉노에게 바치지 않을 수 없는 가련한 처지였던 것이다.그런데 바로 이런 흉노를 꼼짝 못하게 누르고 있었던 것이 바로 동호 즉 고조선이었다. 사기, 자치통감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이때 (서기전 209년) 동호, 즉 고조선은 강했다. 흉노왕 모돌이 부왕 두만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조선왕이 사신을 보내 모돌에게 주만이 살아 있을 때의 그 유명한 천리마를 달라고 하니 모돌이 군신의 의견을 물은 즉 천리마는 흉노의 보물이지 주지 마시오 했으나 모돌은 내 어찌하여 이웃나라 사람에게 말 한필을 아끼겠느냐 하고 천리마를 조선왕에게 주었다. 한참후에 조선왕이 또 모돌의 궁녀 하나를 바치라 하니 역시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어찌 이웃나라에 여자 하나를 아끼겠느냐 하고 사랑하는 아내 하나를 취하여 조선에 주었다. 조선왕이 다시 조선과 흉노 사이의 중립지대에 있는 여러 땅을 바치라 하니 모돌이 크게 화를 내고이 공한지를 주어도 무방하다는 신하들을 죽이고 땅은 국가의 기본이거늘 내 어찌 줄까보냐하고 말에 올라 전국에 명하여 뒤에 남는자는 모두 참한다, 나를 따르라 하고 조선(동호)를 습격하였다>
이처럼 조선왕이 거만한 요구를 해 온 것을 보면 해마다 비단, 술, 쌀, 음식을 바치고 종실녀까지 바치면서 흉노에게 유유낙낙, 비굴해 하던 한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막강한 나라가 바로 고조선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지 않은가? 비록 그때 고조선이 불의에 동몽고의 넓은 땅을 상실하기는 하였지만 항상 흉노를 압도하는 막강한 나라였다. 그 당시의 동북아 정세가 이런데 어찌 흉노의 부속국이었던 한나라 따위가 한반도를 넘보았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는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이다. 한사군이 실제로 존재하였다면 고조선의 서쪽 끝, 즉 북경근처이거나 하북성 근처일 뿐, 한반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고조선은 단군이라는 군장아래 수백의 왕들이 통치하는 연방국가였기 때문이며, 이 후 연나라의 위만이 고조선의 준왕을 축출한 것 역시 고조선의 일개 국가를 넘어뜨린 것일뿐, 고조선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 2200년전의 우리 역사도 우리는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일제 식민사학이 바로 역사왜곡의 장본인이며, 그 식민사학의 뿌리에 고염꽃을 피운 한국 기성사학계가 그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현재는 어떠한가!! 일제가 심어놓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받아 단군역사를 단군신화로 간주하여 우리 역사를 잃어버리고 있다. 해방이 된지가 5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우리의 역사는 식민사학의 깃발을 들고 단군을 신화로 치부하므로서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계는 한 술 더 떠서 단군을 신격화하고 있다. 아무도 단군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 유독 기독교만 신이라고 우기면서 자신들의 유일신에 도전하는 새로운 종파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단군은 기독교가 어찌 생각하던 우리의 역사이지, 신격화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간단히 신화 한 조각으로 치부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기독교는 똑바로 알고 처신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역사로서 인정해야지 자신들의 우상기준에 맞추어 거부하는 작태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한다면서 단군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억지는 그만 부리길 바란다. 그리고 기독교입장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아니라고 할 테지만 마직막으로 이 말로 끝을 맺고자 한다.
지금 기독교가 단군을 부정하는 일은 당신들이 알던 모르던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에 놀아나는 것임을 똑바로 알고 있어라. 그리고 앞으로도 기독교도들 같은 후손이 나타나면 자기 조상의 역사쯤은 간단하게 신화로 치부하여 자기 민족을 뿌리도 없는 민족으로 변하게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하느님과 하나님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오로지 한민족뿐입니다. 하느님,한울님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외래종교에서 이 용어를 차용한 다음부터는 우리민족이 9000년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형성된 이래 단절없이 사용해 온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외래종교에서 차용하여 사용한 하나님 개념은 불과 100-200년사이에 일반적인 개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상한 사실은 사전을 찾아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글 우리말 큰 사전(한글학회)-한글과 컴퓨터 cd롬 -에 실린 하나님에 대한 내용
① 하느님.
② <예수> 스스로 있으면서 우주만물과 인류를 창조하고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려 고 참된 사랑의 섭리와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는 유일신 여호와.
한글 우리말 큰 사전(한글학회)-한글과 컴퓨터 cd롬 -에 실린 하느님에 대한 내용
① 하늘의 높임말로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신앙의 대상을 가르킴. 한:상제,상천
②. 천공,천제,하나님 ①. 황천 ②.참조 한얼님,한울님
③ <천주> 창조의 절대능력과 구원의 완전한 사랑으로 우주만물과 인류를 다스리 는 유일신 야훼. 한 상주,신,천주
[하나님 맙소사]기막힌 일을 당하거나 보거나 할 때 몹시 탄식하는 소리
계몽사 시디롬 백과사전에 실린 하느님에 대한 내용 (계몽사 백과사전 CD롬에는 하나님은 나와 있지 않음
종교에서 믿음(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절대자.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여 다스리며, 인류의 선악을 가려 재앙이나 복을 내린다고 믿어 숭배하는 대상을 말한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우주의 창조자이며 전지 전능한 신으로서 하나님이라 부르고, 카톨릭교에서는 하느님 또는 천주라고도 한다. 그리고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이라 하고, 민속 신앙에서는 상제上帝 또는 천제天帝라고 한다.
▶재발견된 하나님의 개념
우리가 한민족의 고유한 용어로서 하나님을 사용해왔음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개하고 어리석은 야만인이 아니라면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가능한 개념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 개념은 필요한 만큼 이상으로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우선 이 개념을 찾기위해 우선 훈민정음으로 사용된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확인 해 보기로 합시다.
훈민정음 이후에 사용된 하나님 용어
때때로 머리를 들어 북쪽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남모르는 눈물을 하늘 한쪽에 떨어 뜨리는 도다.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이시어 !
이 시詩는 조선의 선조때 시인 박인로(1561-1642년) 님이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늘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순수한 훈민정음으로 명문화 되어 설명됩니다. 이는 1998년 기준으로 약 400년 이전의 글입니다.
이 자료에서는 100% 한민족의 용어인 하나님이 100%한민족의 하나님의 개념으로 등장해 있습니다. 개화 이후 잊혀지고 만 순수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이 시에는 중요한 관점들이 발견됩니다. 우선 하나님이라는 용어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도 한울님도 아닌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명문화 되어 있습니다.
이 용어는 배달민족 삼대경전중 하나인 삼일신고의 제2장 하나님一神에서 명문화된 "하나님은 그 위로는 아무도 없는 자리에 계시며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을 가지신분 神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의 개념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배달민족의 하나님이란 용어는 유일신,절대신의 개념을 문자자체에서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설명합니다. 이같은 예는 전세계 어느 종교에서도 찾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박인로의 시와 삼일신고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으며 이 내용들은 당연하게도 한국인의 집합적 무의식을 이루는 하나님을 그대로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유일신,절대신 사상은 우리민족이 한민족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때부터 수천년 이래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더욱 잘 설명하는 대목은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아!" 라는 대목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우리민족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어떠한 위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시에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우리민족만이 고유하게 간직하고 전승해 온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 단군 팔조교등 십수권의 경전에서 체계적으로 설명되는 하나님의 개념과 딱 떨어지게 부합 합니다.
이 시와 우리민족의 고유한 경전들에서 설명되는 하나님의 개념은 우리가 명백한 개념을 가지고서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한민족이 개념도 없는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온 야만인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가장 완벽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이라는 절대신,유일신으로서의 용어를 사용해 온 인류 최고의 문화민족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첫번째 단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훈민정음 이전에 사용된 하나님 용어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을 한민족 삼대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경전과 세경전을 압축시킨 단군팔조교를 비롯한 여러 경전이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경전들에서는 당연하게도 하나님에 대한 용어와 개념이 명문화되어 체계적으로 설명됩니다. 이 경전들은 이 홈페이지에서 하나하나 설명되며, 그 설명에서 하나님에 대한 체계적인 하나님의 개념을 확인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이미 발간되어 있는 단행본들로 구체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경전들은 우리 한민족의 집합적 무의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내용들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이 경전들은 다른 민족들의 경전을 읽을때 느끼는 정신적 이질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순수한 우리의 정신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나님에 대한 명문화 된 내용을 우리의 고유한 경전에서 간단히 요약하면 천부경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불변의 하나의 존재(일一)로서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삼일신고에서는 하나님의 직역인 일신一神이 명문화 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366사(참전계경)에서는 하느님의 직역인 천신天神이 명문화되어 나타납니다. 또 단군팔조교에서는 하나님을 천天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 하느님, 한울님,한얼님등은 모두 우리 한민족만이 사용하던 하나의 용어이며, 결코 별개의 개념이 아닌 것임을 삼일신고의 하나님一神과 366사(참전계경)등의 하느님天神을 통해 간단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991년 운영자의 책 삼일신고에서부터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던 우리 한민족의 유일신 명칭인 일신一神이 '하나님'으로 번역되었고,1996년 운영자의 책 366사(참전계경)에서 천신天神이 하나님으로 번역되는등 1991년이후 발간된 6권의 운영자의 책에 모두 하나님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일련의 자료들은 만주벌판에 아직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있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에 고구려의 설립자 고주몽께서 스스로를 천제지자天帝之子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명문화되어 있는 물적자료에서 다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확인됩니다
이와같이 볼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물샐틈 없는 확고한 개념이 서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이세상에서 가장 오랜 세월동안 사용해왔음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이 9000년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중국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하는 동안 하나님의 개념은 조금도 변함없이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바이블을 한글로 처음 번역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에 의해서입니다. 1882년과 1883년 그는 누가복음전서를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그 중 1882년본에는 "...... 두사람이하느님의압페셔올운쟈라.........." 와 같이 하느님을 사용했습니다.
1883년본에는 "..... 두사람이 하나님의 압페셔 올은쟈라......"와 같이 하나님을 사용했습니다.
다음으로 바이블을 번역한 사람은 이수정입니다. 이수정은 박영효와함께 일본에 수신사로 건너가 일본인 목사 야스가와에게 세례를 받았고 1885년 신약마가복음서언해를 일본에서 출간했습니다.
신 자예슈크리슈도스 복음
神의 子耶蘇基督의 福音이니
그 책은 위와 같이 하나님 대신 신(神)으로 번역하고 한글 토를 달았습니다.
그 다음 1887년 서울에 있던 5명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아펜젤러,알렌,스크랜튼,헤론이 한국어 바이블 번역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여기서 언더우드는 1893년 찬양가를 펴내면서 하나님이나 샹뎨,텬주를 사용하는대신 참신,여호와를 채택하여 사용하였으나 그 반응은 극히 미미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1894년 번역자회는 신의 명칭에 대하여 표결에 부쳤고 투표결과 텬주:하나님=4:1 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에 다른 용어와 비교할 수 없이 효과적인 하나님 명칭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게됩니다.여기서 표결결과는 유명무실해지고 텬주와 하나님의 명칭은 한동안 공존하게됩니다.
기독교의 신에 대한 한글 번역에 있어서 이 복잡하고 치열한 논쟁에서 1906년부터 더 이상 텬주는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이 채택되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의 절대다수가 다른 여러 명칭대신 하나님을 사용하기를 갈망했던 바로 그 이유에서 하나님 명칭이 얼마나 우리민족에게 중요하고 소중한가를 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밝 문화
최 남선 선생은 한민족의 하나님을 중심으로한 밝은 문화(불함 문화)는 우주의 최고 원리요, 인류의 최고 이상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한민족의 하나님 문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일관되게 전승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 되어 온 문화 계통이 분명하며 그 분포의 구역이 아시아의 북방 전체를 뒤덮으니 세계최대의 문화권이라고 밝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한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한민족이라는 말은 자체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민족 공동체라는 의미가 이미 내포되어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Han은 Khan이며, 大로서 하늘天과 통하는 말입니다. 天은 다시 몽고어로는 Tengri, 터어키어로는 Tangri로서 이는 우리말 당골이며, 한문으로 쓰면 단군檀君입니다.
단군Tangun은 신화적 존재이며, 우리가 곰의 자손이라는 설들은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백면 서생들의 한반도안에 웅크리고 앉아 세상 넓은줄 모르면서 무지無知하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이 최초로 세운 국가가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아래에서 한인桓因께서 세운 한국桓國입니다. 이 천산을 지금도 현지인들은 Han-Tengri산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지도에는 그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Han은 대大이며, Tengri는 단군입니다. 따라서 Han-Tengri는 대단군大檀君이며, 그 분이 곧 한인桓因 할아버지이며, 우리의 출발점이 곧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와 천산일대 입니다. 알타이 산맥은 그 중간 지점 입니다.
단군Tangun은 곧 절대신 하나님의 인격적 존재로서 한인, 한웅, 단군할아버지를 칭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세계적인 용어입니다.그리고 이 개념은 우리 민족과 함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함께 출발한 식구로서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이면서 세계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몽고족, 터어키족, 항가리족(마쟈르족), 만주족 등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최근에 유대 기독교 문명의 바탕중 상당부분이 고대 슈메르문명의 복사판이었음이 밝혀지고 있으며, 그 슈메르 문명을 세운 슈메르인이 알타이어의 가장 큰 특징인 교착어를 사용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슈메르라는 용어 자체가 몽고어로 우주산宇宙山을 뜻하며, 이는 우리 민족이 천산, 태백산, 백두산을 우주산으로 삼아온 내용과 정확히 부합합니다. 그들이 산과 같은 지규랏을 세운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평지라서 인공적으로 천산, 태백산, 백두산과 같은 우주산을 만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하나님 사상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같이 출발한 우랄알타이어족의 여러 식구들에 의하여 아득한 고대에서부터 최근까지 전세계를 돌아다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심이 되는 풍습과 경전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정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신라때 최치원 선생이 삼국사기 진흥왕전 난랑비서에서 이른바 현묘지도, 풍류도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알렸습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교敎를 만든 근원은 신사神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핵심은 삼교(유불선)를 포함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에 들어가서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공자)의 지旨이요, 무위로 일을 함에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종宗이며, 모든 악한 일을 만들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석가)의 화化이다.』
이 내용은 고구려때 을밀선인이 지은 다물 흥방가의 내용을 단순 복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다물 흥방가는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 단군팔조교등 십수권의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압축한 내용입니다.
신라이후 한국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던 난랑비서에서 말하는 현묘지도는 곧 한국, 배달국, 단군조선과 부여, 삼한, 고구려등으로 단절없이 이어지는 한민족 고유의 하나님사상에 털끝 만큼도 다름이 아닙니다.
이와같은 한민족의 하나님 사상은 단절없이 전해졌고 그 형태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여에서는 대천교代天敎,
삼한에서는 천신교天神敎,
고구려에서는 경천교敬天敎,
신라에서는 숭천교崇天敎,
발해에서는 진종교眞宗敎,
만주에서는 주신교主神敎,
요와 금에서는 배천교拜天敎,
고려에서는 왕검교王儉敎
라 했으니 동사류고에서는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가르침인 단군설교檀君設敎라고 했습니다.
이 단군Tangun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행하던 사람들을 부여에서는 천왕랑天王郞, 고구려에서는 조의, 백제에서는 수사, 신라에서는 화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이래 백제의 수사도는 일본으로 건너가 수험도가 되고, 싸움애비는 사무라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위 삼국을 통일했다는 신라의 화랑들조차 통일이후 대대적으로 몰락하여 급기야 화랭이라는 이름으로 무당 남편이 되고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또 유라시아 전체에 그 이름을 남긴 Tengri 즉, 단군을 따르는 사람들인 당골네들은 마을의 천민들로 전락했습니다. 이같은 와중에 개화기를 맞아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우리의 하나님 사상은 결정적으로 사라져 갔던 것입니다.
이제 정리해보면, 세계에 전해진 우리의 하나님 사상이 신라이후에 유불선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시 들어왔고, 근대화 이후에는 기독교의 옷을 입고 다시 우리에게 들어온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가르침은 유불선과 기독교를 모두 근원적으로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외래 사상들은 알고 보면 외래 사상이 아니니 미워할 이유도 없고 또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때 평양에 을밀대를 세운 을밀 선인은 그 당시에 이미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나간 것은 법이 되고, 새로온 것은 존중된다.
따라서 지나간 법은 새로 생김도 없고 멸해짐도 없으며,
새로온 것은 귀할 것도 천할 것도 없다.』
을밀 선인의 이 말에 장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계승한 고구려인이 갖는 정신적인 자부심과 남의 모든 정신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천하 제일의 자신감이 유감없이 나타납니다. 고구려는 동양최대의 군사적 강국이기 이전에 세계최대의 정신적인 강국이었음을 위의 문장 하나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자신만의 확고 부동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모든 민족의 정신을 받아 들이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세계의 어느 민족에게도 찾기 어려운 가치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가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단 한민족의 하나님 사상은 여전히 우리의 무의식을 확고부동하게 지배해 왔고, 또 지배하고 있지만 고구려때와는 달리 의식 세계에서는 하나님 사상이 아직 정립되지 않고 있다는 차이뿐 입니다.
하지만 눌려진 스프링이 눌려진 힘 만큼 언제든 다시 튀어 나가려고 하는 것 처럼 억눌린 우리의 하나님 사상이 다시금 한민족 의식세계의 중심이 되는 일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일 입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열심히 일하는 재세이화의 참된 가치를 전혀 실천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힘 안 들이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신神과 각종 신비주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종교적 착취구조가 상식으로 통하는 공동체는 반드시 위태롭습니다.
한민족 공동체에 다시 하나님 사상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로 열심히 일하는 재세이화와 재세이화로 쌓인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홍익인간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만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길이라는 사실이 다시 상식으로 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모든 외래 정신을 포용하되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중심으로 자리잡는 세계제일의 정신적인 강국을 다시 이루어 냄을 말합니다.
우리 한민족이 한민족만의 무의식 세계를 유전적으로 공유하며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과학입니다. 한민족의 주류는 9000년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중국 대륙과 만주를 거쳐 지금 한반도에 이르렀습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한민족의 집합적 무의식 세계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 온 존재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민족이라면 종교의 유무를 떠나 하나님이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하여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무의식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단지 조리있는 설명을 못 할 뿐입니다. 설명은 못하지만 한국인의 집합적 무의식의 중심을 이루는 하나님이라는 용어의 개념은 수천년전부터 한민족이 창조하고 한민족에게 전수해온 십수권의 고유한 경전에서 체계적으로 설명됩니다.
우리의 고유한 경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중심에 계신다고 설명하며, 이를 일신강충一神降衷이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곧 하나님一神이므로 인간은 나면서부터 절대적으로 선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원래부터 악惡하다는 주장이나 ,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罪가 있다는 주장등은 인간의 본성이 절대적으로 선善하다는 우리의 집합적 무의식을 크게 불편하게하는 이질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이질적인 요소는 일평생 불필요한 마음의 멍에와 억압의 원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에 계시다는 개념을 다른면에서 생각해보면, 인간 한명 한명 자체가 우주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모습인 신상神像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또한 가장 장엄한 하나님의 궁전인 신전神殿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인간의 외부에 인위적으로 지어진 신전과 신상은 아무리 그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해도 그것은 단지 물질일 뿐입니다.
인류가 신전과 신상을 만든이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전과 신상을 전부 모아도 그것들은 살아있는 단 한명의 인간이 지닌 신성神性의 가치에 백만분지 일도 안되는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잘라서 말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있는 인간이 진정 스스로를 값지게 할 진리보다는 이같은 물질에 불과한 신전神殿과 신상神像에 현혹되거나, 이웃의 고통받는 살아계신 하나님보다 하잘것 없는 물질을 경배하거나 그 물질을 만드는데 피와 땀과 눈물을 소모함은 참으로 엄청난 무지일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악하거나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태어나는 엄청난 축복을 받고 태어 났습니다. 즉 인간으로 태어남 자체가 더 이상 클 수 없는 구원입니다.
타락은 인간이 태어날때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천하의 가장 근본이 되는 신성神性을 상실하여 무언가의 종과 노예가 되어 수직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늘 인간의 중심에 계심이 일신강충一神降衷이며
늘 인간의 중심에 계시지만 인간의 무지몽매함으로 가려져 있는 하나님이 빛을 발하도록 스스로의 마음에서 먼지와 때를 닦아내는 것이 성통광명性通光明이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와 땀과 눈물로 부지런히 일함이 재세이화在世理化이며,
부지런히 일한 결과 쌓인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누어 줌이 홍익인간弘益人間입니다.
누구의 힘도 아닌 인간 스스로의 당당하고 떳떳한 자유 의지를 깨달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재세이화, 홍익인간 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개념이 수천년간 우리 한민족을 이끌어 온 중심이 되는 하나님 사상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만년간 한민족을 이끌어 갈 사상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