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그들은 공허해 보였다. 사회자 고양이 멍커스트랩,
재미있는 고양이 제니애니도츠, 반항아 럼텀 터거, 기차검사원
스킴블샹크스… 지난 2월 8일, 그들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차례로 등장해 자신의 지나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란 누구에게나 쓸쓸하게 마련일까. "한때 나는 훌륭한
배우였지"(연극배우 거스) "과거의 나는 아름다웠는데"(매혹적인
그리자벨라) 등을 회상하는 고양이들은 모두 지쳐 보였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당혹스러운 고양이의 이야기들.
이야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화려하고 흥겨운 춤이 이어진다.
질리언 린의 안무는 꽤나 독창적이었다. 탭댄스, 발레,
아크로바트, 재즈 댄스 등 장르를 넘어선 다양한 춤과 여기에
가미된 고양이의 특성을 살린 몸짓들. 과연 영국 최초의 댄스
스루(Dance Through) 뮤지컬이라 일컬을 만하다. 춤추는 고양이
사이를 맴도는 들썩들썩한 음악 역시 유쾌하다. 로큰롤, 오페
라, 팝 등이 교차하며 천변만화하는 음악에서 다시 한번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출연진의
장난기 어린 유머와 정확한 타이밍의 조명,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인
세트. 관객은 즐거운 환호를 내뱉는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하다. 어느 한 부분, 아귀가 맞질 않는다.
엘리어트의 고상한 시구 위에 덧붙여진 활기찬 선율도 그렇고,
이야기가 끝나면 통과의례처럼 춤을 추는 구성도 억지스럽
다. 2시간 40분 남짓 동안 계속되는 이야기와 춤의 반복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토록 센세이셔널한 파장을 일으켰던
'캣츠'의 광채는 어디로 갔을까. 21년이라는 나이를 먹은 탓일
까. 신선하고 감각적이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캣츠'는 여전히 명작이다. 특히 로큰롤 가수를
연상시키는 럼텀 터거의 능청스러운 노래와 연기,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음악은 보는 이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마법사 고양이 미스토펠리스로 분한 로빈 반 윅의 엄청난
춤 실력도 경탄을 자아냈다. 발레리노 출신인 그는 연속
피루에트(Pirouette)를 선보이며 무대를 압도했다. 뒤이어 흐르는
그리자벨라의 '메모리'는 무대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리자벨라를
연기한 실린딜레 노당갈라는 성악도 출신답게 파워풀하면서도
맑은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관객을 현혹시켰다. 제리클
고양이로 선정된 그리자벨라가 헤비사이드 레이어로 인도될
때 떠오른 커다란 폐타이어도 인상적이다. '블록버스터 뮤지컬'
'최첨단 무대 메커니즘' 등의 문구가 과장이 아님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캣츠'의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객석에서였다. 고양이들은 무대와 객석을 끊임없이 오간다.
인터미션 때는 모든 출연진이 객석 사이를 떠돌며 고양이의
몸짓과 울음, 표정을 연기한다. '캣츠' 속 고양이들에게
객석은 무대의 연장이다. 무대 위의 사람들이 객석으로
내려왔을 때의 효과는 무척 컸다. 관객은 약간 이질적으로,
약간 신기하게 그들을 대했고 그러면서 그들에게 다가서고
공감했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