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
유족여러분!
지난 4월 위령제를 지낸 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자리에 다시 모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국가는 수십 년이 흐른 작년 11월에야 겨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우리 부모형제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혔습니다. 지난 60여 년의 긴 세월동안 오늘처럼 기쁘고 눈물 나는 날도 그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밝힌 결정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한해 전인 1949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국군 제3연대의 군인들이 아무 죄없는 우리 가족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집에 불을 지르고 덕산초등학교 뒷산으로 농회창고 뒷산으로 그리고 삼장면 가막골로 끌고가 129명이나 집단학살을 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입도 벙긋 못하게 했는 데 정부가 앞장서서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 주겠다고 나서서 오늘의 결과가 나오니 세월 참 많이 변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한다 해도 이승만 살인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우리 부모형제들은 다시는 우리 곁에 오지 않습니다.
그 당시 코흘리개였던 우리도 이제 6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앞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되었습니다.
누구 나오셔서 그 동안의 피맺힌 한을 속시원히 한번 말씀 해보십시오.
이제 진상이 규명되었다고 일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또 못된 정권이 나와서 다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누가 죽였는지...
가해자처벌은 고사하고 지금이라도 그 진상을 제대로 밝히자는 것도 한사코 반대하는 세력들이 아직도 도처에 많습니다. 그들이 다 누구입니까?
대부분 한나라당과 그 지지세력들입니다.
여기 산청만 집단 학살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최소한 백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모두 다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초로의 노인이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우리 자식, 손자들과 함께 손잡고 억울하게 학살당한 영령들의 뜻을 잘 헤아려 두고두고 진실의 파수꾼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때까지 우리 유족들은 더욱 힘을 합쳐서 모두가 내가족처럼 서로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합니다.
끝으로, 영령들을 위해 아담하고 넉넉한 위령비 자리를 마련해주신 이재근산청군수님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가 올 위령제는 산자와 죽은 자가 하나가 되어 엉엉 울고 웃으면서 진정으로 가슴 속에 응어리진 모든 것을 털어 냅시다.
유족님들! 그날까지 내내 건강하십시오.
가신 넋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2008년 1월 22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