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과천(果川)의 고개
1) 남태령(南泰嶺)
과천시의 과천동(옛날의 下里)과 서울 관악구의 남현동 승방뜰[僧房坪] 사이에 있는 큰 고개이다.
관악산의 북동쪽 능선을 넘는 고개로, 고개의 남서쪽에 관악산 정상, 북동쪽에 우면산 정상이 있다.
옛날 한양(서울) 사람들이 충청도나 전라도로 갈 때 많이 넘던 고개로, 지형이 몹시 험해 이 고개를 넘으면 과천 읍내에서 쉬어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양에서의 남행(南行)길이 남태령과 과천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었음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전라도로 내려가는 대목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다.
‘ … 전라도로 나려갈 제, 청파 역졸 분부하고 숭례문【주】51) 밖 내다라서 … 동자기【주】52) 밧비 건너 승방들,【주】53) 남태령, 과천, 인덕원 중화하고 …’【주】54)
『대동여지전도』 등의 다른 옛 지도를 보아도 서울에서 천안 삼거리 쪽으로 이어진 남도길이 과천을 통해 이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의 정조도 수원에 있는 부친의 능(사도세자 능)을 참배하러 갈 때 이 과천길을 주로 이용하면서 남태령을 넘었다. 정조는 한강을 주교로 건너 승방들을 지나 이 고개를 넘고 과천 읍내를 지나 사그내(지금의 의왕시 古川洞)로 해서 수원으로 가곤 했다. 수원으로 오가던 중에 자주 과천 읍내에 들러 쉬어 갔는데, 그 쉬던 장소인 온온사(穩穩舍)가 지금도 중앙동 사무소 옆에 있다.
그러나 정조는 뒤에 길을 바꾸어 이 과천길을 피해 딴 길로 돌아간다. 즉, 노들나루(노량진)를 거쳐 시흥·안양을 지나 사그내로 갔다. 사도세자를 죽게 했던 영의정 김상로의 동생인 김약로의 무덤이 갈현동 찬우물마을에 있어 그 앞을 지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남태령은 여우가 많아 ‘여수고개’ 또는 ‘여우고개’로 불리던 고개였다. 그런데 전설에 의하면 정조에 의해 지금의 이름인 남태령으로 바뀐다.
정조의 행차가 이 곳에 쉬어 가던 어느 때, 임금은 수행하던 시종들에게 이 고개 이름을 물었다. 이 때 과천현 이방이던 변아무개가 ‘남태령’이라고 대답하자, 이미 이 고개 이름이 ‘여우고개’인 줄 알고 있었던 임금은 거짓말을 한 그를 나무라고 왜 남태령이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가 임금께 그 요망스런 동물 이름이 든 고개 이름을 감히 댈 수가 없어 갑자기 꾸며 서울 남쪽의 첫번째 큰 고개이므로 ‘남태령’이라고 아뢰었다고 하자, 이를 가상히 여겨 그 때부터 그가 꾸며 댄 이름대로 남태령으로 했다. 이것이 전설의 내용이다.
옛 문헌에 이 고개를 한자로는 호현(狐峴) 또는 엽시현(葉屍峴)이라 했는데, 이것은 ‘여우고개’ 또는 ‘여시고개’의 훈·음차이다. ‘여시’는 ‘여우’의 사투리이다.
이 고개는 옛날엔 여우와 뱀이 많아 혼자서는 감히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특히 밤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옛날 과천현감 중엔 이 고개 밑에 유인막(留人幕)을 설치, 젊은이들을 파견해서 행인들을 고개 밑에 대기시켰다가 여러 명이 되면 호위를 해서 안전하게 고개를 넘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나중에 행인들은 호위해 준답시고 동행하는 그 젊은이들에게 노잣돈이 털리곤 해서 적지 않은 부담을 안아야 했다. 그들은 고개를 넘겨 줄 때 호위의 댓가로 많은 돈을 요구했다. 액수가 적으면 약탈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행인들은 이 고개를 넘을 때 월치전(越峙錢), 즉 ‘고개넘잇돈’을 준비해 두고 넘어야 했다.
이 고개는 한국전쟁 때는 국군과 북한군의 격전지였다.
더구나, 관악산이 북한군의 산악진지여서 1951년에 국군이 재북상할 때 북한군이 필사적으로 이 고개를 방어하여 피차 많은 희생자를 냈다.
또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갔던 피난민들이 북으로 다시 올라오다가 과천에 많이 머물렀는데, 그들은 관악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말려 땔나무로 만들어 지게에 얹어 밤중에 이 후미진 고개를 넘어서 승방들을 지나 서울의 검은돌[黑石洞]]이나 사댕이[舍堂洞]까지 가서 팔기도 했다.
이 고개엔 약 20여 년 전에 큰 길이 나서 서울과 과천 사이의 숨통이 크게 틔었으나, 그 후 통행 차량의 계속적인 증가로 교통 상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고개 밑을 지나게 될 사당-금정 간의 과천선 전철이 완공되면 그러한 불편은 조금 사라질 것이다. ‘과천선’이 될 이 지하철 노선은 서울 사당역에서 군포 금정역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고개의 북쪽에는 ‘남태령역’이, 남쪽에는 ‘선바위역’【주】55)이 생기게 된다.
2) 가루개[갈고개·葛峴]
지금의 과천시 갈현동에서 안양시 관양동 부림말[富林洞]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칡나무가 많아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갈고개’의 ‘갈’은 땅이름에서 ‘갈라짐’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주】56)
이 고개 밑에 ‘가루개[葛峴]’와 ‘찬우물[冷井]’마을이 있다.
3) 능어리
엄밀히 말해서 고개는 아니고 낮은 능선이다. 향교말과 홍촌말 사이에 솟은, 관악산의 여맥인데 두 마을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이 곳의 좁은 길을 많이 이용했다.
바위가 별로 없어 마을 사람들이 무덤을 많이 썼고, 밤나무와 잡목이 무성했는데, 과천이 시가 되면서 무덤들과 나무들이 없어져 주택지로 개발됐다.
지금의 과천시청이 자리한 곳 부근이다. ‘능어리’란 이름은 ‘는허리’에서 나온 것이다. ‘허리(산허리)가 늘어짐’의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4) 매봉산고개[매봉고개]
과천시 갈현동의 매봉골에서 매봉산 정상을 타고 그 남쪽의 의왕시 청계동의 중청계(中淸溪)로 넘는 고개로, 길은 등산길로나 사용될 정도로 매우 좁다. 매봉산 정상 근처는 고갯길이 몹시 가파르다.
5) 배랭이고개
문원동의 배랭이골을 타고 남동쪽으로 오르다가 매봉산 북쪽 능선을 넘어 그 동쪽의 막계동 과천 서울대공원 쪽으로 향하는 고개이다. 역시 좁고 험한 길로 되어 있어 이용하는 이가 많지 않다.
6) 모탯고개
별양동의 새터말에서 베래이골 안쪽으로 가는 좁은 길의 고개이다.
산기슭을 활처럼 휘어돌게 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모퉁이를 도는 고개’라 해서 ‘모탯고개’이다.
지금 말의 ‘모퉁이’란 말은 ‘몬’에 ‘∼웅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몬+웅이=모둥이(모퉁이)
몬+앙이(앵이)=모댕이(모탱이)
이 곳의 ‘모탯고개’도 그 ‘몬’을 뿌리로 한다.
몬에(의)고개>모데고개(모테고개·모태고개)
7) 좁쌀고개
과천동의 남태령에 있는 매우 작은 고개이다. 매우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이 이름이 붙었다.
8) 무네미
과천동의 무네미골마을에서 그 북쪽의 우면산 남쪽 능선을 넘어 남현동을 넘어 남태령 마을로 가는 고개이다.
그 서쪽에 남태령이 있어 이용할 가치가 없는 데다 길까지 험해 고개다운 고개라 할 수가 없다.
9) 큰비랑골고개
주암동의 돌무께 마을에서 서울 강남구 원지동의 비랑골로 넘는 고개이다.
청계산 옥녀봉의 동쪽 능선을 넘는 고개로, 고개의 동쪽에 ‘큰비랑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어 이 이름이 붙었다.
주암동 쪽의 골짜기는 ‘큰 산골짜기’라는 뜻의 ‘검단이골’이다.
10) 갈고개
주암동의 삼부골에서 막계동의 산골말로 넘는 고개이다. 주암 동쪽의 골짜기는 주암 소류지(小溜池)가 있는 ‘삼부골’이고, 막계 동쪽의 골짜기는 산골말이 있는 ‘산골’이다.
산골말 쪽의 골짜기에는 밤나무 단지가 있다. 청계산의 서쪽 지맥을 넘는 고개로 비탈이 가파르다.
11) 전자고개
문원동의 아랫배랭이 동쪽에 있는 고개이다. 이주1단지 앞에 있는 작은 고개로, 이 곳에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양쪽에 작은 둔덕을 끼고 좁고 곧은 길이 과천 서울대공원 쪽으로 나 있다.
고개의 동쪽 아래로 테니스장이 있다.
12) 구렁고개
주암동의 담터들에서 과천경마장 쪽의 진투리들 쪽으로 넘는 고개이다.
청계산의 북서쪽 지맥을 넘는 고개로 포장도로가 나 있다.
‘구렁고개’에서의 ‘구렁’은 ‘굴[골]’을 뜻한다. ‘구렁’과 ‘고랑’은 ‘골(谷)’을 뿌리로 하는, 같은 어원의 말이다.
고개 양쪽의 비탈이 제법 심하다.
13) 절고개
청계산 정상 근처의 고개로 매우 높다.
과천 서울대공원 뒤쪽 산길을 따라 좁은 등산길을 오르면 이 고개의 마루에 이르고, 거기서 남쪽으로 비탈을 타고 계속 내려가면 청계사(淸溪寺)에 닿는다.
이 고개의 동쪽 봉우리가 과천·성남·의왕시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절고개의 북쪽이 과천시, 남쪽이 의왕시이다. ‘절고개’란 이름은 청계사라는 절 때문에 나온 것이다.
14) 절래미고개
절고개 서쪽에 있는 고개로, 역시 과천시와 의왕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절래미’란 말은 ‘절넘이’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 절로 향할 때 넘는 고개란 뜻에서 나온 것이다.
절넘이>절너미>절네미>절레미(절래미)
고개의 북쪽인 막계동 쪽은 비탈이 무척 심한 반면, 남쪽인 의왕시 청계동 쪽은 그리 심하지 않다.
청계산을 동서로 종주하는 등산인들은 망경대에 오르고 난 후, 그 남서쪽의 능선을 따라 이 고개를 지난다.
이 밖에도 갈현동에 뒷고개·사냥고개·으능재고개·찬우물고개·가일고개·응단말고개·넘말고개·옥탑골고개·박석고개·살푸재고개, 문원동에 아홉사리고개·능모테고개·뒷벌고개·길마재고개·큰고개·미굴고개·세골고개, 막계동에 맥계고개·괭매고개, 과천동에 안골고개·지령고개·마루고개·주암동에 담터고개·박석고개·골축고개·아랫고개·득실고개·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