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다른 기관에서는 문화의 날이다 뭐다 해서 함께 영화도 보러 간다는데 우리도 그런 거 하면서 물어보시지….”
무안해진 백 신부가 얼른 말꼬리를 자르고 나선다.
“그…, ‘핵소 고지’라는 영화는 말입니다. 군 복무 자체를 거부하진 않고 미 육군 의무병으로 오키나와 전투에서 동료들을 구하면서 명예 훈장을 받았던 최초의 ‘집총 거부자’ 데스먼드 T. 도스의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도스가 총을 잡지 않은 이유는 종교적인 신념도 있지만,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일 뻔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살인은 가장 큰 죄악이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명을 해칠 수 없다는 개인적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군대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총을 잡지는 않고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 의무병을 택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군 복무를 현명하게 하는 선택이겠죠. 여기서 우리나라 군 복무 제도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베드로씨는 육군 보병 주특기 100 전투병과에서 장교 식당 조리병으로 근무하다가 만기 제대했죠.”
베드로는 자부심 있게 대답한다.
“아 예, 해병대 방위 소집해제님. 저는 대한민국 남자로 공증받은 육군 100입니다.”
“하하, 베드로씨 앞으로 누구하고 더 오래 살지 잘 생각하고 이야기하세요(째려봄).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도 군복무 의무 대상자가 현역병 복무 대신 공공기관이나 공공시설 등에서 복무하는 ‘대체복무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 또는 전문연구요원, 예술체육요원, 공중보건의사, 징병전담의사, 공중방역수의사, 공익법무관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체복무요원들은 징병검사에서 현역병이 될 수 없는 신체 조건이나 가정 형편, 특별한 기술과 기능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결국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 기관이 정하는 것에 따른 것입니다. 이것조차도 저출산 문제로 인한 인구 감소로 현역 입영대상자가 부족해져서 2023년에 전면 폐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스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대체복무는 없애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로 한다…. 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신부님, 좀 거시기 하네요. 군대 안 가면 양심적이고 군대 가면 양심이 없거나 종교적 신념이 약하다는 말입니까?”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베드로씨 같은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다 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역사를 보겠습니다. 놀랍게도 일제 강점기 때도 양심적 병역 거부나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마산교구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 정의평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