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2003-08-07 19:00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삼익수영장 맞은편 주택가 골목. 좁은 도로 양편으로 플라타너스가 그야말로 울창하다(주택가 도로의 가로수가 이럴 수는 없다). 수세(樹勢)가 왕성한 나무들 사이로 시큼한 냄새가 흘러 다니고 왁자지껄한 소음이 골목길에 꽉 차 있다.
두 세집 건너 막걸리집이다. 얼마 전까지 카페골목으로 불렸던 곳이라는 듯 맥주와 양주, 그리고 헛웃음을 파는 ‘골목 카페’가 아직 남아있다.
그 사이사이로 막걸리집 간판들이 많다. 주막안은 시끌벅적하다. 요즘들어 대폿집이 많이 생기고 호황이라고 한다. 장사가 안되는 카페가 문을 닫고 막걸리집으로 신장개업하기도 한다 .“새로 문을 여는 곳은 다 대폿집이다” 한 상인은 최근의 현상을 좀 보태서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전주시내에 막걸리집이 부쩍 늘었다.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특정 지역에 모인다. 완산구 경원도 동부시장 일대, 평화동 평화초등학교 앞 구도로, 삼천동 삼익수영장 맞은 편 골목 등을 대표적 공간이다. 침침한 뒷골목에 숨어 지내던 대폿집들이 큼지막한 간판을 내로라하며 거리로 진출하고 있다. 바야흐로 막걸리 전성시대다.
전주시내에 막걸리 대폿집이 집단화하고 있는 현상은 분명 새롭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기호일테지만 기호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는 이들은 없다.
분명한 하나는 전주 막걸리의 맛이 좋고 안주가 푸짐하고 공짜이기 때문이다. 이건 과거에도 그랬기 때문에 요즘의 부활에 대한 설명으로 좀 부족하다.
또 하나 막걸리 시장의 활성화를 공급과 수요의 측면에서 분석하자면 경기가 나쁘다보니 싼 값이 취할 수 있는 막걸리를 찾는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경기가 나쁘다보니 창업비용이 적게 드는 업종의 공급이 늘기 때문이다. 두가지 분석에서 공통점은 경기가 나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막걸리를 즐기는 주당들은 흐뭇해 한다. 전주시내 ‘막걸리 골목’들은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값도 다르고 안주가 나오는 방식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전주시내 막걸리집들의 ‘담합’은 안주를 공짜로 주는 행위다.
막걸리 주당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골목을 찾아 자신의 방식대로 취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일단 취하면 다 똑같다.
▲삼천동
완산구 삼천동 삼천도서관 맞은 편 옛 카페골목 100m나 될까말까한 거리 양편에 17개의 막걸리집이 모여 있다. 최근에 집적화가 진전되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의 댁호임이 분명한 용진집이니 덕암막걸리니 하는 간판이 내걸려 있는가 하면 곡주마을, 짱막걸리, 막걸리코리아 등 신식 이름들도 등장했다. 2년전쯤부터 한,두집 영업을 시작했다가 올들어서 여러 개가 생겼다.
이 골목의 대폿집들은 보통 막걸리 3병을 주전자에 한꺼번에 담아 기본으로 내놓는다. 막걸리집의 관록은 주전자의 찌그러진 정도에서 확인된다. 이 기본 1주전자가 9,000원이다. 안주는 탁자에 그득하다. 찌개냄비가 1개, 병치회, 옥수수, 다슬기 등이 나온다. 기본 주전자를 비우면 그 뒤부터는 2병을 주전자에 담아 5,000원씩에 먹을 수 있다.
손님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요즘은 30~40대들이 많다. 좁은 공간에 혈기방장한 이들이 모여드는데다 술이 혈기를 더해 분위기는 늘 ‘업’돼 있다.
영업시간은 가게마다 다르지만 보통 오후 서너시쯤 문을 열어 새벽까지 손님을 받는다. 막걸리집의 마감은 보통 오후 10시 전후다. 퇴근길에 들르는 경우가 많고 1차를 이곳에서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평화동
삼천동 골목보다 막걸리집이 더 밀집한 곳이 완산구 평화동 옛 평화동길이다. 장승로가 뚫리면서 평화초등학교 앞길은 골목길이 돼 버렸다. 이 도로 양쪽으로 대폿집들이 많다. 원동집·부안집·운암집과 같은 ‘집’들이 이 골목의 원조격이다. 테이블을 3~6개 정도 놓고 소규모로 운영하는 가게들은 더 북적인다. 공간이 좁아서도 북적이지만 단골이 많고 술값이 좀 싸다. 1병에 2,500원을 받는다. 내부가 넓고 깔끔한 집들은 1병에 3,000원이다. 평화도 막걸리골목도 기본이 3병이다. 특별안주를 찾는 이들에게는 5,000원~10,000원짜리 안주를 별도로 만들어 주는 곳도 있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해 지난 3월부터 대폿집을 시작했다는 안모씨(43)는 “요즘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대로 할만하다”고 한다. 이곳 막걸리집들도 오후 서너시쯤 문을 연다. 자정까지 영업은 하지만 밤 9시쯤이면 한산해진다.
주택들이 인접해 있고 장승로라는 큰 도로를 끼고 있어서인지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하지만 초저녁 골목길은 거나한 이들의 유쾌한 잡담들로 늘 시끄럽다.
▲동부시장
완산구 경원동 동부시장 거리는 막걸리촌이다. 꽃사슴분식이니 OO라사니 하는 예스런 간판을 건 가게들이 올망졸망 70년대 전주모습이 살아있다. 이곳의 대폿집들은 삼천동이나 삼천동처럼 길 하나에 모여있는게 아니라 동부시장 주변에 여기저기 산재한다. 왕년의 대폿집들이 건재하고 따라서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주고객이다. 값도 싸다. 한병에 2,000원이다. 한주전자에 5,000원쯤하는 동동주를 파는 곳도 있다.
이곳의 특징은 전통의 안주다. 순대국이나 청국장, 닭내장탕과 같은 안주는 경륜의 안주인들만이 할 수 있는 메뉴다. 삼천동이나 평화동의 대폿집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다. 값이 저렴하면서도 배를 불릴 수 있으니 주머니가 가벼운 애주가들이 동부시장 일대를 떠나지 못한다.
전통이 있으니 얘깃거리도 많다. 영어로 주문을 받는 한울집의 개그우먼, 여류시인이 운영하는 ‘대장군 왔소’와 같은 명물·명소들이 그 예다.
하지만 동부시장 막걸리촌은 재래시장의 쇠퇴를 막지 못한다. 하나둘씩 문을 닫고 점집이 되거나 실내마차로 변하고 있다.
/변관열 최을영 정남주기자